|
전투
박 영 희
I
싸워라! 싸워라!
2
“글쎄 이 자식아! 물건을 팔러 다니면 외치고 다녀야 팔리지. 이건 무슨 벙어리 장사냐? 자식이 저렇게 못나고야 집안이 아니 망할 리가 있담?” 하고 한 사십이나 먹어 보이는 진환은, 추워서 떨고 앉았는 자기 아들 순복이를 보고 꾸짖기 시작하였다.
“어디 몇 개나 괄았나 보자!” 하고 순복이가 끼고 앉았는 만주통을 왈칵 잡아끌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볼 때 남아 있는 만주는 열두 개나 있었다.
“그래 기껏 돌아다녀야 세 개밖에는 못 팔았단 말이냐? 글쎄 외치고 다녀야지. 이러고서야 밤새도록 돌아다녀 보아라!” 하고 통을 순복이에게로 내이밀었다. 그러나 진환은 이 순간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통을 순복이에게로 내어던질 때, 예전에 순복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저녁에 자기 앞에서 복습을 할 때에 한문을 잘 읽지 못하므로 책을 순복이 앞에 내어던지면서 “글세 이 자식아, 학교에는 헛다닌단 말이냐?” 하고 큰 소리로 나무라던 생각과 또한 조선어독본을 읽을 때에 자기 나라의 말이며 글인데도 발음 하나 똑똑히 못 하며, 조선말로는 잘 읽지 못하는 것을 ‘黃昏の雲は……’ ‘다송아래래노구모’라는 소리는 헛소리하듯 매우 잘 읽을 때에 자기는 또한 큰 소리로 “글쎄 너는 언문 하나 똑똑히 모르면서 그것이 무슨 반벙어리 소리냐? 무엇, 다소가―! 그까진 학교는 다니지도 말아라” 하고 나무라던 생각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까짓 학교나마 다시 다니지 못하게 만든 자기의 신세를 생각할 때에 아들이 불쌍한 것보다도 자기의 신세가 죽어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치 부끄럽고도 분하였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러한 모양도 나타내지 아니하고 “글쎄, 왜 또 이렇게 말을 아니 듣고 앉았어?” 하고 추움에 떨고 앉았는 아들을 보고 악을 썼다. 그때에 겨우 외로운 순복은 실심하고 앉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애원하듯이 말대답하였다.
“오늘은 몸이 아파요” 하고는 겨우 말을 마치고 또다시 그의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무슨 동정하는 빛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눈을 감고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였다. 눈을 감아서 날카로운 표정은 좀 덮이었으나 여전히 엄숙한 아버지의 신색 위에는 말할 수 없는 괴로운 빛이 가득하였던 것을 발견하였다. 순복은 또다시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어보았다. 그러나 방바닥을 내려다보고만 앉았는 그의 어머니의 눈에서는 한 방울 한 방울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방 안은 한껏 고요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감은 얼굴의 눈을 뜰 수 없을 만치 괴로운 빛과 어머니의 위로해 주는 대신으로 쏟아지는 밝은 눈물과 순복의 설움은 조금도 덜함이 없이 어떠한 절정에 이르렀었다. 이 어린 순복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웠다. 더욱이 두려운 아버지의 날카로운 꾸지람보다도 어머니의 말없는 눈물이 얼마나 순복이를 흔들었는지 모른다. 순복은 어찌할 수 없이 거진 무의식적으로,
“어머니!” 하고 불렀다. 저도 어찌해서 부른지는 몰랐다.
“……” 아무 말도 없이 어머니는 그윽이 머리를 들고 망연히 앉아있는 순복이를 치어다볼 때에 그의 눈속에서 쏟아지는 눈물은 더한층 순복이를 향하고 퍼부어 내린다. 이때에 순복이는 아버지만 아니 계셨으면 그냥 어머니의 무릎 위에 엎어져서 기쁨을 얻을 때까지 울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풀을 바라다보고 있던 순복은 별안간 자기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림을 알았다. 이때에 순복은 모든 괴로움, 모든 슬픔, 모든 학대를 생각할 여지 없이 무엇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그것이 어머니의 눈물이 주는 순복이의 새로운 용기이었다. 그것이 연약한 어머니의 눈물에서 얻은 순복이의 결심이었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순복은 그냥 벌떡 일어났I斗. 그리고 만주통을 둘러메고 방문 밖에를 나왔다. 별안간 추운 바람이, 온갖 결심을 품고 나오는 순복의 가슴을 떨게 하였다. 찬바람이 어린 순복의 연약한 뺨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간다. 별이 흔들리는 어두운 하늘에서는 집덩이 같은 바람이, 바닷물 같은 바람이, 지동치듯이 ‘휙휙’ 소리를 지르고 강철같이 ‘챙챙’ 하면서 돌아다닌다. 그 많은 바람이 장차 순복이의 몸을 얼게 할 바람이다. 순복이는 뚜벅뚜벅 대문 밖에를 나왔다. 시꺼먼 하늘과 땅 사이에는 다만 두려운 바람이 바다와 같이 파도를 칠 뿐이다.
밤 열시!
집집마다 문을 닫쳤다. 볼그스름한 들창의 불빛 이 이상하게도 순복이 마음을 끌게 하였다. 사람도 없는 외로운 길을 희망 없이 걸어가는 순복이는 어디를 가는지 어디로 갈는지 정처없는 바람과 한가지로, 발 가는 대로 낭갔다. 그러나 발은 조금도 정지하지 않고 무슨 목적지를 향하고 가는 사람처럼 빨리빨리 나아갔다. 이것은 날마다 하는 순복의 일과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순복이는 자기 집이 아주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 비로소 떨리는 목소리로,
“만주노 호야, 호야!” 하고 외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매우 듣기에 싫을 만치 어색하였다. 또한 괴로운 목소리였다. 그는 어느 때든지 자기 집 동네에서는 “호야, 흐야 만주!”라는 것을 외치지 않았다. 늘 다른 동네에서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다른 아이들처럼 쉴새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니다. 하룻밤에 잘해야 다섯 번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한다. 그것도 요즈음 일이다. 첫번 날은 거진 만주통을 메고 시내를 산보하는 데에 더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만주는 한 개도 못 팔고 싸움만 수없이 했다. 그의 첫날의 싸움 이야기는 이러 하였다.
3
순복이가 만주통을 메게 된 원인은 물론 그의 아버지의 여러 해 동안의 사업에 대한 실패로 말미암아 가세가 빈한한 것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인 진환이 돈푼이나 있었을 때에는 자식에게 대해서도 그리 인색하게는 아니 하였다. 더구나 아들이 많지 못한 그는 오직 하나인 순복이와 그 아래로 계집애 순희, 둘밖에는 없었다. 얼마나 귀엽게 길렀으랴! 더욱이 학교에서 제일 쾌활하고 또한 총명하다고 칭찬을 받던 순복은 자기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일가친척까지도 “순복! 순복!” 하고 칭찬을 마지아니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순복이가 학교를 퇴학하기 전까지 일이고, 순복이가 만주통을 메기 전까지의 일이다. 그가 만주통을 메고서는 외로운 밤 길바닥 위에서 학대를 받지 않으면 아니 되며, 구박을 받지 않으면 아니 되며, 추위에 떨지 않으면 아니 되며, 배고픔에 울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까닭이다. 만주통을 처음으로 메고 자기를 칭찬해 주며 자기를 부러워하던 모든 아이들 가운데로 만주를 팔러 나아가는 열다섯 살 된 순복의 마음은 즉어도 참말로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도 혼자 날치던 순복, 장난하는 데에서도 늘 승리자였던 순복, 자존심이 많던 순복, 호화롭던 순복으로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때때 밥을 굶고 그 외에 아버지의 두려운 매에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뜨끈뜨끈한 만주통을 메게 되었다. 만주통을 메고 어색하게 비실비실 걸어가는 순복이는 만주를 어떻게 하면 다 팔고 들어가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다만, ‘오냐! 어느 자식이든지 나를 보고 무엇이라고만 해보아라. 이 만주통으로 해골을 깨뜨려 버리리라!’ 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뜨겁게 끓었다. 그의 아버지의 학대와 그의 운명의 유린에 반동적으로, 누구든지 만주통 멘 순복이를 뇰리는 아이에게 순복이는 치명적으로 싸우리라 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그는 목창을 멘 무사와 같이, 잡깐 동안은 모든 짓을 잊어버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갔다. 때는 오후 네시이었다.
할 수 있는 대로 사람이 많이 있는 데로는 다니지 아니하려던 순복이는, 길가에서도 혹 아는 동무를 만나지 아니할까 하고 일부러 행랑 뒷골목으로 다니는 순복이는 어느덧 고만 C동 어귀에를 저도 모르게 다다랐다.
붉은 벽돌집! 순복이는 문득 이 집 앞에를 왔다. 아! 얼마나 반가우랴? 한 달 만에 비로소 만난 이 집이 삼 년 동안이나 순복이를 줄겁게 어루만져 주던 곳이다. 그 집 안에는 순복이하고 어깨를 같이하고 즐겁게 놀아 주던 동무들도
있었고, 순복을 마음껏 뛰게 할 수 있던 넓은 운동장도 있었다. 또한 그곳에는 사랑하여 주던 선생님들도 있 있었고, 정이 들어 하루라도 아니 볼 수 없었던 동무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해서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며, 어찌해서 그는 그 운동장에서 뛸 수가 없이 되었나 하고 순복이가 생각할 때에 그는 말 할 수 없는 외로움을 맛보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아버지의 허물도 아니고 어머니의 잘못도 아니고 나의 게으름으로도 아니다” 하였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의 옷을 전당국에 갖다 잡히고 순복이의 마지막 월사금을 물어주었던 까닭이다. 그런 고로 그의 아버지의 물건, 그의 어머니의 옷은 전당국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순복이도 잘 아는 까닭이다. 순복이의 나머지 즐거움은 전당국 속에서 홀로 즐기거니 하는 생각도 순복이는 짐작하게 되었다. 같은 나이지만 부잣집 아이들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의 생각은 놀랄 만치 실제생활을 잘 아는 것이다. 그러나 순복은 그 붉은 벽돌집을 또한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아이들…… 어떤 아이는 삼 년이나 낙제를 하면서도, 어떤 아이는 늘 벌만 서는데도 학교에서는 즐거이 맞아 준다. 그러나 공부도 잘하고 또한 쾌활한 순복이는 어찌해서 학교에서 더 맞아 주지 아니하며, 더 사랑하여 주지 아니하는지! 그럴수록 순복은 그 붉은 벽돌집을 미워하였다.
붉은 벽돌집! 삼년급에서 그가 공부할 때에 순복이가 앉은 자리가 제일 순복이 마음에 맞았었다. 그 자리는 바로 남쪽을 향해서 운동장을 내다볼 수 있는 창 앞이었다. 겨울에는 볕이 들고 여름에는 바람이 들어오는 자리였다. 그런 고로 순복이는 그 책상 밑에다가 몰래 자기의 이름을 새기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자리에 누가 대신으로 앉았을까?’ 하고 생각할 때에는 몹시도 부끄러웠다.
또한 순복이를 제일 사랑하던 김선생은 어느 때에 순복이를 어루만지며 “너 졸업하거든 × ×고등보통학교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입학하기에 쉽게 할 터이니 아무쪼록 공부를 잘하여라” 하던 김선생이 순복의 생각에는 몹시도 야속하였다. 만일 지금 그가 김선생을 만날 것 같으면 순복이는 부끄럼과 무안함에 얼굴이 붉어지며 그냥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으리라! 그 넓고도 넓은 벽돌집이 지금 와서는 순복이에게는 자기의 몸을 안아 주는 초가 한 칸만도 못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대신 얼마나 미워하였는지 모른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어느덧 그 학교 문 앞에를 왔다. 마침 하학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셋씩 혹은 다섯씩 손목을 붙잡고 학교를 나온다. 순복은 그렇게 친하게 놀던 그 아이들 보기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런 고로 얼른 그 학교 담을 끼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순복은 몸이 떨리었다. 무슨 부끄러움을 발견된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저 자식! 순복이지! 만주노 호야, 호야!” 하고 놀리는 소리를 들은 까닭이다. 그 순간에 부끄러움에 취한 순복의 다리는 달아나려 하였으나 활발한 순복의 마음은 ‘‘대항하라, 그까짓 자식이 무서워서 달아나려고 하니. 너는 못난이다! 대항하라!’’ 하고 부르짖었다. 순복은 가던 발을 멈추고 홱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문득 용사와 같이 빛났었다.
“무어, 어째!” 하고 세 명 학생 앞으로 갈 때에 순복을 놀리던 학생이 기복인 것을 순복이가 알았다. 기복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부터 순복이의 약한 대적 이었다.
“무엇 어째, 이 자식아?” 하고 기복이와 세 학생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지금, 이 자식 너 무어라구 했니?” 하고 순복이는 만주통을 내려 놓으면서 흥분된 말소리는 떨렸다.
“무엇, 너 만주장수이지?”
“그래, 어째?”
“그러니깐 만주장수라는데…… 무어야, 이 건방진 망할 자식…… 그것 참!”하고 기복이가 말을 하자마자 순복이의 떨리는 주먹은 문득 기복이의 언 뺨을 찰싹 하고 때리고 말았다.
“이 자식, 만주장수! 그러니 어째? 너는 학생이지?” 하고 둘쨋번으로 또 그 옆의 아이를 갈겼다. 얻어맞은 세 학생은 모자와 두루마기를 벗고 일제히 순복이에게로 달려들었다. 굳센 순복의 두 팔과 분노한 세 학생은 죽기를 다하고 땅 위에서 서로 멱살 붙잡고 뒹군다. 얼마 동안 서로 자빠졌다가 엎드렸다가 하다가는 불행히 기복이의 구두 뒷징이 순복의 이마를 찼다.
“아, 이 자식 봐라!” 하고 다시 용기를 다해서 벌떡 일어난 순복의 이마에는 이미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전선에 나선 가장 용감한 병사와 같이 순복은 이손 저손으로 이마의 피를 되는대로 씻어 가면서 떨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자식들 오너라! 오너라!”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그들의 학생의 옷자락에다가 피를 씻는다. 아무리 세 사람이 힘을 다해서 싸운다하여도 순복이처럼 치명적 전투는 아니었고, 서로서로 몸을 피하려는 데에서 그들의 세 사람은 지고 말았다.
“이 자식들, 내가 만주장수 못 할 것이 무엇이니? 너희들은 만주장수 안 될 줄 아니? 왜, 못 오니? 자! 오너라!” 하고 순복은 떠들었다.
“그까짓 개자식하고 싸움도 할 것 없다! 자! 가자! 가!” 하고 핑계를 하여 가면서 입으로 욕만 하고 돌아서서 세 학생은 가려고 한다.
“이 더러운 자식들, 쫓겨 가는 자식들!” 하고 쫓겨 가는 세 학생을 향하고 욕을 하였다. 기복이가 문득 다시 오면서,
“이 자식아, 무엇이 더러우냐?” 하면서 옆에 놓인 만주통을 힘껏 발길로 찼다. 통은 엎어지면서 만주는 그냥 땅 위에 쏟아졌다. 기복이와 두 학생은 싸움할 때보다 더한 용기를 다해서 달아난다. 순복이의 전 생명을 표시하는 이 만주가 땅 위에 엎어질 때에 순복의 몸은 문득 뜨겁게 떨리었다. 전신의 피의 순환과 한가지로 그들을 쫓아갔다. 그러나 그 세 학생은 누구의 집인지 길가의 어떤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문을 닫아 버렸다. 순복은 분함에 가슴이 터질 듯하였고 염통이 갈라지는 듯하였다. 힘을 다해서 쫓아갔으나 원래 뒤진 순복은 그들을 잡지 못하고 닫은 문을 발길로 차면서 “문 열어, 문 열어!” 하고 거진 울 듯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순복은 문이 깨어져라 하고 잡아흔들기도 하며 돌로 때리기도 하며 발길로 차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잠깐 동안은 순복이도 무슨 생각을 하는 듯이 망연히 섰었다.
“이 자식아, 그까짓 자식을 못 잡는단 말이냐? 어…… 참. 옜다, 이 통 속에 만주 들었다” 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분한 일을 당한 듯이 헐떡거리면서 순복이 옷에 묻은 흙을 털어 주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는 두루마기도 얻어입지 못하였고 옷도 순복이처럼은 입지 못한 거리로 다니는 표랑아와 같았다. 순복이는 그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그 자식들이 누가 그럴 줄 알았니?” 하고 오랫동안 숙친한 동무와 같이 그 만주통을 받았다. 그때에 비로소 문을 열고 어떤 어른 한 사람이 나타났다. 순복의 고식되었던 감정은 다시금 뜨거워졌다. 그러므로 그 열린 문으로 와락 들어가려고 할 때, 그 어른이 순복이의 팔을 잡으면서,
“지금 문을 흔든 자식이 누구냐?”
“나예요!” 하고 순복이가 말을 할 때에 그 어른은 순복이의 뺨을 때리면서,
“이 자식! 문을 왜 흔들었니? 이 문값을 물어내라! 만주 팔러 다니면 만주나 팔지 남의 집 아이들을 왜 때리어. 배지 못한 자식! 그래, 이놈아! 네가 들어가면 어떻게 할 터이냐?” 하고 성난 눈으로 순복이를 본다. 이 권력 아래에서는 순복이도 대항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냥 울어 버렸다.
“만줏값을 내― 만즛값을 내요. 남의 것을 발길로 차고 달아나고서…… 응, 응!” 하고 울고 서 있다. 그 어른은 잠깐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섰었다. 별안간 순복이 옆에서 서 있던 그 애가 그 어른 앞으로 쓱 나서면서,
“제가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그 아이들이 먼저 이애를 때리고 발길로 통을 찼어요. 만주장수는 죽을 사람이에요?” 하고 순복이 대신으로 영악하게 말을 하였다.
“그러면 만줏값이 얼마란 말이냐?” 하고 그 어른이 말을 물어 보았다.
“칠십오 전이에요” 하고 순복이는 울면서 대답하였다. 그 어른은 아무 말 없이 지갑을 꺼내 가지고 오십 전 은화 한 푼을 주면서,
“옜다, 이 자식! 네가 가만히 있었더면 그애들이 그 통을 찰 리가 있니. 다시 그런 일을 했다가는 그냥 두지 않을 테야, 응!” 하고 순복이를 협박하였다.
“아무리 일은 그래도 저희는 이것으로 밥을 먹는데 만줏값이나 다 물어주셔야지요” 하고 역시 그 순복이 옆에 선 아이가 대신으로 말하였다.
“애, 그 자식! 그것만도 나니깐 주는 것이야. 잔소리 말어!” 하고 문을 탁 닫고 들어갔다. 순복은 얼마 동안 우두머니 생각하였으나 하는 수 없이 만주통을 또다시 둘러메었다. 그때의 그 옆에서 도와 주던 아이가 순복이의 어깨를 다정하게 잡고서,
“너의 집은 어디냐?”
“우리집은 천연동이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김순복이다. 너는?”
“나는 박칠성이다” 하고 그 두 아이는 서로의 초면 인사를 가장 자유스럽 게 하였다.
“너, 그래, 그런 자식들을 가만히 둘 터이냐? 조금만 내가 싸우는 것을 일찍 보았어도 그 자식들을 죽여 놀 것을―” 하고 칠성이가 분함에 못 이기는 듯이 부르짖었다.
“글쎄, 어떻게든지 혼을 내야 할 테다. 그런데 너는 내가 싸우는 것을 언제부터 보았니?” 하고 웃으면서 순복이가 말을 물어 보았다.
“그 자식들이 통을 찰 때에야 보았다. 그런데 그 자식들을 가만히 둘 테냐?” 하고 칠성이가 순복이를 격동시킨다.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칠성이란 아이도 처음에는 만주장사를 하였다. 그런 고로 여러 가지로 아니꼬운 꼴을 보았었던 고로 칠성이는 어느 아이고 만주 팔러 다니는 아이를 볼 때이면 이같이 동정하였다. 더욱이 이번에 순복에게는 사건이 큰 것만큼 깊이 동정을 하였었다. 지금의 칠성이는 남의 집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되었으므로 오랫동안 순복이와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네가 만일 그 자식들하고 싸운다면 어느 때든지 나도 가서 싸울 터이니 나한테로 와서 불러라! 응, 우리집은 K동 삼십칠번지다” 하고는 순복이의 어깨를 탁 치고는 그냥 헤어져 버렸다. 잠깐 동안이었으나 순복이에게는 칠성이가 잊을 수 없는 동무이었다. 길거리에서 학대받는 순복이를 누가 위로하였으랴! 오직 처음 만난 칠성이의 용감한 목소리로 “또 싸워 보자!” 하는 간단한 말이 쾌활한 순복이에게는 또없이 즐거운 위로였다. 순복이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작전계획에 바빴었다.
4
순복이는 원래 쾌활은 하였으나 다른 아이들하고 싸우는 것을 즐겨 하지는 않았다. 장난에다 운동에는 승리를 하였으나 남하고 싸움을 잘 하지 않았던 순복은 물론 승리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만주통을 메게 된 때부터 그에게는 뜻하지 않았던 굳센 힘과 생각지도 않았던 싸움의 승리를 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그 힘은 어디로부터 나온 힘일까? 어른과 같이 비루한 굴복과 타협과 허위를 갖지 아니하고, 마음의 자유와 강직과 완고한 성질을 가진 아이들 중의 하나인 순복이로서는 같은 아이들의 학대를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같은 아이들로서 남들은 다 학교에 가는데 자기는 학교 문 안에 들어서는 자유를 주지 아니하고, 또한 유쾌하게 뛰놀 시간의 자유를 주지 아니하며, 또한 배가 부르도록 먹을 것의 자유를 주지 못하였다. 그런 고로 또한 그는 그것들의 반동적으로 자기를 저주하는 그들을 오직 힘과 주먹으로 두드려 버리려는 굳센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순복이가 길에서 다른 학생들을 만날 때이면 그들은 “순복이냐? 너 왜 학교에 오지 아니하니?” 하고 어깨를 치던 그 아이들도 순복이가 만주통을 멘 후부터는 무슨 구경거리나 난 것 모양으로 길에서 만나기만 하면 “저것 보아라! 순복이자식이 만주 팔러 다닌다!” 하고 뒤를 쫓아다니는 것이 그만큼 순복이에게도 위대한 반항하는 힘을 주었던 것이다. 순복이 집에서도 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의 부모는 “오죽 춥겠니? 자, 아루묵으로!” 하던 것이 지금은 순복이를 보기만 하면 “몇 개나 팔았니?” 하는 것이 다정한 말이 되고 말았다. 순복이도 전과 같은 순복이었고, 그의 부모도 전과 같은 부모이었고, 그의 동무들도 전과 같은 동무이었으며, 그의 동네도 전과 같은 동네이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다르게 만들었는지를 순복이는 생각하려 하였으나 찾지를 못하였다. 다만 순복이가 현저히 발견한 것은 다른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고 동무들하고 학교에 가는 시간에 자기는 뜨근
뜨근한 만주통을 메고 홀로서 길가로 다니면서 “만주노 호야, 호야!” 하고 외치는 것이 다르며 다른 아이들이 저녁이면 더운 방에서 동생들하고 복습을 하는 시간에 자기는 주머니의 때묻은 돈을 헤면서 길 위에서 떠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는 다른 것은 다 같은 것뿐이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다른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순복이를 보면 못 견디게 놀리며 또 순복이하고는 한가지 놀아 주지를 아니하는지? 순복이는 며칠 동안에 또한 발견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남들이 나를 업수이여긴다!’ 하는 것이었다. 업수이여긴다는 말이 어떠한 의미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보다 ‘너희들이 나를 업수이 여기면 나는 힘과 주먹으로 너희를 놀려먹겠다!’ 하는 것이 요사이 얻은 것이다. 그러나 순복이는 어른한테 얻어맞을 때에는 늘 반항하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그에게는 눈물이 반항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눈물을 홀릴 만큼 그렇게 못나지는 않았다. 상당한 이론을 가지고 또한 어른까지를 반항하려 하였다. 그런 후부터는 동네에서도 순복이는 어른을 몰라본다고 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순복이는 그럴수록 외로운 나무와 같이 점점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무도 없이 오직 순복이 혼자이었다. 순복이는 산속에서 뛰는 사자와 같이, 호랑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미움과 학대를 받으면서 오직 마음은 용감하게 길들여졌다. 그러나 그와 같이 점점 난폭하여 가는 순복이 마음을 조절하여 주는 힘이 또한 있었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의 폭력도 아니고 자기 어머니의 연약한 눈물도 아니었다. 다만 열네 살 먹은 정애란 계집애의 함부로 웃는 웃음이었다. 정애는 아무나 보고 잘 웃는 계집애였다. 그런 고로 아무도 그까짓 정애의 웃음 같은 것은 돌아보지도 아니하였으나 오직 순복이의 철없는 마음에는 그 웃음 속에 힘이 있었고 또한 아이들의 불완전한 희망도 있었다. 다른 동무들이 순복이를 점점 배척함을 따라 순복의 구슬프고 외로운 정은 모두 정애에게로 옮기고 말았다. 정애뿐만 아니다. 순복이의 동생 순희도 또한 유일한 동무와 같이 동생 이외의 더한 정이 들어간다. 그러나 정애처럼 그렇게 가슴이 흔들리는 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애를 못 본 지가 오늘이 벌써 열흘이나 되었다.
정애는 순복이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아래윗 집에서 자라났었다. 그런 고로 아이들끼리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끼리도 퍽 숙친하였던 것이다. 순복이 아버지하고 정애의 아버지하고는 날마다 술 먹으러 다니는 술친구였다. 그러나 정애의 아버지는 오 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 후부터는 정애의 집도 점점 가난하여졌던 것이다. 정애는 순복이 집에를 어려서부터 와서 순희와 놀았기 때문에 좀 점잖아도 그냥 다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애의 어머니는 정애가 순복이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요즈음 일이었다.
그럴수록 동무가 없는 순복이는 정애가 보고 싶었다. 저녁이면 순희와 정애와 순복이가 한가히 이야기를 하던 것도 벌써 오래전의 일이었다. 순복이가 만주통을 메게 된 후부터는 물론 한가히 놀 틈도 없지만 정애도 또한 순복의 집에 오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는 순복이는 늘 아버지의 꾸지람뿐을 들으며 어머니의 슬픈 낯을 대할 뿐이었다. 사실 어느 때는 정애를 생각할 틈도 많지 못하였다. 어느 날 순복이는 순희에게 이와 같이 물어 보았다.
“이애, 순희야, 요새 우리집에 정애 놀러오지 않던?”
“벌써 우리집 안 온 지가 언젠데?”
“너도 정애한테 놀러가지 안했니?”
“응, 그런데 접때 내가 정애한테 놀러갔더니 정애 어머니가 그러는데 정애를 어느 아는 집에 심부름하고 아이 보아 주는 계집애로 보냈답디다.”
“그래서 우리집에를 오지 아니하였구나?”
“그럼, 밤에나 제 어머니에게로 온대.”
동생의 전한 바를 들으면 순복이는 영영 정애하고는 이별인 것 같았다. 늘 밥낮없이 돌아다니게 된 순복은 무엇보다도 정애라는 어여쁜 동무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 섭섭하였다. 순복은 자기가 만주통을 메고 돌아다닐 때에는 정애는 무거운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였다. 그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눈에 고임을 깨달았다. 어찌하였거든 모든 마음 아프게 된 일이 모두 다 순복이가 만주통을 멘 후에 생긴 일이다. 그러므로 순복이는 통을 멜 때마다 한숨을 아니 쉰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이 나이 어린 순복이의 가슴도 세상에서 생존경쟁에 날마다 부딪치는 괴로움을 맛보게 되었다.
5
어느 일요일날 아침이었다. 오늘도 다른 날과 같이 순복이는 만주통을 메고 나가게 되었다. 오늘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다 유쾌하게 노는 날이다. 그러나 만주장수 순복이는 일하는 날이다. 수천만 학생에게는 한 달에 네 번씩 휴일이 있었다. 그러나 또한 수천만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일 년에 하루의 휴일도 없었다. 아침 일찍이 추운 하늘에서 울려오는 예배당의 종소리는 많은 아이들을 부르는 군호이다. 아이들을 불러서 무엇을 하느냐? 많은 아이들은 뜨틋한 난로를 둘러싸고 턱턱 겉상에 앉아서 풍금에 슛춰서 노래를 부르고, 또한 어여쁜 그림과 상급을 주기도 하고 또한 그 주일 동안에 생일 되는 아이가 있으면 한가지로 축하도 하며 또한 선생들은 아이들에게 천당과 지옥의 이야기를 가르쳐 주기도 하며, 가난한 아이를 불쌍히 여기며, 배고픈 아이를 도와 주라는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학과를 가르치는 주일학교의 종 치는 소리이다. 또한 길가에 학생모를 쓴 아이들은 다 각각 서로 동무를 불러 가지고 산보를 다니는 것이었다. 또한 어떤 아이들은 자기들의 아버지에게로부터 돈을 타가지고 공책과 연필과 공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물건을 사러 다니기에 즐겁게 해를 보내는 날이었다. 그러나 순복이에게는 부르러 오는 사람도 없고 또한 그들의 틈에 같이 앉아서 놀 만한 자리도 주지 못하였다. 지난 일요일에도 너무 심심해서 순복이가 주일학교에를 갔더니 너무도 옷이 더럽고 냄새가 나므로 도둑질하러 온 아이와 같이 내어쫓김을 받고 말았다. 그렇다! 순복이에게는 잘 만들어 놓은 방과 교의는 적합하지 아1ㅢ하였다. 그에게는 큰 길과 작은 길이 그의 생활을 계속시켜 주는 곳이었으며 사람 많은 시장과 땀을 씻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쉬고 있는 집 짓는 데나 땅 다지는 데가 순복이를 맞이하여 주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야 비로소 만주를 팔게 되는 까닭이다. 순복이에게는 아무 곳도 놀 곳이 없으며 또한 놀게 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어디서 운동회가 있고 어디서 학생들의 운동시합회가 있나 하고 늘 귀를 기울이고 다닌다. 그러므로 늘 옛날 동무들이 자기를 놀리거나 혹은 조소하는 아이를 보면 이 모든 하소연의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움을 한다. 학생모를 쓰고 길로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에 순복은 늘 싸움 준비를 하면서 그 아이 앞으로 갔었다. 다만 그 아이가 미워서만 그러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환경과 순복이가 가지고 있는 생활이 필연적으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순복이의 나라는 그 아이들의 나라보다, 일반사회에 대해서 무능력한 것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 고로 그들에게 압박을 당하는 순복이의 나라는 늘 그 상대 되는 나라를 만나면 싸우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 사람의 진리이었다. 오늘도 순복은 여전히 만주통을 메고 넓은 길 좁은 길을 돌아다니는 판이다.
오후 한시!
순복이는 이곳저곳 돌아다니기에 다리가 아픈 것보다도 배가 고파서 못 견딜 지경이다. 순복이는 날마다 이렇게 배고픈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이고 한번 점심을 먹어 본 때는 없었다. 열두 시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하는 순복이는 아무러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눈을 딱 감고 오후 두시까지만 참으면 그만 배고픈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기갈이라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아니 다니는 데 없이 돌아다니는 순복이가 우연히 또 C동 어귀에를 왔다. 그 동네를 들어서자 별안간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며칠 전에 기복이란 아이와 싸움하던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기복이자식이 내 만주통을 발길로 찼지. 어디 이 자식 눈에 보이기만 하여라, 주릿대를 안길 터이니……” 하고 기복이 집 문 앞을 흘긋 보았다. 그러나 물론 기복이는 없었다. 그 대신 어떤 계집애가 손을 눈에다 대고서 훌쩍훌쩍 울고 서 있다. 그것이 누구이냐? 순복은 무의식중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것은 틀림없이 정애의 보고 싶던 자태이었다. 순복이는 곧 정애에게 달려들려 하였으나 별안간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자기가 만주통을 메고서는 첫번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복의 마음은 이와 같이 부르짖었다. ‘순복아! 정애는 또한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를 아니? 정애를 혹은 기복이가 때리지나 아니하였니? 가서 위로를 해주어라!’ 그러므로 순복이는 빨리 정애 앞으로 갔다. “정애야! 정애야! 너 왜 여기 서서 우니?” 정애는 눈물이 어린 눈을 들고 말을 풀어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바라다보았다. 정애가 비로소 순복인 줄을 알게 될 때에 정애는 한없이 반가웠으나 한편으로 부끄러웠다. 그것은 계집애가 길에서 우는 것뿐만 아니라 남의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정애가 다시 만주통 멘 순복이를 물그고러미 쳐다볼 때 정애는 곧 빙그레 하고 웃었다. 그러고 속마음으로는 “만주노 호야, 호야!” 하는 순복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순복이도 정애가 자기의 만주통을 보는 줄 알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아이들은, 즐거움과 부끄러움에서 서로서로의 슬픔을 잊어버렸다.
“나는 이 집에서 심부름하게 되었단다” 하며 정애는 기복이 집을 가리켰다. 그때에 순복이는 얼마나 가슴이 서늘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별안간 온몸에는 다시 피가 끓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울기는 왜 우니?” 하고 기복을 연상하면서 정애에게 물어보았다.
“아침에 주인집 아이가 공연히 나를 가지고 장난을 하기에 욕을 하였더니 주인나리가 도련님에게 욕하는 법이 있느냐고 꾸지람을 하기에 나는 아무 말도 아니 하였는데 낮에 일하는 나를 발길로 차서…….” 하고 정애는 다시 울기 시작한다. “내가 고, 고만 넘어, 어, 졌단다. 그런데도 주인나리는 날더러 도련님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구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하고 흑흑 느끼면서 운다. 이 말을 들은 순복이는 그 당석에서 그놈의 집을 뛰어들어가고 싶었으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그는 무슨 큰 권력이 자기네 머리 위에서 ‘꼼짝 마라’ 하는 듯이 협박하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때 순복이는 첫날에 사귄 박칠성이란 아이를 문득 생각하였다. 그리고 순복이는 무슨 결심을 한 듯이,
“정애야, 너 언제 집에 가니?” 하고 물었다.
“저녁이면 집에 가서 잔다.”
“응, 그러면 울지 말고 들어가 있거라” 하고 순복이는 어디인지 향하고 정다운 친구 정애를 버리고 빨리 갔었다.
⁕
저녁 일곱시쯤 해서, 열세 살, 열네 살쯤 먹은 학생아이들이 다섯 명이 서로 손목을 마주 잡고 저희끼리 지저귀면서 간다. 활동사진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애들은 구경을 가는 모양이었다. 그 애들이 반쯤 열린 K학교 운동장 앞 가까이 왔을 때에 어떤 아이 하나이 기복이의 다리를 뒤에서 한번 지르고는 그 K학교 운동장으로 달음질해서 들어갔다. 그 다섯 아이들도 쫓아 들어갔다. 달아나던 아이는 운동장 가운데서 딱 섰다.
“이 자식, 너 왜 나를 찼니?” 하고 기복이가 그 아이 멱살을 붙잡았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순복을 도와 주는 칠성이었다.
“너 이 자식! 전번에 순복이란 애의 만주통을 발길로 찼지?” 하고 물을 때에 기복이는 무슨 양심의 가책을 받는 모양으로 잠깐 동안은 아무 말도 없이 의아해하고 섰었다. 그러나 옆에 섰던 아이 하나가 영리하게,'
“너 이 자식, 웬 참견이ι' 너는 명색이 무어야?”
“명색이?”
“그래 !”
우선 말하기 전에 칠성이는 기복이의 뺨을 때렸다. 기복이 맞는 것을 보고 다른 아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칠성이를 발길로 차기 시작한다.
“이 자식들!” 하고 저편 어둠 속에서 순복이하고 다른 아이 하나가 나타났다. 이리해서 저편의 다섯 명과 이편의 세 명이 서로 땀을 흘려가면서 싸운다. 기복이의 주먹이 칠성이를 때리면, 문득 순복이의 발길이 기복이의 허리를 지른다. 순복이가 땅에 엎어지면 칠성이는 어느 덧 기복이 등 위에 올라앉게 되었다. 순복이와 칠성이의 원래 찢어지고 더러운 옷은 말도 할 것 없거니와 기복이의 비단두루마기와 그 외의 네 명의 아이들의 깨끗한 옷도 흙에 더럽혀지고 또한 찢어졌다.
“너 이 자식! 저번에 내 만주통을 발길로 찼지. 어디 좀 보아라!” 하고 순복이는 기복이를 넘어뜨리면서 떠들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덤벼들어서 순복을 넘어뜨린다. 그러면 또한 칠성이가 주먹으로 그 애들을 때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 반시간 싸움하는 동안에 기복이는 손등에서 피가 나고 다른 두 아이는 입에서 피가 나고 순복이는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그러나 칠성이는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었다. 그 중에 제일 힘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됨을 따라 다른 아이들은 다 달아나고 다만 칠성이하고 기복이하고 순복이만이 피를 흘리면서 서로 싸우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기복이의 집으로 이르러 갔었다. “그리고 너 이 자식 정애는 왜 때렸니? 너만 사람이냐?” 하며 땅 위에서 순복이는 기복이하고 뒹군다. 처음보다는 힘이 빠지었으므로 인제는 서로 욕만 하면서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칠성이가 별안간 울고 악을 쓸 때에 순복이가 깜짝 놀라 일어나려 하는 그때에 별안간 큰 손바닥이 눈에 불이 나도록 순복이를 때린다. 이때껏 맞던 손과는 퍽 달랐다. “이 자식아!” 하고 소리를 지를 때에 순복이는 저절로 무엇에게 들리어 일으키어졌다. 순복이가 그제야 어떤 어른이 때린 것을 알았다. 그것은 기복이의 집의 행랑사람이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기복이 집에서 누가 온 것을 알았다. 알자마자 이뺨 저뺨을 얻어맞는 순복이는 대항할 방책이 아득하였다. 순복이는 그냥 그 자리에 엎드러졌다.
“어쿠!” 하면서 그 기복이 집 하인이 넘어질 때에는, 칠성이가 던진 돌이 그놈의 발뒤꿈치를 때린 까닭이다. 한번 주저앉은 하인은 다시 일어날 힘이 없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하하……” 하고 웃는 소리는 틀림없이 정애의 목소리였다.
싸움! 사람과 사람이 싸우지 않는다 함은 그보다 더 큰 싸움을 생각하는 동안을 말함이다. 세상에는 남을 시기하는 싸움도 있고 사랑으로 해서 싸우는 것도 있으며, 명예를 위한 싸움도 있고 욕심을 위한 싸움도 있다. 기운을 자랑하는 싸움도 있으며 위엄을 위한 싸움도 있다. 그런 고로 나라와 나라의 싸움도 있고 사람과 사람의 싸움도 있다.
그러나 오직 싸움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가 없어지는 때에 일어나는 치명적으로 부르짖는 싸움이며, 생활의 안락을 여지없이 빼앗길 때에 일어나는 붉은 피 마당에서 싸움이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고로 약자여! 너는 달아나려고 하지 말고, 또한 종교나 도덕을 요구하지 말라! 오직 싸움만이 너의 훌륭한 종교이며, 그의 생활의 진리를 위해서 싸우는 마당에서 피를 뿌리면서 서로 먹을 것을 나누는 데 비로소 위대한 도덕이 있다. 너희의 생명이 없이 도덕이 어디 있으며 기갈들린 사람의 종교가 어디 있겠느냐?
싸우라! 싸우는 사람에게는 승리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가 있다. 실패를 당한 사람에게는 늘 미래가 있고 늘 승리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운명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무(無)’가 있을 뿐이며, 줄어드는 붉은 피의 잦아 가는 구슬픈 소리를 외칠 뿐이다.
인간의 권세여! 사람마다 있을지어다! 노예를 면하려는 싸움이여! 땅 위에서 거룩할지어다. 그런 고로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싸우며 너희를 한가지로 창조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싸우라.
이에서 순복의 싸움도 무의식중에서 가장 완전한 싸움의 하나이었다. 자기 생활을 저주하는 사람들과 싸움할 만한 하느님에게서로부터 받은 특권이 있었다.
6
정애의 활동으로 순복이 아버지가 피가 흐르는 순복이를 업어 온 그 이튿날이었다. 머리를 때묻은 헝겊으로 이리저리 얽어매고서 순복이는 어둠침침한 방 속에 드러누웠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쓸데없는 걱정에 그의 아버지의 꾸지람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이때에 정애가 들어왔다.
“너 왔니?” 하고 순복이 어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순복이가 어제 몹시 다쳤는데 밤새는 어찌나 되었는지요?” 하는 정애의 목소리는 사랑스러운 것보다는 굳센 무슨 언약이 있는 것 같았나. 전지에서 싸운 병사와 병사 사이에는 늘 이렇게 넘쳐흐르는 애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많았다. 아니다. 더욱 진실하였다. 그러자 또 아이 하나가 들어왔다. 그것은 전지에서 분투하던 동지인 칠성이었다.
“어떠냐?” 하고 쾌활하게 칠성이는 웃었다.
“칠성 이냐?” 하고 즐겁게 순복이는 일어나 앉았다.
“그런데 순복아! 내가 오다가 그 하인놈이 길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지” 하고 무슨 결심한 모양으로 떠들었다.
“그래서?” 하고 순복이는 칠성이 앞으로 가까이 앉았다.
“그놈이 제 친구하고 길거리에서 떠드는데, 그 기복이 아버지가 경찰에아가 말을 해서 우리를 잡아간다고—”
“잡어가?”
“돈이라도 들여서, 우리가 그 앞에서 눈에 띄기만 하면―”
“하하” 하고 순복이의 싸움 좋아하는 마음에는 한층 즐거웠다.
“잡혀가? 기운이 없을 때까지 싸워 보고서……” 하고 순복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어났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정애까지 세 아이는 일제히 일어났다. 원인을 몰랐다. 다만 염통 속에서 뜨거운 피가 일제히 우렁차게 뛰었던 까닭이다.
피! 그들에게는 피뿐이었었다.
이 순간에 이 어두운 방에는 별안간에 밝은 광명(光明)이 이 세 아이를 비추었다. 세 아이는 서로 보고 웃었다. 굳은 약조의 웃음이 말없이 서로 언약을 맺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싸움의 준비를 해야겠다!” 하고 순복이와 정애와 칠성이는 무슨 이야긴지 소곤거렸다.
순복이는 만주통을 내어버리고, 정애는 기복이 집에를 가지 아니하고, 칠성이는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때가 온 까닭이다. 생명과 한가지 하는 최후의 때가 온 까닭이다. 또다시 세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그것이 최후의 웃음이 아닐는지?
⁕
싸움에 이름난 순복패를 ‘소년불온단’이라고 이름을 지어 준 경찰서에서는 이 어린 세 명을 잡을 양으로 수백 원의 돈으로 수십 명의 순사를 비밀히 꾸미어 활동을 하였었다.
《개벽》, 1925. 1 / 『카프대표소설선 I 』(사계절, 1994)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