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성미
(본지 취재기자)
손을 뻗으면 닿을듯 낮게 내려와 있는 하늘. 타임, 로즈마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들꽃들로 가득 채워진 광활한 초록 정원은 8월의 따끈따끈한 공기 속으로 그 수줍고 풋풋한 향기를 폴폴 뿜어내고 있었다. 향을 만드는 세상의 모든 조향사들이 한번쯤 꼭 만들고 싶어했을 바로 그 향기. 사람의 마음 결을 어루만지는 그 마법의 향기는 흙 위에 부딪치는 필자의 발자국 소리가 세상을 점점 가득 채울 때쯤, 어느새 필자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악설을 주장했던 순자는 그의 많은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후학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던 그의 주장 때문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하지만 뜨겁게 솟아오르는 이 감정,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환희의 순간과 마주할 때마다 필자는 인간의 본성이 밝고 선하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왜 수많은 동양의 성인들이 자연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려 했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만약 우리의 본성(참나)과 통하는 문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있다면, 그 본성과 가장 가까운 ‘참으로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그 마음속 문을 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자연스럽게 그 문이 열리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작은 티벳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


센터전경
덴버 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2시간. 콜로라도 로키 산맥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는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불어오는 모든 풍파를 막아줄 것만 같은 그 든든한 울타리 안에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는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는 그래서인지 600에이커라는 광대한 대지면적이 무색할 정도로 마치 어머니의 품속같은 아늑함마저 느껴졌다. 유난히 많은 소나무들도 어쩌면 이러한 친근함을 거드는데 한 몫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나무 숲 군데군데에 박혀있는 기이한 모양의 자연 암석들은 신비로움을 자극하기도 했다. 한손에 지팡이를 든 바위 거인이 서서 아래를 굽어보는 모습 같기도 하고, 거대한 고래 형상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중국 식당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해피 부다의 넉넉한 모습 같기도 했다. ‘저 거대한 암석들은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을 살아왔을 바위. 그리고 그 육중한 바위가 간직하고 있는 시간의 무게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지그시 눌러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듯 했다. 세상의 시계가 잠시 움직임을 멈춘 곳. 불과 몇시간전 공항에서의 분주함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고,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일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또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잠시 의심하게 만들며 더 아득하게 느껴졌다.
해발 약 8000피트의 고산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하늘과 가까운 땅,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는 구름의 움직임이 빨라 하루에도 수시로 날씨가 바뀌는 곳이었다. 한 여름에도 콩알 크기의 제법 굵은 우박이 쏟아지며, 순식간에 온 세상을 하얀 얼음알갱이로 뒤덮기도 하고, 눈앞이 흐려질 정도의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다가도, 어느새 얼굴을 드러낸 파란 하늘은 대지 위로 눈부신 햇살을 쏟아 부었다. 불교에서 인생이란 변화무쌍한 강물과 같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쉼 없는 변화를 통해 움직임이며, 그러한 변화가 곧 우주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처럼, 수시로 변하는 날씨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변화하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게 쉬지 않고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해도 그 비는 곧 그친다, 마찬가지로 지금 하늘이 맑다 해도 곧 우박이 쏟아지고, 앞을 볼 수 없는 세찬 장대비가 내리고, 폭풍이 불어올 수도 있다는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로고스를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의 빠르게 변하는 날씨는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 곳곳에는 설립자인 초감 트룽파 린포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약 47년전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초감 트룽파 린포체.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느꼈을까? 수련원의 이름처럼, 그는 티벳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 극락정토 샴발라를 보았을까? 필자는 티벳을 직접 가본적은 없지만 왠지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는 티벳을 많이 닮아 있을 것만 같았다.


초감 트룽파 린포체
설립자 초감 트룽파 린포체(1939-1987)의 미션과 비전
샴발라 마운틴 센터(Shambhala Mountain Center)는 1971년 초감 트룽파 린포체가 미국 서부에 위치한 콜로라도(Colorado)주 볼더(Boulder)에 설립한 티벳 불교 수행 센터다. 서양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불교 지도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초감 트룽파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탁월한 리더쉽과 추진력을 동시에 지녔던 그는 언어의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시와 그림 등 예술적으로도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태어난지 약 13개월이 되었을 때 티벳의 위대한 성자밀라래빠를 배출한 티벳 카규파의 제11대 트룽파(Trungpa)의 툴쿠(tulku, 환생한 라마)로 판명 받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스승들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59년 중국의 제국주의적 욕망은 티벳 침략을 단행했고, 19살의 초감 트룽파는 티벳에서 히말라야의 험준한 설산을 넘어야 하는 9개월간의 탈출을 해야만 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그 탈출의 시간동안 인간 초감 트룽파 린포체(Chögyam Trungpa Rinpoche)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라마로서 교육받았던 그의 깨달음과 수행은 그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 마치 긴 암흑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같았던 탈출에 성공한 그는1960년 인도에 도착했다. 북인도 다람살라에 세워진 달라이 라마의 망명 정부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그는 캠프에서 함께 일했던 영국인 프레다 베디(Freda Bedi)의 주선으로 옥스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생을 통해 꼭 이루어야 하는 그들만의 미션이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티벳에서 인도를 거쳐 영국으로, 초감 트룽파(Chögyam Trungpa)의 영국행은 어쩌면 그 미션을 향한 그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963년 호기심이 충만했던 20대 초반의 초감 트룽파(Chögyam Trungpa)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비교종교학과 철학, 예술을 공부하며, 서양의 언어와 문화를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빠르게 흡수했고, 함께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아콩 린포체(Akong Rinpoche)와1967년 서양 최초의 티벳불교 사원 삼예링(Samye Ling)을 스코틀랜드에 설립했다. 하지만 티벳 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서양에 알려야 한다는 아콩 린포체(Akong Rinpoche)의 주장과 달리 초감 트룽파(Chögyam Trungpa)는 서양이라는 토양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를 보급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비전을 갖고 있었다. 삼예링(Samye Ling)을 운영하던 그에게 1969년 두번째 시련이 닥쳐 왔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왼쪽 몸에 마비가 왔고, 왼쪽 팔과 다리를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고, 다시 한번 혼자만의 긴 터널을 지나야 했고, 그 터널의 끝에서 그가 내린 결정은 자신에게 의무처럼 부여되었던 불교의 전통적인 스승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 버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스승들이 걸어 왔던 길과 다른 방법으로 불교를 가르쳐야 한다고 확신했던 그는 가사를 벗고 대신 서양의 양복을 입었다. 진보적인 생각만큼 그의 행보는 상식이라는 울타리를 넘고 있었다. 그는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영국 소녀와 결혼식을 올렸고, 영국 사회에 빈축을 샀다. 때마침 미국 불자들의 초청을 받았던 그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한번 이주했다.
1970년 미국에 도착한 그는 버몬트 주 바넷에 카메 초링(Karmê Chöling)이라는 명상 수련원을 설립하며 북미에서 그의 첫 가르침을 시작했다. 원래 Tail of the Tiger라고 불렸던 카메 초링은 미국인 제자의 기부를 통해 마련된 수련원이었고, 1971년에 설립된 샴발라 마운틴 센터 역시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한 불자의 기부로 지어졌다.
마치 미리 준비된 사람처럼 30대 초반의 젊은 초감 트룽파(Chögyam Trungpa)는 정확한 타이밍에 가장 친근한 모습으로 미국의 젊은 지성들과 만났다. 1800년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일구어 놓은 미국불교의 정신적 기반 위에, 1960~70년대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갈구하던 미국 젊은이들의 갈증은 불교가 미국이라는 토양 위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러한 변화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했다. 베트남 전쟁, 존F. 케네디의 암살, 맬컴 엑스, 마틴 루터 킹의 암살, 로스엔젤레스 흑인 폭동 등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미국 젊은이들의 절망과 분노가 절정에 달했던 1960~70년대, 미국은 평화와 인간성 회복을 외치던 히피문화 운동이 꽃피던 시기였다. 디오니소스적인 품성으로 대담하고 격식이 없는 행동과 예측할 수 없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불교를 가르쳤던 초감 트룽파(Chögyam Trungpa)는 현실의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물색하던 미국의 젊은 지성들을 빠르게 불교로 흡수했고, 미국 불교가 미국 사회에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언어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어려운 불교 용어를 가장 알기 쉬운 영어로 설명하는 탁월한 언어적 감각을 갖고 있었다. 불교 서적 번역에 그의 해석적 정의가 사용됐을만큼 그때까지 서양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어려운 불교 교리들은 그의 입을 거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풍부한 감성과 거침없는 카리스마를 통해 표현해내는 그의 언어들은 막강한 힘으로 미국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Sacred Studies Hall 1층
샴발라 불교의 프로그램
샴발라 불교는 티벳 카규파와 닝마파의 계보를 모두 계승하고 있는 초감 트룽파를 제 1대 종정으로 시작하는 미국 불교다. 교육과 번역 사업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했던 그의 거시적인 안목은 미국 샴발라 불교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일년동안 수 백개의 다양한 명상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샴발라 마운틴 센터는 요가와 같이 몸 수련을 돕는 과정, 마음챙김 명상, MBSR 프로그램, 예술활동을 이용한 수행 프로그램과 더불어 샴발라 불교만의 체계적이고 엄격한 수행 체계를 갖고 있었다. 샴발라 불교의 교육과정은 초급에서부터 전문가 육성을 위한 고급과정까지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한 과정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를 공부할 수 있다. 이러한 샴발라의 교육 과정은 산스트리트어로“스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아차리아(Acharya)들이 담당한다. 초감 트룽파가 설립한 미국 최초의 불교대학인 나로파대학의 교수를 겸직하고 있기도 한 이들은 미국 전역의 샴발라 수련원을 돌며 워크샵과 샴발라 불교의 교육과 수행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예술적 재능도 탁월했던 초감 트룽파는 불교 지도자, 명상 전문가 이 외에 예술가라는 호칭을 갖고 있다. 일본 선불교의 스즈키 순류 선사와 격이 없는 우정을 나누었던 그는 명상 수행과 일상의 활동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전통적으로 명상과 집중이 조합된 활동들, 즉 궁도, 서예, 꽃꽂이, 다도, 춤, 연극, 영화, 시, 심리치료 등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며 다양한 수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카메 초링을 방문했을 때 인상적으로 보았던 활터를 샴발라 마운틴 센터에서도 볼 수 있었고, 일본의 전통 꽃꽂이 이케바나를 즐겨 했던 그는 꽃꽃이와 수행에 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일상의 삶에 예술을 접목하려 했던 그의 시도는 현세에서 이상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그의 샴발라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이었고, 실제로 샴발라전사 훈련체계를 수립한 그는 미국 전역에 있는 샴발라명상센터를 통해 그 교육체계를 실천했다.
샴발라 마운틴 센터를 움직이는 사람들과 시설들
미국의 다른 많은 명상 수련원들처럼 샴발라 마운틴 센터 역시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일을 돕고 있었다. 자원 봉사자들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등록 업무에서부터 시설관리, 청소, 요리와 식당 보조 업무 등 샴발라 마운틴 센터를 관리하는 모든 일을 담당하는데, 방학을 맞은 대학생부터 직업을 바꾸기 위한 인생의 전환기를 보내는 사람 등 다양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한달에서 길게는 수개월동안 센터에 머물며, 일이 없는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청강할 수도 있다.
샴발라 마운틴 센터의 시설물중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하얀색의 거대한 천막들이었다. 주로 여름에 이용되고 있는 이 Summer Conference Tent는 식당과 주방 그리고 다양한 행사장 역할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있었다. 2층으로 지어진 1600 스퀘어피트의 Sacred Studies Hall은 샴발라 마운틴 센터의 주건물로 150명의 프로그램 참가들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고, 필자가 참가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던 Red Feather Conference Center 는 약 9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샴발라 마운틴 센터의 숙박시설로는 콘도형태의 Rigden Lodge에서부터 작은 Cabin들, 그리고 캠퍼스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수 많은 개인용 텐트들을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 지어졌다는 Rigden Lodge는 마치 호텔처럼 쾌적한 곳이었다. 무리하게 강행된 공사때문에 샴발라 마운틴 센터의 재정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Rigden Lodge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수시로 적당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에게는 꼭 필요해 보였고, 텐트를 이용하는 참가자들도 이 곳 로비에서 수시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