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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손
류서연
1
“옛소오. 천오백만원이요. 아무리 아껴먹고 아껴써도 돈이 얼마 남지 않는구만. 두었다가 요긴한데다 쓰오.”
“어마나? 당신 돈을 많이 벌어왔네요? 호호호—”
흥분에 들 뜬 그녀는 호들갑을 떨며 남편의 손에서 오만원권 한국지페 세묶음을 받았다. 돈을 보는 그녀의 두 눈은 기쁨과 설렘임으로 반짝이였다. 그녀는 신이 나서 손에 침을 묻혀가며 빨깍빨깍하는 새돈을 헤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편은 그런 안해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본다.
“마흔 하나, 마흔 둘, 마흔 셋…”
“여보오, 그만 세오. 은행에서 찾아온 돈인데 한장도 안 차날게요?”
“아이참, 당신도. 당신이 말을 시키는 바람에 다 까먹었잖아요. 돈을 세는 기분 얼마나 좋다고 나 한번 더 세여볼래요.”
그녀는 남편을 향해 정겹게 눈을 흘기였다.
“처음부터 다시 세야 하나?”
곁에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여보오 돈이 그렇게 좋소? 나보다 더 좋소? 나 섭섭해지려하네.”
“당신두 참, 어떻게 당신보다 돈이 더 좋을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난 당신이 제일 좋아요. 당신은 하늘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얘요. 당신 없으면 난 못 살아요.”
말을 마친 그녀는 남편의 얼굴에 뻑 하고 키스를 날렸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남편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어 헤헤 웃으며 아이처럼 좋아 어쩔줄을 모른다. 그러는 남편의 모습이 우스워 그녀는 배를 끌어안고 깔깔 웃어댄다.
“어머, 호—호— 당신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린애같네요. 너무 웃겨요. 여보오,”
“그런가. 허—허— 참 깜빡할번했소. 옛소. 당신의 마음에 들겠는지 모르겠소. 백화점에서 세일한거지만 정말 이뻐서 산건데 당신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소.”
말을 마치기 바쁘게 남편은 트렁크에서 녀성용핸드빽을 꺼내였다. 작고 귀엽게 생긴 새까만 핸드빽이였다. 모양도 신식모양이였고 가죽도 나긋나긋하여 만져보니 촉감이 아주 부드러웠다.
“어마나 여보오. 이 가방양식 내가 언제부터 갖고싶었던 빽이였는데 당신이 어떻게 알고 사왔어요. 부부간은 멀리 떨어져있어도 정말 텔레파시가 통한다니깐요. 어마나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여보? 자기야,”
그녀는 가방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남편앞에서 막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는 안해가 싫지 않은지 남편도 덩달아 좋아하였다.
오랜만에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넘쳤다.
2.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지자 그녀는 행주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신바람이 난 그녀는 혼자서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씻고 썰고 무치고 지지고 볶고 하면서 주방에서 돌아쳤다. 어느사이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스르르 도는 저녑밥상이 완성되였다.
부부간은 저녁밥상에 마주앉았다. 식탁에는 말짱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들이였다. 소고기갈비찜, 더덕무침, 잡채볶음 명란젖 그리고 된장찌개에서는 하아얀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야, 당신 어느결에 이렇게 반찬을 많이 만들었소, 간단히 먹으면 되는데. 맛있겠다. 여보.”
남편을 저가락을 들고 소고기갈비 한점 집어 입에 넣는다.
“와, 너무 맛있소. 오래간만에 당신이 해준 밥을 먹으니 별미 같고 너무 맛있구만, 꿀맛이요.”
남편의 말에 마음이 측은해 난 그녀는 남편의 밥공기에 부지런히 반찬을 얹어주었다.
“됐소. 당신도 어서 먹소. 나 절로 먹지 않으리라구.”
“많이 잡수세요. 나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 많이 만들어줄게요. 이렇게 당신과 한 밥상에서 밥을 먹으니 너무 행복해요.”
“그러다 내가 괜히 돼지처럼 피둥피둥 살찌면 어쩔려구. 안 그래도 집의 밥을 먹으니 다 맛있는데. 난 당신이 손으로 한것이면 무엇이나 다 맛있소”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며 해시시 웃었다.
“그렇게 좋소?”
“그럼요. 인젠 당신과 갈라져서 견우직녀생활을 하기싫은데 어떡해요. 여보.”
“나도 인젠 타향생활에 신물이 나오. 나도 당신을 집에 혼자 놔두고 가고싶지 않단 말이요. 헌데 집에 있으면 돈이 어디에서 나오오. 조금만 더 참아주오. 우리도 행복하게 살때가 있을거요.”
남편의 얼굴에는 일순 서글픈 미소가 어리였다. 남편의 미소를 보는 그녀의 마음은 기쁜지 슬픈지 종잡을수 없었다. 하긴 남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였다. 그래도 남편이 외국에 나가 부지런히 벌어왔기에 그녀는 고래등같은 집에서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남부럽지 않게 생활할수가 있었다. 안 그러면 그 엷은 로임을 가지고 언제 이런 덩실한 집에서 살수가 있으랴.
그녀는 저도모르게 “호— ”하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한동안 부부사이에 가벼운 침묵이 흘렀다. 밥을 먹다말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려고 그녀는 랭장고에서 맥주두병을 꺼내 잽싸게 마개를 땄다.
“자기야 우리 한잔 해요? 반찬도 많은데.”
“그럼 그럴가. 목이 컬컬한데 한잔 하기오.”
그녀는 남편의 맥주잔에 찰찰 넘치게 맥주를 부었다. 새하얀 거품이 일면서 맥주잔이 넘쳐났다.
“당신 저에게도 한잔 부어줘요.”
안해의 손에서 백주병을 받아쥔 남편은 그녀의 맥주잔에도 찰랑찰랑 넘치게 맥주를 부어주었다.
“여보오. 당신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아이 새삼스럽게. 밖에 나가있는 당신이 고생이 더 많죠. 여보 자기야 우리 건배해요.”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었다.
“그럼 어디 한번 건배해볼가. ”
뒤이어 부부간은 마주 바라보며 행복하게 잔을 부딪혔다.
“쨍그랑”
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집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부부간은 마주보며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네 한잔 내 한잔 맥주를 마시다보니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별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부부간의 행복한 이야기도 하나 둘 흘러갔다.
남편과 맥주 네병을 마신 그녀의 얼굴에는 발그레 홍조가 어리였다. 어느사이에 남편의 얼굴도 불깃불깃해졌다.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야릇한 충동을 느꼈다. 순간 괜히 얼굴이 확 붉어지고 가슴이 별스레 후둑후둑 뛰였다. 기분이 둥둥 마음은 아득한 그 옛날 신혼초기에로 되돌아가는것 같았다.
( 어머 주책머리야, 이 나이에 무슨 망측한 생각이람,)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하냥 즐거웠다.
3
서둘러 늦은 설거지를 끝낸 그녀는 샤워를 하려고 세면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자 쏴 하고 물줄기가 세차기 뿜어져나왔다. 그녀는 혼자서 얼굴을 붉히며 온몸 구석구석에 정성스레 비누칠을 하였다. 이제 남편의 손길이 몸에 닿을것을 생각하니 저도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괜히 부끄러워 온 몸에 새하얀 비누칠을 한 그대로 거울앞에 마주섰다. 40대중반의 녀성이 거울속에 나타났다. 미끈한 몸매 아직 탄력을 잃지 않은 봉긋한 젖무덤 하아얀 피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한테서는 성숙한 중년녀성의 싱그러운 미가 물씬 풍기고있었다.
“쏴—쏴—”
온수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줄기는 그녀의 달아오른 몸을 얼마간 식혀주는것 같았다. 오늘 저녁 남편과 아기자기 그 동안의 그리움을 나눌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후두후둑 방망이질 하는것 같았다.
“여보오, 당신 아직 멀었소?”
침실에서 어딘가 열에 들뜬 남편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곧 나가요오, 머리 말리우구요.”
“자겠는데 무슨 머리를 말리운다구? 빨리 들어오라니깐?”
그녀는 알릴듯말듯 하아얀 속살이 은은히 들여다보이는 잠자리날개같은 잠옷을 입고 마른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세면실에서 나왔다. 남편은 벌써 거실의 전등을 끄고 침실에 들어가있었다. 그녀가 살그머니 문을 떼고 침실에 들어가니 남편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아마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듯 싶었다.
부드러운 탁상등불빛이 침실을 포근하게 감싸주고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침대에 올라가 살며시 남편옆에 누웠다. 남편은 머리곁의 탁상등을 껐다. 잠간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창문발틈새로 교교한 달빛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남편옆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심장이 후둑후둑 뛰였다. 이윽고 남편의 손이 더듬더듬 그녀의 몸속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손놀림이였다.
(감각이 왜 이렇지?)
그녀는 남편의 손놀림에서 그 옛날의 부드럽고 섬세하던 감각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된것 같았다. 자기가 그토록 기대했던것과는 딴판이였다. 방금까지 흥분되였던 마음이 삽시에 사그라졌다. 기분이 언짢았다.
(남편의 손이 왜 이리 거칠어졌지?)
“여보오, 당신 손이 왜 이래요. 왜 이리 거칠거칠해요? 하나도 부드럽지 않아요.”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탁상등을 켜고 이불속에서 남편의 손을 잡아 가슴에 부둥켜쥐였다.
그녀는 남편의 손을 어루쓸며 애수에 어린 눈으로 유심히 바라보았다. 장알 박힌 남편의 손은 이미 손마디마디가 불거졌고 소나무껍찔같이 터실터실 해졌으며 손끝이 뭉특해졌다.
“여보오? 당신의 손이 이게 뭐애요? 손이 다 망가졌잖아요?”
“허참, 막일을 하다보면 손이 망가질수 있지 뭐 그리 놀라오. 안그러면 돈이 어디서 나오오. 당신이 항상 부러워하던 피아니스트 손이 인젠 일하는 손이 다 되였소. 그래도 이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가족을 지켜간다니 나는 후회가 없소.”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멍해졌다. 뒤이어 이름할수 없는 감정에 그만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주체할수 없는 뜨거운것이 불끈 치밀어올랐다.
그녀는 남편의 품에 안겨 소리없이 흐느꼈다. 뜨거운 눈물이 주체할수 없이 그녀의 두볼로 주르륵 흘러내리였다. 남편은 장알박힌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소리없이 닦아주었다.
“여보 미안해요. 다 저때문이얘요. 제가 당신 손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게 뭐애요. 옛날엔 당신 손이 얼마나 이뻤다구. 그 손에 내가 반해서 당신한테 시집왔는데. 인젠 다 망가졌네요. 여보…”
“원 참 남자들은 손이 다 이렇지. 살다보면 손이 터실터실해질수도 있단말이요. 남자들의 손은 여자의 손처럼 부드러우면 안되다니깐. 어서 자기요.”
4
남편의 넓은 품에 안겨있노라니 그녀의 기억은 세월을 거슬러올라갔다.
그녀는 지금도 남편과 처음 만나던 장면을 잊을수가 없다. 그녀는 학교선생님의 중매로 지금의 남편과 만났다. 처음으로 남편과 대면하던 날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너무나 멋졌다. 170메터되는 후리후리한 키 머리를 한켠으로 보기좋게 빗어넘긴 기름한 얼굴 우로 쭉 째진 눈 어딘가 카리스마가 넘쳤다. 첫눈에 그녀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로 이름을 알고지냅시다. 박민수라 합니다.”
“네. 강수경이라 해요.”
“이름이 참 이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쑥쓰러워 겨우 남자의 손을 잡았다. 순간 그녀는 그 남자의 부드러운 손의 촉감에 온몸이 짜릿하게 전률하는것 같았고 괜스레 저절로 귀밑이 확 붉어졌다. 이어 심장이 콩닥콩닥 뛰였다. 남자의 손은 그처럼 부드러웠고 따뜻하였으며 길고 매끈하고 예뻤다.
사랑이 깊어갈수록 그녀는 남자의 손에 더 깊이 매료되여갔다. 남자의 길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손은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채 흡인시켰다. 그만큼 남자의 손은 여자의 손처럼 너무 이쁘게 생겼다.
그 렇게 인연을 맺어서 두사람은 사랑을 속삭이게 되였다. 정이 깊어갈수록 그녀는 남자의 손에 깊이 매료되여갔다. 그 손을 보면서 그녀는 피아노에 앉아 소야곡을 연주하는 남자의 멋진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였고 하였고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애무해주는 모습도 상상하면서 스스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였다.
남자가 손만 잡아주면 그녀는 그 부드러운 손의 촉감에 온몸에 따뜻한 난류가 흐르는듯 하여 정말로 행복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련애하면서 달콤한 입맞춤보다도 남자가 그 매끈하고 부드러운 손으로 자신의 긴 생머리를 쓰다듬어주는것을 더 좋아했었다…
드디여 그녀는 사랑을 속삭인지 넉달만에 다정하게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잡고 성스러운 결혼의 전당에 들어섰다.
결혼후의 생활은 깨알이 쏟아졌다. 말그대로 생활이 꿀맛같았다. 남편이 밥을 먹는 모습을 봐도 남편의 잠든 모습을 봐도 남편의 뒤모습을 봐도 그녀는 너무도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남편의 그 손에 세상 모든 행복이 담아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혼 일년후 아들의 출생은 그녀를 행복의 늪에 빠뜨려놓았다. 20여평방메터되는 자그마한 집안에는 하루종일 행복한 웃음이 그칠즐 몰랐다.
그녀가 해산한후 일찍 물에 손을 담그면 늙으막에 뼈가 쑤신다고 두달동안 남편은 아기의 귀저기를 도맡아 빨았다. 남편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빨아진 아기의 기저귀를 보면서 그녀는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아들이 커감에 따라 남편의 손도 바빠졌다. 생활비지출도 늘어나고 돈쓸 일도 점점 많이 생겼다.
5
그러던 어느날 친구집에 가서 숙제를 하고 돌아온 아들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올줄이야. 집에 돌아온 아들은 신을 벗기 빠쁘게 재잘거렸다.
“아빠, 나 오늘 친구집에 갔는데 정말 신기한거 있지요? 우린 밖에 가서 오줌을 누는데 내 친구네는 층집에서 사는데 집에서 글쎄 오줌도 누고 그래요? 와— 그리고 방도 우리집 같은거 두개나 있어요? 우린 왜 집에 오줌 누는것도 없고 그래요?”
아들의 천진한만한 얼굴을 보면서 그녀도 남편도 일시에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아들의 말은 너무도 충격적이였다. 이때 남편이 아들을 건뜩 들어올리며 허허 웃으면서 한마디 하였다.
“우리 희강이 화장실 있는 집이 몹시 부러운 모양이구나. 앞으로 아빠가 돈을 많이많이 벌어 우리 희강이도 집에서 오줌을 누게 할게. 약속!”
“야 신난다. 그럼 나도 이제 집에서 오줌이랑 눠도 되지요. 아빠 약속! 히히 도장까지 찍어요.”
그녀는 부자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히 마음이 쓰려났다. 아들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저럴가싶었다…
그녀의 평범한 생활은 행복한 일상속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그러다가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세운 계기가 생겼다.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라 그녀가 집에서 부지런히 방청소를 하고있는데 딱친구 미영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애,수경이니? 잘 있니? 오늘 동창들이 모이는데 너 나올래? 애들이 네 얼굴을 보고싶대. 저녁 다섯시에 로경호텔에서 만나. 꼭 나와야 해.친구들이 너 얼굴을 본지 오래되였다고 란리야, 그럼 저녁에 만나?”
“그래 꼭 나갈게.그럼 있다 봐.”
그녀는 부랴부랴 저녁밥을 지어놓고 옅은 화장을 하고 옷장에 마주섰다.그녀는 옷장안을 뒤적이며 옷을 찾느라 한참을 부산을 떨었지만 입고나갈 나들이 옷이 마땅치 않았다.
“여보.자기야. 나 무슨 옷을 입어야 해. 당신 좀 봐줘요?”
“그 꽃무늬간 원피스가 보기좋구만.그거 입고 가오.”
“아이참 당신두 그거 인제 식이 낡아서 촌스럽잖아요? 뭐 입고가야 하지?”
그녀는 혼자서 토닥거리면서 이것저것 입어보다가 나중에는 마지못해 꽃무늬 간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이미 와있었다.
“얘 수경아, 오래간만이구나? 잘 지냈니?”
“응 너희들은?”
인사를 주고받던 그녀는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친구들의 옷차림에 눈길이 간 수경이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너나없이 옷들을 쭉쭉 빼입고 귀에다 목에다 손에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고온 친구들의 모습에 수경이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뒤로 가져가 슬그머니 손가락에 낀 은가락지를 뽑아 가방에 넣었다. 촌스러운 꽃무늬원피스에 반지까지 은으로 된 반지라는게 동창들에게 발각된다면 그녀는 쥐구멍에라도 찾아들고싶었을것이다.
“야, 너 그 팔찌 아마니거 아니야?”
“응, 남편이 유럽 출장같다가 선물한거야.이어링도 같은 세트야.”
“그 디자인 나 언제부터 욕심닜는데.”
“그래. 너 빽도 이쁘네.”
“응, 봄에 일본 려행 다녀오면서 하나 산거야.쿠지.”
……
그날 수경이는 친구들의 말에 끼이지 못하고 꿔온 보리자루처럼 자리만 지키다가 돌아왔다. 친구들은 마치 하나같이 딴 세상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저녁에 남편의 팔베개를 베고 자리에 누운 수경이는 남편과 속삭였다.
“여보오, 나 오늘 친구들의 모임에 갔다 영 쭐리는거 있지요? 친구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요란하게 치장을 하고 옷들을 잘 입고 왔는지? 호오—”
그녀는 가벼운 한숨까지 내쉬였다.
“그럼 나도 나가서 돈을 벌가?”
“근데 이째까지 막 일이란 해보지 않은 당신이 한국에 가서 그렇게 힘든 일을 할수 있어요? 전 당신이 걱정돼요. 그리고 나 혼자서 애 키울 자신도 없구요.”
“그럼 어떻게 하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돈이 생기오. 그렇다고 당신을 내보낼수도 없고 그리고 우리 둘의 로임을 가지고 언제 층집을 사겠소.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올테니 당신은 집에서 애나 잘 키우오. 나도 당신을 잘 입히고 싶고 우리 아들을 잘 먹이고 싶소.”
그날 저녁 남편도 그녀도 실면을 하였다…
그렇게 남편은 안일한 직업을 버리고 기어이 한국행을 택했다.
6
사람들로 붐비는 연길공항이다. 공항에서 남편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놓을줄 몰랐다. 그녀의 손을 감싸쥔 남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있음을 그녀는 온몸으로 느꼈다. 어느덧 남편의 두 눈이 축축해졌다. 그녀도 솟구치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먼길을 떠나는 남편앞에서 방정맞게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여보, 우리 아들을 잘 키우오.”
곁에서 제 아빠의 말을 듣고있던 아들녀석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빠 가지마. 아빠 가면 누가 놀이감을 만들어주고 목마를 태워주는데 싫어. 가지 마.”
“당신 집걱정은 하지 말고 당신 몸이나 잘 챙겨요? 아프지 말고요.”
참고참았던 눈물이 샘솟듯 쏟아져나왔다. 세식구는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아들을 안고 아들의 여린 두볼에 자신의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그 모습은 더구나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남편은 출구로 나가면서 다시다시 뒤를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기였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남편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넋을 잃고 그 자리에 못 박힌듯 서있었다. 한순간에 마음속이 펑 하고 구멍이 뚫린것처럼 비여버린듯 하였고 남편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허무한 그림자만 길게 드리우는듯 하였다…
한국에 간 남편은 과연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섯달이 지나자 집에 돈을 보내오기 시작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몇천원의 돈을 만져보는 그녀는 좋아서 세고 또 세였다.
“엄마 나도 한번 세볼래? 우리도 이제 층집을 살수 있지? 그치?”
아들이 천진한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기어이 돈을 세보겠단다.
“그래 그럼 너도 한번 세여봐. 이건 아빠가 보내온 돈이다. 이 돈은 네 아빠 손으로 열심히 번 돈이야. 이제 빚을 갚고나면 우리도 층집을 살수 있어, 그러면 네 방도 따로 있고 화장실도 밖에 가지 않아도 돼. 우리 아빠를 실망시키지 말고 열심히 살자, 응”
“네. 저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빠처럼 저의 이 두손으로 엄마 아빠를 지켜줄것입니다. 엄마 약속!”
아들은 고사리같은 손을 내밀었다. 그녀도 손을 내밀어 아들과 깎지를 걸고 손도장을 찍고 복사까지 하였다.
7
“여보 당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오?”
“아니얘요? 여보 우리 어서 자요”
그녀는 상념에서 깨여나 눈물을 훔치고 다시 남편의 넓은 품을 파고들었다. 남편은 그녀를 한품에 꼬옥 껴안아주었다. 익숙한 남편의 체취에 그녀는 취할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편의 손을 꼬옥 잡고 어느새 달콤한 잠속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한여름의 하아얀 아침해살이 눈부시게 창문너머로 쏟아져 들어왔다.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옷바람으로 거실에 나오니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남편이 분주히 주방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여보? 당신 뭐해요?”
“뭐하긴 아침 밥을 짓고있지.”
“누가 당신보고 이런 일을 하라 했나요?”
“허허, 참 당신두 둘이 먹는 밥을 누가 하면 안되오. 오늘은 내 이 손으로 당신에게 밥을 해먹이고싶어 그러오. 좀 더 자오. 나도 오랜만에 이런 평범한 행복을 누려보고싶구만.”
“여보! 난 정말 자기 만나거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난 다시 태여나도 당신한테 시집갈거애요.”
그녀는 남편의 품에 살며시 안기며 정겹게 속삭이였다.
“여보.어제 얘기했던 집수리도 사람을 찾아서 해요? 집에 와서도 당신 고생시키고싶지 않아요.손 놓고 지켜만 보면 안돼요?”
“왜 사람을 찾겠소. 요즈음 인건비가 얼마나 비싼데. 돈을 한푼이라도 아껴야지. 어떻게 번 돈인데. 돈은 쓸데 써야 빛이 나는 법이요.”
“그럼 당신 혼자 집손질을 다 하게요.? 이렇게 큰 집을”
그녀는 놀란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배운 일이 뭐요. 나 목수일을 했잖아. 얼마든지 나절로 할수 있소. 여보. 념려마오. 이번 걸음에 집을 잘 손질해놓고 가리다. 허—허— ”
“그럼 우리 두 사람 같이 해요.”
그녀는 정다운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면서 남편의 터실터실한 두 손을 꼭 쥐였다. 남편도 그러는 안해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녀는 더욱 으스러지게 남편의 손을 꼭 쥐였다…
2013년 장백산잡지 2기
소설을 잘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하늘나리님 다녀가신 흔적 고맙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잘 읽엇습니다
방가워요. 다녀가신 고운 흔적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