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일상의 규범을 벗어나서 사유하고 또한 상상하는 것으로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관습에서 이탈하여 삶의 정체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작업이다. 말인즉슨 그렇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이러한 근거에서 생산된 작품이 종종 그것을 수용한 사람들에게 곤란한 상황을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작품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내 아는 어떤 사람은, 또 그가 아는 어떤 사람의 소개로, 바로 그 어떤 사람이 아는 미술가의 전시장에 갔다가, 권유하는 말도 그럴 듯하고 권유 받아 들여다 본 작품도 그럴 듯하여, 그림 하나를 사서 집에 걸었는데, 이게 영 ‘아니올씨다’가 되고 만 것이다. 미색 도배지에 29인치 텔레비전이 주석하고 있는 오늘날의 32평 아파트 거실에서, 그 미술가의 그림은 내내 부조화를 일으켰고 마침내 집안의 대소사로 일가친척들이 오고간 다음에 그림은 ‘철거’되었다. 뒤숭숭하다는 얘기가 많았던 것이다.
그림이나 소설 책이나 음악이라면 그나마 뒷처리를 할 만한 여지가 있다. 거실 벽에는 마땅히 걸기 어려운 그림일지라도 개인 작업실이나 지인의 카페에 걸면 놀라운 환기력으로 되살아 나는 수가 있고, 기대 이하의 소설이라면 읽다 말면 그뿐이며 음악 CD도 아쉬운 대로 서가 귀퉁이에 꽂아두면, 시간이 잊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데 건축은 얘기가 좀 다르다. 건축은 도시의 한 공간을 점유한다. 미술가나 소설가는 자기의 작업실에서 혼자 끙끙대며 일하지만, 건축은 일정한 시간 동안 도심의 한복판에서 소음과 먼지를 발생하는 작업이다. 공사가 완료되어 마침내 그 위용이 드러났는데, 아쉽게도 주위와 부조화를 이루거나 혹은 밋밋한 콘크리트 덩어리거나 아니면 건축가의 미의식이 지나치게 발동해서 아무래도 눈에 거슬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소설 책처럼 어디 구석에 꽂아놓고 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가에게 ‘미적 공공성’이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동네 연립주택 업자들 얘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오늘의 ‘현대’를 건축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도 이러한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때가 있다.
스페인의 빌바오. 낙후한 공업 도시이자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이 팽배한 곳에 지난 10년 동안 무려 1천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들었다. 낙후한 공업도시를 문화 콘텐츠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일컬어 이제는 ‘빌바오 효과’라고 부르는데 그 주인공이 해체주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
프랭크 게리 작품 '스테이타 센터' 프랭크 게리는 직선으로 일관된 현대 모더니즘 건축을 해체하여 리드미컬하게 춤추는 금속 외관과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안팎의 구성으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일하던 철물점에서 망치, 톱, 쇠사슬 등을 일찌감치 접하여 이 금속재들을 절단하거나 구부리는 데 흥미를 가졌던 어린 시절 기억이 오늘날 ‘연결 사슬망’이나 ‘주름 잡힌 금속 외관’이라는 게리 특유의 세계로 나타났다.
프랭크 게리는 “건축이란 본질적으로 3차원의 오브제인 까닭에 조각이어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이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게리는 당국, 업자들, 각급 단체 그리고 일반 시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거나 아니면 과감히 묵살해가며 작업해야 했다. 소설가 헤밍웨이가 1930년에 발표한 <정오의 죽음>에서 ‘무덥고 추한 광산 도시’라고 묘사했던 빌바오가 프랭크 게리에 의하여 해마다 1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에는 곤경에 빠진 일이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게리와 시공사를 상대로 2천억 원이 넘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게리는 MIT의 의뢰로 ‘스테이타 센터’를 설계하여 완공했는데 곧 문제가 발생했다. 건물에 금이 가고 배수는 잘 되지 않았다. 비도 새고 곰팡이도 피어났다. 날카롭게 각이 진 독특한 지붕 때문에 눈은 흘러내리지 않고 쌓이기만 했다. MIT는 게리가 설계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공격했다. 이렇게 되자 평소부터 게리의 ‘지나친’ 실험의식을 공격해 온 일부 비평가들은 디자인에만 집착하고 건물의 실용적 기능에는 소홀한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섬세한 문장으로 ‘현대’를 산책하고 있는 에세이스트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일관되게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통하는 르 꼬르뷔제를 비판하고 있다. 19세기적 사유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에세이스트가 보기에 르 꼬르뷔제 같은 20세기 건축가들이 유구면면한 인문적 사유를 단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파괴시켰다고 생각한다.
르 꼬르뷔제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말했는데 사실 알랭 드 보통은 이 명제를 너무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감이 있다. 르 꼬르뷔제의 이 명제는 건축물의 각 방들이 기능적 요구에 따라 그 규모와 위치가 설정되고 그 이후 단계에서 벽의 처리로 다양한 공간이 연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건축이란 논리적 요소와 감성적 요소가 복합된 유기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지만, 그러나 모든 명제가 그렇듯이, 위와 같은 한 문장의 명제는 곧 르 꼬르뷔제를 기계적 기능주의자로 낙인 찍게 했다.
르 꼬르뷔제 작품 '빌라 사부와'
하여간 그가 1931년에 파리 근교에 ‘빌라 사부와’를 완성했다. 지붕이나 처마가 생략된 이 작품은 건축사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수많은 복제품까지 낳았다. 단 한 사람만이 이 걸작을 저주했다. 다름 아닌 집주인이었다. 강렬한 햇빛이 날마다 실내 깊숙한 곳까지 공격해왔기 때문이었다. 이사한 지 일주일만에 지붕에서 물이 새어 아이 방에 물이 흥건했고 그 때문에 아이는 폐렴을 얻어 샤모니 요양원에서 1년 동안 생활해야 했다. 건축가와 건물주는 끝없이 옥신각신했고 마침내 사부와 부인은 “제발 이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꿔주세요”하는 간절한 편지를 보내야 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AT&T 빌딩으로 유명한 필립 존슨이 1959년에 코네티컷 주의 푸른 잔디 위에 지은 ‘글라스하우스’도 비슷한 사례이다. 유리로 빚은 조각품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사방이 훤히 트여져 있어 내부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온다. 집주인은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소용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리고 또 이런 사례가 있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1867년의 오늘, 6월 8일에 태어난 이 건축가가 1939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밀런에 이른바 ‘낙수장’이라는 주택을 지었는데 이름 그대로(Falling water) 1년 내내 계곡의 물 소리가 집안을 들쑤신다.
물론 건축 미학의 관점에서, 이 주택은 지형이 고르지 않고 경사도가 가파를 뿐만 아니라 층위마저 다른 계곡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라이트는 저마다 분절된 듯한 건물을 지어야 했다. 물론 그 내부로 들어가면 저마다 나뉘어진 듯한 공간은 문턱조차 없을 정도로 연속되어 있다. 단단한 콘크리트가 변화가 심한 굴곡진 계곡에 자연스럽게 들어앉는 유기적 형태는 라이트를 현대의 거장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이 건물은 피츠버그 백화점 카프만 사장이 개인 별장으로 쓰려고 의뢰한 것인데, 이 백만장자는 이 ‘작품’ 때문에 두 가지 고초를 겪었다. 우선 이 주택이 완공된 후 아내가 건축가 라이트와 함게 일본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나버린 것이다. 노년의 아픔이었지만 ‘그 정도’는 그리 큰 걱정이 못 되었다. 아내가 되돌아 오거나 혹은 새 아내를 찾으면 되지만, 주택은 1년 내내 쿵쾅거리는 계곡 물 소리에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건축가 혹은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낙수장’이 ‘현대의 고전’이지만, 막상 건물주는 ‘고전하는 현대인’이 되고 만 것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작품 '낙수장'
최근의 사례를 하나만 들고 싶다. 영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있다. 그녀가 1993년에 독일 바일 암 라인에 ‘비트라 소방서’를 지었다. 그녀는 수직과 수평의 기존 세계를 거부하는 건축가. 그래서 자연의 수많은 유선형을 응용한, 휘어지거나 비틀어진 선들이 하디드 건축의 기본 개념이다. 비트라 소방서 역시 건물 안팎의 모든 벽과 기둥이 불가해한 유선형으로 이어져 있다.
자하 하디드 작품 '비트라 소방소'.
방문자들은 수직의 20세기와 단절하려는 해체주의적 유선형의 개가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소방관들이 한사코 반대했다. 업무 효율성도 떨어지고 자칫 방향 감각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그래서 그 건물은, ‘비트라 소방서’라는 이름으로 건축 잡지나 책에는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현재 가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미리 걱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우’이겠지만, 바로 그 하디드가 공사비 4천억 가량의 서울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설계에 당선되었다.
아, 오해 없기를! 나는 모든 ‘새로운’ 예술은(비록 그것이 건축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새로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예술가는 변호사처럼 ‘판례’에 의존하거나 교통경찰관처럼 ‘도로교통법’에 의거하거나 종교인처럼 ‘경전’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기존의 예술적 성과를 제 몸을 흡판으로 삼아 송두리째 빨아들이되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성취를 향해, 동어반복을 거부하며, 한발 더 나가야 하는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당선작인 자하 하디드 설계 '환유의 풍경'. 하지만 역시 건물은 소설책의 운명과는 다르다. 지어지면 그곳에서 50년은 더 버티고 있어야 한다. 고작 ‘20년’된 아파트가 노후되었다고, ‘사람 살기 어려운 아파트’라고 판정나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야호! 하면서 만세 부르는 세상이지만, 그것이야 ‘부동산’이라는 욕망의 세계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고, 600년이 넘은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의 한복판에 지어지는 것이라면, 당연히 동대문 일대의 역사와 문화와 삶의 동선과 일상의 정서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 아는 사람이 ‘예술마을 헤이리’에 입주했다.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헛헛한 대도시를 벗어나 고즈넉이 음악에만 빠져드는 소우주를 위하여 헤이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건축가가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그는 건물 안팎에 자신이 주관한 것에 위배되는 그 어떤 장치도 덧붙여지는 것을 거부했다. 담쟁이 넝쿨도 안 되고 양탄자도 안 된다. 그래서 그의 집에서 듣는 음악은 대단히 날카로웠다. 서둘러 수많은 책들로 날카롭게 튕겨져 나오는 반사음을 조절하고 나서야 겨우 들을만해졌다. 예술하기도 어려운 세상이고 그것을 수용해서 살아가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
첫댓글 아무래도 예술과 기능의....거리감은...좀 있을듯....
오호 생각해볼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