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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리메이슨 연구모임(프.연.모) 원문보기 글쓴이: 유유자적
몇 가지만 발췌해 보았습니다..(시대적 구분이 아닌 연재된 글 순서에 따라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는 피터김님의 사이트에서 연재된 글(행성의 지배자 후에 지구행성의 지배자)입니다..
방대한 양이지만 매우 구체적인 내용들이라 전부 다 읽어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http://blog.daum.net/petercskim/7864686
제가 거기에서 히틀러의 할아버지가 로스차일드 5형제 중 한명이라는 언급(책에 언급된 내용 및 그의 어머니가 말한 내용)된 내용을
올리려고 찾으려 했으나 못찾았네요...그게 좀 아쉽네요...ㅠ
유태인 전쟁 음모가들의 황폐한 작태가 프랭크 레슬리가 저술한 "달마다 인기를 모은 자" 간행물에 1877년 8월호로 올라와서 알려졌다. 그 잡지는 나중에 "미국 잡지" 로 알려졌다:
"오늘날 막대한 유태 은행가인 로스차일드들이 유럽의 평화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세계 각국의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들이며 몇 개 국가들은 전쟁의 위험이나 파멸을 감수하며 로스차일드의 자금 지원에 목을 매달고 있는 실정이다. 그 돈을 받아서 전쟁 공세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의 전황을 보자면 전쟁 당사국 중에 하나는 잃을 것이 더 이상 없으며 그 나라가 이미 재정파탄이 난 것임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파멸적 상황이다. 또 한 측은 분쟁을 거의 시작할 수 없는데 유태인 은행의 자금지원을 받으려고 내몰리고 있다. 그래야만 궁지에서 빠져나와 보호받을 수있기 때문이다.
The desolate reality of Jewish warmongering was elucidated in the August 1877 issue of Frank Leslie’s “Popular Monthly”, later known as “The American Magazine”, which reported:
“To-day, the great Jewish bankers, such as the Rothschilds, may almost be said to hold in their hands the peace of
1881년도 권위있는 금융 논문인 로데스 저널은 유태 은행 측이 유럽의 평화와 전쟁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평했다. 사실 그자들이 자산을 불리려고 전쟁을 조장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유태인들이 유럽 자금시장을 통제하고 영국보다 유럽국에 더 강력한 영향력을 쥐고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 러시아 황제를 보자면 유럽국가에 대한 자금시장에 러시아제국이 들어갈 틈이 없음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로스차일드들이 러시아에 그런 대여금을 영국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줄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로스차일드 은행은 유럽의 평화와 전쟁의 진정한 조정자이다."
In 1881 the prestigious banking journal, Rhodes’ Journal, informed us that Jewish international bankers held the keys to peace and war in
“It must be admitted that the Jewish people control the financial markets of
퍼거슨 나일은 1828년 국가기록부에 이렇게 기록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최근에 그 중 한 명의 사망에서 탁월한 우수성을 보였다. 그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은행가로 여겨진 사람이었다.”
그의 1835년 판 기록부는 이랬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현대 금융사의 기적이다… 우리는 유다의 후손을 보는데 2천년의 박해를 당한 후에 왕들의 위에 섰고 황제보다 더 높게 올랐고, 전 유럽대륙을 그들의 손아귀에 넣었다. 로스차일드는 기독교 세계를 지배하고 그들의 단 하나의 내각도 로스차일드의 말 없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은 손을 뻗치기를 페테르부르그에서 비엔나로, 비엔나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런던으로, 런던에서 워싱턴으로 뻗어갔다. 로스차일드 남작은 가문의 수장인데 유다의 진정한 왕이다. 권세의 왕자이며 이런 특별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찾았던 메시아였다. 그는 전쟁과 평화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축복과 저주를 내렸다.
The Niles’ National Register published in 1828 states:
“… the house of Rothschild certainly stands preeminent at the recent death of one, who was thought the richest banker in
The
“The ROTHSCHILDS are the wonders of modern banking … we see the descendants of Judah, after a persecution of two thousand years, peering above kings, rising higher than emperors, and holding a whole continent in the hollow of their hands. The Rothschild govern a Christian world. Not a cabinet moves without their advice. They stretch their hand, with equal ease, from Petersburgh to
1847년 은행가 잡지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로스차일드 5형제, 암셸, 솔로몬, 네이턴, 찰스, 제임스) 들은 각국에서 중대한 금융가 역할을 했는데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등이다. 그들은 스스로 무적의 뼈대를 형성했다. 또 그들 요원을 이용해서 유럽의 주요 거점에 거대한 통제권을 행사했다. 그들은 결코 각자 움직이지 않고 합동작전으로 해냈다. 변치않는 동질의 체제를 따랐다. 그들은 권력을 갖고서 한번에 평화나 전쟁 중 맘대로 조작을 해나갔다.
The Bankers Magazine printed in 1847 states:
“The five brothers (Anselm, Solomon, Nathan, Charles & James) have taken part in most of the great financial affairs of
1901년에서 1906년에 간행된 유태 백과사전은 이렇게 주장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가톨릭 교회의 경쟁자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이 숨어있다. 왜냐하면 그 가문이 현재 바티칸 가톨릭에 있어서 교황의 금고의 보호자 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Printed between 1901 and 1906 The Jewish Encyclopedia asserted:
“It is a somewhat curious sequel to the attempt to set up a Catholic competitor to the Rothschilds that at the present time the latter are the guardians of the papal treasure.”
(참조 로스차일드는 1823년에 가톨릭 교회의 재정운영권을 넘겨받았음)
영국 경제학자 제이 홉슨은 1902년도 간행된 세미나 책자 "제국주의"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어느 누가 큰 전쟁이 유럽국가에 의해 도발될 수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겠는가? 또는 국가의 큰 채무가 공여될 수있는가? 그것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들을 연결해주려 승인을 할 때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British economist J. A. Hobson’s seminal book, “Imperialism”, published in 1902, states:
“Does anyone seriously suppose that a great war could be undertaken by any
세계 선교회 리뷰는 1906년 제 29권에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재부의 소유 : 하나의 유태 금융가문이 300억 달러를 통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스차일드들은 10년간 4억 8천2백만 달러를 대출했다. 이는 전세계 금화의 절반에 해당한다. 또 이것이 유태인의 손안에 있다는 것이다."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Volume 29, printed in 1906 disclosed:
“The Possession of Wealth: one Jewish banking house is estimated to control $30,000,000,000. The Rothschilds in ten years loaned $482,000,000. Nearly one-half of the gold coined, of the entire world, is said to be in Jewish hands.”
1909년, 데이빗 조지가 영국 수상에 오르기 7년전 일인데 그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정말로 알고 싶었던 것은 로스차일드 경이 이 나라의 독재자이냐 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금융과 사회의 개혁 수단을 갖고 있는가? 그것은 칠판에 이렇게 기록된 채 막혀있는 것이 아닌가? ' 길은 없다, 다만 네이턴 로스차일드의 명령만이 있을 뿐'"
In 1909, seven years before becoming British Prime Minister, David Lloyd George stated in a speech:
“I should really like to know, is Lord Rothschild the dictator of this country? Are we really to have all the ways of reform, financial and social, blocked simply by a noticeboard, ‘No thoroughfare. By order of Nathaniel Rothschild’?”
또 다른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기 작가였던 데렉 윌슨은 로스차일드들에 대한 비판이 두려워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확인하며 기술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전에 있었던 어떤 금융 제국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그리고 이들은 막후에서 비밀리에 정부들을 통제할 수 있다.”
네델란드 경제학자, 애드 브로어리는 2010년도 그의 저서 “글로벌 카지노의 종식” 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Another of the family biographers, Derek Wilson, conceded that critics of the Rothschilds have legitimate reasons for anxiety, affirming:
“The House of Rothschild is immensely more powerful than any financial empire that has ever preceded it, and it is able to control governments behind the scenes, secretly.”
Dutch economist Ad Broere, in his 2010 book “Ending The Global Casino,” informs us that,
“19세기는 로스차일드들의 시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계 재부의 절반을 통제했기에 그랬다. 그 재부가 오늘에도 계속 증가하는 것이기에 그들은 막후에 그 재산을 감추는 책략을 썼다. 그것은 그들의 권력이 쇠퇴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그래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기업의 일부분에만 붙여졌다.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통제했다.”
“The 19th century became known as the age of the Rothschilds when it was estimated they controlled half of the world’s wealth. While their wealth continues to increase today, they have managed to blend into the background, giving an impression that their power has waned. They only apply the Rothschild name to a small fraction of the companies they actually control.”
1912년 12월에 “진리” 잡지가 발간되어 조지 콘로이는 은행가 제이콥 쉬프에 관해 이렇게 기술한다, “쉬프는 쿤롭앤코의 사설은행 가문의 수장인데 이 자가 대서양 서편의 로스차일드 이익을 대표한다. 그는 금융 전략가로 설명되곤 하는데, 스탠다드 오일(록펠러)의 막강한 개인 권력의 금융 집정관으로 여러해동안 자리잡았다. 쉬프는 해리만, 굴드, 록펠러 등과 모든 철도 사업에 협조했다 그리고 철도와 미국 금융권력의 지배적 권력이 되었다.”
유태인 작가 버나드 라자르는 마르크스가 정말로 탈무드주의자라고 증언한다 :
"그는 어떤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탈무드 정신을 갖고 있다. 그는 사회학에 전념한 탈무드주의자였다 그리고 그의 타고난 해석능력을 경제이론의 비평에 적용했다. 그는 고대 히브리 물질주의에 영감을 얻었는데 에덴 동산이라는 의심스러운 희망을 거부했고 이땅 위에 낙원을 건설하는 꿈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그는 혁명가였으며 선동가였고 신랄한 토론자였다. 그는 풍자와 욕설의 재능을 발휘했는데 유태인 선조였던 하이네가 환생한 듯 했다."
(라자르 바나드 “반유태주의, 역사와 원인들" p129 )
Jewish author Bernard Lazare tells us that Karl Marx was indeed a Talmudist:
“He had that clear Talmudic mind which does not falter at the petty difficulties of fact. He was a Talmudist devoted to sociology and applying his native power of exegesis to the criticism of economic theory. He was inspired by that ancient Hebraic materialism, which, rejecting as too distant and doubtful the hope of an
"
유태주의가 마르크스 주의를 태동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유태인들이 마르크스 주의를 쉽게 채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모두가 유태주의와 유태인들이 계획을 추진하는 것과 완벽하게 맞아 돌아갔다."(페이지 148)“It is not an accident that Judaism gave birth to Marxism, and it is not an accident that the Jews readily took up Marxism; all this was in perfect accord with the progress of Judaism and the Jews.( p.148)
"유태인은 지구행성위에서 가장 높고 가장 문화적인 종족이므로, 유태인은 나머지 인류를 유태인에게 복속시킬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전체 행성에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자, 정말로 이 과업이 유태인의 역사적인 운명이다." (페이지 99)
“Since the Jews are the highest and most cultured people on earth, the Jews have a right to subordinate to themselves the rest of mankind and to be the masters over the whole earth. Now, indeed, this is the historic destiny of the Jews,” (p. 99)
"유태주의는 공산주의이며 국제화 주의이며, 또 인류의 보편적 동포주의이며, 또 노동자 계급과 인류 사회의 해방자이다. 이것은 유태인이 세계를 정복하고 인간 종족을 지배하는 영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페이지 100)
“Judaism is communism, internationalism, the universal brotherhood of man, the emancipation of the working class and the human society. It is with these spiritual weapons that the Jews will conquer the world and the human race.” (p. 100)
유태인 우월주의자 해리 와튼의 1939년도 저서 “유태인의 프로그램과 모든 반 유태주의에 대항한 대답: 인류를 위한 프로그램”
The Jewish supremacist rabbi, Harry Waton, In his 1939 book, “A Program for The Jews and An Answer To All Anti-Semites: A Program for Humanity”
동료 시오니스트 거물이었던 스티븐 와이즈 랍비는 우드로 윌슨을 대통령의 자리로 밀어 올리는 일을 예견했다. 그의 자서전 '도전의 해들'(p.161)에서 보란 듯이 기록했는데 '그것은 광범위하게 강력한 숨겨진 권력이다' 에서 그는 스스럼없이 자랑했는데 - "윌슨은 유태인 정치게임의 중요한 앞잡이로 선정되었다"
Fellow Zionist kingpin, Rabbi Stephen S. Wise, peculiarly predicted the ascendancy of Woodrow Wilson to the presidency, and in his autobiography, “Challenging Years,” (p. 161) boasted “that an immensely influential hidden power” — with which he was intimately acquainted — “had chosen Wilson as a major pawn in their political game”
시오니스트 조직이 꾸민 또다른 음모의 기본 증거는 시몬 맥시밀리언 쉬트펠트가 내놓은 믿을 수없는 예견에서 드러난다. (이자의 본명은 맥스 노다우였다) 노다우는 테오도어 헤르츨의 가까운 지인으로서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1차 시오니스트 의회를 조직하는 것을 도왔다. 1903년 제 6차 시오니스트 의회는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기 11년 전에 열렸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45년 전이었다 - 여기서 노다우는 다가오는 세계대전이 팔레스틴에 유태인 국가를 건국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영국이 유태인을 위해 조성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Another cardinal proof of the Zionist World Conspiracy was the incredible foresight displayed by Zionist leader Simon Maximilian Südfeld (alias Max Nordau), Theodore Herzl’s close confidant who convinced him to organize the first Zionist conference in Basel, Switzerland in 1897. At the sixth Zionist Congress in 1903 — eleven years before World War I commenced and forty-five years before Israel was established — Nordau spoke of a coming “World War” resulting in the creation of a Jewish state in Palestine, which England would help to procure for them:
노다우는 말했다, " 내가 위로 위로 향해 가는 사다리의 계단을 당신들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말을 하게 해주오: 헤르츨이 시오니스트 의회가 영국 우간다 주도권에서 열렸을 때 이렇게 말했소, 앞날의 세계 전쟁이나 평화회담은 영국의 주관으로 진행되며, 이로부터 자유로운 유태인의 팔레스틴 국가가 건국될 것이오." (리트먼 로젠탈 저, "한 예언자가 말하다", 미국 유태인 뉴스 1919년 9월19일..)
“Let me tell you the following words as if I were showing you the rungs of a ladder leading upward and upward: Herzl, the Zionist Congress, the English Uganda proposition, the future world war, the peace conference where, with the help of
당면한 유럽대륙 전체의 불길한 운명을 예고한 또 한 사람이 있으니, 잔 고틀립 블록이란 폴란드 출신의 혈통을 감춘 유태인이었다. 블록은 은행 금융가였으며 시오니스트 활동가이며 러시아 반유태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조직원이었고 테오도어 헤르츨의 측근이었다.
1899년에 블록은 "지금 전쟁이 가능한가?" 라는 제목의 군사전쟁 책을 출판했다. 거기에 그는 기나긴 전쟁, 또는 참혹한 대전쟁을 그려냈다. 그것은 1천만명의 병사가 맞붙은 거대한 전쟁이었다. 블록은 이 전쟁에는 경제적 요인이 지배적이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쟁의 운명이 전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아 상태에 있을 터인데 그로 인해서 국가들이 파산을 당할 것이며 사회의 조직들은 부서져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니알 퍼거슨, "비참한 전쟁" p.9)
Another who predicted the impending doom of a grand European conflict was Jan Gotlib Bloch, a Polish crypto-Jew, banker/financier, Zionist activist, “campaigner against Russian antisemitism“, and acquaintance of Theodore Herzl. In 1899, Bloch published a book about military warfare titled, “Is War Now Possible?”, within which he envisioned a “long war”, a “great war of entrenchments”, which would involve some ten million men. Bloch asserted that economic factors would be “the dominant and decisive element in the matter” and that the future of war was not fighting but famine, resulting in the bankruptcy of nations and the break-up of social organization of societies. (Ferguson, Niall. “The Pity of War”, p. 9)
시오니즘의 대부 격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유태인들이 세계의 전쟁이나 혁명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말하길:
"부유한 유태인들이 세계를 통제한다... 그들의 손에 정부와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다. 유태인들은 정부들을 다른 정부에 대항케 할 수있다. 또 그들이 정부들에게 평화를 이루라고 선언할 수도 있다. 부유한 유태인들이 조종을 하면 국가들과 그 통치자 들이 춤을 추게 할 수있다."
The “godfather of Zionism”, Theodore Herzl, was not shy about admitting that the Jews do indeed possess the necessary power to bring about world wars and revolutions, stating: “The wealthy Jews control the world…In their hands lies the fate of government and nations. They (the Jews) set governments one against the other and by their decree governments make peace. When the wealthy Jews play, the nations and the rulers dance.”
헤르츨은 "유태인 국가"라는 저서에서 유태인의 지갑에서 나오는 무서운 권력을 이렇게 말했다: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국력에 대해서 제기하는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말을 할때 어떤 선점하는 권리에 굴복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세계에는 지금이나 향후에나 국력이 권리를 우선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프랑스 위그노 교도가 그랬듯이 충직한 애국자라면 이민을 가라고 강제하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소용없는 짓이다.
유태인들은 그들에게 가해진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서 충분히 강력한 경제력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가 가라앉으면 우리는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상승하면 우리의 지갑에서 나오는 무서운 권력이 올라올 것이다."
In his book “Jewish State”, Herzl spoke of the Jews’ “terrible power of the purse”:
“Every point which arises in the relations between nations is a question of might. I do not here surrender any portion of our prescriptive right when I make this statement. In the world as it now is and will probably remain, might precedes right. For us to be loyal patriots as were the Huguenots who were forced to emigrate is therefore useless. … The Jews must acquire economic power sufficiently great to overcome prejudice against them. When we sink, we become a revolutionary proletariat, but when we rise, there rises also our terrible power of the purse.”
1900년도에 와이즈 랍비는 대학살이란 헛수작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는데, "6백만명이 살며, 피를 흘리며 시오니즘을 위해 투쟁을 거쳐왔다” 고 헛소리를 했다. 이런 소리는 실제 12개 사례 위에 또 12개 중에 하나였다. 이는 카발라 신봉자들이 흔히 되뇌이는 동화 같은 소리였는데, 1900년도부터 1945년 동안에 “6백만명이 박해를 당했고, 죽었고, 또는 죽어가는 유태인들이었다” 는 소리다. 그래서 이런 기만술과 명백한 헛소리를 해서라도 1948년도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국하는 일로 가려는 것이었다.
(헤데샤이머, 첫번째 대학살: 세계1차대전 후에 대학살을 주장해서 유태인 펀드를 조성하는 책략에 관하여, 2003년도 시카고: “6백만명의 신화”)
In 1900 Rabbi Wise let slip the premeditated hoax of holocaustianity when he spoke of “6,000,000 living, bleeding, suffering arguments in favor of Zionism.” That was one of dozens upon dozens of references and invocations of the cabalistic fable of “6,000,000 persecuted, dead or dying Jews” from 1900 through 1945, leading up to the creation of the state of
처음 공산주의자가 일으킨 러시아 기독교 국가에 대한 탈무드주의 소요사태는 1905년에 발생했다. 이는 메이슨 조직 유태인이었던 레온 도이치, 레닌, 트로츠키에 의해 자행되었다. 또 트로츠키의 지도자이자 스승이었던 이스라엘 헬펀드라는 이름을 쓴자가 들어있는데 그의 실명은 알렉산더 파르버스로서 백만장자 금융가가 있다. 이자는 소위 ‘영턱스 - 젊은 놈들’이라 불렸던 비밀 유태인 조직의 정치 고문역을 했다. 이들 비밀 유태조직 영턱스는 얼마후 1908년도에 터키에 시오니스트 야망을 실현하고자 혁명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파르버스는 터키 군대에 무기와 식량을 판매해서 수백만의 이득을 빨아들였다, 이는 영턱스 비밀 유태인 조직을 활용해서 이룬 것인데 이들은 1915년도에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저질렀다. 거기서 1백5십만명의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저키네스, 크리스토퍼 ‘아르메니아 기독교인에 대한 유태 학살사건, 2006년)
The first communist-inspired, Talmudic upheaval in Christian Russia occurred in 1905, led by the Masonic Jews Leon Deustch, Vladimir Lenin, Leiba Bronstein (alias Leon Trotsky) and Trotsky’s guide and mentor Israel Helphand (alias Alexander Parvus) — the multimillionaire financier who was also a political adviser of the “Young Turks” (i.e. crypto-Jews who sparked a revolution in Ottoman Turkey in 1908, to facilitate Zionist ambitions). Parvus raked in millions in profits from the sale of weapons and foodstuffs to the Turkish Army, who — under the captainship of the crypto-Jewish “Young Turks” — carried out the Armenian massacres of 1915, slaying 1.5 million Christians. (See: Bjerknes, Christopher Jon. The Jewish Genocide of Armenian Christians, 2006)
유태인들은 1905년도 혁명 봉기를 자신들이 벌였다고 자랑스레 주장했다. 가령 런던 맥카비언 지는 1905년 11월에 간행된 “유태인 혁명” 기고문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Jews boastfully claimed responsibility for the 1905 revolutionary uprising. For example, The Maccabean of
“러시아 혁명은 유태인 혁명인데 유태 역사에 있어 일대 위기였다. 이는 러시아가 세계 유태인의 절반의 고국이기 때문에 유태인 혁명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 러시아의 광포한 정부를 전복시키는 일은 거기에 사는 수백만명의 유태인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며 또 세계 도처에 이민을 가서 사는 수만명의 사람에게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황제의 제국에 가장 활발한 역할을 유태인이 했다는 점에서 유태인의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워터스 프라이, ‘동방으로 흘러가며: 기독교 왕권에 대항한 전쟁. 2000년 TBR Books, Washington, D. C.)
“The revolution in
볼셰비키주의자들의 도발은 시오니스트들이 한 것처럼 부유한 유태 금융가에 의해서 부속화되었다. 1905년 혁명을 준비하기위해 유태인 금융측은 러일 전쟁을 조성해냈다. 그들은 오랫동안 러시아에 대한 경제전쟁을 저질렀는데 이는 배반의 전쟁이다. 이런 식으로 사전에 전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서방의 대출을 확보하는 러시아의 능력을 무력화시켰다. 또 러시아의 적국에 돈을 대주는 식이었다. 이것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약화시키는 사악한 도발이었다. 그게 혁명의 사전 조건이며 공산주의 전복활동이며 유태인의 착취 방식이다. 저명한 유태인 금융가이며 자선가로 알려진 제이콥 쉬프는 러시아에게 2억 달러에 상당하는 대출을 줄 것처럼 흔들어댔다. (출처, “대학살의 유태 우월주의자 제이콥 쉬프” & “유태인 금융가는 다시 러시아를 혁명으로 목표물을 삼다” 쉬프가 러시아를 어떻게 조작해냈는지 수많은 출처가 나옴)
미국에 주재하던 로스차일드 대리인 쿤롭앤 코 은행은 일본에 전쟁자금을 대줬다.(뉴욕 주재 유태인 공동체 등록부 1917 – 1918에 제이콥 쉬프에 관해 기록됨)
Bolshevist undertakings, like Zionist ones, were subsidized by wealthy Jewish loan-sharks. In preparation for the 1905 revolution, Jewish bankers manufactured a war between Russia and Japan. They had long been conducting a perfidious economic war against
The Jewish Communal Register of New York City 1917-1918 wrote of Jacob Schiff,
“쿤롭앤 코 회사는 1904년부터 1905년동안 일본에 막대한 전쟁자금을 대줬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일본의 승리를 가능케 했다 […] 쉬프는 언제나 그의 재산과 영향력을 그의 국민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 그는 러시아의 적국에 돈을 대줬고 그의 금융 지배력을 써서 러시아가 미국의 자금시장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The firm of Kuhn, Loeb & Co., floated the large Japanese War loans of 1904-05, thus making possible the Japanese victory over
(참고로 캐롤 쇼의 책 외세에 의한 조선 독립의 파괴에서 총 6명이 자금을 대준것으로 나옵니다.
제이콥 쉬프, 카네기(2천만달러지원), J.P 모건 등)
방만한 말을 떠벌리는 마르크스주의 유태인들은 날마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교활한 연설을 토했다. 그러는 동안 미국과 유럽 유태인 자본 금융가들은 밤마다 이 자들과 교류했다. 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볼셰비키 선동주의 활동을 은밀하게 지원했다. 히브리인들의 책략은 결코 투명하지 않았다. 가령 유태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는 로스차일드 남작과 비엔나에서 사귀며 체스를 즐겼다. (조셉 네다바, :트로츠키와 유태인들", 1972년)
These mealy-mouthed Marxist Jews slyly preached against capitalism by day, whilst hobnobbing with the richest of
1916년에 실수 많고 거짓에 물든 트로츠키는 유태인 거대금융가 제이콥 쉬프에 의해서 미국으로 소환되었다. 거기서 그에게 러시아 유태 이민자들이 뉴욕시 동부 아래쪽에 살고 있는데 그들을 볼셰비키 혁명을 위한 마르크스 테러요원으로 선발해서 훈련시키라는 과업을 내려졌다.
In 1916, the mischievous, lying Jew Trotsky was summoned to the United States by the aforementioned Jewish mega-banker Jacob Schiff, and was given the task of recruiting and training Russian-Jewish immigrants from the Lower East Side of New York City as Marxist terrorist radicals for the Bolshevik revolution.
1917년 3월27일, 트로츠키와 그의 300명의 훈련된 유태 공산주의자는 맨하탄 동부에서 노르웨이 증기선 "크리스티안표르드" 호를 타고 러시아 상뻬테르부르그를 향해 출발했다. 떠나기 전에 제이콥 쉬프는 트로츠키와 그의 카발리스트 부대에게 2천만 달러를 주었다.
그 시점에서 레닌과 그의 유태인 동료들은 독일 정부가 주선한 암행 열차에 승선했다. 그것은 스칸디나비아에서 페트로그라드까지 가는 것인데 그 안에 1천만달러의 자금이 금괴로 주어졌다. 이 자금은 독일의 최고 부호 유태인 금융가, 막스 와벅이 준 것이다. 막스 와벅는 미국의 폴 와벅의 형제인데 폴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로스차일드가 움직이도록 설계한 자였다.
On March 27, 1917, Trotsky and his 300 well-trained Jewish communists from
위 두 문장에 대해서는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참고로 올렸습니다..각자의 생각에 맡기겠습니다..
헨리 위캄 스티드는 더타임스 지의 편집인이었는데 이런 류의 자금지원이 케렌스키 정부를 능가하는 지원이었다고 평했다,
"볼셰비키 혁명의 최고 운영자는 제이콥 쉬프, 와벅, 그리고 국제 금융가들이었다. 이들은 유태인 볼셰비키주의자를 부추기도록 조성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에 대해 독일과 유태인들이 음모를 꾸미도록 조성되었다."(1892 ~ 1922, 30년의 준비, 개인적 기록 1924년)
Henry Wickham Steed, the chief editor of The Times, discerned that this financial aid went beyond the Kerensky regime, stating that,
“the prime movers [of the Bolshevik revolution] were Jacob Schiff, Warburg, and other international financiers, who wished above all to bolster up the Jewish Bolshevists in order to secure a field for German and Jewish exploitation of Russia.” (Steed, Henry Wickham. Through thirty years, 1892-1922: a personal narrative, Volume 2. Doubleday, Page & Company, 1924. p. 302)
1919년 9월23일 날짜로 로스토프가 발행한 사본에 제이콥 쉬프가 벌인 일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 담겨져 있다. 쉬프가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벌인 일에 관하여 이 논문은 워싱턴에 있는 프랑스 고위 위원회로부터 나온 문서를 기초로 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이것의 진실성 여부는 의심될 수 없는 것인데 그 자료가 고위 프랑스 정부 사무소의 서고에서 나왔음을 고려했을 때 그렇다. 또 후일에 네흐폴로도프 장군은 이 내용을 자신의 저서에 인용하기도 했다. 네흐폴로도프는 이 자료가 미국측 공식 지부에 의해 기초되었고 프랑스 고위 위원회에 제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A copy, dated September 23rd, 1919, of “To Moscow,” published in
“1916년 2월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조성되었음이 알려졌다 그리고 아래 인물과 기업체들이 이 파괴적인 사건에 연루되었다:
1) 제이콥 쉬프
2) 쿤롭앤 코 (이 회사의 경영진은 제이콥 쉬프, 펠릭스 와벅, 오토 칸, 몰티머 쉬프, 제롬 하나우어)
3) 구겐하임 4) 막스 브라이퉁
“In February 1916, it was learnt that a revolution was being fomented in
제이콥 쉬프는 러시아 혁명이 성공을 거둔 일은 모든 공로가 유태인에게 있다고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다녔다. 주리 리나는 미국과 서유럽의 고리대금업자인 유태인들이 볼셰비키에게 어떻게 돈을 퍼부었는지를 기록했다:
“혁명 자금은 주요 기부자들의 것 이상이었는데, 기부자들은 제이콥과 몰타이머 쉬프 형제와 펠릭스와 막스 와벅 형제, 오토 칸, 제롬 하나우어, 알프레드 밀너, 구리광산 가문 구겐하임 등이 볼셰비키들에게 돈을 대줬다. 이는 유태 사학자 데이빗 쉽이 기록한 이야기이다.
Jacob Schiff did indeed publicly boast that “thanks are due to the Jew” that the revolution in Russia had succeeded. Juri Lina documented in similar terms how Jewish loan-sharks from America and Western Europe were throwing money at the Bolsheviks:
“It was above all Jacob and Mortimer Schiff, Felix Warburg, Otto H. Kahn, Max Warburg, Jerome J. Hanauer, Alfred Milner and the copper family Guggenheim who financed the Bolsheviks, according to the Jewish historian David Shub.
미국 국무부 서고 문서 (861.00/5339) 에 따르면 이 사실이 확인되며 그 외에 두 명의 이름이 더 나오는데:
막스 브라이퉁과 아이작 셀리크먼이다. 이들 모두는 유태인이며 프리메이슨이다. 같은 문서에 러시아 황제는 1916년 2월에 폐위되는 계획이었다.
A document (861.00/5339) in the archives of the U.S. State Department confirms this. Two further names are mentioned in this document: Max Breitung and Isaac Seligman. All those people were Jews and freemasons. According to the same document, plans to depose the Tsar were made in February 1916.
“처음에 제이콥 쉬프는 레온 트로츠키에게 볼셰비키 혁명을 조직하라고 2천만 달러를 보냈다. 이 도박은 엄청난 횡재를 가져다줬는데, 게어리 알렌 역사가에 따르면 1918년부터 1922년 동안에만 금괴, 6억 루블어치가 미국으로 실려나갔다. 1921년 전반기에 쿤롭앤코 은행 가문은 볼셰비키가 강도질 한 재부, 1억 2백만달러의 이득을 취했다고 뉴욕타임즈지는 1921년 8월23일자로 보도했다. 그 돈에다가 100 배를 곱하면 당신은 당시 돈의 오늘의 가치를 알 수있다.
“The banker Jacob Schiff had given Leon Trotsky 20 million dollars to organise a Bolshevik take-over. That gamble certainly paid off. 600 million roubles in gold were transferred to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between 1918 and 1922, according to the historian Gary Allen. In the first half of 1921 alone, the banking house of Kuhn, Loeb and Co. made a profit of 102 290 000 dollars on the wealth the Bolsheviks had robbed, according to the New York Times, August 23rd, 1921. Multiply that sum by one hundred and you have the present-day value of that 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