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의 65평 아파트 자택에서 ‘주부 정윤희씨’를 만났다. 화장기 없는 그녀에게서 톱스타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전직 여배우는 여전히 강렬한 눈빛과 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전성기 때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과 함께.
결혼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진 배우 정윤희씨.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세 자녀를 키우며 보통의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화려했던 톱스타의 흔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올해 마흔일곱 살의 정윤희씨. 그녀의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을 소개한다.
취재·이창훈 기자
끊임없이 독자엽서에 ‘소식이 궁금하다’며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정윤희’다. 1970∼8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활동했던 그녀가 결혼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진 뒤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이다.올해 마흔일곱 살의 정윤희씨는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중견 건설업체인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54세)과 결혼, 2남 1녀의 세 자녀와 함께 오붓한 가정을 일군 것이다. 지난 7월 초, 정윤희씨는 ‘오랜만의 외출’을 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마련한 ‘한국 영화 명배우 열전’의 주인공으로 초대된 것이다. 결혼 후 매스컴과의 접촉을 꺼려온 그녀는 행사 기간 중 팔순의 노감독이 온다는 소식에 잠깐 모습을 드러내곤 이내 사라졌다. 얼마 뒤 압구정동의 65평 아파트 자택에서 ‘주부 정윤희씨’를 만났다. 화장기 없는 그녀에게서 톱스타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전직 여배우는 여전히 강렬한 눈빛과 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전성기 때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과 함께. “누추하지만 언젠가 한번 보셨으니까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집은 변한 게 없죠? 그냥 이렇게 살아요.” 수년 전 이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변한 것은 없었다. 치장을 하거나 화려해 보이는 가구라곤 없이 수수한 모양새 그대로였다.
세 아이 학교 보내고, 성당 나가고일주일에 한두 번 골프 치는 것이 일상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 윤경양이 엄마를 대신해 차를 준비했다. 기자에게 커피 취향을 물은 정윤희씨는 “윤경아, 설탕, 프림 다 넣고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한번 해봐”라며 웃었다. “이제 이런 것도 조금씩 가르쳐요”라며. ‘도대체 기삿거리가 될 게 없다’는 그녀의 일상은 너무나 평범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대학 1학년, 고등학교 2학년(아들), 초등학교 6학년(아들)인 세 아이를 챙겨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친구들이나 친하게 지내는 학부형들과 골프를 치고 시장도 직접 다니고 아이들 돌아오기 전에 귀가해서 저녁 준비를 하고, 일요일마다 성당에 나가는 것이 변함없는 그녀의 일상이다. 다른 엄마들처럼 그러다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는 것. 요즘은 방학이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모든 것을 엄마에게 의지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와 얘기하는 시간도 적어지고 자기들 세계가 생기는 것 같다고. 가끔 그런 아이들에게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윤경이는 미대에 진학해서 도예를 전공하고 있어요. 틀에 박힌 생활만 하다 대학생이 되니 너무 좋아해요. 가끔 엄마 생활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컸죠. 고2인 용우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막내 용민이도 준비물 같은 것을 스스로 챙기면서 재미있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어요.”
요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팔순의 시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남편이 3남 1녀 중 둘째여서 큰댁에 사시는 시어머니는 예전처럼 매일 오시지는 않지만 가끔 손주들을 보기 위해 들르신다고. 결혼하고 힘들었던 게 시댁의 가풍을 익히는 일이었다. 근검절약이 철저하고 같은 세대보다 좀더 구시대적으로 산다고 보면 되는 가풍이다. 지금 아파트는 13년째 살고 있다. 같은 단지 내에서 거실 바닥을 아파트 지을 때 그대로인 상태로 살고 있는 집은 자기 집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명색이 건설업체 회장 집인데도 말이다. 바닥 일부가 썩어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 남편은 “10 중의 9가 멀쩡하고 1이 썩었는데 어떻게 바꿀 생각을 하느냐. 생각이 잘못된 사람이다”라며 수리를 하도록 했다. 가구들도 새것으로 바꾼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수년 전과 비교해 유일하게 바뀐 것은 소파 천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결혼할 때 장만한 소파인데 그동안 두 번 정도 천갈이를 했다고.
결혼 초 적응 힘들었던 건 시댁 가풍 시간이 지나며 옳다는 생각에 말없이 따라
남편 조규영 회장도 검약이 몸에 밴 스타일이다. 양복 바지 짜깁기를 많이 해 세탁소 아저씨에게 부끄러울 정도다. 얼마 전 백화점 세일 행사 때 남편의 바지를 하나 사서 슬쩍 걸어놓았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예쁜 것 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하라”고 한다는 것. 그래서 3만원짜리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처녀 때 제가 얼마나 펑펑 쓰고 살았겠어요. 결혼하고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일주일 쓰고 나니 없었어요. 시댁 식구들이 얼마나 한심했겠어요(웃음). 그래도 어머님이나 애 아빠가 잘 참고 이끌어주셨어요. 결혼 초에는 이런 가풍을 이해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옳다는 생각을 했어요. 옳은 거니까 따라가는 거죠. 안 그러면 살 수 있겠어요?(웃음).” 인자하면서도 심지가 굳은 시어머니는 여고 선생님을 하셨는데, 3남 1녀의 자식들을 키우며 언제나 ‘이것 먹어라!’가 아니라 ‘이것 먹어볼래?’의 권유 방식으로 교육을 해왔다. 며느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고. “결혼 초에는 살림을 못해 쩔쩔맸어요. 처음부터 제가 살림을 잘할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어머님이 잘 이끌어주셨어요. 친정 어머니 이상으로 잘해주셨죠. 저는 친정 부모님이 다 안계시니까 막연하게 그리워했던 어머니를 시어머니에게서 느꼈으니까요. 그런 어머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걱정이에요.” 시어머니도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이다. 시집와 첫 명절 때 세뱃돈으로 1만원을 주셨다.
지금도 액수는 변함없이 1만원이다. 어른들은 1만원, 아이들은 5천원으로 정해져 있다. 며느리 생일 때 시어머니는 5만원을 주신다. 그것도 지금까지 변함없는 액수다. “제겐 남들 5백만원보다 소중하게 느껴져요”라며 웃는다. 이 가정의 생일 파티는 누구 생일이든 똑같은 모양새라고 한다. 꽃다발과 함께 단골 한식집으로 온 식구가 가서 냉면을 한 그릇씩 먹으면 끝이라는 것. 그러면 돈을 벌어 다 어디에 쓰는 것일까. 운동과 먹는 것에 아끼지 않는단다. 가족들 건강과 안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 양복 바지를 짜깁기해 입는 조회장은 아내가 9년 동안 탔던 승용차를 벤츠로 바꿔주었다. 정작 본인은 국산 중형차가 적당하겠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동네 근처만 오가며 5년째 타고 있는 벤츠는 앞으로 5년은 더 탈 생각이라고.가끔 부부가 함께 골프장에 나가기도 한다. 18세 때부터 골프를 친 조회장은 실력이 수준급이고 배우 시절부터 치긴 했지만 자신은 ‘여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 안 될 정도’의 실력이라고 한다. 일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정윤희씨는 가족애가 끈끈한 집안으로 시집와 허전한 부분을 모두 채우게 됐다. 어느 날 자신의 생활이 감사하다는 생각에 성당에 나가게 됐고 세례도 받았다. 성당에 함께 나가자는 아내의 권유에 남편은 가끔 성당 앞에까지 아내를 데려다주는 것으로 ‘성의 표시’를 하곤 한다.
보수적이고 표현 안 하는 남편 변함없는 모습에 믿음 깊어져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 성당에 나가게 됐고 세례도 받았다. 성당 한 행사에 참석해 활짝 웃는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조회장은 표현이 없는 편이라고 한다. 바깥일을 집에서 얘기하는 법이 없어 사업이 잘되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다고. 보수적인 면 때문에 결혼 초에는 많이 힘들었다. “아침 일곱 시 딱 그 시간에 출근해 제시간에 들어오는 사람이에요. 요즘은 일주일에 절반쯤은 좀 늦지만요.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구요. 운동을 좋아하는데 헬스를 쉬는 법이 없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가끔 빠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법이 없어요. 질릴 정도라고 하면 좀 심한가요(웃음). 그런데 변함이 없으니까 신뢰가 가요. 믿음이 점점 깊어지는 거예요. 한마디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에요. 남자는 그래야 될 것 같아요. 내 아이에게도 그런 남편을 얻어주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도 엄하고 보수적이지만 자상한 면도 많거든요.” 큰아들 용우군의 현재 꿈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고 막내아들 용민이는 꿈이 왔다갔다한다. 부모로서 어떻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본인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주위에선 유학 안 보내느냐고, 뭘 셋을 다 데리고 사느냐고 납득이 안 된다는 분들도 있는데, 아직 유학을 보낼 생각은 없어요. 공부 잘하고 성실하면 보내지만 놀기만 하고 게으르면 보내지 않는다는 게 아빠의 확고한 생각이에요.” 주부로 살면서 처음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살림하다보면 집에서 입은 채로 시장도 가야 하고 화장 안 한 채 다니는 것이 보통인데, 화장하고 꾸미고 나갈 때는 ‘어머! 정윤희야, 아직도 여전해, 그래도 정윤희인데!’ 하는
한국 영상자료원 행사에 참석해 사인을 해주고 잇는 '주부 정윤희씨' 행사 성격이 어떻든지간에 그녀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했다.
반응이지만 그냥 나가면 ‘어머! 정윤희 아냐, 정윤희가 어쩌다 저렇게 됐어?’ 하는 반응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더라는 것. 하지만 지금은 ‘얼굴이 두꺼워져서’ 개의치 않고 다닌다.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불편해서 생활이 안 될 것 같더라는 것. 그래도 가끔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가족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그러나 정작 세 자녀는 엄마가 영화배우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딸 윤경양은 한국영상자료원 행사 때 엄마와 함께 가 엄마가 출연했던 영화를 보며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고, 끝났을 때는 좋아하더라는 것.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에서 어떻게 하루아침에 주부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럴 생각 없어요”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지금 내가 나가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라고.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많이 후회했지만 미련은 없어요. 그래서 지금 현재에 충실하려고 해요. 주부로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살림하고…. 아이들에게도 ‘엄마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하고 있다. 공부도 때를 놓치면 엄마처럼 후회하게 된다’고 말해요.”
아이들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주부로서 제일 큰 바람
20대의 모습만 팬들의 기억 속에 남겨둔 채 ‘배우 정윤희’도 나이가 들어간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50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보다 화려한 젊은 날을 보낸 왕년의 톱스타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해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저도 나이가 들어가는 거니까요. 알차게 그날그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까 하루가 빨리 지나가요.” 성당에 갈 때마다 그녀는 아이들 모두 잘 자라고 식구들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아직까진 부부 모두 건강한 편이지만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늘어가니 건강을 걱정할 나이가 된 것 같단다.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부 정윤희씨’의 생활엔 큰 변화가 없었다. 기자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서인지 “심심하게 살죠?”라며 웃는다. 그러니 어찌 보면 심심한 인터뷰가 돼버렸다. 얼마나 자극적인 기사가 많은 세상인가. 그러나 본인이 만족하며 열심히 살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설사 심심한 기사가 되더라도 변화가 없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일 것이다. “독자 엽서에 제 이름이 나온다는 건 너무 안 보이니까 궁금해서 그러시겠죠. 관심 가져주시는 것은 고맙죠. 너무 평범하게 잘살고 있고 지금 생활에 감사하고 있어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조용히 있으면 아주 잘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