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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0:1-30> 여호사밧,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모압연합군, 영적 엔게디, 영적 전쟁, 찬양대, 브라가 골짜기, 아합과의 정략결혼, 이세벨, 아달랴
1. 여호사밧에 대하여
여호사밧은 남 유다 왕으로 대체로 선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이름 히브리어 “예호샤파트”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기에서 “사사”가 바로 “샤파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은 심판주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왕들이 다 잘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해지고 이름이 높아지면 교만해서 넘어지는 것처럼 여호사밧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합니다.
→ 그것은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달랴”를 그의 아들 여호람과 정략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결혼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역대하 18: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아합과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전체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한 장본인들입니다. 여호와의 종들을 많이 죽인 왕입니다.
→ 공산주의,사회주의 특징도 그렇지만 원수는 자기가 힘이 약할 때 전략적으로 연합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결혼도 엽합입니다. 당시 남 유다는 강했습니다. 군사가 116만명이 되었고 (대하 17:13-18)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반면에, 북이스라엘은 아람과의 전투 등으로 나라가 힘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성령이 충만하고 영적으로 강해져 있을 때에 사탄은 항상 연약한 모습으로 다가와 연합하고자 합니다. 이런 전략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사돈관계가 되니 악한 아합왕을 도와 길르앗 라못을 칠 때에 함께 전쟁에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래서 여호사밧은 선지자의 책망도 듣습니다.
[역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 이 예언대로 오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모압연합군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역대하 20:1절에 “그 후에”라는 부사가 그 앞의 내용을 받고 있으므로 2절부터 기록된 모압연합군이 쳐들어온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선견자 예후의 책망을 듣고 그는 정신을 차리고 종교개혁을 계속 이어갔기에 그의 시대에는 형통을 함을 봅니다 (대하 19:4-11).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전쟁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 하지만, 그의 실책으로 여호사밧이 죽은 후에 혼인관계이기 때문에 그 악한 열매가 계속 맺히는데, 그의 후손들이 많이 죽어나갑니다.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그의 아들 여호람이 다른 형제 왕자들을 다 죽이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대하 21:4). 그런 악한 일을 저지른 여호람은 창자에 중병이 들어 창자가 빠져나오는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대하 21:15, 18-19),
성경은 이런 일들이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혼인관계의 열매입니다 (대하 21:6)
그리고 여호람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여호사밧의 손자)도 북 이스라엘에 요람 왕의 병 문안 갔다가 반란을 일으킨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왕하 9:27), 그러므로 아달랴는 남편과 아들이 죽자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진멸하고 자기가 왕권을 잡고 6년을 다스립니다 (대하 22:10), 이때도 다윗의 후손 왕자 중에 한 명만이 살아나는 데 그가 요아스입니다.
→ 그래서 혼인도 내 생각대로 아무하고 하면 안됩니다. 결혼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을 돕는 것도 아무나 도우면 안됩니다. 악인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2. 모압 연합군과의 전쟁의 시작
선견자 예후의 예언이 있은 후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 연합군(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이 남 유다를 침략해 왔습니다 (대하 20:1, 20:22-23)) - 지도참조
※ 마온 사람들 : 에돔의 국경 부근에 있는 세일산 사람들 (대하 20:22-23)
성경은 적군에 대하여 “큰 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2, 12)
얼마나 큰 무리인지 적군이 벌써 예루살렘 동남쪽 56km 지점 엔게디에 있다는 보고를 듣자 여호사밧이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대하 20:3), 모압 연합군이 패했을 때에 노략물을 사흘이나 거두어 들이는 대군이었습니다 (대하 20:25)
1) 그래서 그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역대하 20: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모든 백성에게도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도 기도하게 합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가장 최선입니다.
→ 그는 이 싸움에서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과 사돈관계가 맺어져 있고 더구나 북이스라엘이 길르앗 라못을 칠 때에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을 도와주었으므로 (역대하 18장) 얼마든지 북이스라엘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그들의 배후를 칠 수 있는 지리적인 위치에도 있엇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아합왕과의 연합한 것에 대한 선견자 예후의 책망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먼저 달려간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 이런 한번의 목숨을 거는 믿음의 결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승급이 되는 것입니다. 시험지입니다.
→ 만약에 여호사밧이 다시 아합 왕에게 도움을 구했다면 그도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인간적인 방법 다 해보고 안될 때 하나님께 엎드리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계속 훈련이 반복됩니다. 또 시험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아닌 인간을 포함하여 다른 것들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십니다.
물론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일반은총은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태양빛을 주시고 비도 주십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믿음의 수준이 있는 것입니다. 왜요, 천국 백성의 자격이 되어야 하니까요.
인간적인 것을 의지하며 스스로 서지 못하고 인간적인 것을 계속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 왕”의 예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을 때 태후의 자리를 빼앗기도 한 왕입니다 (대하 15:16)
구스의 백만 대군이 쳐 들어왔을 때에 하나님께 의지하여 그들 물리친 왕입니다. 살아남은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전멸을 시켰습니다. 당시 그의 기도가 어려움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역대하 14: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렇게 하나님 만을 의지했던 그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쳐들어 온다고 하니 아람 왕 벤하닷에게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에 있는 은금을 보내어 물리쳐 달라고 원병을 요청하게 됩니다 (왕상 15:17-19).
더구나 선견자 하나니의 책망을 듣고서 그를 옥에 가두고 백성 중 몇 사람도 죽이는 일까지 저지릅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에게 발에 병이 들었는데 이 때도 여호와께 구하지 않고 의원에게 구하다가, 결국 그 발의 병 때문에 죽습니다 (대하 16:1-14)
→ 그는 발에 병이 났다는 것이 참 예언적이지 않습니까? 발이 아프니 무엇인가에 의지하여야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자립이 안됩니다. 교회도 가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에 먼저, 무조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엎드려야 합니다. 필요하면 금식도 해야 합니다.
“도와줄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다시 여호사밧 이야기로 돌아와서, 여호사밧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기도도 우리들의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이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결정적으로 움직이십니다.
[역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대적할 능력이 없을 때에 오직 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능력이 있어도 주를 의지해야 합니다.
■ 저는 요즘 아사의 기도와 여호사밧의 기도를 그대로 올려 드립니다. 왜, 제가 이 여호사밧의 기도를 하고 있을까요? 대산교회가 새롭게 나아감에 있어서 영적공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나와 함께 하셔서 주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의 것이 되게 해 주세요, 저는 약한 자입니다. 내 속에 선한 것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줄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우리가 이기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올리드리고 있으므로 결국 저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재판장이시니다.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가 승리할 것입니다.
▶ 우리들 자체에는 그대적을 이길 권세와 능력이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능력과 권세가 있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가 있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 그의 기도가 마치자 마자 바로 하나님의 영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합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기도의 응답이 온 것입니다 (대하 20:14-16)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①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요일 4:18). 두려우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②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했던 고백이기고 합니다(삼상 17:47)
[사무엘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③ 그리고 대열을 이루고 서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 오늘날 영적 전쟁도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맡기시면 됩니다.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3) 이 선지자 야하시엘의 말을 듣자 마자 여호사밧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드리며 큰 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대하 20:18-19) → 경배와 찬양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 평소에 경배와 찬양을 많이 하세요. 가정과 사업장, 교회가 영적으로 평안해지는 길입니다.
4) 하나님의 응답이 오자 여호사밧은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역대하 20: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신뢰하다, 견고히 서다”가 모두 우리들이 잘 아는 아멘(히, 아만)입니다.
말씀에 아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딱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동사가 사역형, 명령형이므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지 못하면 그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응답이 와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예언의 말씀을 100% 믿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이 마음이 아멘의 자세입니다.
▶ 그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나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문제요, 거룩함의 문제요, 기다려야 하는 때의 문제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믿고 “아멘”하는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많은 부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암 3:7, 히 1:1).
그 말씀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 오늘날 각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 못 듣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칫 성령의 음성이 아닌 다른 영의 음성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기초한, 기도에 기초한 음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119 말씀사역을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5) 여호사밧은 찬양대를 앞세우고 나아갑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을 위하여 군인을 앞세워 칼과 활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예복을 입힌 찬양대를 앞 세웁니다 (20:21)
정말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이상한 모습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 말씀대로 “대열을 이루서 서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하 20:17). 세상적인 전쟁의 모습이 아닙니다.
→ 우리들의 영적 전쟁도 이와 같습니다. 실제로 칼과 창으로 하는 전쟁이 아닌 것입니다.
→ 찬양이 영적 전쟁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예배 초반에 찬양을 하는 주요 이유입니다. 찬양소리에 원수는 무너집니다.
원수는 찬양하지 못합니다.찬양은 하나님을 움직이고 사탄을 꺽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 우리교회 찬양대에게 바라는 소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재능이 있다고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지자를 신뢰하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오늘날 우리들에게 원수로 다가오는 모압, 암몬, 에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 롯의 경우 아브라함과 분리될 때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한 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9)라고 했을 때 그가 선택한 곳이 온 땅에 물이 넉넉한 요단지역입니다. 그리고 죄악의 도성인 소돔까지 흘러들어갔습니다.
→ 롯의 영은 술취함의 향략과 물질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세상의 영인 것입니다.
■ 모압과 암몬은 이런 롯의 후손들입니다(창 19:37-38). 아브라함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신앙이 조카 수준인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시 산으로 도망가 굴에 사면서 두 딸이 자기 아버지 롯에게 술을 취하게 하여 동침하여 낳은 자손들입니다
※ 모압은 원어적으로 아버지의 자손이라는 뜻이며, 벤암미도 백성의 자녀라는 뜻으로 근친상관에 의한 자녀임이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을 공격하는 모압과 암몬의 영은 소돔과 고모라의 영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음란의 영입니다. 어두운 굴속에서 행했으므로 굴 같은 곳에서 숨어서 행음하는 영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모압과 암몬의 영은 우리와 교회를 공격하고 가정을 공격하는 강력한 세상의 영, 물질의 영, 음란의 영인 것입니다.
이런 영들이 사방으로 공격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엔게디라는 가까이에 있으면서 공격하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벌써 우리들은 많은 공격을 받고 점령을 당하고 유린을 당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 소돔과 고모라의 영, 모압과 암몬의 영이 들어오면 순수함을 잃게 됩니다.
세상의 영이 가득차게 됩니다. 교회가 이익과 쾌락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정말 순수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쌍둥이 야곱에게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기고 항상 동생 야곱을 미워하고, 원수를 갚고자 분노를 품고 살았던 민족입니다.
[아모스 1: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그러므로 에서의 영은 분노, 미움, 다툼, 시기의 영입니다.
에돔의 주요 유적이 페트라인데 협곡에 있는 바위를 파서 굴처럼 요새를 만들어 살았던 민족입니다.
에돔의 영도 모압과 암몬이 영처럼 굴 속에 숨어 있어서 자기 감정을 숨기고 있으로 쉽게 쳐들어갈 수 없는 것 같이 쉽게 처리되지 않습니다.
→ 에돔의 영은 교회의 분열과 다툼, 시기, 질투의 원인입니다.
→ 예수님 시대의 헤롯은 에돔(이두매) 출신 왕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로 죽인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이 그런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해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을 46년 동안 증측합니다. 에돔의 영이 베푸는 이런 사탕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결국 다 무너질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마 24:2, 막 1-2, 눅 21:5-6).
▶ 오늘날 우리들이 참 왕이신 예수님의 가르침 사랑을 따르지 아니하고, 에돔의 영에 잡혀 미워함으로 헤롯을 왕으로 섬기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모압과 암몬의 영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족속입니다 (신 23:3), 그리고 에돔은 하나님께서 하나니의 신발을 던지는 곳이라 했습니다 (시 60:8) .
이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망하므로 그들의 영에 잡히면 안됩니다.
4. 우리들이 이런 영들에 잡혀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에수님은 이런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여호사밧과 같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산헤립의 군대 18.5천도 기도로 하룻밤 사이에 전멸되었습니다(왕하 19:35)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십니다.
원수가 감지되면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100% 듣으십니다. 그러나 100% 응답하지는 않습니다. 다 들어주면 여기 있는 사람 다 죽고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살리기 위하여 다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
군대서 훈련 중에 있는 자가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 가지고 누릴 수 없습니다.
■ 이 기도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면 대적에게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찿습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들이 적군의 물건을 탈취하는데 얼마나 많은지 사흘동안 거두어 들입니다(대하 20:25)
사흘은 하나님의 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을 부하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가난하게 되셨고 죽으셨습니다(고후 8:9)
그러면 백성들은 기쁨으로 여호와를 송축하는 축복의 골짜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브라가(히, 베라카)는 원어가 축복이라는 단어 “바라크”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골짜기가 된 것입니다.
기도와 찬송으로 나아가니 축복의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원수들까지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공격하지 않게 됩니다.
또 그래서 모든 백성이 나라가 태평과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원수 마귀를 기도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선지자를 신뢰함으로 찬송하며 나아갈 때에 일어나는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대산교회와 가정들이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 오늘날 우리들 사방에도 적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적군이 있는 엔게디 근처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많이 점령을 당하여 포로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오늘날 일곱 산을 수많은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가정을 포함하여 정치영역, 문화영역, 교육영역 등에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 점령을 당했습니다. 모압 연합군의 영들, 에돔의 영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래서 헤롯이 지배하는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정말 예언적입니다.
당시 유대땅을 지배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음란한 영, 세상의 영, 에돔의 영인 미움, 다툼, 시기, 질투의 영을 깨뜨리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결국 헤롯왕가는 헤롯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가 벌레에 먹혀 죽으므로 끝이나고 마는 것입니다 (행 25)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요 6:39, 17:12, 18:9).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역사하는 이런 영들을 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요일 3:8)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여호사밧처럼 낮은 자세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 20:12)
이 기도가 날마다 우리들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사밧 군대가 그들은 무기로 이기지 않았고, 자신들의 전략으로 이기지 않았던 것처럼, 기도와 찬양, 말씀과 같은 영적 무기를 앞세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는 자멸한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