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 오리모양토기에 담긴
뜻
토기는 인간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식량자원 활용에 관한
가장 큰 발명품이며, 채집경제에서 농경생산경제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산물이다.
또한 토기는 긴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다양하게 변화 발전하면서 제작
집단의 전통과 생산물, 제작기술의 전파와 보급 등의 경제구조를 보여준다. 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의 창작물로써 인간의 감정과 사상, 관념, 신앙
등의 정서를 담고 있다.
신석기 빗살무늬토기가 대표
주자.
우리나라 토기의 기원은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 토기는 표면에 다양한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겨놓았다. 이후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무문토기를 거쳐 원삼국시대에는 중국의
토기제작기술의 영향을 받아 밀폐요(登窯)에서 토기를 굽기 시작했다.
원삼국시대의 와질토기보다 단단하고 흡수력이 적은 토기가 삼국시대에
등장한다.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얇고 단단해진 삼국시대 회청색 경질토기는 이후 청자와 백자를 사용하던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서민층에서 즐겨 사용하기도 하였다.
오리모양토기
짚신모양토기
토기는 각 시대별마다 특징적인 모습을 나타내지만 원삼국시대에서는 오리와 같은 동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토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오리와 말과 같은 동물 외에 짚신, 집, 배 등과 같은 물건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토기가 유행한다
원삼국시대 오리모양토기의 모습을 살펴보면 머리에는 벼슬과 같은 것이 붙어있고 가느다란
발 대신 굽다리접시의 굽다리부분을 오리 몸통에 붙여 놓았다. 예부터 사람들은 새의 자유로운 날갯짓과 자유로움을 동경하였고 저승과 이승, 또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매개체로 인식하였다.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에 ‘이대조우송사(以大鳥羽送死), 기의욕사사자비장(其意欲使死者飛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큰 새의 깃털로 꾸미는데, 죽은 이가 하늘을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했다.
이처럼 새에 대한 관념은 고대뿐만 아니라 최근의 솟대신앙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즉 하늘 높이 치솟은
솟대 위에 나란히 자리 잡은 새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모태 사로국의 유적, 덕천리 유적에서 8마리 오리모양토기
출토
최근 경주 덕천리유적에서 발견된 원삼국시대 오리모양토기다. 덕천리유적은 1~3세기
초기 신라 사로국의 모태가 되는 새로운 집단이 조성한 유적으로 추정된다. 원래 오리모양토기는 한 무덤에서 암수 1쌍 또는 한 마리만 발견되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유적에서는 한 무덤에서 3마리가 동시에
출토된 것뿐 아니라 한 유적에서 8마리 이상의 오리모양토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각각의 모습도 다양하다. 때문에 이 덕천리유적은 신라의 기원과
발전을 밝히고, 초기 왕조를 조성한 집단의 성격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