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지난 2005년 인구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타종교에 비해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70% 이상의 신자들이 준냉담, 냉담 상태에 들어가는 현상은 양적 성장의 허구성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2020운동 등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한국교회 대부분 교구에서는 여전히 양적 성장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천주교회가 충분히 도덕적이고 비상업적이며 예언자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상식이 통하는 교회, 나아가 그 상식을 복음으로 넘어서는 교회'를 생각하며, 지금은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잡지, 그러나 꼭 필요했던 잡지인 <사목>, 132호, 1990년 1월호에 실렸던 함세웅 신부의 <교회쇄신을 위한 근원적 성찰 - 교회 내의 민주화를 지향하며>를 문제제기와 성찰과 실천적 대안으로 나누어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 |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 23,8-12).
이것은 위선자의 대명사가 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은 예수의 분명한 말씀이다. 많은 이들, 특히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적용시키면서 깊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한다. 교회 안에는 형제성과 봉사보다는 오히려 권위와 위계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의 말씀은 물론 폭 넓게 보편적 역사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겠지만 웬 일인지 마태오 복음의 23장 이 대목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모두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 그렇게도 꾸짖고 책망하고 야단쳤었건만, 우리는 스승, 아버지(神父), 지도자 등의 칭호를 즐겨 사용할 뿐 아니라 그 칭호들이 교회 구조의 핵심적 요소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청개구리인가? 어쩌면 예수께서 그렇게도 엄하게 꾸짖고 금하신 그 칭호만을 골라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 칭호뿐이겠는가? 어찌 보면 교회는 인간으로 구성되었기에 허물투성이일 수 있다.
변천하는 세계에서 교회가 올바른 자기 위상을 정립한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며 그 때문에 시대적 요청으로 제기되는 교회 내의 민주화 문제도 결국 말씀 안에서 그 정답을 찾아야 한다. 말씀의 핵심인 회개와 형제성의 확인(공동체) 그리고 이웃에 대한 겸허한 마음의 봉사, 이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일진대 교회의 민주화란 결국 교회가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이에 예범적인 문제를 제기해 본다.
문제 제기 1 : 교회법이란?
1960년대 중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향한 쇄신의 원칙을 따라 교회가 나름대로 크게 변모할 당시 신학생이었던 우리는 다소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었다. 당시 서울 대신학교에서는 ‘교회법’이 필수 과목 중에서 첫째 둘째여서 ‘성서’ 시간보다도 많은 주 4시간이 할당되어 있었다. 성서와 거의 동등한 대접을 받던 ‘교회법’ 강의가 막상 로마에서는 주 2시간이었고, 더욱 우리는 놀라게 한 것은 동방 신학 교수 한 분이 어느 날 강의 도중 교회법전을 책상에 내려치면서 “이 교회법이 교회를 망친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며 강조한 사실이었다. 예수의 법은 사랑의 법인데, 교회법은 예수가 질타한 제도에 얽매인 것으로 결국 분열과 경쟁만 가져온 것이라고 심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상대적이란 의미를 실감했다.
또 성전(聖傳)하면, 글로 쓰여지지 않은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믿고 들어왔던 우리가, 여러 전승(traditiones) 특히 동방 교회의 전승, 서방 교회의 전승이란 설명을 들으면서 더욱 의아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동방 교회의 영성이 더욱 깊다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자못 혼동을 겪기도 했었다.
문제 제기 2 : 바티칸이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1870년 이탈리아의 독립 운동에 의해, 바티칸이 이탈리아에 항복하여 미완성으로 끝난 교회사 측면에서는 대단히 마음 아픈 사건이다. 바티칸과 교황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특히 스위스 근위병들은 격전 끝에 목숨까지 잃었다. 그런데 ‘교회사’ 교수는 바티칸이 속권을 빼앗기고 그 재산, 토지 등을 이탈리아 정부에 반환했기에 교회는 오히려 더욱 영적으로 부요해질 수 있었다며 이것이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하느님의 섭리! 물론 모든 것이 섭리일테지만 그렇다면 교황청의 사수와 교황의 안전을 위하여 끝까지 총을 겨누다가 죽어간 스위스 근위병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그 당시 교회가 망했다고 비탄해 하던 교회의 충실한 사람들의 바람은 거짓된 것이었던가. 분명한 역사 의식을 가진 교수는 어쨌든 교회의 상대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분명히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문제 제기 3 : 사제들의 참된 증언이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쇄신 운동에 힘입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출애굽의 해방 의미를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새롭게 깨닫고 자유와 해방을 통한 영성과 구원을 터득했다. 그리고 억압과 구조적 불의에 맞서 싸운 젊은이들의 행동 실천에서 해방 신학의 원리를 종합해 냈다. 출애굽의 뜨거운 체험이 지금, 이곳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때맞추어 1970년대 박정희 유신 독재 상황에서 지학순 주교를 비롯한 목사, 사제, 교수, 변호사, 학생, 정치인, 노동자, 농민 등 숱한 무죄한 시민들이 옥고를 치르며 고생을 했다. 때문에 사제들은 믿음의 이름으로 이에 저항하며 나름대로 예수의 교훈을 따라 억울한 이웃들의 벗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쇄신 행동에 익숙하지 못한 나이 든 분들과, 교구장직을 맡은 몇몇 책임 주교들은 정부, 여당의 궤변과 뜻을 같이하며 사제들의 정치 참여는 불가하다는 묘한 표현으로 사건의 진상과 사제들의 진의를 흐려놓곤 했다. 사제들의 정치 관여는 분명 거부감을 주는 행위이다. 그런데 억울한 이를 위하여 불의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정치 관여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교회는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 정치 체제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인간을 도구로 여기는 잘못된 정치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주교가, 왜 우익 독재에 관하여서는 침묵하고 있는지 젊은이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문제 제기 4 : 교황 대사란?
1989년 9월 성체대회 직전에 중앙일보에 주한 교황 대사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인터뷰 내용은 위험 수위를 넘어 문규현 신부, 임수경 양의 방북 문제와 관련된, 사목적 대담이라기 보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다분히 정치적 발언이었고,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은 한국인의 민주화 요구를 유년기에 비유했고 아직 민주주의를 이룩할 정도로 성숙한 국민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교황 대사는 누구인가? 그는 바티칸의 외교관이다. 외교관은 그 특성상 주재국의 국민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더구나 교황 대사는 외교관에 앞선 사목자이기에 여기에는 사목적 의무가 하나 더 부과되어 있다. 우리는 초세기, 중세기에 동방, 콘스탄티노플에 파견되었던 교황 대사들의 부족한 인격과 편견 때문에 교회가 동서로 분열된 아픈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어쨌든 현 주한 교황 대사에 대한 발언을 꾸짖는 항의가 교수들의 이름으로, 또 몇몇 사제들의 이름으로 언급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교황 대사의 발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황 대사의 신원 문제다. 불의한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 사제들을 툭하면 정치 행위라고 비난하는데, 사제들의 발언은 분명 예언자적 발언이다. 그러나 교황 대사는 그 직분상 정치적 신원이다. 국가 정부를 상대로 신임장을 제정하고 외교관의 신분을 갖고 있다. 교황 대사는 꼭 주교여야 하는가? 사제가 부고한 현실에 그들 모두 사목 현장의 일꾼이었으면 좋겠다. 예수께서는 교황 대사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젊은이들이 계속 물음을 던지고 있다.
문제 제기 5 ; 교회 내의 민주화와 주교의 임기제는?
흔한 표현을 평신도들은 본당 사제를 비판하고, 사제들은 교구장을 비판한다고 한다. 또 교구장을 비판하는 사제일수록 본당에서는 더욱더 독선적이라는 악평도 가끔 듣게 된다. 본당 교우들의 경우 사제들이 너무 권위적이다, 무례하다, 사람을 편애한다, 기도 생활이 부족하다는 등등으로 사제에 관한 의견이 압축된다.
사실 본당도 교회의 기초적 단위로 공동체이기에 조직, 관리, 기관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친교 모임, 잔치 등으로 체험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자의 증가와 본당의 비대화로 어쩔 수 없이 비인간화된 조직으로 퇴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제들은 본당의 운영 관리인보다는 참으로 봉사하는 목자여야 하는데 이 틀을 과연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겠는가. 사제는 물론이지만 본당의 교우들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운영 관리인으로 비쳐진 사제를 사목자의 자리로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사제들의 경우는 교구장 주교에게 종속되어 있는데 교구 구조상 사제들이 공동 의견을 집약하여 제안할 수가 없다. 우선 본당의 사목 때문에 본당에 얽매이게 되어 있지 지역 공동체라든지, 교구 공동체를 생각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교구란 허울 좋은 이름일 뿐 사실상의 교회 공동체의 기초적 기본 단위는 본당이다. 따라서 교구라는 공동체 개념을 구체적인 경우 관념에 불과한 현실이다. 신학적으로는 교구가 교회 공동체의 기본 단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란 뜻이다.
1960년대의 교의신학 교수 한 분은 주교직을 언급하면서 교구장은 꼭 임기제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구장의 임기제, 60년대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내용인데 그 교수는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1984년 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 때에 교구장 임기제가 언급되었건만 이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파묻혔다. 세계의 정치, 문화가 변하고 있는 지금, 교구도 수도원의 모범을 따라 교구장 임기제를 통한 교회 특유의 민주적 공동체를 이룩해야 하리라.
이제는 교회도 민주화되어야
이러한 문제 제기는 사람의 수만큼, 또 시대와 환경에 따라 몇 배로 증가할 것이다. 숱한 변화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교회는 엄존하고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는 철저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강생을 역사적 실재로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의 연장인 교회의 양면성, 초월적-자연적, 불변적-가변적, 은총-제도, 신적-인간적, 거룩한 교회-죄녀인 교회의 참 뜻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에 대한 충실을 다짐하면서, 죄인들로 구성된 교회이기에 죄인들의 회개와 개선을 통해 더욱 새로워지고 거룩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민주화는 시대적 요청이며 성숙한 사회에로의 발돋움이다.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 사건 이후 국민을 억압한 복잡한 유신 체제를 철폐하기 위해 정의구현 사제단이 결성되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뜻밖의 모임이었다. 사제단의 활동은 교회 안팎에 나름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교회 쇄신에도 한몫을 담당한 새로운 운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주교들은 사제단의 구성을 매우 못마땅해했다는 것이다.
특히 어느 주교는 지금은 사회정치적 불의를 언급하겠지만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잡힐 때 사제단의 이 운동은 꼭 교회 내에 자리잡아, 교회의 쇄신 운동, 교회 내의 정화 운동으로 뿌리를 내릴 것이기에 지금부터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나, 그동안 지난 16년간 주교회의에서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하여 취한 개별 주교들의 입장을 나름대로 종합해 본다면 상당한 근거가 있는 설이라 사료된다.
사제단의 활동의 영역이 결국 교회의 쇄신, 교회 내의 문제로 초점이 맞추어질 것을 염려하여 제동을 걸었던 그 주교는 일면 미래를 예견한 통찰력이 있다고 하겠으나 그것은 결국 자신의 능력을 악용한 시대착오적인 발상, 형제애를 거부한 독선과 아집으로 교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아니 퇴행시킨 큰 우를 범한 것이다.
(계속)
함세웅 /신부, 청구성당,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