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문이란: 성문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수행하나 대승법을 깨닫지 못하고 소승의 견해에 머물러 있는 이.
2.성문의 네 가지 증과[聲聞四果]: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 (1) 예류과(預流果)는 수다원의 번역어로서 입류(入流)라고도 한다. 세 가지 결박의 번뇌(我見․ 戒禁取見 ․ 疑)를 끊고 성스러운 흐름에 들어간 사람이다. 영원한 평화의 흐름에 든 자라는 뜻. 무명을 끊고 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든 자. 소승불교의 성자가 얻는 깨달음의 네 가지 계위 중 첫 번째.
(2) 일래과(一來果)는 사다함의 번역어이다. 세가지 번뇌뿐만 아니라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도 약화시켜서 이 세상에 한 번만 돌아와서 괴로움을 다하는 단계이다. 이 果를 얻으면 우선 인간세상에 한 번 왔다가 다시 천상에 돌아가 장차 열반에 든다. 반드시 인간세상과 천상을 한 번 왕래하기 때문에 일래(一來)라고 한다. 또는 한 번 오는 자라는 뜻. 소승불교에서 깨달음을 이룬 성자는 두 번 다시 생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래과를 이룬 사람은 한 번 더 인간으로 태어나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어야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소승불교의 성자가 얻은 깨달음의 네 가지 계위 중 제2과.
(3) 불환과(不還果)는 아나함의 번역어로서 불래(不來)라고도 한다. 욕계에서 죽어서 색계나 무색계에 나고는 번뇌가 없어져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4) 아라한(阿羅漢)은 성문의 증과 중에서 최고의 경지이다.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불생(不生) ․ 이악(離惡)으로 번역한다. 아라한은 모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 배울 것이 없다고 하여 아라한을 무학(無學)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수행하여 해탈에 도달한 소승불교의 성자.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성자라는 의미에서 응공이라고도 한다. 소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을 최고의 성자로 여긴다. -
3. 열반경에 나온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1) 열반경 1권-동국역경원-이운허 역 p121~122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미묘한 대반열반 가운데 네 종류 사람이 바른 법을 수호하고 바른 법을 세우며 바른 법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을 이익케 하고 불쌍히 여기어, 세간의 의지가 되고 천상․ 세간 사람을 안락케 하리라. 무엇을 네 종류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세상을 벗어나고도 번뇌의 성품을 구족하였으니 이것이 첫째요, 수다원을 얻은 사람과 사다함을 얻은 사람은 둘째요, 아나함을 얻은 사람은 셋째요, 아라한을 얻은 사람은 넷째니라. 이 네 종류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간 사람들을 이익케 하고 불쌍히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 ․ 세간 사람들을 안락케 하리라. 어떤 이를 번뇌의 성품을 구족한 이라 하는가.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 위의를 갖추어 바른 법을 세우며, 부처님께 들은 것을 글과 뜻을 이해하고 다른 이에게 말하여 탐욕이 없는 것은 도요, 탐욕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라 하며, 큰 사람이 깨달을 여덟 가지 법을 연설하며, 죄를 지은 이에게는 죄를 털어 놓고 참회케 하여, 보살의 방편으로 행하는 비밀한 법을 잘 아는 이가, 이는 범부요 제8인(人:忍)이 아니니, 제8인은 범부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 하며, 부처라고는 하지 않느니라. 둘째는 수다원과 사다함이니, 바른 법을 얻으면 그대로 받아 지니며,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는 들은 대로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다른 이에게 말하느니라. 만일 법을 듣고도 쓰지 않고 받아 가지지 않고 말하지 아니하면서, 하인이나 부정한 물건을 쌓아두라고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이러한 이를 둘째 사람이라 하나니, 이 사람이 둘째 자리나 셋째 자리를 얻지 못하였더라도 이름을 보살이라 수기를 받았느니라. 셋째는 아나함이니, 아나함은 바른 법을 비방하거나 종이나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두도록 허락하였다고 말하거나, 외도들의 경과 논을 받아 가지거나, 객진(客塵) 번뇌에 장애가 되거나, 모든 업의 번뇌에 가리웠거나, 여래의 진실한 사리를 간직하였거나, 밖의 병의 해침을 당하거나, 4대 독사의 침노를 받거나, 나라는 것을 주장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내가 없다는 말한다면 옳은 것이며, 세상 법에 집착한다고 말하면 옳지 아니하고 대승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옳은 것이며, 태어나는 몸에 8만의 벌레가 있다고 한다면 옳지 아니하고 음욕을 영원히 여의어 꿈에서도 부정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옳은 것이며, 임종할 때에 두려움을 낸다고 한다면 옳지 않느니라. 아나함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이 사람이 돌아오지 않음은 위에 말함과 같으며, 모든 허물이 영원히 물들이지 못하고 오고 가면서 주선하므로 보살이라 이름하고, 이미 수기를 받았으므로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이것을 셋째 사람이라 하느니라. 넷째는 아라한이니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끊어 무거운 짐을 버렸고, 자기의 이익을 얻어 할 일을 이미 마쳤고, 제10지(地)에 머물렀으며, 자재한 지혜를 얻었으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지가지 빛과 몸매를 모두 나타내어 모든 장엄과 같이하여, 부처님 도를 이루려 하면 곧 이룰 수가 있으며,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아라한이라 하느니라. 이러한 네 종류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상 사람들을 이익케 하고 가엾이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 ․ 세간 사람들을 안락케 하여, 천상 인간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여래와 같으므로 사람 중에 수승하며 귀의할 곳이 되느니라."
(2) 열반경 1권-동국역경원-이운허 역 p249-다섯 종류의 사람
가섭이여, 다섯 종류의 사람이 이 대승 대반열반경에 대하여 병 고치는 행을 하는 곳이 있으니 여래가 아니니라. 어떤 것이 다섯 종류인가? 첫째는 세 가지 번뇌를 끊고 수다원과를 얻어서 지옥 ․ 축생 ․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 천상으로 일곱 번을 오고 가면서, 모든 고통을 끊고 열반에 드느니라. 가섭이여, 이 사ㅏㄻ은 첫째 병 고치는 행을 하는 곳이니, 이 사람은 오는 세상에 8만 겁을 지내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느니라. 가섭이여, 둘째 사람은 세 가지 결박을 끊고 탐심 ․ 진심 ․ 치심이 엷어져서 사다함과를 얻은 이로서, 한 번 다녀오는 이[一往來]라 이름하나니, 영원히 모든 고통을 끊고 열반에 드느니라. 가섭이여, 이 사람은 둘째 병 고치는 행을 하는 곳이니, 이 사람은 오는 세상에 6만 겁을 지내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느니라. 셋째 사람은 다섯 가지 아래 결박[五下結]을 끊고 아나함과를 얻어서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아니하고 영원히 모든 고통을 끊고 열반에 드느니라. 이 사람은 셋째 병을 고치는 행을 하는 곳이니, 이 사람은 오는 세상에 4만 겁을 지내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느니라. 가섭이여, 넷째 사람은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을 영원히 끊고 아라한과를 얻어서 번뇌가 남음이 없이 열반에 드나니, 참으로 기린 같이 혼자서 하는 행이 아니니라. 이것은 넷째 병 고치는 행을 하는 곳이니, 이 사람은 오는 세상에 2만 겁을 지내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느니라.
가섭이여, 다섯째 사람은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을 영원히 끊고 벽지불 도를 얻은 이로서, 번뇌의 남음이 없이 열반에 드나니, 참으로 기린같이 혼자서 하는 행이니라. 이것은 다섯째 병 고치는 행을 하는 곳이니, 이 사람은 오는 세상에 10천 겁을 지내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느니라. 가섭이여, 이것이 다섯 종류의 병 고치는 행을 하는 곳이니, 여래가 아니니라.
* 삼박(三縛) : 탐․진․치(貪瞋癡). 이 세 번뇌는 중생을 얽매어 해탈하지 못하게 하므로 박(縛)이라 이름. *오하결(五下結, 五下分結) : 중생을 하계(下界)인 욕계에 얽어매고 해탈치 못하게 하는 5종의 번뇌. 탐(貪)․ 진(瞋) ․ 신견(身見) ․ 계취견(戒取見) ․ 의(疑) *오상분결(五上分結) : 중생을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 결박하여 해탈치 못하게 하는 5종의 번뇌. 색애결(色愛結) ․ 무색애결(無色愛結) ․ 도결(掉結) ․ 만결(慢結)․ 무명결(無明結)
4. 각묵스님의 금강경역해-예류과 전통적으로 금강경에 나오는 4단계의 성인(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경지는 인간을 윤회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고 있는 10가지 족쇄와 연결지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열가지 족쇄는 다음과 같다. ① 개아가 있다는 믿음[有身見] : 인간을 기만 오도하는 가장 근본적인 삿된 견해로, 인격 또는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② 계율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 :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는 것. 의례 의식을 말한다. ③ 법에 대한 의심[疑] : 불법승(佛法僧) 수행의 필요성이나 연기법 등을 의심하는 것 ④ 감각적욕망[貪] :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⑤악의(惡意,瞋) : 질투 원한 분개 화냄 등의 뜻. 성내는 마음[瞋心]과 동의어 ⑥ 색(色)의 세계에 대한 집착 :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물질의 세계와 그 느낌에 대한 집착. ⑦무색(無色)의 세계에 대한 집착 : 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정신세계나 그런 산냐[相]에 대한 집착 ⑧ 만(慢) : 아만 긍지 자만 내가 남보다 낫다거나 못하다 또는 동등하다 하는 마음 ⑨ 도거(掉擧) : 들뜨고 불안한 마음 ⑩ 무명(無明) : 속세의 모든 악과 고통의 근본뿌리. 이 때문에 지혜의 눈이 가리어 사물의 진정한 본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는 사성제를 모르는 것.
이 가운데서 처음의 세가지를 극복한 경지를 예류(預流)라고 한다. 그리고 초기경에 의하면 불법승계(佛法僧戒)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확립된 경우를 들기도 하고
1) 선지식을 섬김 2) 정법을 따름 3) 지혜로운 주의 4) 법을 잘 실천하는 것 을 갖춘 경우를 들기도 한다.
이상을 종합해서 어떻게 해서 예류과를 얻게 되는가를 다시 생각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법승을 굳게 믿고 계율을 잘 호지하는 것이다. 즉 불법승과 계율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 어떤 경계에서도 이 네가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바른 사람(선지식)을 의지하고, 정법을 따르고 지혜로운 주의를 항상 기울이고, 법을 잘 분별해서 실천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이 두번째는 첫번째와 다르지 않다 하겠는데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신행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을 중점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덕목은 지혜로운 주의라 할 수 있다. 매 순간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여서 꾸살라담마[善法]를 증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과 실천을 궁행해 나가는 사람을 예류향(성인의 반열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라 하고, 이렇게 실천궁행하는 사람을 참다운 불자라 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측면이 있다면 위에서 열거한 예류과를 증득한 사람의 특징을 들 수 있겠다.
첫째, 유신견(有身見, 개아가 있다는 믿음)을 극복한 경지이다. 즉 오온을 나라고 여기는 20가지 견해를 초월한 경지가 예류과의 특징이라 하겠다. 자아니 본성이니 불성이니 대아니 마음이니 자성이니 성품이니 영혼이니 생명이니 아뜨만이니 뿌루샤니지와니 브라흐만이니 하여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품고 있는 모든 본질론적, 존재론적인 발상을 뛰어 넘어야 비로소 예류과에 들게 된다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좀 극단적인 표현인지 몰라도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과연 한국불교에 예류향이라도 되는 사람이 몇 사람쯤이나 될가 생각해본다. 둘째, 회의적 의심(불법승 수행의 필요성이나 연기법 등을 회의하여 의심하는 것)을 극복해야만 예류과의 경지가 된다는 말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특히 연기법을 철견하여 세상의 어느 경우, 어느 경지, 어느 가르침, 어느 학문, 어느 사상, 어느 종교를 대하여도 지혜(반야)로써 걸림과 막힘이 없이 본질을 꿰뚫어 봐야만 참다운 불자의 반열에 든다고나 할 수 있겠다. 셋째, 계금취(戒禁取, 계율 의식에 대한 집착,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는 것,특히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의례 의식만이 옳다고 집착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내가 따르는 의식, 내가 따르는 스승, 내가 따르고 지키는 서원이나 계율을 통해서만 청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극복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참 같은 불교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 너무도 다른 전통 쳬계 의식 수행법 등등을 보고 있다. 이런 모양에만 착(着)하여 너는 소승 나는 대승, 너는 이단 나는 정통이라는 식의 엄청난 고정관념의 늪에서 헤어나는 것이 참된 불자의 도리라 하겠다. 부처님께서 이 세 가지를 참된 불자의 도리로서 설하셨다는 점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나는 유신견으로 대표하는 엄청난 산냐놀음을 극복했는가, 나는 회의적인 의심을 극복했는가, 나는 나의 전통에 속하는 법요와 의식과 가르침에만 집착하여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가 참으로 진지하게 돌이켜보고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5. 위빠싸나 1권-김열권 편저-불광출판부
성위 4과(聖位四果)
(1)4과란 무엇인가? 4과에는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에도 도(道)와 과(果)로 나누어져 8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 단계는 번뇌의 심천 정도에 따라 나누어진 것이다. 흔히들 아라한하면 소승 아라한이라 하여 대승 아라한과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전상에는 부처님의 별호 중 하나가 아라한[應供者]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라한은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한 구경각(究竟覺)을 실현한 정각자를 말한다. 다음에서 4과를 상세하게 살펴보겠다.
1) 수다원(入流果, stream entry) 열 가지 결박의 번뇌 중 처음 세 가지인 '오온을 나로 착각[[有身見], 의식과 형식에 대한 집착[戒禁取], 의심'에서 벗어난다. 반야지혜의 계발로 처음 세 가지 번뇌에서 벗어난 상태를 수다원과를 실현했다고 한다. 늦어도 7생안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므로 입류과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처님은 수다원과만 성취해도 이 우주를 지배하는 왕[神]보다도 낫다고 공인하셨다.
2) 사다함(一來果, once-return) 네 번째, 다섯 번째 번뇌인 '감각적인 욕망[貪結]과 성냄의 번뇌[瞋結]'가 상당히 약화되어 거의 제거된 상태이지만,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8정도 즉, 계(戒)․정(定)․혜(慧)를 철두철미하게 수행한 사람은 그의 뜻[意]․말[口]․행동[身]에서 탐욕과 성냄이 거의 제거된 상태에 이른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몸을 받는 것은 한 생, 즉 내생 안으로 완전한 정각을 성취하므로 일래과라 부른다.
3) 아나함(不還果, never-return) 네 번째, 다섯 번째 번뇌인 '감각적인 욕망[탐욕]과 성냄'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 처음 다섯 가지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물질적인 세계에는 전혀 탐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戒)를 파하는 무애행은 부처님 수행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설사 마지막 깨달음인 아라한과를 성취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다시는 물질적인 세계에 태어나지 않고 보다 높은 세계에 태어나서 완전한 정각을 성취해 버린다. 그래서 불환과라 이름한다. 보다 높은 세계는 모든 조오교에서 말하는 천상의 세계 즉 천사․ 신장․ 신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다른 종교에서는 이러한 세계를 영원한 천국 내지 범천의 세계라고 하지만 부처님은 열반을 제외하고는 모든 세계가 무상하다고 하는 것이 타종교와 틀린 점이다. 모든 천국․ 범천의 세계도 다함이 있어 윤회하지만 아나함에서는 더 이상 윤회하지않고 바로 열반으로 향하여 간다.
4) 아라한(阿羅漢, 應供者) 나머지 다섯 번뇌 즉, '색계에 대한 욕망[色愛結], 무색계에 대한 욕망[無色愛結], 불안정함[掉結], 자만심[명예욕, 慢結], 근본무명[無明結]을 완전히 제거하여 탐진치가 소멸한 상태가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다. 아라한은 완전히 윤회에서 벗어난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까지를 유학위(有學位)라 하지만 아라한위는 무학도(無學道)이며 무학위(無學位)라 한다.
(2) 4과는 어떻게 성취하는가 한때 부처님께서 나란다의 파바리카에 머물고 있을 때 사리풋타 존자와 부처님과의 대화이다. 그 중에서 4과에 대한 것만 뽑았다.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최고의 가르침에 의해 얻을 수 있는 해탈 지혜에 관한 법을 가르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근기를 직관의 지혜로 살피시고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만약 이 사람이 내가 가르친 대로 법을 수행하여 세 가지 결박의 번뇌[有身見,戒禁取,疑心]를 소멸시키고 예류과인 수다원에 이른다면 다시는 고통스러운 하계(下界)에 떨어지지 않고 나머지 성위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약 세 가지 결박의 번뇌는 소멸시켰지만 탐욕과 성냄을 악화시킨 사람은 일래과인 사다함에 이르러 한 번 더 사람의 몸을 받아서 고(苦)의 멸(滅)인 열반을 성취하느니라. …다섯 가지 결박의 번뇌[有身見,戒禁取,疑心, 貪欲, 성냄]를 소멸시킨 사람은 불환과인 아나함에 이르러 다시 후퇴하지 않고 저절로 범천의 세계에 나투어 열반을 성취하느니라." …열 가지 결박의 번뇌[유신견(有身見) ․ 계취견(戒取見) ․ 의(疑)․탐(貪)․ 진(瞋)․색애결(色愛結) ․ 무색애결(無色愛結) ․ 도결(掉結) ․ 만결(慢結)․ 무명결(無明結)]를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은 이 생애에서 청정한 마음의 해탈을 성취하느니라." -장아함, 삼파사다니야경-
(3) 4과의 기준이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수라바스타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문의 법과 사문의 과가 있으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사문법인가. 이른바 성인의 여덟 가지 길이니, 바른 소견과 나아가서 바른 집중이다. 어떤 것이 사문과인가. 이른바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아라한과이니라. 어떤 것이 수다원인가. 세 가지 번뇌[有身見,戒禁取,疑心]가 끊어진 것이다. 어떤 것이 사다함인가. 세 가지 번뇌가 끊어지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진 것이다. 어떤 것이 아나함인가. 이른바 욕계의 다섯 가지 번뇌[有身見,戒禁取,疑心․貪․瞋]가 다한 것이다. 어떤 것이 아라한인가. 이른바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모두 다 하고 일체 번뇌가 모두 다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797, 사문법사문과경 29권-
(4) 비유법으로 4과 설명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타국에 노니시면서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물에 비유한 사람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이때 여러 비구들은 그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어떤 것을 일곱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항상 물속에 누워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러 있고,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고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사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다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물에 비유한 사람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이때 여러 비구들은 그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어떤 것을 일곱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항상 물 속에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는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어떤 사람은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또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고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범지라고 한다. 이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을, 내가 간략히 말한 것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고, 위에서 베푼 것과 같다. 너희들은 어떤 뜻을 알고 어떻게 분별하며 무슨 인연이 있는가." 이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부처님께서는 법의 주인이 되시며 법은 부처님으로 말미암아 나오나이다. 원하옵건대, 그것을 말씀해주소서. 저희들은 들은 뒤에는 널리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리라." 모든 비구들이 이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어떤 것을 사람이 항상 물에 누웠다고 하는가. 그것은 어떤 사람은 착하지 않은 법에 덮인 바 되고 더러움에 물들어 악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항상 물 속에 누워 있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져 물 속에 누운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첫째 의 물사람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것을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善法)을 얻어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훗날에 믿음을 잃어 견고하지 못했고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를 잃어 견고하지 못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왔으나 다시 빠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둘째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것을 이미 나와 머무른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훗날에 가서도 믿음이 굳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물에서 이미 나와 머무른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와 머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셋째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도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본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훗날에 가서도 믿음이 굳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사실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이 멸함을 알고, 괴로움이 멸하는 길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삼결(三結)이 곧 다한다. 삼결이란, 이른바 몸이 있다는 소견[有身見]과 계율과 금기에 대한 집착[戒禁取見]과 의심[疑]이다. 삼결이 이미 다하면 수다원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단코 정각에 나아간다. 그래서 기껏해야 일곱 번 몸을 받아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을 오간 뒤에는 곧 괴로움을 끊어 다 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본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넷째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그러하니라.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넌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훗날에 가서도 믿음이 굳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사실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이 멸함을 알고, 괴로움이 멸하는 길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삼결이 곧 다한다. 삼결이란 이른바 유신견과 계금취견과 의심이다. 삼결이 이미 다하면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천상과 인간에 한 번 오고 가게 된다. 한 번 오고 간 뒤에는 곧 괴로움을 끊어 다 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간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다섯째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일래과 사다함의 설명이다)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훗날에 가서도 믿음이 굳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사실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이 멸함을 알고, 괴로움이 멸하는 길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오하분결(五下分結)이 다한다. 오하분결이란, 이른바 탐욕․ 성냄․ 몸이 있다는 소견․ 계율과 금기에 대한 집착․의심이 그것이다. 오하분결이 이미 다하면 그는 천상에 나서 곧 '반열반'하여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不還果].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는 것처럼, 내가 저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여섯째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그러하니라.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범지라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훗날에 가서도 믿음이 굳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 ․다문(多聞)․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사실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이 멸함을 알고, 괴로움이 멸하는 길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탐욕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리하여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범지[구경각에 이른 아라한]라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사람이라 하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일곱째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그러하니라. 내가 아까 말한 바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의 물에 비유한 사람을 말하리라고 한 것은 이 때문에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중아함경 1권 4,5행-
(5) 4과를 이룬 사람들의 내생 한때 부처님께서 '연와의 집'에 머무시던 어느 날,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의 처소로 왔다. 그리고 인사를 드린 다음 한쪽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 사루하루하는 비구가 죽었사온데, 이 비구는 그후 어떤 세계에 태어나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 또한 부처님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 난다라는 비구니가 죽었사온데, 이 비구니는 그후 어떤 세계에 태어나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 또한 부처님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 스닷타라는 재가신자가…."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들이 간 곳은 다음과 같으니라. 먼저 사루하루라는 비구는 살아 있는 동안에 도의 통찰로 번뇌를 멸진하고 아라한과의 청정한 선정․ 지혜인 해탈을 스스로 깨닫고 체득하였다. 따라서 이 비구는 깨달음의 세계에서 다시 어리석은 생존을 받지 않느니라. 다음에 아난다여, 난다 비구니는 다섯 가지 번뇌[五下分結]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하였다. 이 비구니는 천계(天界)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는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느니라[不還果, 아나함과]. 도 아난다여, 스닷타 신자는 세 가지 커다란 번뇌를 멸진하고, 또한 욕심․성냄․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마음의 돗이 엷게 되었으므로 '한 번만 되돌아오는 이[一來果,사다함과]'가 되었다. 이 신자는 다시 한 번만 이 세상에서 생을 받아 괴로움을 남김없이 멸진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들 것이니라. 그리고 아난다여, 그쟈타 여성 신자는 세 가지 큰 번뇌[有身見,戒禁取,疑心]를 멀리하고 '성자의 흐름에 든 이[예류과, 수다원과]'가 되었다. 이 여성 신자는 이제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일이 없으며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 확정되어 있다. 아난다여, 이 밖에 카쿠다 신자는 다섯 가지 거친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하였다. 이 신자는 그 천계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찬가지로 아난다여, 카링가․니카타 ․카팃사바․ 툿타․ 산툿타․ 밧다․ 스밧다 등의 재가신자도 다섯 가지 거친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하였다. 이들 신자들도 그 천계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 이 세상에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난다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오십 명이 넘는 재가신자들이 죽었는데, 이들 신자들은 다섯 가지 거친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하였다. 이 신자는 그 천계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난다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구십 명이 넘는 재가신자들이 죽었는데 이들 신자들도 세 가지 번뇌를 멸진하고, 또 욕심․성냄․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마음의 독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돌아오는 이[일래과]'가 되었다. 이들 신자들도 다시 한 번만 이 세상에서 생을 받고 괴로움을 남김없이 멸진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들 것이니라. 또 아난다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구십 명이 넘는 재가신자들이 죽었는데 이들 신자들도 세 가지 번뇌를 멸진하여 '성자의 흐름에 든 이[예류과, 수다원]'가 되었다. 이들 신자들도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일은 없으며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 확정되어 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죽은 뒤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은, 여래에게 있어서는 별로 불가사의한 일은 아니니라. 그러나 사람이 죽은 후, 일일이 여래의 처소에 와 묻는 것은 번쇄하고 번거롭다. 그래서 아난다여, 이제부터 나는 '진리의 거울[法鏡]'이라는 가르침을 설하리라. 이 가르침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성스러운 제자들은 '나에게는 지옥의 경계는 다 했다. 축생의 경계, 아귀의 경계, 나쁜 경계에 떨어진 조건은 모두 다했다. 나는 성자의 흐름에 든 이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라고 각자 원하는 그대로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니라. 그럼 아난다여,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성스러운 제자들이 '나에게는 지옥의 경계는 다했다. 축생의 경계, 아귀의 경계, 나쁜 경계에 떨어지는 조건은 모두 다했다. 나는 성자의 흐름에 든 이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라고 각자 원하는 그대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진리의 거울'이라는 가르침은 어떤 것이겠는가? 그것은 아난다여, 제일 먼저 성스러운 제자가 여래에 대해 절대적진 신심을 품어, '저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존경받을 만한 분[아라한], 바른 깨달음을 얻은 분[正等覺者], 지성과 행동을 갖춘 분[明行足], 원만한 분[善逝], 세간을 아는 분[世間解], 위없는 분[無上士], 사람을 잘 다스리는 스승[ㅍ], 신들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깨달은 분[佛], 지복한 분[世尊]이다'라고 믿으며, 또한 가르침에 대해 절대적인 신앙을 품어 부처님에 의해 설해진 이 가르침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 때를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나타낸 것, 이 장소에서 알 수 있는 것,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 지자(智者)로서 각자 알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또 승가에 대해 절대적인 신앙을 품어 '부처님과 제자들의 모임은 바른 목적을 향하고, 바른 길을 목적으로 하며, 올바르게 목적을 향하고 있다'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곧 네 쌍, 여덟 종류이 사람들[四雙八輩]이니라. 또한 '세존과 제자들의 모임은 공양을 받을 만하고, 대접받을 만하며, 합장 예배받을 만하며, 세상에서 최상의 복덕을 낳게 하는 밭[福田]이다'라고 믿으며, 성자들을 기뻐하고, 불괴(不壞]․부단(不斷)․불가(不假)․부잡(不雜)․ 자유롭게 하고, 식자(識者)들을 칭찬하며 집착하지 아니하고 선정[삼매]으로 나아가며, 계를 몸에 구족하는 것이니라. 아난다여, 이러한 '진리의 거울'이라는 가르침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들은 바라는 대로 각자 '나에게는 지옥의 경계는 다했다. 축생의 경계, 아귀의 경계, 나쁜 경계에 떨어진 조건은 모두 다했다. 나는 성자의 흐름에 든 이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라고 각자 원하는 그대로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니라." 이렇게 나디카 마을의 '연와의 집'에 머무실 때도,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설하셨다. 즉 "이것이 계율이니라, 이것이 선정이니라, 이것이 지혜이다. 또한 계율을 두루 닦은 선정에는 큰 과보와 이익이 있고, 선정을 두루 닦은 지혜에도 큰 과보와 이익이 있나니 이렇게 지혜를 두루 밖은 마음은 애욕․생존․견해․근본무지 등의 번뇌로부터 바르게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니라."라고. -장부경, 열반경-
6. 기타 (1)사도과(四道果) : 소승불교의 수도자가 증득하는 네 가지 성도(聖道)체계 일체의 견혹(見惑)을 끊어서 증득하는 수다한과, 욕계의 사혹(思惑)을 끊어서 증득하는 사다함과, 아나함. 일체의 번뇌를 끓어 다시 윤회에 들지 않는 아라한과를 가리킴.
(2) 네 쌍 ․ 여덟 종류의 사람들 :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깨달음의 경지에 따라 '성자의 흐름에 든 이[預流果]', '한 번 다시 올 이[一來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不還果]', '존경받을 만한 이[阿羅漢]'의 네 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단계마다 이것을 '지향하는 사람[向 ]'과 결과를 얻은 사람[果]'으로 나눈다. 이런 성자들을 '4향4과(四向四果)'또는 '4쌍8배(四雙八輩)'등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