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9월 9일 토요일 맑음
아침 일찍부터 사당골로 향했다.
오늘은 오전 만 밤을 줍고 아산에 가야 한다.
“얘, 내일 땅콩 캐야 겄어. 아직 철은 아닌 디 땅콩이 썩어서 다들 캐. 내일 못 와 ? 캐는 건 캐겄는 디 집으루 나를 수가 읎어. 오후래두 올 수가 읎니 ?” 어제 엄마의 전화였다. 땅콩은 아직 캘 때가 아닌데 일기 관계로 썩어가는 모양이다. ‘가야지. 엄마 혼자 얼마나 애가 타실까 ?’
바쁘다니까 땅콩까지 속을 썩인다.
부지런히 밤을 줍고, 광생리로 향했다. 젊은 사람이 밤을 달리고 있었다.
“어디 사세요 ?” “멱골 살아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올 해 밤 많이 따셨어요 ?” “아뇨. 형편 없어유” “그럼 흉년인가요 ?”
“그럼유. 작년의 십분의 일밖에 안 돼유” “왜 그렇죠 ?”
“밤이 꽃 필 때 지독한 가뭄이었잖유. 수정이 안 되고 말라 비틀어져서 그래유. 80된 노인 부부가 작년에는 네 가마를 땄는데 올 해는 저것밖에 안되유”
가리키는 것을 보니 반말이나 될까 하는 자루가 놓여있다.
‘아, 그렇구나. 나도 올 해는 주을 밤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 멧돼지 탓 만으로 돌릴 건 아니구나’ “그럼 늦밤을 어때요 ?” “늦밤은 조금 낫다고 하대유”
“멧돼지 피해는 안 보셨어요 ?” “왜유. 말도 마유” 공통점이 또 있네.
“그런데 밤값이 왜 오르기는커녕 떨어졌지요 ?” “몰러유”하면서도 표정은 어둡지가 않다. 천성이 낙천적인지 하두 당해봐서 면역이 됐는지 모르겠다.
‘걱정하고, 애간장 탄다고 달라질 것 하나 없으니 속이나 편하게 먹자인가 보다’ 그 게 낫겠지.
그러니까, 지독했던 가뭄과 그 끝에 이어진 지루한 장마가 밤농사를 망쳤다.
올밤은 아예 달리지도 않았고, 늦밤은 크지를 못했다. 날씨가 농사의 반 이상을 좌우한다는 말이 맞다.
“저렇게 해 봐야 뭐 남는거 있겄어 ? 품값이 칠 만원이나 하지. 멕이구 참주구하면 이 만원이구, 다들 먼 곳에 사니 깨 데려와야 하구 데려다줘야 하니 깨 할 일이 못 디여”
선별장에서 일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푸념을 하신다.
“저는 혼자서 해요” “그래야지”
집에 오니 공사장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바닥 기초공사로 레미콘이 번갈아 들이닥치고, 콘크리트를 치느라 부산하다.
“사위, 이리 나와 봐. 우리가 여태 몰렀어. 이 분들이 찾아냈어. 얼른 나와 봐”
어머님이 가르치는 곳을 보니 바깥채 처마에 농구공만한 말벌집이 달려있다.
“으째 벌덜이 많이 날아다닌다 했어. 그랬더니 저기에 벌집을 은제 저렇게 졌댜 ?” 마당 가 처마 끝인데 아무도 몰랐다. 저만큼 클때까지....
7호 말벌집이다.
아산에 갔더니 일군 네분과 엄마가 땀을 흘리시고 계신다.
집안에서는 보일러 놓느라 바쁘고....
‘참 정신없다. 왜 이리 몰아 닥치나 ?’ 밭으로 가서 일을 돕는 게 먼저다.
나는 땅콩 포기를 쇠스랑으로 파내고. 아주머니들은 땅콩을 따내신다.
여기 저기 자루들이 땅콩으로 배를 그득이 채운 채 서있다.
한 자루 메고서 마당까지 날랐더니 이 건 몸으로 할 일이 아니었다. 숨이 헉헉대진다. ‘기계의 힘을 이용해야지. 내 차 사륜구동을 이런 때 써 먹어야지’
울퉁불퉁한 밭고랑 사이를 누비며 한 차에 모두 싣고 들어오니 엄마도 놀라신다. 늦게까지 캐고 나른 후에 그 많은 땅콩을 물로 닦고 말려야 한단다.
다라에 쏟아 넣고 벅벅 문지른 후 건져내어 하우스 속에 넌다. 너무 힘이 들었다. ‘이 건 엄마 혼자 할 일이 아니다’ 허리를 제대로 펴시지도 못하는 엄마에게는 무리다, ‘저러다가 밤에는 또 끙끙 하실 테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 ? 내가 붙어있을 수도 없고....’ 막막하기만 하다.
깜깜해 져서야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니 밥을 먹고, 몸을 뉘일 방도 없다. 보일러 줄을 새로 깔고 시멘트를 말리는 중이다.
“엄마 고모네 집에 가셔서 주무셔요” “아녀, 하우스 안에서 자면 되여”
“안돼요. 고모랑 같이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고모네 집에서 자요”
두 분을 모시고, 식당에 갔다. 두 분 다 맛있게 잘 드셔서 흐뭇했다.
“맛있는 고기반찬이 남었네. 이 거 싸 달래서 내일 먹어야 겄다” 엄마가 봉지에 싸 들고 나오셨다. 차가 움직이는 데 엄마가 나 몰래 뭔가를 발 밑에 밀어 넣으신다. “엄마 이 거 뭐예요 ?” “응 아까 남는 거, 하두 맛있어서 대전가서 늬들 먹으라구....” “하이구 엄마. 우리는 잘 먹고 살아요. 걱정 마세요”
저녁을 먹고 고모님 댁으로 모셔다 드렸다.
“엄마, 다음 주에 내가 올 때까지는 땅콩을 캐지 말아요. 엄마 혼자 할 일이 아녜요. 알았죠 ?” “그려” 대답은 하셨지만 내일 또 캐실 거다.
대전으로 가는 길이 착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