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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 '어산불영' 지나는 길, 발걸음 잡아채는 '신비의 종소리'
밀양시 삼랑진읍의 뒷산 격인 만어산(萬漁山·699.6m). 무심코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산을 영남알프스 둘레길 구간에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이미 지난해 둘레길 개척 기획단계에서부터 본지 개척단이 깊이 고민했던 사안이다. 만어산을 포함하지 않고 혜산서원과 고택들이 즐비한 전통마을인 산외면 다죽리에서 칠탄정과 칠산정을 거쳐 단장면 금곡리로 진행한 후 밀양호 방향으로 갈 것인지, 만어산을 경유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였던 탓에 각계의 자문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논란 끝에 얻은 결론은 '반드시 만어산을 경유하자'는 것이었다. 도대체 만어산이 어떤 산이기에 개척단이 이미 기획단계 때부터 고민해야만 했을까.
주지하다시피 만어산 정상 바로 아래에 만어사(萬漁寺)라는 천년고찰이 있다. 그렇다면 만어사는 왜 중요한가. 그곳에는 무봉사 태극나비, 땀 흘리는 표충비, 얼음골과 함께 '밀양 4대 신비'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만어사 경석(磬石)으로 이뤄진 너덜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돌로 두드리면 마치 종을 두드릴 때와 같은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경석, 또는 종석(鐘石)이라고 하는 이 돌무지는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그뿐인가. 이 너덜지대를 다른 말로 '어산불영(漁山佛影)'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기원과 관련해 '만 마리의 물고기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을 만큼 깊은 내력이 스며 있다.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만어산이다.
제13코스의 종착점인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 구미교에서 출발, 법흥리 만어령 만어사 감물고개를 거쳐 감물리 용소마을에서 마무리한다. 총거리는 14.5㎞,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 걸린다. 휴식과 만어사 관람 등을 포함하면 5시간30분가량 잡으면 된다. 코스 대부분이 임도여서 걷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만어산 8부 능선에 있는 만어령까지 가는 오르막에서는 땀을 좀 쏟아야 한다는 것만 유념하자.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 조금만 가다가 비포장 강둑길로 직진한다. 대추나무밭과 밤나무밭이 잇따라 펼쳐지고 강둑을 좀 더 따르다가 왼쪽으로 꺾어 밤나무밭 사이로 진행하면 시멘트포장길이 나타나고 곧바로 아스팔트도로에 닿는다. 밀양 단장면 금곡리에서 미촌리 안법리 감물리를 거쳐 삼랑진읍까지 연결되는 도로다. 일단 우측으로 꺾어 아스팔트길을 따른다. 10분 후 안법리 보건진료소 앞 갈림길에서 우측 법흥사지 방향으로 접어든다. 정면 멀리 가장 높은 봉우리가 만어산, 오른쪽 2시 방향으로 가깝게 보이는 산은 칠탄산이다.
10여 분 후 길 오른쪽에 당산나무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밀양 법흥상원놀이(박스 기사 '떠나기 전에' 참조)가 태생한 마을인 법흥리 법흥마을 문화회관 앞을 지난다. 회관 앞에 법흥상원놀이 전수관도 아담하게 지어져 있다. 정월 대보름날 행해졌던 상원놀이는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했던 대보름제에서 기원한 흥겨운 놀이마당이다.
여기서부터는 갈림길에서 고민할 필요 없이 만어령까지 임도만 따르면 된다. 20여 분 후 작은 저수지를 지난다. 길을 따라 오르는 내내 "어떻게 이런 산골에 논이 있고 모내기를 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바로 이 저수지를 보는 순간 궁금증이 말끔히 씻어진다.
저수지를 지나면 마지막 민가를 통과하고 이후에는 만어령까지 줄곧 갈지(之)자가 여러 개 포개진 형태로 뚫린 임도를 따르게 된다. 중간에 너덜겅을 통과하는 등 40분쯤 쉬엄쉬엄 오르면 만어령 고갯마루다.
일단 왼쪽으로 50m쯤 가면 만어산 정상으로 오르는 직진 능선길과 우측 내리막길로 나뉘는데, 만어사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내리막을 택해야 한다. 5분 후 만어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만어사로 접어드는 길. 한적한 이 길에 걸린 현수막 한 장이 눈길을 끈다.
'강은 우리의 생명, 4대강 사업 즉각 중단하라- 대한불교조계종 환경위원회'.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하는 현수막이다. 이윽고 절집 아래 소위 '어산불영'이라고 불리는 드넓은 너덜강을 품고 있는 만어사 법당 앞에 선다.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아담한 절 만어사.
'삼국유사'에는 1181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대웅전 앞 오른쪽에는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원래의 상륜부는 없어지고 후대 사람들이 상륜부만 따로 올렸다고 한다.
2층 누각인 미륵전에는 불상이 따로 없고 높이 5m가량의 뾰족한 거석을 미륵불로 모시고 있다. 이 미륵돌과 절 앞의 너덜지대인 '어산불영'과 관련된 전설은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전해온다(B7면 둘레길 이야기 참조). '만어운해(萬漁雲海)'는 '밀양8경'에 속하는 절경으로 꼽힌다.
선교종 부도공원을 지나 20분쯤 가면 좌측의 만어산과 우측의 구천산을 연결하는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고개를 지나는데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내리막임도 좌측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곳에서 바라보면 감물저수지와 깨밭고개, 그 너머 멀리 향로봉과 향로산이 보인다.
20분 후 아스팔트도로를 만나는데 감물고개다. 오른쪽으로 가면 삼랑진읍, 왼쪽은 감물리다. 왼쪽으로 15분쯤 내려서면 아스팔트 도로 중간에서 우측 마을로 내려서는 시멘트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른다. 감물리 용소마을이다. 주변에 빼곡한 다랑이논이 밀양 3대 오지 중 한 곳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밀양 지역은 삼국시대를 전후한 당시 가야와 신라의 치열한 영토 쟁탈전이 치러진 곳으로 알려져있다. 당초에는 가야의 세력권에 들어 있었지만 신라가 확장 정책을 펼치면서 피할 수 없는 격전이 치러진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해석일 테다.
물론 큰 강인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보니 가야와 신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땅이었을 것이다. 밀양 땅에서도 삼랑진읍 쪽에 가까운 만어산의 경우도 원래 가야의 영토라고 봐야 하겠다.
이 같은 추론은 고려 중기 일연 선사가 저술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만어사 창건 및 어산불영에 관한 전설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수로왕이 인도에 있던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수로왕의 간절한 뜻을 알아차리고 6명의 비구와 1만 명의 천인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를 굴복시키고 가르침을 내림으로써 평온을 되찾았다.
수로왕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곳에 절을 지었고, 그것이 곧 만어사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데려온 1만 명의 천인은 물고기로 변해 절 앞의 너덜지대인 어산불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만어산과 만어사가 원래 가야 땅이었음을 유추케 하는 대목이다.
왕자는 이곳에서 큰 미륵돌로 변했고 수만 마리의 고기떼도 바위로 변했다. 현재 만어사 미륵전에는 불상 대신 높이 5m짜리 큰 돌이 모셔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왕자가 변한 미륵돌이며 미륵부처님으로 모셔진다. 또 뜰 앞의 어산불영은 고기떼가 변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만어산과 만어사의 이름 또한 이 같은 전설에서 연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흥리에서 탄생한 '법흥상원놀이(사진)'에서 '상원'은 정월 대보름을 일컫는 말. 그래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놀이'를 상원놀이라고 말한다. 옛날에 당산나무에서 곡소리가 들려오고, 마을에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당집을 세우고 대보름날 제를 지내게 됐고 그 이후 평안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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