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8일 박 동원 논설위원이 올린 컬럼입니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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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성장의 박정희 공로가 위험한 착각”이란다.
정말 위험한 착각을 하고 있다. 욕 먹을 각오하고 일본 차관 끌어오고, 기업인들 밀어붙여 중화학공업 일으키고, 불가능하다 욕먹으며 무리해서라도 경부고속도로 깔고, 기계공고 등을 만들어 기술인력 양성하고, 새마을운동으로 개선 의지 복돋웠다. 포항제철, 비료공장 지어 산업 기반과 식량기반 만들고, 월남전 등 협조해 미국에 지원받는 등등 세상에 어느 나라 독재자가 큰 부정축재 없이 자기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이런 노력을 기울였을까.
물론 박정희 경제개발이 당장 큰 효과를 발휘 못 했고 80년대 ‘3저 호황’으로 비약했지만, 박정희가 그 바탕을 형성 않았다면 더 좋은 조건에서도 비약 못 했을 것이다.
독재한 거 맞고 민주주의 압살한 것도 맞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신생독립국 중 독재 거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었었나. 그건 그저 자연스런 과정일뿐.
다 잘했다는 게 아니라 시대적 상황은 상황대로 이해해야 하는 거고, 공과(功過)는 동전의 양면이다. 과가 없으면 공도 없다. 공은 과로 인해 가능하고 과는 공으로 인해 생겨난다.
1970년대 ‘유신(維新) 한국’이 너무 싫어 한국을 등지고 호주로 떠났던 호주 국립대 김형아 교수는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 유신과 중화학공업(2005년)’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한국의 민중운동과 자주사상을 연구하다 ‘박정희’에 이르렀다. 박정희를 빼고는 근현대사를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책의 한 대목이다.
<한국 정치는 박정희가 가지는 역사적 상징성을 중심으로 피아를 구분함으로써 박정희 개인을 이념적 논쟁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중략)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박정희를 하나의 색깔로 칠해 현재 벌어지는 정쟁에서 득을 보려는 계산이다. 보수가 박정희를 ‘메이지 유신’식 부국강병을 일구어낸 영웅적인 근대화 기수로서의 박정희를 그리면, 진보는 민중에게 고통만 떠넘긴 독재자로서의 상을 제시한다.
이처럼 '현재'에 벌어지는 무한경쟁의 승자 독식 정치에서 승리하기 위해 '과거'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국가에서 역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하물며 보다 깊이 있는 지식이 차곡차곡 쌓일 리가 없다.
현재의 정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벌이는 과거사 논쟁은 천박한 이분법만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그러다 찬양론과 비판론의 싸움이 지겨을 정도로 지속되면 박정희의 '공'과 '과'는 서로 구분되어야 하며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양비론’ ‘양시론’이 고개를 들고 싸움을 중재하려 든다.
하지만 박정희 공과론 역시 역사를 흑과 백의 색깔로 나누어 보는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이기는 마찬가지다. 역사는 지적 이해의 대상이지 정치적 중재의 대상이 아니다. 아울러 역사는 '공'과 '과'를 서로 구분하여 옳고 그름의 규범적 평가를 쉽게 내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박정희 이후 정권은 문재인 정권마저도 박정희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번 서중석 명예교수처럼 아무리 연구하고 공부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잘못된 결론이 나온다. 처음부터 ‘독재자’란 규정을 해놓고 자료를 쌓으면 결론도 ‘독재’다. 사회나 역사는 편견을 내려놓고 다각도로 접근해야지, 방향을 미리 설정하면 결론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호사가나 국민들이야 여러 감정을 가질 수 있지만 학자는 그냥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된다.
기회가 온다고 아무나 그 기회를 잡진 못한다. 뛰어난 리더가 있어야 가능하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없다. 한가지만 더 말하겠다. 그럼 우리와 같은 역사와 인종을 가지고 똑같이 출발했던 북한은 왜 저리 살까? 모든 평가는 똑같은 조건과 비교되어야 한다. ‘누구는 하고 누구는 못하고’의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 그건 ‘리더십’의 차이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