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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주암시민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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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반야심경(般若心經) 법문
1.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의 뜻
인식(認識)이전, 상대(相對) 이전, 연기법(緣起法) 이전에는 본래(本來)부터 태어난 것이 없다. 티끌 하나라도 태어난 것이 없으니 티끌 하나라도 없어질 것이 없다. 연기법(緣起法) 이전이니 더러울 것도 없고 깨끗할 것도 없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다.
연기법(緣起法)에서 발생된 큰 사건에서 가지가지 업풍(業風)의 고통(苦痛)이 쉬지 않고 일어나지 연기법이전 위신력(威神力) 이 법에는 가지가지 업력(業力)의 고통이 있을 수 없으니 업력(業力)의 고통이 있을 수 없는 본래지(本來知)의 법을 더욱더 존중(尊重)하고 의지(依支)해야 한다는 심경(心經)의 법문이다.
2.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의 뜻
이런 고로 본래지(本來知)의 ◯心(영심)에는 물량색(物量色)과 물량형색(物量形色)들로부터 발생되는 크고 큰 대사건(大事件)들이 태초부터 없느니라. 태초부터 낙(樂)되게 낙되게 쉬고 쉬는 곳이 본래지(本來知) ◯心(영심)의 위신력(威神力)이다.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 물량색(物量色)을 탐내어 받아들이고 물량색(物量色)에 집착하여 끝없이 빠져들고 물량색(物量色)에 집착하여 어리석은 행동과 어리석은 생각 등을 감내(堪耐)하지 못하여 고통 속에서 헤매는 원인(原因)들이 처음부터, 태초부터 없고 없다는 본래지(本來知)의 안식처(安息處)를 거듭 재론(再論)한다.
3.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의 뜻 본래지(本來知)가 무(無)이다. 무(無)가 본래지(本來知)이다. 본래지(本來知)와 무(無)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무(無)가 곧 태초(太初)이다. 연기법(緣起法)의 연기(緣起) 이전, 상대(相對) 이전 법(法)을 무(無)라 하니 상대법(相對法) 이전 무(無)가 태초(太初)라 하겠다. 태초(太初)인 무(無)가 ◯心(영심)이다. ◯心에서부터 ‘눈 귀 코 혀 몸 뜻’이 있었음이 아니고 ◯心은 연기법(緣起法) 이전이기 때문에 ◯心에서 발생한 연기법(緣起法)으로 ‘눈 귀 코 혀 몸 뜻’이 형성(形成)되었다. 신비(神秘)의 무(無)이다. 극비(極秘)의 무(無)이다. 절대(絶對)의 무(無)이기 때문에 무(無)가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손에 잡히지 않음이 무(無)의 신통력(神通力)이다.
무(無)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으니 무(無)가 무언지 무언지 영원무궁(永遠無窮)토록 세세생생(世世生生) 참구(參究)하고 참구해야 할 비밀 중의 비밀이다. ‘빛 소리 냄새 맛 감촉 의식작용’- 육진(六塵)도 연기법(緣起法)에서 발생하였다.
연기법(緣起法)으로부터 시작된 육진(六塵) 세속 사바세계에는 육근(六根)의 업력(業力)에서 시작된 탁하고 탁한 바람이 조용히 쉬는 날이 없다. 조용히 쉬어주는 날이 없으니 중생계(衆生界)는 피곤하고 피곤함이 계속된다.
육근(六根), 육진(六塵) 고통의 바람 억센 업력(業力)의 바람을 평화롭게 지혜롭게 잠재우고자 구구절절(句句節節)함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의 법문(法門)이다. 연기법(緣起法)에서 시작된 육근(六根), 육진(六塵) 곁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法)이 잠시도 떠나지 않고 동반(同伴)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틀을 벗어날 수 없으니 환자들의 병원, 중병환자들이 들끓는 병원이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병원이 계속 줄줄 이어진다. 십년 이십년 중병환자 병원은 사람 사는 세상에 걱정 중의 걱정이고 공포(恐怖)이다.
연기법(緣起法), 인연법(因緣法)으로 구성된 우리들의 육신(肉身), 육근(六根), 육진(六塵)은 우리들을 괴롭히는 고액(苦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계속 이어지게 한다. 눈은 눈대로 때가 되면 눈병이 나서 병원에 가게하고 귀는 귀대로 병이 나서 병원에 가게 하는 고액(苦厄)이고 치아는 치과에 가게 하는 큰 사건을 늘 발생시키는 등 육신(肉身) 전체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병고(病苦)가 고통, 고통으로 고통의 세월이 이어지고 이어지니 인간계(人間界) 짙은 먹구름이 항상 거두어지지 않고 있음이니…… 연기법(緣起法) 이전 본래지(本來知), ◯心(영심) 위신력(威神力) 세계에는 호리(毫釐) 티끌 같은 작은 병고(病苦)도 본래 태초부터 없으며 미래제(未來際)에까지도 아무 고(苦)와 피곤이 없다는 법문이 반야심경의 법문이다. 반야심경공덕(般若心經功德)을 항상 고맙게 독송해야 한다.
연기법(緣起法)으로 형성된 우리들 육신은 새벽이슬 같고 강(江)위의 거품과 같고 허공에 잠시 뜬 뜬구름과 같고 밤사이에 지나가는 꿈과 같고 동굴 속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고 돌과 돌이 마주치는 석화(石火)와 같다는 부처님의 제행무상(諸行無常) 법문 속에, 법문 곁에 항상 함께함이 지혜로운 삶이다.
중생계(衆生界) 육근(六根), 육진(六塵)들이 아무 생각 없는 잘못으로 강에는 강대로 쓰레기 악취가 산더미같이 쌓여있고 청정(淸淨)해야 할 바다는 청정바다가 아니라 쓰레기 바다가 되어 있고 청정산은 산대로 오염된 쓰레기구렁이 되어있으니 인간계 육근(六根), 육진(六塵)의 무질서(無秩序)를 사람들 각자 자기제도(自己濟度)로써 조심해야 할 때가, 현재가 아닌가 생각이 깊어진다. 천수경(千手經) 법문,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 중생계에 간곡하게 일러주신 법문이다. 전 국토가 맑고 깨끗함으로써 나라에 재앙이 없고 법계에 선신(善神)이 옹호해주신다 했다.
방방곡곡(坊坊曲曲) 어디를 가더라도 바다, 강, 산,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깨끗하고 청정(淸淨)하면 자라나는 2세, 청소년들에게도 크고 깊은 교육이 스스로 되리라 여겨진다. 나라사랑, 국토사랑, 자연사랑 친환경(親環境) 교육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금강경(金剛經) 법문, 약난생(若卵生), 약태생(若胎生), 약습생(若濕生), 약화생(若化生) 부처님 간곡하신 법문. 알로 태어난 중생, 태로 태어난 중생, 습기로 태어난 중생, 화로 태어난 중생, 일체중생 모두 다 빠짐없이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들이 성불하는 그날까지 발원하고 발원하신다는 친환경 자연사랑 미물곤충까지도 다 사랑하시는 대자비(大慈悲)의 법문, 말씀이다. 우리 모두 모두가 육근(六根), 육진(六塵)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자제(自制)해야 한다는 것이 심경(心經)의 뜻이다. 육근(六根), 육진(六塵)을 통해서 본래지(本來知)의 ◯心界(영심계)를 공부하고 발심(發心)하고 증득(證得)하고 달관(達觀)함으로써 꼭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당부함이 심경(心經)의 법문이다.
자기제도(自己濟度)에 대한 절박감(切迫感), 자기제도에 대한 분발심(奮發心), 대발심(大發心)의 시동(始動)이 자기 내면세계(內面世界)에 항상 계속 차(車)에 시동이 걸려있듯이 자기 마음세계에도 걸려있어야 한다. 자기내면 세계에 대발심(大發心)의 시동(始動)이 꺼지지 않고 항상 걸려있어야 만이 자기 건강의 맥박(脈搏)이 힘차게 뛰게 된다.
맥박(脈搏)이 항상 펄펄함이 된다. 맥박(脈搏)이 늘 살아있음이 된다. 항상 건강한 맥박(脈搏)이 된다. 활활발발지(活活潑潑地)의 맥박(脈搏)이 된다. 힘차고 힘찬 맥박(脈搏)이 된다. 사람은 맥박이 뛰고 뛰어야 한다. 힘차고 힘차야 한다. 맥박이 힘차고 힘차면 세상에 겁날 것이 없을 것이다.
지극(至極)한 신심(信心)의 시동(始動) 간절한 신심(信心)의 시동(始動)이 걸려있지 않고 서늘하게 꺼져 있다면 힘찬 맥박이 없을 것이다. 건강한 맥박이 흐르지 않을 것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 법문 내용에는 중생, 중생, 일체중생 모두가 세세생생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맥박자(脈搏者)가 되기를 발원(發願)하고 발원하고 있다.
4.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의 뜻
청정자성(淸淨自性) 본분(本分)에는 태초부터 안계(眼界) 내지 의식계(意識界)가 없다. 안계(眼界) 내지 의식계(意識界)가 없으니 억겁이 지나간다 해도 따뜻하고 따뜻한 평화의 세계가 지속된다.
5. 무무명 역무무명진(無無明 亦無無明盡)의 뜻
밝고 밝음이 없음도 아니다. 항상 밝고 밝음이다.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 또한 밝음이 다해 없어짐도 아니다. 연기법(緣起法) 이전 자성불(自性佛) 본분(本分)에는 있다 없다는 상대분별(相對分別)이 태초부터 없음이니…… 자성불(自性佛) 본분(本分)은 억겁의 세월이 지나간다 해도 우리들의 자성(自性)은 영원히 영원히 허공처럼 텅텅 비어서 평화롭고 평화롭다.
6. 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의 뜻
◯心(영심), 신령스러운 위신력(威神力) 본분(本分)에는 연기법(緣起法) 이전이기 때문에 늙는다, 죽는다는 인연법(因緣法)이 본래부터 없다. 단, 연기법(緣起法)으로만 노사(老死)일뿐.
7.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의 뜻
◯心(영심), 청정자성법(淸淨自性法)에는 또한 거듭 노사(老死)가 끊어져 없다. 노사(老死)가 끊어져 없다 해도 인연관계가 서로 만나면 노사(老死)가 또 생기니…….
노사(老死) 관계는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으니 묘(妙)하고 묘한 법이다.
우리들 자성불(自性佛) 참구(參究) 정진은 억겁토록 참구하고 참구할 낙원(樂園) 중의 낙원(樂園)이다.
사람들에게 아무 일이 없으면 고독(孤獨)하지만 자성불(自性佛)을 참구하는 일이 있으면 곧 천상락(天上樂)이다.
8.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의 뜻
윤회(輪回)의 고(苦), 업력(業力)의 고(苦)가 여러 겁(劫)으로 쌓이고 쌓여서 누적되고 누적(累積)되었다 하더라도 대분발심(大奮發心)의 화력(火力), 열기(熱氣)의 불이 붙어서 끝끝내 꺼지지만 않으면 그동안 누적된 업력(業力)은 햇빛에 눈 녹듯 녹아져 없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아무리 짙고 짙게 염색(染色)되었다 해도 태양 빛 앞에는 탈색(脫色)이 되고 퇴색(退色)이 되어 결국에는 짙은 색감이 없어지듯이 이어서 한 번 더 예를 든다면, 아무리 크고 큰 쇳덩어리라 해도 용광로(鎔鑛爐) 속에 들어만 가면 녹듯이 모든 쇠뭉치가 다 용광로 속에서는 녹아지지 녹지 않을 수 없다. 연기법(緣起法) 이전에는 아무 형체(形體)와 색깔, 모양이 없었으니 처음부터 녹아질 것도 없고, 녹일 것도 없다. 아무 성분(性分)이 없었으니.
연기법(緣起法) 이후에는 발생된 업력(業力)의 성분(性分)이 있었으니 대발심(大發心) 용광로 속에서는 녹지 않을 수 없고, 녹이지 못할 것이 없다. 대발심(大發心)은 어떤 업력(業力)이든 다 녹일 수 있는 용광로이다. 발심(發心)은 업력(業力)을 녹여 없애는 용광로이다. 누적되고 누적된 업력이 녹아 없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도(道)이다.
두터운 업력의 근본(根本)이 ‘본래(本來)부터’인 것 같으면 대발심(大發心)으로도 녹여낼 수 없지만 ‘태초(太初)부터’가 아니고 어느 때부터 발생하여 쌓이고 쌓인 업력(業力)이기에 수행정진으로써 업(業)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는 노력이 절대로 헛되지 않는다. 업력의 장애만 없으면 도(道)로 가는 넓고 넓은 길이다. 일체중생 모두가 도(道)로 가게 함이 심경(心經)의 원력(願力)이다. 대신통(大神通) 자재(自在)함만이 도(道)가 아니다.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곧 도(道)이다. 오탁악세(五濁惡世)를 피하는 것 아니고 오탁악세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상처 없이 헛된 생각 없이, 잘못된 생각 없이 수행으로만, 수행으로만 가는 것이 곧 도(道)이다. 자기제도(自己濟度)에 항상 절박감(切迫感)이 떠나지 않음이 도(道)이다. 자기제도(自己濟度)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날그날 간절한 신심(信心)으로 진실하게 사는 것이 도(道)이다. 자기제도에 대한 분발심(奮發心)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이 도(道)이다.
도(道)로 가는 길은 항상 밝고 건강하다. 어둡고 굳은 표정이 없다. 도(道)로 가는 길 이상 더 좋은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마음 자기가 알뜰하게 섬기는 것이 도(道)이다. 자기마음 자기가 사랑하고 사랑함이 도(道)이다. 자기마음 사랑 이상 더 좋은 사랑은 없다. 자기마음 자기사랑이 가장 완벽(完璧)한 사랑이다. 자기마음 자기사랑이 가장 지혜로운 사랑이다. 자기마음 자기사랑이 가장 따뜻하고 가장 포근한 사랑이다. 자기마음 자기사랑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랑이다. 자기마음 자기사랑은 넓고 넓은 사랑이다.
도(道)의 위신력(威神力)안에는 가지가지 많은 사랑이 숨어 있다. 도(道) 이상 더 폭넓은 사랑은 없다.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일체중생(一切衆生) 모두를 넓고 넓은 도(道)로 가게 하는 안내(案內)이고 대자비(大慈悲)이다. 심경(心經)의 간절한 원력(願力)이다.
제4차 반야심경(般若心經) 법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