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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 제1강-티베트 불교 문화와 역사
*공부하기에 앞서 사유해야 할 것
1. 씨앗의 힘을 자각하라
마음은 가능성의 거대한 대륙이면서 바다이다. 그래서 心海 심해, 마음의 바다, 功德海 공덕해, 공덕의 바다라고 한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이란 삶의 현장, 삶의 시공간을 통칭하여 記標기표로 ‘마음’이라고 할 뿐이다. 삶의 전체, 세상 전체, 삼라만상이 마음이다. 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듯 인간은 마음을 떠나지 못한다. 우리가 일상에 쓰는 마음은 바다에 일어난 파도이다. 우리는 마음을 폈다가 거둬들이기도 하고, 거둬들였다가 펴기도 하면서 적재적소에 적절한 정도로 적절하게 마음을 사용한다. 사실 산다는 게 바로 마음을 쓴다는 것에 불과하다. 마음 씀, 用心용심이 중요하다. 그런데 용심에는 선 용심과 불선 용심이 있다. 善用心선용심은 선하게 마음을 쓰는 것이고, 不善用心은 선하지 않은 마음을 쓰는 것이다. 불선용심은 말하자면 惡用心악용심인데, 이는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불선용심이 습관이 된 것이다.
용심은 씨앗 뿌리기이다. 마음이란 밭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마음은 원재료, 근본토양과 같아서 거기에 무엇이든 뿌리고, 심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온다. 선의 씨앗을 뿌려라. 이미 뿌린 불선의 씨앗에는 더 이상 물을 주지 말고 말라 죽게 하라. 불선의 씨앗, 악의 씨앗이 완전히 소멸하면 열반이다. 그것은 청정한 안락, 샨티수카 santisukha이다. 선의 씨앗을 뿌려라. 씨앗이 싹을 틔워 올릴 때까지 물을 주고 가꿔야 한다. 경작한다는 말은 cultivate컬티베이트이다, 빨리어로 bhavana바와나라고 한다. 기르고 가꾼다는 의미이다. 이런 뜻에서 心田耕作심전경작, 마음 밭을 일군다는 말은 마음 쓰기, 마음 수행에 딱 맞는 은유이다.
마음 밭에 선의 씨앗을 뿌려 다양하고 무한한 공덕의 꽃을 피워라. 그것이 장엄불국토이다. 다 함께 화엄세계를 만들자. 장엄한 불국토 연화장세계는 오늘 내가 뿌리는 씨앗 한 알에서 시작된다.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이 생각난다. 우리가 우주의 씨알이다. 말법시대의 희망이 되는 씨알이 되자. 깨어난 시민은 민주사회의 씨앗이고, 깨어난 불자는 정토의 씨앗이다.
700년 된 연꽃 씨앗
아라홍련은 함안 성산산성에 발굴된 고려 연꽃 씨앗에서 피어난다. 무려 700년 된 종자가 발아하여 연꽃을 피운 것이다. 놀라운 씨앗의 힘이요, 씨앗이 일으킨 기적이다. 한 알의 씨앗을 마음에 뿌리면 죽지 않고 영원하다. 우리가 뿌리는 씨앗은 보리심이다. 깨달음의 씨앗이다. 일체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건지겠다는 숭고한 의지의 씨앗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모순을 내가 짐 진다는 자세이며, 보편적 책임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에 걸쳐 생멸하는 중생을 안아주는 부처가 될 수밖에 없다.
고호의 씨 뿌리는 농부 그림이 있다. 황금빛 태양이 해바라기처럼 비치는 하늘을 배경으로 땅 위에 묵묵히 씨앗을 뿌리는 농부를 보라! 보리심을 발한 우리도 그와 같지 않은가! 세세생생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과 번뇌가 다하도록 씨앗을 뿌려 선근을 심고 8정도와 6바라밀의 공덕으로 중생을 시봉하고 세계를 장엄하는 일이 행보리심의 길, 보현행원의 길이 아닌가?
2. 한 번 맺은 법-인연을 소중히 간직하라.
법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연을 도반이나 법우, Dharma friend라 한다. 이는 마음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마음으로 맺어진 mind-bound 관계를 Samaya사마야 戒계라고 한다. 법-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끊을 수 없고, 끊어지지도 않는다. 더구나 보리심의 길을 가는 도반은 금강 불성으로 맺어진 인연이니 소중히 해야 한다. 도반들은 서로를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사람을 믿는다는 건 더 어렵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은 자기중심적이어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알기는 힘들다.
여기에 공자의 예화가 있다. <여씨춘추 권17 안회습진顏回拾塵, 안회가 먼지 묻은 밥을 집어 먹다>의 고사이다. 공자 일행이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일주일째 끼니를 잇지 못하는 와중에 수완 좋은 제자 자공이 어렵게 쌀을 구해왔다. 안회가 밥을 짓는데, 자공이 우연히 부엌을 들여다보니 안회가 솥에서 밥을 집어 먹고 있었다. 자공은 모범을 보여야 할 수제자인 안회가 몰래 먼저 입맛을 다시다니 禮예를 벗어난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냐면서 스승에게 따지듯 불평했다. 안회를 믿었던 마음에 섭섭함을 느낀 공자도 적잖게 실망했으나 바로 따져 묻질 않고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며칠 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밥에 뜸이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솥뚜껑을 여는 찰나 천정에서 먼지가 떨어졌는데 안회가 먼지가 떨어진 부분을 손으로 집어내어 던지려다가 밥알이 붙은 것을 버리기가 아까워 먼지 묻은 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안회의 진심을 알게 된 공자는 제자들에게 교훈을 알려준다.
“기록해두어라. 믿을 것은 자기 눈으로 본 것이지만 눈으로 본 것도 믿을 수 없을 때가 있구나. 믿고 의지할 것은 마음뿐이지만, 마음도 믿고 의지할 수 없을 때가 있구나. 명심하여라. 사람을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孔子歎曰, 所信者目也, 而目不可信. 所恃者心也, 而心猶不足恃.
우리가 상대를 안다고 단정하여 판단하기보다는 ‘나는 그 사람의 한 부분만 알 뿐, 그밖에는 알지 못한다’며 자기의 무지를 받아드린다면 오래된 인연도 항상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의 무지란 무분별의 여유와 관용이어서 자애와 연민이 흘러나올 수 있다. 사람은 한번 알았다 해서 늘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나날이 변하여 새로워지는 신비한 존재이다. 우리의 눈이 과거에 묶여 있기에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을 보지 못할 뿐이다. 모든 인연은 한 곳에서 만났다가 여러 곳으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연이란 어떤 식으로든 불가사의하게 연결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기보다는 포용하고, 다시 만날 것을 잊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진주선원에서 법 인연을 맺는 도반들은 개인 사정으로 강의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이미 발원한 보리심의 서원에서 물러나지 말고 계속 정진하기를 기원합니다.
1. 티베트불교 문화와 역사 <티베트불교의 어제와 오늘>
☸생활 속의 티베트 불교문화
*‘라마(Lama)’는 티베트어로는 ‘최상의’라는 뜻이며, 산스크리트의 ‘구루(guru)’를 뜻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티베트인들은 불교에 대한 깊은 지식과 수행을 갖추고, 제자들에게 수행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라마’라는 명칭을 붙여준다. 티베트인들은 사귀의四歸依를 한다. 라마의 말씀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고, 라마의 생각은 부처님의 마음을 표현하며, 라마의 행동은 승가가 행해야 할 행동을 대표한다. 따라서 라마에게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과 행동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우리 눈앞에서 볼 수 없기때문에, 우리 눈앞에서 육체를 가지고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과 마음을 전해주는 스승인 라마를 통해서 부처님을 보며, 중생들 속에 잠재된 불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타르쵸Tarcho:뵌교에서 숭배하던 다양한 자연신들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뵌교 의식에서 쓰던 도구들도 불교 의식으로 편입되어 악귀를 쫓는 데 사용됐다. 티베트인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서 높은 곳(산 정상, 돌무더기, 나무 등 성지)에 길게 매다는 타르초는 뵌교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룽타Lungta: 달리는 말의 모습과 기도문을 써넣은 오색의 깃발을 긴 끈에 이어 달아서 바람이 잘 통하는 높은 산 위에 매달고 행운을 비는 것은 티베트 사회에선 흔한 광경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행운의 말(룽타風馬)이 달려가서 세상에 수명장수와 부귀와 건강을 가져오기를 기원한다.
*토르마Torma: 뵌교에서 산 짐승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양을 올리던 의례를 변화시켜, 보릿가루와 버터로 반죽을 빚어 만든 형상으로 공양물을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 관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거울이나 염주나 주사위를 사용해서 미래를 점치는 관습도 불교문화 속에 흡수되었다.
☸티베트의 10대 불가사의 현상
⓵불가사의한 붉은 눈(紅雪, Red Snow)
히말라야 5,000m 이상 되는 산에 덮인 눈은 항상 짙붉은 반점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붉은 반점은 血紅素혈홍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조류藻類에 의해 변색 된 것이라 한다.
⓶눈사람(雪人,Yeti, 예띠)
설인, 즉 눈사람의 전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또 히말라야에서 설인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세계 4대 불가사의로 된 ‘설인’, 과연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 아직 우리들이 모르는 ‘형제’들이 있을까?
⓷무사(巫師,꾸뗀Kuten)
티베트인들은 무당이 하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신’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은 길흉화복과 과거와 미래를 안다고 한다. 이들은 티베트인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달라이라마에게 네쭝(Netsung)이라는 국가 중대사를 자문하는 신탁이 있다.
⓸무지개로 화하는 고승(化虹, 칠채화신, 七彩化身, Rainbow Body)
족첸을 성취한 고승이 입적할 때 무지개 빛으로 화하여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들은 경전에서 말하는 다키니정토(空行淨土, Dakini 정토)의 무량궁(無量宮)에 들어간다고 한다.
⓹초모랑마 봉의 깃발구름(旗雲)
에베레스트 봉우리를 티베트 사람들은 ‘초모랑마’라 한다. 맑은 날 초모랑 봉우리에는 깃발 같은 구름이 뜨는데 이를 깃발구름(旗雲)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구름의 높이와 크기에 따라 바람의 크기를 판단하는데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한다.
⓺상슝(象雄, Zangzhung)의 수수께끼
상슝은 ‘가루다의 땅’이라는 뜻인데, 고대로부터 티베트 카일라스 지역에 융성했던 나라로, 서기 645년 송첸감포 왕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러나 왜 상슝의 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는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⓻노래하는 예인(藝人)들
서사시 ‘게사르Gesar영웅전’은 장족의 장편 영웅서사시이다.
100여 부에 달하는 서사시는 문자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니라 노래로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게사르’ 전도 그렇지만 이 서사시를 전해온 예인들의 전기 역시 불후의 명작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판소리와 비슷하다.
⓼구게왕국(古格, Guge)의 수수께끼
서기 9세기에 건립된 티베트 서쪽 끝 아리Ngari지방에 있었던 불교왕국, 1635년 라다크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구게왕국의 문화는 마야 문명처럼 홀연히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라다크는 구게왕국을 전멸시킬 무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면 구게왕국의 10만여 인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⓽복장(伏藏,Terma, 테르마)의 수수께끼
복장이란 Bȫn뵌교와 티베트불교가 탄압이나 환란을 당할 때 숨겨두었던 성물을 다시 찾아낸 것을 말한다. 복장은 서장(書藏), 성물장(聖物藏)과 식장(識藏)으로 나눈다.
서장은 경서를, 성물장은 대덕, 고승의 법구나 유물을 말하는데 가장 신비로운 것은 식장이다. 식장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장을 말한다. 경전이나 주문이 재난으로 전수될 수 없을 때, 다키니가 특정한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둔다고 한다. 그랬다가 다시 전수할 여건이 되면, 그 사람은 다키니의 계시로 마음에 숨겨진 식장, 즉 경전이나 주문을 읊거나 써낸다. 티베트의 <사자의 서>도 이렇게 해서 발견되었다.
⓾샴발라(香巴拉, Shambala)의 신비
샴발라는 샹그릴라(Shangrila, 香格里拉)라고도 하는데, 티베트 민족의 신화이며, 시륜승(Kalachakra, 칼라차크라)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신화에 의하면 샴발라는 마이트레야(미륵)이 통치하며 25대 칼키 왕 마이트레야가 오탁악세를 정법 군대로 정복하여 황금시대를 열 것이라 한다. 혹자는 그때가 2424년, 2425년이라 한다. 티베트 밀교 경전에서 샴발라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그 존재는 티베트 민족의 신화일 뿐, 진짜로 존재하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샴발라 왕국을 찾아 헤맸다.
*러시아 태생의 블라바츠키(Blavatsky,1831~1891)여사는 최고의 신비 사상가라고 일컬어졌는데 미국에서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 Theosophy)’를 설립하여 동서양의 신비주의를 결합하는 ‘신사상(新思想)’을 제창했다. 그녀의 능력은 샴발라의 현자인 마하트마Mahatma에게서 온 것이며 그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신지학 운동(Theosophy)’을 실천한다고 했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1868~1969):프랑스 여자로서 최초로 티베트를 여행한 여인. 1924년 서양인으로서 최초로 라싸에 발을 디뎠다. 저서 <티베트. 그 신비와 마술>.
*니콜라스 로에리치(Nicholas Roerich, 러시아의 화가,사상가,1874~1947)는 아들과 함께 1924~28년 사이 샴발라를 찾아서 중앙아시아를 헤맸다.
*나치 독일의 히믈러와 헤스는 아리얀 족의 기원과 세계를 통치할 힘의 근원을 찾아서 세 차례 원정대를 보냈다. 1930년, 1934~35년, 1938~39년. <티베트에서의 7년>에 나오는 독일군 장교들은 나치원정대의 일원이었다.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이 1933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샹그릴라는 서양인의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스벤헤딘(Sven Hedin, 스웨덴 지리학자,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탐사), 스타인(Stein, 영), 펠리오(불), 구르제프(Gurdjieff) 등등이 영감을 받아 뒤따랐다.
*샹그릴라는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베율(Beyul)’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베율은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인 파드마삼바바(蓮華生上師, Padmasambhava)에 의해 예언된 전설의 비경이다. 8세기에 파드마삼바바가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티베트고원을 둘러보다 발견했다고 하며, 히말라야 곳곳에 여러 곳의 베율이 숨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히말라야 안의 몇몇 지역들이 실제로 베율이라 불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수행자들의 수행지였던 ‘얄룽짱뽀(Yarlung Tsangpo)강’이나 설인(雪人) 예티(Yeti)가 산다고 전해지는 티베트 쿰부 지역의 ‘랑탕(Lang Tang)계곡’ 등이 베율이라 불리고 있으며, 이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이 베율이라고 믿기도 한다. 1998년 미국의 탐험가 이안 베이커(Ian Baker)가 티베트 짱뽀 강 상류 부근에서 베율의 입구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