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 잎이 점점 짙어 가는 이맘때 쯤
난 가끔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찾곤 했었다.
몇 년 동안 무엇에 쫓기고 살아 왔는지
어둡고 깜깜했던 긴 억눌림에서 벗어나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밝은 사회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다 우리를 대신해 처절하게 죽어간 영령들!
그들을 만나지 못한 맘 한 구석에 항상 송구한 마음 지니고 있던 차에
전주시 산악연맹 임원 참배단의 일원으로 '망월동' 그 곳을 다녀왔다.
무겁게 지고 다니던 짐 하나 벗어 놓은 홀가분함도 있었지만
소리 내지 못하고 통곡하는 어느 여인의 함께 나눌 수 없는 슬픈 사연 접하고
내 마음 이토록 찢어지도록 아파 오는 건 아마도 우유부단하게 살아 온 나의 젊은 과거사 때문이리라.
오천년 우리 한 민족 역사를 샅샅이 따져 이 시대를 함께 살아 온 우리 세대만큼 질곡의 세월을 살아 온 세대가 얼마나 있을까?
광복이라 이름 붙여진 해방을 맞으며 이 땅에 태어난 우리를 축복받은 탄생이라 해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축복의 건너에는 저주라는 악마도 공존하는 것일까?
유년 시절,
6.25라는 어마 어마한 재앙을 겪으면서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재앙으로 떠나보낸 부모, 형제, 자매를 그릴 틈도 없이 우린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던 기억을 어찌 차마 잊을 수 있으랴.
종신 권력을 잡으려던 정권에 맞서 항거했던 4.19 혁명!
그 땐 티 없이 밝아야 할 중학생 시절이었으니 그런 사회 환경 속에서 아름다운 꿈 언감생심 꿀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푸른 꿈 펼칠 엄두도 낼 수 없었지.
그 때부터 이 땅에는 혼란(混亂)과 혼돈(混沌)이 혼재(混在)해 있었지만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었지.
5.16 군사혁명!
정권의 정당성이나 이 시대에 논쟁이 되고 있는 화두들에 대해선 내 짧은 식견으로 왈가왈부해서 될 일도 아니니 훗날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 두기로 하자.
우린 배고픔을 이겨 내고자 정말 3천만 국민(그 땐 3천만 국민이라 불렀음) 한데 뭉쳐 온 힘을 쏟지 않았던가.
이 나라가 이 만큼 발전하는 데 우리 세대의 힘이 초석(礎石)이 되었다고 자부해도 부정하는 이 없으리라.
언제 어디서나 선(善)의 꽁무니를 따라 잡고 쫓아오는 악(惡)이란 놈이 있는가 보다.
12.12 군부 구테타가 있었고,
그 때부터 철권통지가 시작되었으니
그 때부터 망월동에서 만난 그 여인의 ‘숨어 우는 통곡 소리’도 잉태되어 자라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녀의 아들,고(故) 김경철씨는 지금부터 꼭 30년 전 스물 아홉 살의 신혼살림을 차린 모범적인 가장이었단다.
그에게는 사랑스런 아내가 있었고 그 예쁜 아내는 10개월 된 딸 아이를 기르는 세상에서 누구 못지않은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니 날이면 날마다 고(故) 김씨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을까?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예쁜 아내, 사랑스런 딸 아이 책임져야 할 일터에서도 절로 힘이 솟았을 테니 아무리 힘들어도 흥얼흥얼 콧노래 나왔을 건 뻔하지 않은가?
청천벽력처럼 광주에는 총칼 든 군화가 짓밟고 자기 또래 나이의 젊은이들이 폭도로 몰려 수없이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독재 가 무엇이고 민주화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고(故) 김씨도 맨 주먹으로 거리도 뛰쳐나가지 않을 수 없었단다.
많은 생명의 주검 앞에선 사랑도 행복도 뒷전이었는가 보다.
나와 같이 한 세대를 함께 살았으며 함께 숨 쉬며 일했던 그 시대,
고(故) 김씨가 죽음 앞으로 내 몰릴 때 난 무슨 생각을 했으며 무슨 행동을 했을까?
총칼 앞에 한 번이라도 저항을 해 보았던가?
아니면
그 주검에 하얗고 하얀 색 낼 수 없어 애련하기만 했던
망월동 오는 길목의 이팦 꽃처럼 하얀 색 국화 한 송이라도 바쳤던가?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워 그 영령들 앞에 서기 조차 힘들었던 세월,
이제 30년이 흘렀으니 잊을 만하다 해서 그 곳을 찾았는데 숨어 통곡하는 그 녀를 만나 이렇게 가슴 미어지다니 우유부단하고 못난 내 과거를 어디에 핑계 댈 수 있을꼬?
30년 전 모질게 자식을 보낸 여인이여!
이제라도 당신의 눈물 거두소서....
모두를 용서 하소서.........
내 할 일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무능한 이 사람
당신의 ‘숨어 우는 통곡 소리’에 가슴 미어집니다.
이젠 당신도 팔 십의 중반을 훌쩍 넘어 아흔 바라보는 백수 노인이라니 다 잊으시고 당신이 가야 할 편한 길 찾으시길 빌고 또 비옵니다.
당신이 내게 소리 없이 흘려주신 그 눈물!
마르지 않도록 고히 간직하여
후대라도
나 같은
무능한 사람 있지 않도록 세상에 널리 알리겠나이다.
고(故) 김경철님!
영면(永眠) 하소서!
명복(冥福)을 비옵니다.
<2010.5.16. 망월동에 다녀와서>
(전주시 산악연맹 고문)
첫댓글 감사합니다.가슴깊이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날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오늘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독재편에 지금 마음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모두 생각합시다 어느당 누구에게 투표 할 것인가 ? 역사에 망월동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