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修學)이라고 하는 것은 뭐 공부하는 삶이다. 계(戒)를 가지고, 윤리와 도덕과 질서와 진실 그것을 지키면서 공부하는 삶이다. 수행하는 삶이다. 그런 뜻이에요. 수학처(修學處)다. 아 처라고 하는 뜻이 사는 일, 삶 뭐 우리는 참 그런 입장에서 보면은 수학처라고 하는 것을 『화엄경』공부로 해석하면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내용입니다.
若常持戒修學處면 則能具足諸功德이니라
만약 항상 계(戒)를 가지고 수학(修學)하는 삶이라면은 거기에 모든 공덕(功德)이 구족(具足)되게 돼있어요. 뭐 어디 따로 가서 공덕을 구족 하겠어요? 저절로 이치를 알게 되고 지혜가 밝아지고 인과에 눈을 뜨게 되고
오늘 어떤 거사님이 경주에서 오셨는데, 과자를 여러분들에게 공양올릴려고 지금 사다 놨어요. 하시는 말씀이 그래요. 아 내가 맨날 떡만 얻어먹고 가니까 영 이게 빚지는 거 같더라. 그래가지고 나중에 내가 몇 곱절로 갚을 텐데 그냥 있을 수 없어서 나중에 이자까지 갚는 거 하기 전에 미리 내가 이렇게 갚는다고 그런 말씀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 어디 누가 그거 가르쳐서 그렇게 되겠어요? 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숙이 된 거야. 저절로 성숙이 되는 거요.
가끔 저기 저 한 달에 한 번씩 인천서 오시는 거사님도 있고 한데, 오늘은 또 서울서도 오신 신도님도 있고 전국 각지에서 그렇게 이제 오는데, 내가 만약 그런 거리에 있다면은, 하기사 젊을 때는 뭐 불원천리 하고 공부하러 다니긴 했지마는, 지금도 그렇게 올 수 있을까? 참 신심이 장하시다. 참 신심이 큰 힘이 되구나 하는 그런 것을 느낍니다.
모든 공덕을 구족 하게 되는 거요. 지계수학(持戒修學)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화엄경』 공부의 삶 속에서 모든 공덕을 구족하게 된다. 인과이치 저절로 알게 되고 공덕 닦는 길을 저절로 알게 된다.
② 戒能開發菩提本이요
계(戒) 지계라고 하는 계는 질서, 윤리, 도덕, 정직 이러한 것은 능(能)히 보리(菩提)를 개발(開發)하는 근본이 되고, 깨달음을 개발하는,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그 말이여. 지혜와 자비를 개발하는 근본이 되고
學是勤修功德地니
거기다 별을 세 개를 달아놨는데, 학(學)이라고 하는 것, 계 학 지계 수학이라고 그렇게 나눠서 이야기하고 있잖습니까. 학이라고 하는 것은 근수공덕지(勤修功德地)다. 공덕의 땅을 부지런히 닦는, 갈고닦는 것이다.
아 공덕의 땅을. 공덕의 땅을 요즘 뭐 도시 사람들 땅을 갈을라고 싶어도 밭 한때기가 있습니까? 아파트에 사니까 흙 한 줌 만질 기회가 있습니까? 없잖아요. 바로 우리 공부하는 이 일이 학시근수공덕지(學是勤修功德地) 하 기가 막히잖아요. 학시근수공덕지.
학이라고 하는 거, 공부하는 일 특히 그 가운데서도요 공부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뭐 사회도 유치원생으로서도 공부가 있고 대학도 공부가 있고 뭐 석사, 박사도 다 공부가 있고 또 그 외 공부가 또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지마는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도 공부의 차원이 많아요. 정말이지 차원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참 내가 아는 바로는, 내가 아는 바로는 평생 저도 공부하는 사람이지마는, 내가 아는 바로는 공부 중에 제일가는 공부는 뭐다? 『화엄경』 공부다. 아 저는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스님은 다른 거 가르칠 때는 그게 제일이라더니, 『화엄경』 가르치니까 『화엄경』이 또 제일이다라고 한다고.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화엄경』이 제일.
학시근수공덕지(學是勤修功德地)다 했잖아요. 『화엄경』안에서 공부라고 하는 거 뭐 딴 데서 다른 거 찾아서 이야기하겠어요? 공덕을 닦는 땅이다 말이여. 공덕을, 그것도 부지런히 닦는, 수학하는 땅이다. 참 이 『화엄경』아니면 어디서 이런 말씀을 듣겠습니까? 거기에서 우리의 삶의 모든 공덕이 저절로 자라납니다.
이 봄이 이제 왔는데, 봄에는 그렇지 않습니까. 온갖 새싹들이 파릇파릇 솟습니다. 딱딱한 그 나뭇가지에서 그 연약하고 부드러운 새순이 돋아납니다. 그 무슨 이유로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참 그 내가 유유생일색(唯有生一色)이면 팔면기청풍(八面起淸風)이란 말을 내가 그전부터 좋아했는데, 유유생일색 오직 생기, 삶, 생기의 한 가지 그 색이면 팔면기청풍이라. 팔면에서 사방팔방에서 청풍(淸風) 맑은 바람이 분다. 맑은 바람이 회오리친다 말이여.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그 어떤 희망과 꿈을 가지고 생기에 넘치는 삶을 살면은 옆에 사람도, 같은 식구도 덩달아서 신이 나요. ‘아 저 사람이 어디 가서 무슨 약을 먹고 왔는가 어떻게 저렇게 생기발랄한가? 저 어떻게 활기가 저렇게 넘치고 콧노래가 절로 나고 희망에 들떠있는가?’
바로 그거예요. 사람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생기 넘치게 이렇게 열심히 수학하는 것, 공부하는 것 그겁니다.
학시근수공덕지(學是勤修功德地) 학(學)이라고 하는 거, 공부라고 하는 것은 공덕을 부지런히 닦는 땅이 된다.
於戒及學常順行이면
지계(持戒)와 수학(修學)하는 것을 항상 따라서 행(行)할 것 같으면은, 순행(順行)할 것 같으면은
一切如來所稱美니라
일체여래(一切如來)가, 모든 부처님이 뭐 중생까지도 이웃집에서도,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집에서도 친구들도 전부 칭미(稱美) 아주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바다. 그렇습니다. 소칭미(所稱美)라.
모든 부처님, 모든 사람들이 다 칭찬하는 바여. 아주 열심히 공부해 봐요. 뭐 손자들에게 따로 공부하라고 할 필요 없이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보이는 거. 뭐 보일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정말 진실하게 성실하게 공부하고 있으면 저절로 본받게 되고 분위기가 그런 방향으로 돌아가지요.
일체여래소칭미(一切如來所稱美)니라
③ 若常信奉於諸佛이면
저 위에 첫 줄에 있었던, 만약 항상 모든 부처님을 믿고 받들 것 같으면
則能興集大供養이니
곧 능(能)히 큰 공양(供養)을 일으켜 모은다. 그랬어요. 대공양(大供養)
우리 공양 많이 들어오죠? 첫째 법공양이 많이 들어오고, 먹을 것도 많이 들어오고 공양이 몇 달까지 밀려 있어요. 떡공양이. 뭐 한 작은 예로써, 일례(一例)로써, 그 법공양실에는 항상 공양거리가 넘치고 그렇습니다.
대공양이 항상 일어나서 모이게 된다.
若能興集大供養이면
만약 능(能)히 대공양(大供養) 큰 공양을 흥집(興集) 일으켜 모으게 되면은
彼人信佛不思議니라
저 사람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불법의 불가사의한 것을 믿게 된다.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제일 이잖아요. 우리는 법공양, 법공양, 법공양을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공양을 통해서 우리들에게는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참 우리 마음도 불가사의하고, 사람이 첫째 불가사의해. 참 아무리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라.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고 상대도 마찬가지고, 그 누구도 그 누구를 제대로 알 수가 없어. 부처님도 알 수가 없어. 불가사의한 존재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이 불가사의한 존재여.
그 불가사의함을 믿게 된다.
④ 若常信奉於尊法이면
여기는 이제, 위에는 부처님에 대해서 이제 쭈욱 이야기를 했고, 그다음에는 만약 항상 존법(尊法) 높으신 법, 불법이죠. 불법을 신봉(信奉)할 것 같으면은
則聞佛法無厭足이니
곧 불법을 들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서 싫어함이 없다. 염족(厭足) 싫어할 염(厭)자, 만족할 족(足)자. 만족할 줄 몰라요.
제가 이제 화엄경강설을 쓰면서 하~ 『화엄경』이 많다고 하고 그냥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그러는데, 나는 『화엄경』이 조금 더 있었으면, 이거보다 한 10배쯤 더 있었으면, 아이 솔직하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도 『화엄경』공부 마지막장 넘길 때 아쉬워요. 틀림없이 아쉬울 것입니다. 왜 『화엄경』이 요것뿐인가?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어야 됩니다. 또.
그렇습니다. 무염족(無厭足) 싫거나 만족함이 없다.
즉문불법무염족(則聞佛法無厭足)이라. 불법을 듣는데, 우리가 신심을 내서 불법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요. 아무리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또 싫증도 없고 더 재밌고 더 신심 나고 더 환희심나고 그렇게 되는 거요. 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옛날에 교통도 어렵고 할 때, 그 당나라 때 대당서역기 그 손오공이 소설로써 이제 표현했지마는, 그 현장법사가 그 인도까지 가 가지고 부처님의 법, 법을 그 구해가지고 말에 싣고 오는 그 과정들, 그게 얼마나 법이, 법을 공부하니까 그렇게 좋은 거요. 그렇게 신심 나는 거라. 아 이것을 많이 구해와 가지고, 인도에 가서 많이 구해와서 번역을 해서 이쪽 사람들에게 많이 전해야지 하는 그런 원력으로써 그런 일이 행해지고 우리 손에까지 이렇게 온 거요. 그게 전부
이런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그때 그 어려웠던 그런 그 구법여행이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죠.
若聞佛法無厭足이면
만약에 불법(佛法)을 들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서 염족(厭足)함이, 싫어함이 없을 것 같으면
彼人信法不思議니라
또 법(法)이 불가사의하다고 하는 것을 믿게 된다. 그 사람을, 아 부처님도 불가사의하지마는, 저 앞에는 신불부사의(信佛不思議) 그랬죠. 여기는 피인신법부사의(彼人信法不思議)라. 법이 부사의하다고 하는 것을 믿게 된다.
아~ 법도 참 끝도 없고 불가사의하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이여. 믿게 됨이니라.
⑤ 若常信奉淸淨僧이면
여기는 이제 청정승(淸淨僧)했어요. 훌륭한 스님들을 믿는다. 승가라고, 승자는 승가라고 했으니까 출가한 사람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대승불교에서 승가라고 하는 것은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까지,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까지 사부대중을 합해서 승가 불교의 단체, 불교의 대중 이렇게 표현합니다. 꼭 그렇게 아시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돼요.
이걸 또 이제 치우쳐서 해석하면 출가한 스님들만 승(僧)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건 또 아주 치우친 것입니다. 중도적이지 못해요. 그거는. 절대 그거는 편협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책임과 의무도 또 함께 가져야 되는 거죠.
則得信心不退轉이니
곧 그 사람 청정승을 믿게 되면, 자신이 청정승이다. 아주 훌륭한 승이다. 승가다라고 하는 것을 믿게 되면 신심(信心)이 불퇴전(不退轉)이다. 믿는 마음이 퇴전하지 않음을 얻게 된다.
내가 훌륭한 승가다. 그렇게 하면은 퇴전하지 않죠. 조금 그 의무를 다하고 하기는 참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마는 그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참 무서운 거요. 이름에 대한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퇴전하지 않는 그런 그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若得信心不退轉이면
만약에 믿는 마음이 퇴전(退轉)하지 아니함을 얻게 될 것 같으면
彼人信力無能動이니라
그 사람의 믿는 힘은, 신심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능(能)히 그를 움직일 수가 없다. 무능동(無能動)이다. 아주 신심이 견고해가지고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신심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근사하잖아요. 이 참 믿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이와 같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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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能開發菩提本이요 學是勤修功德地니...
戒와 學은 자신에 대한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를 높이는 길이다.
若得信心不退轉이면 彼人信力無能動이니라..
신심이 굳건한 사람은 누구도 해칠 수 없다.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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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學是勤修功德地..._()()()_
_()()()_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