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복(福)인지 올 여름 들어서는 사찰순례의 발길이 잦다.
뭐든 몰아서 하는 성격도 한 몫 할 테지만 불이 당겨진 김에 이번에는 의성 고운사이다.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달리자니 눈에 익고, 마음에 친한 경상북도 하고도 북부지방이다.
고향이 군위이다 보니 칠곡, 의성, 안동 쪽은 아무래도 말씨부터가 비슷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역시 고향과 다를 바 없다.
남안동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온 차는 고운사 안내판을 따라 야트막한 구릉지를 지나간다.
분명 첫걸음인데도 참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기시감 속에서 달리는 내내 행복했다.
이곳은 통행료가 없는 사찰이라더니 일주문 바깥 주차장까지 진입하는 동안 통제하는 사람이 없다.
한 눈에 쏙 드는 일주문이 예쁘다. 크고 웅장함 대신 작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느껴진다. 밖으로 살짝 휘어진 도량주가 예사 자태가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미를 지닌 일주문이라는 설명을 읽었는데, 단아함이 돋보이는 매혹적인 모습에 틀림이 없다.
첫 관문인 일주문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겼으니 오늘 순례길 오버하는 건 아닌지...
-고운사 일주문, 수줍은 듯 단아한 새색시의 모습이다. 일주문 사이로 사천왕문이 보인다.
-밖으로 살짝 굽어진 채 다듬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도량주.
일주문을 통과하자 고운사 연혁이 적힌 표지판이 서 있다.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고운사 연혁에서-
사천왕문을 지나자 바로 입구에 고불전이 있다. 들어가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 전각이다. 전각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아주 오래된 돌로 조성한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전각이라기보다 감실처럼 느껴지는 작고 편안한 곳,
엎드려 삼배를 하는 동안 드는 생각이 꼭 할아버지 계시는 곳을 찾아 문안인사 여쭙는 그런 기분이라 내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었다.
-요철이 특이한 모습의 자그마한 전각, 고불전과 그 내부
고불전을 지나니 작은 계곡 위에 특이한 누각 하나가 세워져있다.
고운사와 인연이 많은 신라의 최치원이 지었다는 가운루이다.
가운루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계곡 물 속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었다.
수차례 보수를 했겠지만 가운루의 앞모습은 깔끔했다.
-계곡 물속에 기둥이 세워진 가운루
전각의 배치를 따라 자연스레 들다보니 극락전이다.
현재의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는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건물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적당히 퇴색한 단청에서 오히려 장중미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내가 본 단청 중 가장 아름다웠던 전각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극락전과 종무소를 지나서야 종각이 있는 곳이다.
다른 도량과 달리 종각이 꽤나 깊숙한 곳에 있다.
그러고보니 고운사의 가람 배치는 앞뒤 산의 계곡을 따라 길게 위쪽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종각과 극락전과 종무소
아, 저곳...
산봉오리를 배경으로 고운사의 큰법당이 서 있다.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ㆍ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는 대웅보전으로 1992년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두손이 모아지는 장엄스런 대웅보전의 위용에 가슴이 다 뿌듯하다.
전각 앞면에 두 마리 커라단 용이 조각되어 있다. 참 잘 생긴 전각이라면 이해가 빠를까.
법당 안은 오후의 햇살이 깊숙히 들어 환했다.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든 빛 반, 그림자 반의 묘한 대비가 법당 안의 고요를 더욱 깊게 한다.
그 흔한 법당 보살조차 지키고 있지 않은 고요한 법당, 바닥에 이마를 대고 부처님께 인사 올린다.
고운사의 법당마다에서 느낀 똑같은 감정이 있으니 바로 부처님의 상호가 한결같이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고운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좌우 문수, 보현보살상
-3층 석탑아래로 방금 지나온 대웅보전이 보인다.
대웅보전에서 보면 좌측의 산 기슭으로 나한전과 고금당 선원이 있다.
나한전을 가느라 정갈한 돌계단을 올라가니 고운사 삼층석탑 앞이다.
모서리가 날아가고 없는 높이 3.33m의 탑이 왜 그리 예쁜지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도량 안에서도 한쪽 진 고금당 아래, 그 가운데서도 또 철책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다가감을 쉬이 허락치 않는다.
-탑 뒤로 나한전과 고금당선원
나한전은 겉모습도 아름다웠지만 내부도 그 못지 않았다.
대들보라 하는지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구불구불 살아 움직이는 듯한 천장의 저것(?)이 참 매력적이다.
오래된 건물임이 느껴지는 단청색이라니....들보의 모양과 단청색이 정말 잘 어울린다.
이곳 나한전은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있던 옛대웅전 건물이었다고 한다. 새로이 대웅보전이 지어지면서
해체해 이곳에다 그대로 전각을 세우고 이름을 나한전으로 바꾸어 전각 안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16나한을 모셨다.
이곳 부처님은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지불(紙佛)이시다.
역시나 잘 생기신 부처님!
-나한전 내부 모습,석가모니 부처님과 나한 세분이 살짝 보임
'참 좋구나!'를 연발하면서 이번에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진 약사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교구본사 답게 전각의 종류도 고루 갖춰져 있지만 그 안에 모셔진 부처님의 조성연대기를 보니 과연 천연고찰답다.
약사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고운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한다.
문화재 문헌에는 석가모니불로 알려져있지만 고운사에서는 대대로 약사여래불로 신앙해 왔다는
상호원만하신 약사여래 부처님이시다.
그리고 또 다행인 것은 고운사의 법당들은 후레쉬를 켜지 않아도 될만큼 자연광이 잘 들어와 환했다는 거다.
그래서 부처님의 상호가 더욱 원만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고운사에서 가장 오래된 약사여래부처님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고운사는 다녀왔는가"
그 고운사의 명부전을 참배하면서 새삼 놀라운 것이 지장보살님의 상호도 상호이지만 명부전 내부가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면서도 전체 분위기가 참 밝고 환했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흔히 보던 타 사찰의 명부전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모셔진 분들은 같다.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분의 대왕과 그 권속들이 조성되어 있다.
약 삼백년 전에 지어진 전각이라고 믿기 어려울만치 정갈하고 세련(?)된 명부전이다.
죽은 뒤 염라대왕이 물으면 큰소리로 답하리라.
"네, 고운사 다녀왔습니다. 명부전도 다녀왔습니다!!" ^^*
-명부전 내의 지장보살님과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
밖에서 보기에도 여염집 솟을대문처럼 보이는 이곳은 연수전이다.
대문에는 만세문이라 써져 있다. 최초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고종이 새로이 지었다고 한다.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던 장소로 우리나라 사찰안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고불전에서 연수전까지 둘러보는 동안 전각마다 마음을 뺏기는 통에 제법 시간이 흘렀나보다.
대구를 출발할 때만 해도 따가운 햇살에 두고 온 양산 걱정을 했었는데 이 곳 도량에서는 정면으로 받는 빛도 그리 뜨겁지가 않았다.
도량의 청량한 기운 탓으로 상쾌함 속에 있었다.
아직은 긴 늦여름 해가 이제 뉘엿해질 시간인가 보다.
일주문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어느새 햇살에는 황금빛이 섞여있다.
야트막한 둔덕을 따라 논밭들이 그림처럼 놓여져있다. 부드런 저녁햇살이 벼포기마다, 콩포기마다 황금빛을 덧 씌운다.
어느 책에선가 '노을은 가장 가난한 어부의 노 마저 황금빛으로 물들인다.'라더니 햇살이 참 부드러운 황금빛이다. 이보다 더 흡족할 수 있을까.
일주문을 막 벗어난 곳에 고운사의 연지가 있었다. 갈 때는 미처 보지 못한 곳이다.
수백 송이는 넘음직한 자그마한 연들이 피고지고 열매맺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연꽃 송이가 흔히 보는 수련만하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한참을 머물던 곳이다.
향하는 곳마다 부처님이 계셨고, 돌아오는 길에 연꽃 가득한 연지를 만났으니 불자로서 이보다 더 멋진 하루가 또 있을까?
초가을이면 다시 그곳을 가리라. 막연한 기시감에 홀려서가 아니라 오늘 이 좋았던 기억을 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