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포항지진으로
사상 유래 없는 수능이 연기되고
제천 대화재 참사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던
아프고도 얼룩진 마음들이 정유년의
긴터널을 지나 무술년 황금개띠라는
새로운 환승역에 도착했다
힘찬 황금개의 발걸음을 따라
눈부시게 펼쳐진 설국을 향해
천상의 풍경을 상상해보며
남도로 달려가보자
얼마전 부산에도 함박눈이 내려
좀처럼 눈구경하기 힘든
이곳 사람들에게도 깜짝 선물을 했는데
아마도 우리가 떠나는 그곳에도
많은 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행복한 상상속에 눈밭을 한참
뒹굴다 보니 벌서 완도에 도착했다
넓게 펼쳐진 푸른바다가
쪽잠에서 깨어난 우리를 반긴다
완도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곳에
긴칼을 앞세우며 늠름하게 서있는
그의 동상을 보면서
장보고 기념관으로 들어섰다
완도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해적들의 신라양민납치와
해적소탕, 동아시아 해상무역기지 청해진 설치,
장보고 선단의 문화교류 활동등을 통해
그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수있었다
넓은 해안길을 따라
청해진 유적지로 가는길은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볼에 와 닿는다
멀리 길게 놓여진
나무다리위로 청해진이 보인다
이곳은 해상왕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중국과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길목이었다고 한다
섬둘레에는 목책을 설치하여
외부 선박을 제한하고
외성, 내성을 축조하여
철저한 방어태세를 갖춘
군사요충지였다고 한다
바닥에 기단석렬을 깔고
그위에 흙시루처럼
다져놓은 판축토성으로
후박나무가 방풍림처럼
성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안추운 소한 없고
포근한 대한 없다더니
오늘은 너무 포근한 날씨 덕분에
마치 겨울속에 봄같은
완도의 넓은 바다를 보면서
그옛날 장보고가 치열하게 싸웠을
격전지를 우리는 이렇게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완도의 각종 해산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완도객사로 향했다
객사란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외국사신들의 숙소로 사용했는데
아마도 이곳은 남중국 사신들을
접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객사의 주인이 되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섬과 섬을 연결해주는 다리와
바다위에 푸른 연잎처럼 동동 떠있는
크고 작은섬들속에
소나무 위로 하얀 백로떼가
마치 흰눈이 내린것처럼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고금도 고인돌 유적지로 가는길은
작년 12월에 준공한 장보고대교 덕분에
배를 타지 않고도 쉽게 갈수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굴, 전복 양식장이 넓게 펼쳐져있고
섬이지만 농토를 중요하게 여겨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고금도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매장 유적지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고인돌로
이렇게 작은섬에도 권력을 상징할수있는
인물이 존재했다는것과
청동유물이 출토되었다는것 또한
보기드문곳이라고 한다
몇년전 해남으로 답사왔을때
미황사에 가지 못한게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오늘에서야 그 소원을 풀게 되었다
간절했던 내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미황사는 이렇게 내꿈을 저버리지 않고
꽃피는 봄날에 나를 꼭 초대하겠노라고
약속하더니 이렇게 나를 불러준다
땅끝 아름다운길
달마산 미황사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육지 절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절로
달마산 바위능선이 그려내는
거친선들은 마치 병풍을 두른듯
아름답고 포근하기만 하다
일주문엔 나무현판 대신
하얀천위에 쓴 현판이
여느절과 다르게 이색적이다
경내에 들어서니
단청이 사라진 나무원색의 모습
그대로의 대웅보전은
세월의 빛바랜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것 같아
또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적비에 따르면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에 닿자 의조화상이
불상을 소의 등에 싣고 오다가
소가 드러누운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답다하여
미황사의 '미'를 따온것이고
'황'은 돌로 만든 배를 젓던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색에서 따온것이라고 한다
도솔암에서 미황사까지
6시간이 넘는 산행을 하고도
미황사를 둘러보지 못하고
해남 답사를 와서도 들리지 못한게
그곳에 대한 간절함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경내를
여유롭게 맘껏 거닐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제대로
느낄수있는 시간이 되어
그 누구보다도 가슴 벅찬 감동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든다
다시한번 나무원색의 대웅보전과
눈도장을 찍고 숙소로 향했다
두륜산이 너그럽게 품고 있는
근처 유스호스텔에서 여장을 풀고
함께 온 학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도 풀고 탁구도 치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비교적 높은곳에 위치한 숙소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나뭇가지 마다 서리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고흥분청 문화박물관으로 향했다
지금의 박물관 자리는
분청사기 가마터가 있던곳으로
불을 지필수있는 땔감이 많았고
좋은흙과 삼면이 바다라
해상운송이 편리했기때문이라고 한다
고흥은 '높은곳에서 흥한다'는
지명에서도 알수있듯이
우주발사전망대와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만큼
우주항공의 도시이자
지붕없는 미술관이라고 한다
운대리 도요지에서는
고려청자와 백자의 중간단계인
분청사기의 변천과정을
단계별로 볼수있어
쉽게 이해할수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낙하운석인
두원원석이 74년만에 귀환했다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운석이란 우주공간(소행성,유성체등)이
지구의 중력에 의해
지구상에 떨어진 광물로
발견 방법에 따라
운석의 이름이 정해진다고 하는데
낙하지점의 지명을 따서
이름이 붙여진다고 한다
두원운석은 고흥군 두원면에
낙하한 운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낙하운석이라고 한다
우리가 볼때는 그냥 돌에 불과했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돌은
돈으로 환산할수없는
태양계와 지구탄생의 비밀이 숨어있었다
분청사기길을 숨가쁘게 걸어
녹동항으로 가는길은
3만평의 유자공원이 있고
천만평의 바다를 매립해
6백만평의 농지가 있다고 한다
유자는 반드시 해풍을 맞아야 한다면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유자처럼 예쁜 해설사님은
가는곳 마다 우리를 활짝 웃게 만든다
녹동항 산채뜰에서
풍부한 해조류와 싱싱한 야채들로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로
행복한 점심을 먹고
소록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흥반도 끝자락 섬의 모양이
어린사슴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지명인데
한센병 환자를 위한
소록도 병원이 있는 섬으로 더 유명하다
고흥반도를 가로질러 녹동항 부둣가에 서니
작은사슴처럼 아름다운 소록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입구에는 일제때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감금실과 검시실이 있었다
검시실앞에는 25세 젊은나이에
강제로 정관수술을 받은 환자의
애절한시가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한다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는
데미안 재단의 구라탑과
환자들의 애환과 박애정신을
엿볼수있는 기념탑이 있었다
한센인들이 눈물과 땀으로
일구었다는 일본식 정원은
어느 수목원 못지않게
아름드리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소록도에서 20대 젊은 나이로
한센인을 돌보며 청춘을 바쳤던
마리안느, 마가렛 두 수녀님의
공적비를 보면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천사가 아니었을까
노벨상의 후보로 떠오른다
천형의섬 소록도에서 그들이 겪었을
삶의애환들을 눈으로 보고
피고름이 나는 아픈가슴을 어루만지면서
우주발사 전망대로 향했다
우주발사대가 보이는 남열해수욕장은
다랭이논과 더불어 가히
한국의 하롱베이라 할만큼
해안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다
나로호우주센터는
우리나라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리기위해 건설된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발사기기라고 한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릴때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성을 질렸을
그날의 함성이 어디선가 들려올것만 같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기위해
암벽을 타고 올라갔다는
영남 용바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용두암은 제주도에만 있는게 아니었다
반석과 암벽층으로 이루어진 용바위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기위해
암벽을 타고 올라간 흔적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두 마리의 용다툼...
유시인의 화살은 고흥에 이렇게
유명한 바위를 만들어냈다
기도빨이 잘받는다고 해서
모두들 마음속에 한가지씩 소원을 빌며
신비로운 용의 전설을 뒤로 하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능가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한적한 시골도로를 달리다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버스가 갑자기 멈춰선것이다
순간 기사님은 당황해서
이곳저곳을 다 만져보고
회사에 연락도 해보지만
한번 멈춰버린차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 될까?
모두들 놀라 차에서 내려 웅성거리며
모든수단을 동원해보지만
날은 어두워지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세상에 무슨 이런일이...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한적한 시골도로여서 망정이지
만약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춰섰더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뻔 했다
1시간 정도를 기다리다
다행히 현지에 살고 있는
한 학우의오빠 도움으로
관광차를 급하게 대여해서
부산까지 무사히 갈수있었다
위기에 처했을때 어떻게
대처 해야되는 방법까지도
우리는 이곳에서 터득하게 된것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차가 고장나자
기사님은 차와 함께
하룻밤을 더 묵게 되었고
우리는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지만
기사님 걱정으로 마음이 편칠 않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기억과 추억이라는 이억을 번다고 한다
이번 완도 답사의 반은
장보고의 흔적을 더듬는길이었고
고흥 능가사는 나에게 또다른
숙제로 남게 되었으며
위기는 언제 어느때 누구에게나
닥쳐올수있다는것과
그위기에 처했을때 당황하지말고
차분하게 대처해가는 방법까지도 알려준
이번 1박2일 답사는
우리들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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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역사를 찾아서 < 기행문> 보성& 완도편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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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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