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도행은 스타렉스를 놔두고 오는 것이 목적 중에 하나였기에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요, 과거에 완이가족이 비행기타고 제주도 가려다가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고 괜찮겠냐고 계속 걱정을 합니다.
제주도에서 레일바이크 타러갔다가 입구에서 안들어가겠노라고 버티며 두 성인남자를 굴복시켰던 바로 그 초인적 힘! 그 힘은 극단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날뛰는 심장이 생존을 향해 불뿜어대는 동물적 힘을 발휘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그런 힘을 과도하게 쓰곤 합니다.
과거 완이의 과도한 저항으로 다른 승객들이 탑승을 못해 비행기시간까지 지연되고 결국은 비행기에서 내려야했던 최악의 경험을 했다고 하니 저도 은근 걱정은 됩니다. 완이가 이제는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 내심 자신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이 곤두서는 건 맞습니다.
사실 완이랑 공항에 가보니 탑승거절에 대한 걱정은 당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항 특유의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속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들이 정신없고 산만한 상황인지라 이에 따른 완이의 돌발행동은 더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나 산만하게 이리 튀고 저리 달아나는지 완이의 동선 따라잡기가 한 일입니다.
사방으로 튀고있는 완이를 따라잡자니 태균이랑 준이는 뒷전인데 이 녀석들 그래도 어찌나 엄마를 놓치지않는지 얼마나 다행인지요. 준이는 밖에 나가면 저를 놓칠세라 항상 주의를 기울이며 따라다녀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균이의 점잖음은 감사할 지경입니다.
공항 내에 있는 편의점은 어찌나 작은지 사람도 많아 계속 부딪치고 계산대에 줄까지 서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 중년여성은 계산에서 시간을 엄청 끌더니 결국 다 취소시키는데 완이를 부여잡고 있는 저에게는 그녀의 행동이 밉살스럽기까지 합니다.
편의점을 나오는데 옆을 떠나지 않는 준이는 다행인데 태균이가 안 보입니다. 그 때 탑승구 앞 대기석에서 자리잡고 점잖게 앉아있는 태균이를 보니 역시 경험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싶습니다. 완이에게도 그런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탑승전 정신없음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리라 믿습니다.
우선탑승 줄에서 두번째로 탑승하면서, 우리 앞에 서있던 멋진 남성에게 완이가 자꾸 안기려해서 사과했더니 기분좋은 미소로 괜찮다고 하는데 한국인이 아닙니다. 완이 덕분에 간만에 영어대화. 몽골에서 왔다는 이 사업가형 비지니스탑승자는 호방한 미소가 일품입니다. 몽골인인데 영어대화가 자연스러우니 유학파인가 봅니다.
에버랜드에서 완이가 좋아하는 피터팬을 상기시켜주며 피터팬타러가자 소리치며 탑승통로를 통과 우리가 예약한 맨 뒷좌석까지 무사히 도착, 자리안착. 며칠 단 것 하나도 안준데다가 공항에 도착해서 김치찌개까지 한 뚝배기 비우고 난 뒤라 비행기 안에서 달콤 구미들을 정신없이 먹습니다.
비행기 엔진소리때문에 비행기를 못탈 정도로 힘들어했던 2년 전에 비해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은 역시 눈입니다. 우리는 귀가 지나치게 예민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청각예민함에만 신경쓰지만 이런 행동의 가장 핵심원인은 눈가동이 그만큼 안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역시 영흥도와 제주도에서의 넓은 풍경 속에서의 야외생활이 완이에게는 최고의 감각보약이었습니다.
걱정은 커녕, 깔깔대고 노래를 계속 흥얼대서 오히려 예민한 앞좌석의 아주머니한테 한마디 들었습니다. 죄송하다고 계속 사과는 했지만 이렇게 잘 타고 가는 것만 해도 우리에게는 기적이건만, 그리고 비행기 소음때문에 완이노랫소리는 그다지 거슬리지도 않던데 참으로 작은 불편에도 꼭 한마디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듯 합니다. 다행히 완이 바로 앞좌석의 그녀남편이 그녀를 대신해 사과하듯 완이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다봐주며 괜찮다고 눈짓을 보냅니다.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완이나 저나 여행교통수단에 대한 다양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또하나 완이녀석, 저에 대한 애착이 참으로 굳건해졌구나 싶습니다. 택시를 타도 내가 먼저 타야 안심하고 타고, 그런 측면에서 이번 비행기 탑승도 제가 먼저 들어서니 믿고 따라와줍니다. 애착이란 믿음이며, 애착대상에 대한 즐거운 기억이 앞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완이와의 애착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금요일 퇴근길에 맞물려 분당까지 오는 길이 멀고도 험했지만 여러가지로 기분좋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아이들의 현주소와 과제를 새삼 다시 정리해보게 됩니다.
첫댓글 아. 모든게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고생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