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가원은 위 ㄴ 선지를 ‘옳은 내용’으로 판단했는데, 오류입니다. 이것을 다시 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ㄴ. B: 정부 정책을 통한 사회 복지 서비스의 확대를 주장하는가?(B는 케인스)
케인스는 ‘절대소득가설(쉽게 말해서,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지면 소비가 증가한다는 이론. 소비자가 소비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실제 소비행위로 나아갈 수 없으므로, 소비행위가 가능하게 하려면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어야 함. 이게 ‘유효수요’ 개념임)’을 바탕으로 ‘유효수요 확대정책’을 주장합니다.
첫째, 케인스의 이러한 주장은 유효수요 확대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지, ‘복지’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케인스의 저작 그 어디에도 ‘복지를 위한 경제정책’ 같은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나온다면 평가원 측에서 반드시 해설을 탑재하여 그 증거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실업자 구제(이 방식도 ‘정부투자를 통한 경제활성화’가 목표였지, 실업자의 ‘복지’가 목표는 아니었습니다.)를 위해 실업자들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정책(유효수요 확대정책)을 주장했다는 사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복지정책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합니다.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① “케인스는 평생 수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정작 복지나 복지국가에 대해서는 별로 저술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케인스주의 복지관을 논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론과 사상이 간접적으로 복지국가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중략) 부자에게서 빈자로 소득재분배가 되면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가설은 케인스의 절대소득가설이다. 따라서 케인스 이론은 복지국가와 상당한 친화성을 지녔다. 케인스 자신은 직접 이러한 정책적 권고를 하지 않았으나 그의 이론 체계는 소득재분배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성향이 있다.”(김윤태 엮음, “복지와 사상”, pp.31-32, 한울아카데미, 2016)
② “케인스가 내놓은 정책 대안은, 개인 부문의 지출이 부족해서 생긴 빈 곳을 메우기 위한 정부지출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제안도 하고 있지 않다. 지나가는 투로, 도로, 학교 및 공공자본이 필요한 정부지출의 확장계획을 ‘다소 포괄적인 사회화’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식의 ‘복지국가’에는 훨씬 미흡한 것이었다.”(로버트 하일브로너,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 민음사, p.340, 2005)
위 ①번의 저자는 케인스가 ‘복지나 복지국가에 대해서는 별로 저술한 것이 없다’고 했으나, 제가 확언하건대, ‘별로’가 아니라 ‘아예’ 없습니다. 물론 조금이나마 있다고 해도 오류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글에서 논증하겠습니다. 덧붙여,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저자들은 케인스가 그렇게 말한 사실(‘복지’에 대해 언급한 사실)을 소개했을 겁니다. 결국 이런 식의 평가를 하면서 ‘별로’ 저술한 것이 없다고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간접적으로는’ 복지정책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선해해야 합니다.
위 ②번의 경우 케인스 이론과 복지와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도로, 학교 및 공공자본이 필요한 정부지출의 확장계획’을 지나가는 투로 언급했다고 했는데, 이는 케인스가 ‘유효수요 확대정책’을 주장하면서도 투자지출의 구체적인 방법을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복지정책’에 대한 언급이 ‘미흡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복지정책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으니까요. ‘도로, 학교 및 공공자본이 필요한 정부지출의 확장계획’은 ‘유효수요 확대정책’의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실업자들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면 이들은 소비확대로 나설 것인데, 이것은 ‘간접적으로는’ 몰라도, ‘직접적으로는’ 복지정책과 관계가 없습니다. 더욱이 선지에서 사용된 표현인 ‘사회복지 서비스’와는 완전히 무관합니다(아래에서 설명할 겁니다.). 여기서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은, 케인스는 ‘실업자 구제’를 주장하면서 정부가 도로, 댐 공사 등을 하는 것은 지지했지만, ‘실업수당 지급’은 언급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케인스의 주장입니다.
“만약 재무성이 낡은 몇 개의 병에 지폐를 채워서 그것을 폐광(廢鑛)의 적당한 깊이에 묻은 다음, 탄갱(炭坑)을 지면까지 쓰레기로 채워놓고, 수많은 시련을 잘 이겨낸 ‘자유방임’의 원칙에 따라 개인 기업에게 그 지폐를 다시 파내게 한다면, 더 이상 실업이 있을 필요가 없어지고 그 파급효과 덕분에 공동체의 실질소득과 그 자본의 부(富)도 실제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물론 집 같은 것을 짓는 것이 더 현명하겠지만, 거기에 정치적 또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 케인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실업자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째, 정부가 알아서 그냥 집어넣어주는 방법이 있고(실업수당 지급), 둘째, 정부투자로 일자리를 만들어‘일을 시켜서’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방법이 있습니다(이것을 케인스는 ‘투자의 사회화’라고 했고, 스웨덴은 이를 더욱 확대한 ‘사회투자적 복지정책’을 실시). 위 인용문에서 케인스는 돈을 폐광에 깊이 묻어놓고 ‘개인에게’ 그것을 찾아서 갖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진짜로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닐 겁니다(물론 진짜로 그렇게 하더라도 케인스의 의도에는 부합합니다.). 실업자들에게 돈을 주되, ‘무슨 일이라도 시켜서’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실업수당 지급’이 아닙니다. 실업수당이라면 사회복지 서비스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케인스는 실업수당 지급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둘째, 말 그대로 선지에 나와 있는 ‘사회복지 서비스’라는 용어의 의미입니다. 사회보장은 크게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 실업수당 지급은 사회보험에 해당됩니다. 실업수당도 받지 못할 처지에 있다면 공공부조가 진행될 겁니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주로 노인,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 제2조 6항에는 <“사회복지서비스”란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국민에게 상담, 재활, 직업 소개 및 지도, 사회복지시설의 이용 등을 제공하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케인스가 역설한 정부 투자에 의한 경제활성화의 하나로서 실업자 구제(실업자에게 일자리 제공)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만일 케인스가 유효수요 확대정책의 일환으로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투자 외에도 말 그대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주장한 사실이 있다면, 그 증거를 꼭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대충 얼버무리지 마시고요. 아울러,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유방임의 포기를 극력 주장한 그는 유효수요의 증가와 완전고용의 유지를 위하여 투자의 사회화 내지 공공화를 주장하였다. (중략)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경제생활에 간섭하는 것은 오직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효수요를 늘리는 데 있는 것이며, 그 밖의 영역에 있어 자유와 효율성을 침해해 가면서 국가의 역할을 증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趙淳, “J.M.케인즈”, pp.260-261, 유풍출판사, 1982)
셋째, 이러한 이의제기에 평가원은 케인스의 주장에 대한 ‘해석’으로 ㄴ 선지(정부정책을 통한 사회 복지 서비스의 확대를 주장하는가?)와 같은 내용을 제시할 수 있다고 우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학문적 양심으로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지 자체에서 이미 ‘주장하는가?’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ㄴ 선지가 ‘옳은 내용’이 되려면 케인스가 ‘실제로 그러한 주장을 한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케인스가 ‘그렇게 주장한 내용’을 해설에 탑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평가원이 해설을 탑재하기로 한다면, 증거를 제시할 때 허섭스레기 같은 논문들 찾아서 “이게 증거다”라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쓰는 쓰레기 논문들 널려 있습니다. 온갖 논문들 다 찾다 보면, 병신 인증하는 논문에 혹시 ‘케인스가 정부 정책을 통한 사회 복지 서비스의 확대를 주장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오지 말란 법 있습니까? ㄴ 선지에서는 분명히 ‘케인스가 사회 복지 서비스 확대를 주장하였다’고 했으니, 케인스의 저서에서 그가 그렇게 말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지좃대로 ‘해석’하며 “내 해석에 의하면 케인스가 사회 복지 서비스의 확대를 주장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라면서 병신 인증 하지 마시고요. 수능 선지는 사상가의 ‘입장’, ‘주장’을 묻는 것이지, 출제자의 ‘지좃대로 해석’을 묻는 게 아니잖아요?
덧붙여, 최근 선지들 문장이 너무나 졸렬합니다. 예전에는 금기였던 ‘부정 서술형’도 자주 사용되고 있고, ‘갑, 을, 병’의 입장을 물을 때 갑, 을의 입장은 판독이 되는데 병은 안 되는 경우 등이 매우 많으며, 또한 문장이 너무나 촌스럽습니다(비문이 너무나 자주 눈에 띕니다.). 10번의 경우에도 보세요. 발문에서는 ‘사상가들의 입장’을 고르도록 하고 있는데, ㄴ 선지에서는 ‘주장하는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만들어 보면 “케인스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확대를 주장하는 입장인가?”가 됩니다. 예컨대, ‘동의하는 입장’, ‘찬성하는 입장’은 몰라도, ‘주장하는 입장’이라는 말도 있나요? ‘주장’이면 주장이고, ‘입장’이면 입장이지, ‘주장하는 입장’은 또 뭔가요? 초딩 애들이나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사용할 문장입니다.
결론적으로, ㄴ 선지는 케인스가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정답이 될 수 없고, 그렇다면 옳은 선지는 ㄷ, ㄹ만 남게 되어, 정답이 없게 됩니다.
저는 작년부터 빠지지 않고 윤리와 사상 및 생활과 윤리 문항들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적한 것들이 타당하다는 건, 이제는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오류 전부를 지적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만 하고 있어요. 일단 저도 하나하나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기도 하고요. 그만큼 오류가 너무나 많습니다.). 평가원은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평가원의 태도는 학문적으로 대단히 비양심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소위 ‘벼르는’ 분위기입니다. 소송밖에 길이 없다고 보고 있어요. 하지만 소송비용 문제가 있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이와 관련해서 청와대에 청원을 올리기도 했고, 필요하면 헌법소원도 제기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평가원 게시판에서, 평가원장을 상대로 따로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이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대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평가원 윤리 담당자에게 권유합니다. 깨끗이 인정하세요. 제가 지적한 사항들, 차후 출제에서는 감안하여 더 이상 출제 안 하고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오류 제시문, 선지들은 향후 10년간 전국의 학생들, 교사들, 학원강사들이 보게 됩니다. 평가원이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교사들, 학원강사들도 그게 맞는 줄 알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을까요? 오류들이 누적되다 보면, 나중에 새롭게, 그리고 정확하게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오류 선지들끼리 서로 충돌하는 문제도 숱하게 발생하고 있고, 또 발생할 겁니다. 학력이 높은 학생들은 정확히 뭐라고 꼬집지는 못해도 ‘선지들만을 놓고 보면 뭔가 모르게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면서 질문을 해댑니다. 인강강사들이 제대로 대답도 못할 뿐만 아니라, 대답하는 경우에도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합니다. 평가원이 학문적 양심으로 오류를 인정해버린다면 생기지 않을 혼란입니다.
모의평가 때에는 소송이 성립하지 않으니, 오직 평가원의 학문적 양심만이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본수능 때에는 조건이 성숙하기만 하다면 소송으로 대응할 생각입니다. 꼭 명심하시고요.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이번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선지들이 꼭 ‘사설 모의고사 선지들’ 같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유는 잘 아실 거라고 봅니다.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내일 1~2개 오류 선지에 대한 글, 더 올릴 생각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가 볼 때에는, 이것은 꼬아서 내려고 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케인스', '케인스주의'를 모르는 것이죠. 이거 제대로 아는 인간, 출제진 안에 없을 겁니다. 경제학 전공한 윤리학 교수는 없을 테니 교사가 담당했을 거고요. 그냥 시중 문제집 같은 데를 보면 저런 식으로 많이들 얘기하고 있으니까 베꼈을 것이고, 나머지 교수나 평가원 담당자는 뭘 알겠습니까? 검토로 들어온 교사들도 하나같이 병신들이었을 거고...
지금 윤리는 출제 인력풀에 제대로 문제를 내고 검토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작년 9평부터 오류 지적하는 글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제가 계속 지적한 게 뭐냐면, 이건 근본적으로 출제 인력풀 내의
출제진의 능력 및 내공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고, 이러한 인력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도 아니라서(저는 앞으로 20년 동안 이 문제가 해결 안 될 거라고 장담합니다. 20년 동안 수능제도가 유지될지도 모르겠습니만), 이런 오류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장담했죠. 수능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윤리가 수능 과목 안에 있는 한,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인력'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남발되고 있는 오류 선지들을 두고 저 사람들끼리 나름 진지하게 토론하고 논박하고 그랬을 터이니, 이게 생각만 해도 코미디라는 생각이 드네요.ㅎㅎㅎ
이거는 오래전부터 궁금했던건데, 평가원의 출제자는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과정으로 선정이 되는건가요? 그리고 한번 출제자로 선정이 되면 그 분들이 6월 9월 수능까지 계속 참여하는건가요, 아니면 중간 중간 교체가 되나요?
거기 사범대들 인맥 중심이에요. 인맥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