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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줄어듦 8:1~5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 일곱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새로운 시작 8:6~12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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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셔서 물이 줄게 하시고, 방주는 아라랏산에 머뭅니다. 40일 후 노아가 창문을 열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놓습니다. 7일 후 또 비둘기를 내놓으니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와 물이 줄어든 것을 알게 됩니다. 또다시 7일 후 비둘기를 내놓으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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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삶 -
노아를 기억하사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점점 물러가게 하여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됩니다. 40일을 지나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차례대로 보내어 바깥 상황을 살핍니다. 비둘기를 세 번째 보내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방주 뚜껑을 열고 나와 마른 땅을 확인하고, 먼저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번제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 소망이 보이지 않는 삶을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나의 삶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1~12절).
하나님이 온 땅에 내리신 홍수가 150일간 이어지면서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하나님이 물을 땅에서 줄어들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150일 동안 방주 안에서 지낸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희망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셨습니다. 생명을 보존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하셔서 물이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바람’은 1장에 물 위를 움직이시던 하나님의 ‘영’과 같은 단어입니다. 새로운 재창조가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노아를 비롯한 동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런 생명체들을 기억하시고, 바람을 통해 물이 줄어들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십 일이 지나 까마귀를 내 보내는데, 까마귀는 물이 마르기까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합니다. 비둘기를 내 보내는데 ‘...비둘기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8절)옵니다. 발바닥을 대고 쉴만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이 땅에 발바닥을 붙이고 살아가지만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아라랏 산(4절, 쉬다, 정착하다)과 같은 곳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세 번째 비둘기를 내 보냈을 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발다닥이 안주할 곳을 찾게 되었기에 돌아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안식과 쉼을 찾았기에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과 환란 가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가져다주는 괴로움에 밤잠을 설친 적도 많았습니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교회 빈자리를 보면서 절망의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어느 날 문뜩 ‘너의 분주함이, 너의 낙심과 눈물이 누구를 위함이냐?’라고 하는 마음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고난보다 더 큰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라고 줄기차게 외쳤건만 정작 내 자신은 현실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나의 삶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안에서 맛보는 신령한 은혜와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삶 속에서 진정한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 삶 속에서 나의 삶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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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아버지, 오늘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곧장 제단을 쌓고 제물을 취하여 번제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그 향기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이 답답하고 갑갑한 고난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고통이 해석되고 해결되기 원해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향기를 받으시는 예배를 날마다 드리기를 소원합니다. 말씀해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고난이 해석되고 해결되려면
1. 고통의 근원이 마르도록 그 고난에 잘 갇혀있어야 한다.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라고 하신다. 그런데 노아와 그 가족들은 온갖 들짐승과 가축과 함께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구원의 기쁨도 잠시다. 구원 받은 것 맞아? 예수 믿어도 되는 게 없잖아? 이럴 바엔 내 멋대로 시집가고 장가가고 실컷 마시기나 할 걸~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기억한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신다. 그래서 물이 줄어들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친다. 홍수가 쏟아질 때는 아무리 부르짖고 외쳐도 안 닫히던 하늘의 창이 하나님이 기억하시니까 곧 닫힌다. 방주 안에서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이런 날이 온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고통 가운데 있어도 그렇다. 악을 써가며 몸부림친다고 고통이 그치는 게 아니다. 방주 안에 잘 갇혀 있어서 세상 소리 안 듣고 안 보고 문빗장 지르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안에서 나의 생색과 자존심과 원망을 다 내려놓고 주어진 환경에서 평강을 누려야 한다. 그리하면 밖에서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상관이 없다. 고통이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고통의 근원이 저절로 그치게 된다. 그런데 3절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었다고 한다. 내 고통도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내 고통이 그치기만을 부르짖고 있는가?
말씀 안에 공동체 안에 잘 붙어만 있으면 고통의 근원이 점점 그칠 것을 믿는가?
고난이 해석되고 해결되려면
2. 십자가에서 안식을 누려야 한다.
4절 일곱째 달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라랏 산은 후손의 산이라는 뜻이고 머물렀다는 것은 휴식을 의미한다. 고통 속에서도 순종했더니 후손의 산에 머물게 된다. 그러므로 나의 고통도 영적후손을 낳기 위한 것이다. 환경이 어려워도 복음을 잘 전하면 그곳이 곧 안식처가 된다. 그리고 5절에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달 그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고 한다. 내가 십자가에서 안식하고 기다리면 물로 다 덮여서 사라진 것 같던 산봉우리도 어느 날 보이기 시작한다. 제가 그랬다. 걸레질하면서 방주에서 잘 죽어지고 있었더니 어느 날 내 인생에 봉우리가 보였다. 갑자기 주 안에서 내 정체성이 보이고 내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걸레질하면서도 전도할 수 있고, 병원에서도 시장에서도 전도할 수 있다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저의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난이 해석되고 해결되려면
3. 때와 사람을 잘 분별해야 한다.
7절 이후에 노아는 왜 처음에는 까마귀를 보냈다가 두 번째부터는 비둘기를 보냈을까. 까마귀는 일단 부정한 새다. 기난 긴 홍수에 익사해서 물 위에 떠다니는 동물들의 시체를 뜯어먹느라 사명도 잊고 자기 소명도 잊고 여기저기를 날아다녔다. 반면에 비둘기는 사체를 안 먹는다. 물에서는 서식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마른 땅이 나타나지 않으면 좁디좁은 방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노아는 왜 또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았을까. 하나님께서 물이 거칠 때를 숨기셨기 때문이다. 방주를 지었을 때는 칠일 후에 홍수가 온다고 가르쳐주셨지만, 언제가 회복의 때라는 것은 숨기셨다. 왜 그러셨을까. 숨기시는 것이 믿음과 인내의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그것이 11절에 새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잎에 물고 돌아온다. 비둘기가 복음의 기쁜 소식을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지만 그래도 또 칠 일을 기다린다. 우리도 그렇다. 오늘 노아처럼 내 두 눈으로 지면에 땅 위의 물이 그치고 마른 것을 보아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 생각, 내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16절 드디어 여호와께서 노아야, 나오라고 하신다. 방주를 지을 때도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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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절 방주에 있던 노아를 ‘기억’(개역한글, 권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고 할 때, 이것은 단지 잊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언약을 실행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6:18; 참조. 출 2:25). 배에서 내리기까지 일 년 열흘 정도의 시간은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끊임없는 보호와 절대적인 통제 아래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탄하지 않은 신앙 여정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1~5절 언약을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방주는 생명을 보존하게 하기 위한 도구였을뿐 정착지는 아니었습니다. 노아와 방주 안의 생물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생육하고 번성할 땅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자마자 비가 그치고 산봉우리까지 잠겼던 물이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도무지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았던 땅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처음 조성되었던 질서를 찾아갑니다.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2-17절 심판으로 정화된 자리에서 새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땅 위에 바람을 보내어 혼돈의 물을 물러나게 하시고, 물이 물러난 자리에 땅이 드러나며 창을 닫은 하늘로 다시 새가 날아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 태초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을 통해 다시 창조의 복을 허락하시고(17절),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지음받았습니다(고후 5:17). 이제 우리 몫은 새 언약의 주체가 되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를 때까지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6~12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까마귀를 창 밖으로 내어놓고, 다시 비둘기를 내놓는 노아의 행동은 믿음 없는 사람의 불안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을 부지런히 살피며 자신의 때를 준비하는 성실한 사람의 올바른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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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로 심판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비규환같이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인류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클라인 교수님은 "홍수의 날은 야훼(하나님)의 구속적 복수의 날이다."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를 통하여 자신의 의로운 권세를 행하셨습니다. 물 아래 잠겨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선포를 듣게 되었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은혜를 받은 이유는 (1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와의 언약을 기억하신 이유는 에덴동산에서 죄로 원수 된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 때문입니다. 창세기 8장은 새 창조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8장에 땅이 드러나는 모습을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1장 2절에 바람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영의 사역과 연결됩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14장 2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을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나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밟고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물을 물러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 홍수 후에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여 땅이 드러났고 방주 안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걸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7장과 8장은 대칭 구조로 되어있는데 하나님의 심판(물이 차는 모습)과 구원(땅이 드러나는 모습)은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는 언약을 중심에 두고 대칭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표를 참조하세요)
지금부터 칠일이면 (7:4)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을 덮이니 (7:10)
사십 주야를 비가 내린다 (7:12, 17, 19)
물이 150일 땅에 창일하다 (7:24)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8:1)
(노아의 언약: 창 6:18 ex. 출애굽기 2장)
150일 후에 감하고 (8:3)
사십 일을 지나서 비둘기를 보냄 (8:6)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보냄 (8:10)
칠 일을 지나서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내니 다시 돌아오지 않음 (8:12)
마지막 때에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선포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시면서 홍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새로운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성령의 바람으로 몰아내사 우리를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이 은혜를 경험한 성도들은 세상 끝날 때까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아가 하나님 왕국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한 가족이 됩니다. 이것이 새 창조의 모습입니다. 죄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연약함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한 가족 되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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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8:1-14
노아 방주는 사람이 움직여서 갈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기억하심, 돌보심만으로 방주가 움직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있던 모든 짐승까지 생각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셔서 물을 마르게하십니다.
비가 그치고 물이 점점 물러가니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습니다.
노아가 아라랏 산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에 의해 머물게 된 자리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 내 역할은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자리, 가장 생각해주신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홍수 심판이 물러가고 저주가 물러간 것을 알게된 자리인 것을 잊지않기 원합니다
나는 방주이신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는 죽은 자이니 스스로 주인되어 내 인생의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가는 자이기에 날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는
내 인생이지만 내가 주인이 아닌 내 주도권을 포기하도록 말씀이 나를 견인하고 가십니다.
내 뜻을 이루려 달려간 나를 심판,완전하게 심판의 물에 잠기어 죽게 하셨고, 나를 생각하사 저주의 물을
물러가게 하시고 조금씩 조금씩 생명이신 주님 앞으로 손 내밀고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저주가 나에게서 사라진 사실을 확인해주시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과 내 뜻은 부서져야 하는 것 알게하시고 주님 뜻만을 바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것 외에는 다 쓸어버리시는 것 알도록 노아의 홍수가 왔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다 흔들어 버리고 다 불태워 버린다는 말씀을 믿도록 주님이신 방주 안에서
양육하여주셨습니다
말씀이 나를 점점 점령하실수록,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내게서 영원히 저주가 사라짐을 확인 받으며
복 받은 인생임을 확신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에게서 저주는 물러갔음을 알고 생명이신 주님 앞으로만 나아가는 내가 되었습니다
저주를 물러가게 하신 은혜의 시대를,생명의 나라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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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도움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를 기억하심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땅에서 솟는 물이 멈추고, 세찬 바람이 불어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단순히 잊었던 것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이요, 상황의 변화이며, 구원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해주시길 항상 간구해야 합니다. 한편, 방주 밖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모두 노아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여러 날에 걸쳐 수차례 까마귀와 비둘기를 밖으로 내 보내, 물이 빠지고 땅이 드러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분별력과 판단력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의로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노아는 하나님 말씀대로 방주에서 나와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은 기뻐하셨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더하십니다.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 주시는 분별력과 판단력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을 늘 기억하여 주소서
잊혀 진다는 것만큼 외로운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불안과 외로움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고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될 때 절대 고독과 불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은 복되고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슬픔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자격 없는 나를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괴롭고 힘든 일들로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더라도 나를 기억하고 주목하시며 기대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하심을 기억하며 다시한 번 힘을 내고 살아가는 복된 하루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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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12 인생의 소망 하나님의 기억하심
하나님은 악하고 부패하고 죄로 가득한 세상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120년이란 긴 세월을 경고하셨다.(6:3)
노아에게는 잣나무로 구원의 배인 방주를 짓게 하셨다.(6:14)
노아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다 준행하였을 때(6:22)
노아의 나이가 600세가 되던 해에(7:6)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려서(7:11)
40일간 밤낮으로 비가 쏟아졌다.(7:12)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고(7:19), 땅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7:21)
육지에 호흡 하는 것은 다 죽었다.(7:22)
죄와 악을 멸하시는 권능의 하나님께서
오늘도 큰 은혜의 말씀을 허락하여 주신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물은 줄어 들지 않았다.
넉 달 다섯 달이 지나도 홍수 심판은 멈추지 않았다.
온 세상은 물로 가득하고 호흡하는 모든 것은 다 죽었지만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셨고 생각하고 계셨다.
노아가 생각하기에 식량도 다 떨어져가고 엔진도 없고 방향키도 없는 배에서
불안했을지도 모르고 구원의 손길은 멀게만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부터 다시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여진다.(1)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비가 그친다.(2)
물이 땅에서 점점 물러가고 (3)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4) 7월 17일이다.(4)
홍수 심판이 시작된지 150일 만이다.(3)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5)
40일 후에 방주의 창을 열고 (6) 까마귀를 내어 놓았다.(7)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았다.(8)
7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내어 놓자(10)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왔다.(11)
노아는 땅에 물이 감한 줄을 알았다.(11)
또 7일 후에 비둘기를 내려 놓자 다시 돌아 오지 않았다.(12)
비둘기가 다시 돌아 오지 않은 일보다 중요하게 눈에 들어 오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셨다.(1)
권념하셨다는 말은 영어로는 Remembered이다. 돌아보아 생각하다는 말이다.
잊고 있다가 깜작하고 다시 생각해 내었다는 말씀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씀이다.
결코 잊어버린 적이 없다는 말씀이다.
이분이 나의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방주를 기억하시고 늘 생각하신다는 말씀이
때때로 앞이 캄캄하고 방주와 같이 어찌 할 바도 알지 못하겠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풍전등화의 상황 가운데 있을때도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는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기억하신 다는 사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은혜를 받는다.
내 삶을 돌아 봐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방주를 만드는데 120년간 방주에 들어가서 7일 간
40일간의 폭우 150일 간의 방주 안에서 기다림
40일간의 기다림 또 7일 간의 기다림, 또 7일간의 기다림
이 많은 기다림 가운데 노아는 초조하게 생각했다거나
급하게 생각했다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식일을 잘 지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노아야 이제는 바깥으로 나아가라라고도 말씀하지 않았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던 노아도 스스로의 분별력과 판단력을 사용할 때가 왔다.
여러날 수 차례에 걸쳐서 까마귀와 비둘기로 실험하고 판단한다.
때때로 이런 지혜로운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결단할 때 신중하게 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아멘.
신실하신 하나님
고난 가운데서도 절망 가운데서도 돌아보아 생각하시는 주님
잊어버리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라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삶도 돌봐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찬양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펴주시는 당신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때때로 분별력과 판단력을 사용해서 결정해야 할 때에
노아가 그랬던 것 처럼 지혜롭고 신중하게 잘 판단하도록
성령님 지혜를 부어 주옵소서.
신실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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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심과 변화의 시작(8:1~5)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은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40일간의 폭우와 150일간의 범람이 일어나는 동안,
방주 안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다림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준비한 식량도 점점 줄어들어 초조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를 기억하신다는
선포는 상황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즉,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땅에서 솟는 물이 멈추고,
세찬 바람이 불어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기만 해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단순히 잊었던 것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이요, 상황의 변화이며, 구원의 시작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성품이 잘 드러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일이나 사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분별력과 판단력(8:6~12)
그리스도인에게 분별력과 판단력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의로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방주 밖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말씀해 주지 않으십니다.
밖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모두 노아의 몫입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던 노아가
자신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사용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노아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 수차례 까마귀와 비둘기를
밖으로 내보내, 물이 빠지고 땅이 드러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올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자질입니다.
- 묵상 질문: 묵묵히 기다릴 때와 적극적으로 행할 때를 분별하는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지금 신중하게 분별하고 판단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은 제 인생 가운데 언제나 신실하셨습니다.
그러나 삶의 어려움이 닥치면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불안해하며 초조해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저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