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문을 연 첼시마켓은 뉴욕 식재료의 보고이다.
이름 그대로 '시장'이지만, 동시에 갤러리이고, 멋진 카페이며, 건물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허름한 빨간 벽돌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모던한 갤러리와 빈티지한 카페부터 눈길을 끌었다.
즉석에서 빵을 굽는 베이커리, 온갖 꽃으로 단장한 꽃집도 위치하고 있다.
첼시마켓은 뉴욕 펜실베이니아역 남쪽에 자리한 첼시라는 동네의 재래시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100년 된 과자공장을 리모델링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먹어봤을 오레오쿠키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코코아를 곁들인 검은색 비스킷 두 개 사이에 흰색 크림을 넣은 쿠키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 송수관은 인공폭포가 됐다
시장은 입구부터 분위기가 남달랐다.
동굴같은 통로 양쪽으로 가게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100년 넘은 붉은 벽돌색이 바랠만큼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천정 곳곳에 노출된, 허름한 파이프도 '앤틱'한 느낌을 주고, 공장이 가동될 당시 작업용으로 사용된 엘리베이터가 지금은 손님을 실어 나르는 승객용으로 변했다.
중앙홀의 버려진 송수관은 인공폭포가 됐고, 건물을 관통하던 기차선로는 눈길 끄는 장식품이 됐다.
시장 벽면에는 빵, 쌀, 야채, 과일, 초콜릿으로 만든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걸려있어 갤러리를 방불케 했다. 이만하면 시장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다.
시장 1층은 음식점, 꽃집, 아이스크림가게, 빵집, 와인숍이 있고, 2층은 각종 사무실과 푸드채널, 방송국, 프로야구사무실 등이 입주했다.
이곳에서 파는 식재료는 품질이 뛰어나 주변의 고급호텔로도 공급된다고 한다.
시식 코너도 좋아 하나 살 것을 두 개 사게 된다.
■ 드라큘라 쿠키 '상상초월'
시장 한쪽에서 코를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가 솔솔 나 가까이 가보니 랍스터를 찌고 있다.
가격을 물어보니 국내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 싸다.
상인들은 랍스터를 먹기 위해 일부러 첼시마켓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자랑했다.
가격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18∼38달러 선.
중간 크기라면 20달러로 충분한데, 혼자서 먹기에 부담스럽다.
컵케이크와 쿠기를 파는 가게도 인기다.
쿠기 모양이 상상을 초월하며, 그중 드라큘라 시리즈는 관, 십자가, 미라, 좀비가 한 세트를 구성하고 있고, 미국 시리즈는 오바마, 성조기, 자유의 여신상 등으로 이뤄졌다.
기념품으로 안성맞춤이다.
가게 한쪽에서는 쿠기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있어 수제쿠키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관광형 시장에도 지역 특산물의 한계에서 벗어나 형태나 모양, 스토리에 있어 독특하고 흥미로운 콘셉트의 제품 개발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 사무라이 칼 갈기 '볼거리'
시장 곳곳에는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특이한 모양의 탁자와 의자가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시장에서 테이크아웃 음식을 샀다면 이곳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편안히 먹는 재미를 누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벤트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주방기구를 파는 가게 앞에서 '사무라이 칼 갈기' 행사가 열린다.
이벤트 일정은 모두 첼시마켓 홈페이지(www.chelseamarket.com)에서 미리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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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파이프라인이 그대로 드러난 첼시마켓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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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마켓이 부러운 이유는 낡고 허름한 옛 과자 공장을 시장이자 관광지로 변신시킨 뉴욕시민의 상상력에 있다. 우리처럼 차양지붕을 만들고 간판을 정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옛것을 그대로 살려 삶터의 역사를 보존했고 그것이 새로운 매력이 됐다.
시장은 상점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 자체로 공동체의 역사이며 서민들의 삶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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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야채와 과일 진열대. |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와 같아질 수 없다. 아니, 같아져서도 안된다.
전통시장은 편리함을 넘어, 또 다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
낡았지만 멋스럽고, 오래됐지만 촌스럽지 않은,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맛이 영속적으로 흐르는 공간 말이다.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