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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박준 시인 선정 이유
내가 박준 시인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시집이 아닌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을 통해서였다. 산문집이지만 시 같은 글들이 많았기에 그의 말은 내 기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늦은 밤 떠올리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나를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글들은 나를 떠나 갔지만 저 한 구절만큼은 가슴 속에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대시인론 수업 시간을 통해 박준 시인의 글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산문이 아닌, 시로. 그의 시는 차분하면서도 감정이 은근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문장이 시 보다는 산문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읽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다 읽은 후에는 한 가지 문장이 가슴에 남는 것에서 오래 전에 그의 산문집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산문스러운 시, 내가 그의 시를 이 보고서의 주제로 선정하게 된 이유이다.
박준 시인을 구분할 때 흔히 김소월 계보, 즉 서정시의 계보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점에서는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의 시는 서정시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의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두 권 모두를 살펴보면 누구든지 대부분의 시들이 서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박준 시인이 시에서 사용하는 시어에서 느껴지는 전통성과 산문성의 활용을 근거하여 백석 시의 계보에 넣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서정성과 전통성에 근거하여 그의 시를 읽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본고에서는 서정성과 전통성을 바탕으로 하여 박준 시인의 계보를 분석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계보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더 나아가서 박준 시인을 새로운 시 계보의 시작점으로 둘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앞서 언급한 그의 시집 두 권과 산문집에 실린 작품을 분석하는 것을 주된 방법으로 사용할 것임을 밝힌다. 또한 이 글에서 사용되는 시인들의 계보는 김종훈의 ‘정밀한 시 읽기(2016)’를 참고하였다.
본론
1. 박준 시의 서정성
2008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박준 시인의 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그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첫 번째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담겨 있는 몇 가지 시를 살펴보겠다.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창문들은 이미 밤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 잠결이 아니라도
나는 너와 사인(死因)이 같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
벽과 마주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
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요와 홑청 이불 사이에 헤어 드라이어의 더운 바람을 틀
어넣으면 눅눅한 가슴을 가진 네가 그립다가 살 만했던
광장(廣場)의 한때는 역시 우리의 본적과 사이가 멀었다
는 생각이 들고
나는 냉장고의 온도를 강냉으로 돌리고 그 방에서 살아
나왔다
내가 번듯한 날들을 모르는 것처럼 이 버튼을 돌릴 줄 아
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맥주나 음료수를 넣어두고 왜 차
가워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낯빛을 여관의 방들은 곧
잘 하고 있다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어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같
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2]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3]
두 시 모두 시의 화자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자신의 기억과 감정에 대해서 시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준 시의 특징을 서정성이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에서 “나는 너와 사인(死因)이 같았으면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나’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죽음의 순간마저 닮고 싶어하는 ‘나’의 강렬한 감정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자신과 가까운 인물의 죽음의 순간에 자신마저 죽어버릴 것을 암시하며 사별死別에 대한 강한 부정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시에서는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시행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준 시인은 yes24에서 진행한 시인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있는 시를 쓰고 싶고 노력해왔다고도[4] 말한 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시’라는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는 김소월의 계보에 포함시킬 수 있다. 김소월 계보에는 내면의 감정을 리듬에 태울 수 있는, 즉 감정을 정확하게 표출하는 데 탁월한 시인이 포함된다. 당연히 박준 시인 또한 감정을 드러내는 시를 쓰기에 김소월과 같은 부류의 시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전통성에 대해서 분석해보겠다.
2. 박준 시의 전통성
백석 시의 계보에 속하는 시인들의 특징은 향토성, 토속어, 원시적 공동체와 같은 전통주의 그리고 산문성을 활용을 들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첫 번째 시는 사인(死因), 광장(廣場), 내근(內勤)과 같이 한글과 한자가 동시에 제공되는 단어를 통해, 두 번째 시에서는 ‘자서전을 쓰는 일’과 ‘일기장’과 같은 소재를 통해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박준 시인의 시에서는 영어와 같은 외국어의 활용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과 그의 시집과 산문집에서는 ‘여수, 연화리, 화암, 묵호, 광주’와 같은 지역명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 또한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산문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백석과 같은 좌표의 시인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3. 박준 시의 세 번째 계보
박준 시인의 시는 산문적이지만 실험적인 기법이 활용되지 않았으므로 이상의 계보라고 보기엔 어렵다. 그렇다면 정지용의 계보는 어떨까? 정지용 계보에 해당하는 시인들은 감각적인 표현과 모더니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모더니즘 시는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보다 우선시한다. 특히 정지용은 이미지즘 기법을 사용하여 한국적으로 수용한 이미지즘 시를 완성하였다.[5] 이를 바탕으로 박준 시인의 작품을 모더니즘과 연관 지어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우리들의 천국
곁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신은 나와 헤어진 자리에서 곧
사라졌고 나는 너머를 생각했으므로 서로 다른 시간을
헤매고 낯익은 곳에서 다시 만났다 그 시간과 공간 사이,
우리는 서로가 없어도 잔상들을 웃자라게 했으므로 근처
어디쯤에는 그날 흘리고 온 다짐 같은 것도 있었다[6]
이 시에는 ‘당신’과 ‘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헤어진 자리’라는 시구를 보면 시적 화자가 처한 상황은 이별의 순간이다. 그것이 순간적인지, 아니면 영원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헤어짐이 주는 여운이다. 시에서는 ‘당신’이 떠나가는 순간 화자가 느끼는 상실감과 공허감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지 않다. 대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추상적으로 둘 만의 추억을 상기하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이런 잔잔한 감정의 진행이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그날 흘리고 온 다짐’을 이별의 순간에도 너를 잊지 않겠다는 화자의 소망을 은근하게 빛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박준 시인은 앞서 언급된 인터뷰에서 “또 너무 쉬워지면 어떡하지, 너무 대중적이면 어떡하지, 너무 슬프면 어떡하지, 너무 기쁘면 어떡하지, 고민하죠.”(채널예스, 신연서)라고도 말하였는데 이는 감정의 과도한 표출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절제된 감정의 표출은 모더니즘 시의 성향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한 가지 특성만으로는 그를 정지용 계보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감각과 이미지즘에 초점을 둔 시 한 편을 더 살펴보겠다.
이곳의 회화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들은 저마다의 길에 흰 구름 같은 문양
을 흘리고 왔다고 해요. 쌍방과실의 사고현장에서 털썩 주
저앉는 것은 문하생이나 하는 짓이라나요 해를 등지고 반
셔터를 누르는 것쯤이야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들은 드
로잉만으로 서울 나 7371과 경기 다 5597의 찰나의 만남
을 원숙하게 표현했다 합니다 갓길에서 연락처를 주고받
은 그들이 일제히 뒷목에 손을 대고 사라지는 모습은 이
길의 커튼콜일까요
굴다리 밑 ‘찌그러진 곳 펴드립니다’보다 서울 나 7371을
완벽히 복원한 작품은 302호 병실 옹벽에 붙은 <그 벽에
그 맨드라미> (종이에 크레파스, 257 X 364mm, 2006)였습
니다 남자와 여자, 맨드라미와 아이 그리고 원근법을 철
저히 무시한 채로 서울 나 7371이 존재하는 이 그림은 마
티스가 십이지장 수술을 받은 직후 그린 회화들처럼 불명
확한 이미지들이 균등한 공간 안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림
을 자세히 보면 서울 나 7371의 범퍼는 원래 찌그러져 있
었고요
어쨌든 나는 이곳의 회화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영양식 식
단에 딸려 나오는 우유만 있으면 그들은 혼자 밥을 먹는
일에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원재료명들과 공장 주소와 식
품의 유형과 이 제품은 재정경제부 소비자 피해보장규정에
의거 교환 또는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의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떼어 맞춰보면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불러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흰 구름 같은 문양이 있는 길로 정확히 돌아갑니
다 낮에는 넷이 모여 낄낄대고 저녁이면 셋이 모여 낄낄
대는 것은 넷 중 하나에 야간발 택시 드라이버가 있다는
뜻입니다 혹 동선교통이나 개미운수 동인을 만나면 버릇
없이 방이동, 연신내, 구로역 따블이라 외치지 않기로 합
니다 저 길들의 형상기억 예술가에 대한 예의를 갖춥시
다 바짝 펴진 철판들이 여름 볕을 튕겨내는 것쯤이야 일
도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60-61)
제목에 써 있는 ‘회화’처럼 시의 내용은 대부분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 나 731과 경기 다 5597의 찰나의 만남, 302호 병실 옹벽에 붙은 <그 벽에 그 맨드라미>(종이에 크레파스, 257 X 364, 2006)에 대한 묘사 그리고 우유에 써 있는 제품 안내 사항 등 여러 가지 소재를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는 단순한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시적 화자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은근히 나타내고 있다. 우유에 쓰여 있는 안내 사항의 글자들을 맞춰 보며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조합해 그리워하기도 하며, 1연에 나타난 차의 번호판을 통해 4연에서는 그들의 삶을 길거리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예술가로 보며 존중을 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박준 시인은 시적인 언어가 아닌 일상적인 언어, 즉 일상어의 사용을 통해 독자들이 이미지를 상상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2행에서 등장하는 <그 벽에 그 맨드라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굴다리 밑 ‘찌그러진 곳 펴드립니다’보다 서울 나 7371을 완벽히 복원한 작품이라고 소개된 이 회화는 굉장히 디테일하게 소개되어 있다. 뒤에서는 이 회화에 담겨 있는 그림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시적 화자가 느낀 그림에 대한 감각을 온전히 전달한다. 이 그림 자체가 ‘이미지’의 원형으로 작용함으로써 시를 하나의 회화 그 자체로 확장한다. 글자를 통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와 비슷한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의 일부를 살펴보겠다.
옴겨다 심은 棕櫚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쟈.
(중략)
나는 子爵의 아들로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후략)
<정지용, 카페프란스>
정지용의 <카페프란스>에서는 ‘옴겨다 심은 종려 나무 밑’, ‘빗두루 슨 장명등’과 같은 대상의 묘사를 통한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회화적 이미지는 독자에게 심상을 통한 상상을 자극하고 뒤에서 시적 화자가 슬퍼하는 것에 대한 암울한 배경을 형성해준다. 이러한 정지용의 심상의 활용은 박준 시에서 나타나는 시의 회화화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즘적 성격과 절제된 감정의 사용,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박준 시인을 서정주와 백석의 계보 뿐만 아니라 정지용의 계보에도 포함시켜보았다. 하지만 우리의 논의는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4. 박준의 좌표와 특성
박준 시의 특징으로 서정성과 전통성, 그리고 감정의 절제와 이미지즘적 성격을 언급하였다. 지금부터는 박준을 현대시의 새로운 좌표 및 지형도로 설정해보고자 한다. 서정성과 감정의 절제, 조화를 이루기에는 무언가 어색해 보이는 이 두 관계는 역설적으로 박준 시인을 현대시에 새로운 활력 불어넣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서정성은 필연적으로 감정의 표출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 무뚝뚝한 사람에게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데 감정이 풍부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초혼> 중 일부인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만 보아도 발산적 감정을 통한 서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박준 시인의 글은 잔잔하게 흘러간다. 소설에서 위기와 절정이 지나 결말 부분의 고요함과 여운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자신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일상적인 요소와 환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묵호나 통영의 봄 길을 떠올렸지만
떠나지 못하고 결국 회기로 향하는 길.
그마저도 다 못 가서 혜화에서 돌아오는 길.
혼자 걷는 밤길.
<그해 혜화동[7]>
이러한 특성은 그의 산문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글에서 화자는 자신이 걷는 길을 언급하고 있을 뿐,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떠나지 못하고’와 ‘그마저도 다 못 가서’라는 능력 부정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화자가 느끼는 고독감과 외로움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 공허감은 마지막 ‘혼자 걷는 밤길.’을 통해 심화된다.
박준 시인은 ‘길’이라는 심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면서도 글을 읽는 사람의 ‘공감’을 통해 서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어두운 밤에 가로등 불만 조용히 켜져 있는 길을 혼자서 걸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순간에 느꼈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글을 통한 그때의 경험, 즉 이미지의 환기喚起는 직접적인 정서 표현이 없음에도 주인공이 느꼈을 감정에 대한 공감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이를 통해 절제된 서정성이 완성된다.
그대가 풀어놓은 양들이 나의 여름 속에서 풀을 뜯는 동안은
삶을 잠시 용서할 수 있어 좋았다
기대어 앉은 눈빛이 지평선 끝까지 말을 달리고
그 눈길을 거슬러오는 오렌지 빛으로 물들던 자리에서는
잠시 인생을 아껴도 괜찮았다 그대랑 있으면
그러나 지금은 올 것이 온 시간
꼬리가 긴 휘파람만을 방목해야 하는 계절
주인 잃은 고백들을 들개처럼 뒤로하고
다시 푸르고 억센 풀을 어떻게 마음밭에 길러야 한다
(중략)
살기 위해 낯선 곳으로
양들이 풀을 다 뜯으면 유목민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는다
지금은 올 것이 오는 시간
양의 털이 자라고 뿔이 단단해지는 계절
<이현호, 양들의 침묵[8]>
절제된 서정성과 이미지즘이라는 특성을 가진 박준 시인의 계보에 포함될 수 있는 시인을 찾아보았다. 위에 시는 2007년에 현대시로 등단한 이현호 시인의 작품이다. 시에서는 ‘그대’를 향한 마음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양과 말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 동물들을 통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초원을 떠올리게 된다. 초원은 광활하면서도 외로운 공간이다. 시인은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 잃은 고백’과 ‘새로운 목초지를 찾는 유목민’은 초원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랑의 끝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유목민이라는 심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양의 털이 자라고 뿔이 단단해지는 계절이라는 말을 통해 절제된 감정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의 끝으로 인한 초원 같은 광활한 공허감에 낙심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절제된 서정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결론
박준 시인은 첫 번째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후배 시인 및 문학인으로서 길을 걷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의 부류를 검토하는 과정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검토를 통해 박준 시인의 계보가 단순히 서정성에 근거한 김소월의 계보와 전통성을 바탕으로 백석의 계보에 포함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모더니즘의 이론인 이미지즘과도 연결시켜 정지용의 계보로 확장해 보았다. 박준 시인의 작품에서는 심상을 통한 절제된 감정의 분출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시를 잇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박준을 과거 시인들의 계보에 포함시켜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 ‘절제된 서정성’이라는 새로운 부류의 탄생으로 그의 작품의 의의를 확장해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박준’이라는 인물을, ‘박준의 시’라는 예술을 발산적이면서도 주체적인 기준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본고를 작정하며 느낀 점은 박준 시가 더욱 더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던 과정에서는 단순히 모더니즘 시와의 연관성만을 생각했으나 리얼리즘 시와의 연관성 또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 또한 많이 있을 것이다. 이는 박준 시인의 글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시’라는 장르의 필연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과학과 수학처럼 한 가지 정답이 분명하게 연결되는 것이 아닌 해석과 감상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시인의 계보를 작성하여 분류하는 것은 무의미한 활동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지형도를 그리는 것은 시를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닌 역설적으로 그 가능성을 열어 주기 위한 도움닫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저 작은 섬의 지형도가 아닌 시라는 무한한 우주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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