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변호사의 법으로 세상 보기] 칼럼을 시작하며…
2000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세기 말, 당시 사법연수생이었던 저는 주위 몇몇 분들과 함께 “열린 네트워크”라는 온라인상의 작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열린 네트워크는 그 이름 그대로 “열린” 공간으로 10대의 중학생부터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평범하고 소박한 회원들이 함께 모인 곳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우리가 가진 것만큼, 열심히 돕겠다는 마음들이 모인 그런 곳이었습니다.
우리 모임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도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도와주려 했던 친구들. 우린 점점 그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그들이 겪는 일상의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어려운 삶을 도울 수 있는, 장애 때문에 차별받지 않게 만드는 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열린 네트워크에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동기였습니다.
점차 우리는 장애를 가진 회원들과 하나가 되어 장차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국토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또 제주도를 걸으면서,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누구는 휠체어를 타고 누구는 걸어서 그 뜨거웠던 여름을 우리는 그렇게 전 국토를 누비며 분투했습니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국토순례는 이어졌습니다. 새천년을 우리는 이렇게 뜨겁게 시작한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종로의 거리를 누비기도 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다시 거리에 나섰습니다. 장차법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어떤 때는 열린 네트워크의 대표로서, 어떤 때는 일선의 변호사로서,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면서 장차법이 만들어지는 감격스러운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아니 우리는, 장차법의 제정과정을 통해 법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또 어쩌면 사회의 토대를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법률가로서 그때의 감격과 감동은 일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변호사로 현장에서 법을 다루면서 법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법이 없다’는 대답 한 마디면 더 이상의 방법은 없었습니다. 예전에 장애를 이유로 대학교수가 되지 못한 분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배상의 근거로 제시할 법이 없어 난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얼기설기 헌법상의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을 개진했지만, 이제는 장차법이 있으니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셈입니다.
그러나 사실 법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이 아무리 좋은 규정을 가지고 있어도 강제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법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법을 시행할 수 있게 하는 하위 법령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법의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절차나 방법이 없거나 매우 까다롭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법이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하려면 제정에서 시행까지, 나아가 권리구제까지의 모든 단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장애영역에는 복지와 인권(차별금지)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축이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복지’에서 ‘인권’으로 그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지가 타인과 관련되는 접점은 매우 멀어 타인의 권리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국가의 정책이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지만 내가 낸 세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쓰이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인권’은 항상 타인과의 갈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당위만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법’으로까지 자라가려면 그 법이 성장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법이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가 무엇인지, 그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이 있는지 등의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법은 다른 법률과의 충돌로 인해, 혹은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리기 위해 제정 초기에는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점차 충실한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법의 개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발견된다면 사회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개정은 앞당겨 질 수 있습니다.
또한 법에 규정된 개념들을 해석해 내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됩니다. 예들 들자면 장차법의 ‘정당한 편의제공’에서 “정당하다”는 개념은 누구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법의 제정만으로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반대 당사자들과의 갈등 속에서 나름의 기준이 설정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결국 법 자체는 국회를 통해 만들어지지만, 실제로 법의 씨앗이 자라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것은 사회라는 큰 토양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칼럼을 통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애와 인권 그리고 법과 관계된 문제들을 하나씩 법이라는 관점에서 독자들과 함께 바라보고자 합니다. 근원적인 사회적 계기까지는 폭 넓게 다루기는 어렵겠지만, 만약 구체적으로 법과 관련되어 있는 사안이라면 그 법이 현재 이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현재의 법만으로도 충분한지 등을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열린 마음으로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조금씩 바뀌어가는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지난 10년 전, 작은 소망들이 모여 법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처럼 이 칼럼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2010년을 새롭게 출발해 보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삶에 기쁨이 넘쳐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에이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