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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시편-12 선견자 아삽의 지혜(시편 50편 1-5절)
성경 말씀은 시편 50편 1절에서 3절까지 봉독합니다.
[시편 50편] <아삽의 시>
1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시편을 살펴보는 중에 여태까지 우리는 거의 다윗의 시, 그리고 고라자손의 시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50편에서 어찌해서 ‘아삽의 시’가 한 편 끼어있는지 아직도 이유를 정확하게 진단이 안 돼요.
왜냐하면 이 아삽의 시는 총 12편이 성경에 있는데, 73편부터 83편까지 다 모아놨거든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50편의 시를 왜 49편과 51편 사이 여기에다가 갖다놨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돼요.
이왕이 모을 바에 73편부터 84편까지 하든지, 아니면 72편에 50편을 갖다 놓으면 한테 모여있을 텐데, 한편을 왜 따로 떼어다가 50편에 두었는지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고민이 해소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왜 따로 떨어져서 떼어져 나왔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아삽에 대해서도 우리가 별로 교회에 소개가 안 되었어요.
그것은 고라 자손은 지난번에 조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아삽이라는 사람은 성가대 지휘자 이기도 하고 또 예언자로 존경을 받던 그런 분이었어요.
역대기에 보면, ‘아삽을 선견자라’ 다시 말하면 선견자 하면 선지자와 비슷합니다만 조금 의미를 달리해요.
그래서 뭐든지 그래도 남들보다 먼저 깨달은 게 있어야 선지자죠.
또 남들보다 먼저 내다볼 수 있어야 선견자죠.
여러분 어떻습니까? 저는 선지자도 아니고 선견자도 아니고, 시골에서 제일 소심해가지고 도시로도 못 나가고,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지만, 제가 꽤 미리 말한 것 많죠?
거의 10년 전부터 이야기 하는데, 제가 10여년 전부터 미국은 반드시 앞으로 흔들린다.
미국을 따라가면 반드시 망한다. 그런 얘기를 쭉 해왔는데 상당히 맞는 것 같죠?
좀 더 두고 봐야 돼요.
그렇지만 저는 진작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망하게 된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 아무도 안 믿었습니다.
미국이 망하다니.. 한국이 망했으면 망했지 미국은 안 망한다.
미국만 따라가면 될 줄 알았는데, 미국은 되는 게 없습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학문적으로도 이제는 미국 시대는 건너갔어요.
경영학도 미국사람이 한국에서 배워야 미국 경제가 되지 미국에서 배워서는 되는 게 없습니다.
그런 것도 제가 오래전에 홈페이지에도 오래전에 올려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범사에 한국 사람들이 미국을 천국보다 더 사모한다고 잘못 되었다고..
그렇게 이야기 할 때 우리 성도들까지도 아예 안 믿거나 긴가민가 하거나 글쎄 참..
이렇게 봤을 텐데..
지금 미국경제 미국나라 미국위상이 다시 옛날의 그런 위상으로 회복되기 어렵지 않겠나. 앞으로.. 거의 치명상을 입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경제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양반 판단은 실수가 없다는데 이번에 나와서 고해성사를 합디다.
자기 생각이 ‘일부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일부가 아니고 근본이 잘못되었어요.
그래서 돈 가지고 너무 장난을 많이 쳤다는 거야.
돈과 숫자 가지고 장난을 너무 심하게 치고, 제조업 같은 것은 우습게 여기고, 전부 IT 그런 것으로..
여러분 IT BT 하는 게 어느 분야에는 필요하죠. 필요하지만 그것이 인간 삶의 전체에 삶의 질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을 내가 진작에 보고 끊임없이 김대중 정부때 IT BT 하지만 그것은 한 파트이지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다.
저는 지금도 늘 염려하는 게 우리 땅이 겨울 동안에 보리도 안 갈고 밀도 심지 않고,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된다고 해서, 농사를 등한히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돼요.
숫자노름을 해가지고 그것이 경제적 가치가 얼마냐 이런 것을 따지면 안 되고, 여러분 밥을 가지고 쌀을 가지고 돈으로 계산하면 안 돼요.
이것은 생명 물질이예요.
그래서 진짜 선진국 나라는 농사를 포기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농사를 등한히 소홀히 하는 거예요.
그런 저런 것을 미리 말씀드린 것이 있는데, 성도와 교회를 기독교 교회 목회자 신학자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10년은 앞을 내다봐야 돼요. 10년을..
교회가 이 사회에서 그렇게 못하고 그러니까 우리 한국교회 목회자들 설교를 보면 10년 앞을 내다보고 누가 바른 말 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눈 앞에 펼쳐진 현실도 분별을 못해 가지고..
지금 나라나 경제나 다 망해가고 있는데, 계속 괜찮다고 ‘긍정의 힘, 긍정의 힘’ 하면서..
나는 조엘 오스틴이 지금도 긍정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영적으로도 거의 파탄으로 가고 있고, 경제나 무슨 생태계나 환경 문제나 전체적으로 노아 홍수 이후에 가장 인간이 위험한 현실에 직면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긍정 긍정 잘되고 잘되고 잘된다..’ 뭐가 잘 되는 거예요. 잘 되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 아삽이라는 사람이 비록 성가대 지휘자였지만, 아삽 헤만 에단 이 세 사람이 다윗 시대에 성전에서 봉사하는 성가대 3조가 있었어요.
처음에 3조로 나누어서 해가지고 나중에 다윗이 해보니까 3조가 부족하다 해가지고 나중에는 24반열로 성가대 팀을 나누었죠.
그러니까 다윗 시대에 성가대가 24반열이예요.
문지기도 24반열, 제사장도 24반열..
그러니까 1년 중에 두 주간을 집중으로 봉사하게 된 거죠.
우리 교회도 아직은 숫자적으로 미약하니까 아직 안 되는데, 저는 집사님이 240명 되었으면 좋겠다...
집사 장로 권사님 해서 재직이 240명 쯤 되면 한 반열이 두 주간씩 상반기 한 주간 하반기 한 주간, 그 때는 청소 주방 안내 봉사 범사에 1년에 두 주간.
두 주간 밖에 안 하니까 그 때는 전심전력해서 최선을 다해서 했으면 좋겠어요.
이왕 하는 것 24반열로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봅시다.
재직이 240명 쯤 되면 그러면 10명이 1년에 두 주간, 상반기 한 주간 하반기 한 주간 이렇게 책임을 지고 교회 봉사를 하면 참 좋겠어요.
그런 것도 제가 성경에 역대상하서를 보면서 아이템을 거기에서 배운 거니까..
큰 교회 같으면 240명만 되겠습니까? 2400명도 되겠죠. 그러면 정말 멋있게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거기에 아삽 헤만 에단 이렇게 성가대 지휘자들인데, 처음에 다윗이 법궤를 기럇여아림 혹은 바알레유다에 있던 법궤를 메어 올릴 때, 이 아삽이 앞장을 서서 찬양을 인도했는데, 그 길로부터 법궤가 들어온 날부터는 계속해서 성막 가까이에서 성가대를 잘 이끌어 가도록 그렇게 다윗이 지시를 했고, 나중에는 아예 24반열로 그렇게 더 확장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아삽은 어떻게 보면 성가대장이라 이렇게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여두둔과 함께 성가 앞에 총 지휘자로 이렇게 임명을 받았고, 그래서 그들은 신령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까 영적인 노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영적인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여두둔은 그 아들들과 함께 수금을 담당합니다. 악기 중에서 수금.
수금은 지금 같으면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는 수금이 없고, 이렇게 생겨 가지고 줄이 있는데, 다윗은 그 악기를 자기가 자기 손수 만들기도 하고 연주도 하고 다윗은 작곡 작사 악기제조 연주 노래까지 하니까 가창 실력이 대단하죠.
그래서 다윗이 자기가 노래를 잘 하기 때문에 성가대 쪽에서 관심이 많고, 지도를 잘 했던것 같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노래를 잘 모르니까 성가대에서는 제가 할 말이 없어요.
잘 하는지 못 하는지 무조건 소리가 크게 나오면 잘 하는 거겠지..
저는 소리가 작게 나오면 연습이 덜 되었구나. 어차피 음을 잘 모르니까..
‘도’인지 ‘레’인지 잘 모르니까..
다윗은 그렇지 않았어요. 다윗은 자기가 워낙 음악을 잘 했기 때문에 성가대가 배웠을거야.
다윗이 워낙 음악에 까다로우니까..
성가대는 노목사가 음악 잘 모르는 것 감사 하세요.
그 다음에 헤만이라는 사람은 자기 아들이 17명인데, 헤만은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담당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고, 헤만도 지혜자 중에..
선견자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헤만도 지혜자 중에 있었고, 역시 여호와를 찬송했고, 그의 자손 아삽의 가족들과 여두둔의 가족들 헤만 가족들 이런 사람들이 대개 성가대로 일평생 다윗 시대부터 있었고,
그 후손들이 나중에 바벨론에 포로갔다가 돌아올 때 보면 128명이 돌아왔어요.
128명의 성가대원들이 노래하는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노래하는 사람 하면 다윗시대 이후로 있기는 항상 있었어요. 끊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왕들이 정치 성향에 따라서 활발하게 하다가 잠잠했다가 이렇게 했는데, 끊어진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리고 바벨론 포로 돌아올 때는 분명히 128명이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있다가 성전기공식을 할 때 보면 148명이 노래하는 자 중에 있었다는 거야.
돌아온 사람들 중에 보니까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아삽의 시가 지금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50편과 그 다음에, 73편에서 83편까지. 다 합하면 12편이 아삽의 시예요.
아삽의 시를 한번 봅시다.
오늘 제목은 ‘선견자 아삽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정했는데 아쉽게도 이게 50편만 아삽의 시이고, 51편 52편은 다윗의 시로 넘어가니까 이럴 때는 제목이 좀 그렇죠?
이어서 같은 사람의 시가 아니니까..
그래도 50편은 상당히 놀라운 신학이 들어있습니다. 50편은 특별한 신학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50편을 중심으로 공부할려고 합니다.
[시편 50편] <아삽의 시>
1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자, 이것은 굉장한 얘기죠.
유대인들이 아직까지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야곱의 자손 자기들만 선택하고 부르셨다, 이렇게 아주 졸속하고 편협한, 더 나아가서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는데,
아삽이 깨달은 것은 선견자로서 깨달은 지혜는 ‘이스라엘만 부른 게 아니라 세상을 다 부르셨다’는 거야.
또 세상을 부르기 위해서 사실은 이스라엘을 택한거죠.
굉장히 놀라운 겁니다.
여러분이 볼 때는 별로 안 놀라도 저는 볼 때 굉장히 놀라운 거예요.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이것 못 깨달았어요. 지금도 모르거든요.
세상을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 민족만 선택받았다고 이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 거예요.
여러분 유대인들이 제대로 한게 아무것도 없어요. 역사를 보면 제대로 한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한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성경을 거의 유대인 손으로 해서 완성을 시켰다는 거예요. 성경을..
‘누가’라고 하는 사람이 이방인 하나 끼어있습니다만 그 외에는 전체가 유대인 손에 의해서 성경이 완성 되었다 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이 땅 사람들에게 인류에게 역사가 내려오는 동안,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서 완성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세상 그 어떤 업적보다 더 위대한 거예요.
여러분 인간이 해 놓은 업적 중에 성경책을 완성한 것 이것보다 더 큰 것 있으면 내놔봐요.
어떤 나라가 컴퓨터를 발명했다. 그것 중요한게 아니야. 텔레비젼을 발명했다. 그것도 그리 중요한게 아닙니다. 자동차를 발명했다.
그것도 다소 도움이 되지만, 저는 온 세계가 지금 200여 개국이 있다고 하는데, 200여 개국이 다 해놓은, 인류역사 전체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일 보다도 이스라엘 이 작은 민족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완성했다는 이것보다 더 큰 업적은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제가 성경과 씨름하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 그 유명한 미국의 초창기 독립운동 투사였던 페트릭 헨리라는 사람이 있어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한 그 페트릭 헨리가 무슨 말을 했느냐?
‘성경의 가치는 인류 역사상 출판된 모든 책을 합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페트릭 헨리가 한 말이예요.
사람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 말이 페트릭 헨리가 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보다 더 유명한 말 ‘성경의 가치라는 것은 이 지구상에 출판된 모든 책을 합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이렇게 유명한 말을 했는데 그것은 잘 모르고 있어요.
내귀에는 그런게 잘 들리는데, 사람들에게는 딴게 들리는 가봐.
그래서 내가 일찍이 그런 말을 듣고는 어떻든 페트릭 헨리의 말이 다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할 정도의 책이라면, 그 말이 참인지 아닌지 차치하고라도 어떤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정도의 책이라면 공부해 볼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저는 성경공부에다가 올인 하다시피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별로 의의가 없거든요.
제가 지금도 우리집에 있는 책이 몇천권 될텐데, 좀 보다가 이런 쓰레기 같은 것 필요없다 해가지고 산청기도원 헛간 창고에 박스에 재어놓은 것도 꽤 많고..
그런데 책을 손에서 지금도 안 놓고 계속 제가 만지고 보고 하는 책은 몇권 안 돼요.
지금도 성경을 끝까지 붙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온에서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그 빛은 말씀의 빛이고 진리의 빛이고 생명의 빛이고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거예요. 어떻든간에..
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을 ‘불’로 표현한 곳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실 때 시내산 떨기나무 불 가운데서, 아니면 불기둥 가운데서 시내산 위에 큰 구름과 영광 가운데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걸로 그렇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성소나 지성소가 만들어졌을 때 거기도 항상 불이 임재해 있는 것이 보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죠.
4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신학중에 ‘하나님이 재판장이시다. 심판장이시다.’ 그런 말씀이 나와요.
먼저 세상을 심판하기 전에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한 백성부터 먼저 심판 받게 될 것이다.
복이나 은혜를 받아도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심판을 받는 것도 첫째는 유대인에게..
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심판. 여러분 이 땅에서 보통 판사가 있어서 재판하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형이죠.
하나님이 재판할 것의 모형에 불과한 거예요.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여러분 산의 새도 다 하나님 것이랍니다.
제가 하도 산청을 좋아하고 지리산을 너무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고 하니까 누가 와서 묻더라고..
목사님은 뭣때문에 지리산을 그렇게 좋아합니까?
나도 잘 모르겠더라고..
모르는데, 제가 한 번은 산 깊은 곳에 가서 생각이 잠깐 스쳐지 나가는데, 어떤 시를 쓴 사람의 시 한구절이 생각이 나는 거야.
산을 보고 노래하기를 ‘산이 새 한마리를 기를 줄 아는 너’라고 표현한 것인데, 시말 중에 산을 두고 참으로 새를 제대로 기를 줄 아는 너.
산을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새를 기르라고 하면 기르는게 아니라 감옥을 만들어 버리죠.
철장을 바로 만들어서 가둬버리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철장 문을 못 열죠. 왜 그래요?
감옥에서 나가면 다시 들어오겠어요? 안 들어오는 거지..
그런데 산은 어때요? 감옥을 만들지 않죠? 완전히 풀어놓고 산이라는 품속에 새가 다시 날아오게..
새를 기를 줄 아는게 바로 산이다.
새 한마리만 기르는게 아니라 제가 지리산에 보니까 참새 박새 비둘기 뻐꾸기 꾀꼬리 종달새 곤줄박이 별의 별 새를 다 기르는데 꿩도 기르고 다 놓아서 길러. 까마귀 까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그 새가 절대로 산을 배신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산으로 돌아오죠.
그러니까 그런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르신다는 거죠.
다른 데에 보면 까마귀 새끼가 배가 고파서 오락가락 할 때 그것들을 위해서 먹이를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나 하나님이 하는 것 아니냐?
그래서 산을 통해서 하나님이 새를 기르시고.. 그러니까 그것 다 하나님 것이예요. 새들도..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물에 목이 마른게 아니라는 거예요.
제사에 하나님이 숨 넘어가는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물은 항상 있지..
내가 제물 없다고 해서 내가 너희 집에 가서 양을 빼앗아 먹겠나? 소를 빼앗아 먹겠나?
내가 정말 염소의 피나 송아지의 피를 마시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게 아니고 뭐냐?
이것이 아삽의 진리의 핵심인데, 이 부분 잘 보셔야 돼요.
9절에,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그런게 아니지 않느냐? 그런게 아니고 뭐냐?
14절이 핵심이죠?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자, 여러분 인간이 깨닫는 최고의 지식이 하나님을 깨닫는 거예요.
인간의 지식이 도달하는 최고 정점에 하나님을 인식하는 인식이 최고 인식인데, 그 하나님 인식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거예요
그 은혜를 깨닫고 진심으로 사람이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면 그것만 해도 충분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물 갖다바치고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 받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가 정말 은혜를 깨닫는 것 같아요? 잘 못 깨달아요.
하나님의 은혜가 한두가지라야 깨닫지..
물론 이것 원예하는 분들이 정성을 다해가지고 길렀습니다만 사람이 한 것은 꽃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씨를 심었고 물을 주었고 거름을 좀 줬지 실제 이렇게 자라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이런 것도 사람 정성으로 길렀다지만, 사람 정성을 하나도 안 바쳐도 산의 진달래꽃을 보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주 무미건조하게 꽃도 하나 없이 그렇게 하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이런게 아니고 제법해가지고 비록 작은 꽃이지만 안개꽃만한 꽃이 꽃을 피우는 식물은 더 반갑겠지요?
생명이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그것을 더 넘어서 더 나아가서 움직이는 딱정벌레라도 한 마리 봤으면 그것 얼마나 반갑겠어요? 생명이 없는 곳에서..
전혀 자기 혼자 같고 이 세상에 아무 생명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벌레를 한 마리 봤으면 굉장히 반가웠을 거야.
이 분이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하느냐?
자기 집에 개가 한 마리 있는데, 개와 주인이 장난을 치는 거야.
여러분 개가 사람과 장난치는 것 봤어요?
주인이 개에게 손가락으로 쿡쿡 찔어요.
그런데 누가 얼른보면 개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개도 주인이 자기를 괴롭히는 게 아니고 주인이 장난으로 하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이게..
주인이 장난으로 쿡쿡 간지르고 찌르니까 개도 따라서 장난을 치는 거야. 주인과..
주인의 손을 무는 척하면서 진짜 아프게 물지는 않고 안 아플만큼 물었다 놨다 하는 거예요. 개도 주인이 장난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인식을 한다는 거죠.
풀잎이나 또 벌레는 우리가 건드려봐야 장난하는지 잡아먹는지 인식되거나 교감이 안 되잖아요. 감정적으로 의사 소통이 안돼요.
그런데 강아지와는 그런 의지와 감정이 어느 정도 전달되는 거죠.
그것 때문에 개와는 어느 정도 교감되는 것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거죠.
내가 무슨 말을 할려고 이런 말을 할까요?
사람이 사람과 한 집에 살면서도 교감이 안 되어가지고 마음이 안 통해가지고 이혼을 하거나 그런 수가 많잖아요. 전혀 행복하지 않거나..
개도 장난으로 하는 것을 아는데, 농담으로 한 것을 오해해가지고 삐지고 토라지는 사람이 있다든지 이런 것도 있죠.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은 거기까지 하면 이야기 끝납니다.
저는 끝이 안 나요.
저는 생각할 때, 그래 개도 주인이 자기를 기뻐하고 같이 즐기자고 이렇게 장난을 칠 때 개도 주인의 장난을 인식을 하는데,
사람이 되어가지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만가지 은혜,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꽃을 보내되 봄에 진달래 개나리부터 가을에 국화까지 끝없이 한없이 보내어도, 전혀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그런 어떤 인식도 못하고 감각도 없이 그냥 우연히 피었다 자연히 피었다 하고.. 네가 가 봐라. 하고..
또 과일을 봄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 끊임없이 보내고, 오곡백과를 보내고, 또 사랑스러운 아내를 보내고 믿음직한 남편을 보내고 귀여운 자녀를 보내고, 우리를 즐겁게 하려고 강아지가 우리 마당에 뛰놀게 해 주고 별것을 다 해주는데도,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가 살아간다면 이게 정말 사람이냐?
그래서 우리가 굉장하게 해가지고 무슨 위대한 일을 한다는 것은 놔두고, 은혜나 깨닫고 감사하자는 거예요. 감사하자고..
대사를 경영하고 무슨 천하의 유명한 세계적 인물이 될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세 이후로 한없이 끝없이 베푸시는 그 은혜라도 깨닫고 거기에 감사를 했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끝없이 베푸시는 은혜, 나중에는 심지어 그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놓는 그런 은혜까지 베푸시는데, 그런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닌 거야.
사람이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존귀에 처하나 장구치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뭐가 다르냐?
이것이 시인의 노래죠.
그러니까 여러분 이 아삽이라는 시인은 대단한 사람 맞죠?
그리고 굉장한 일 하나님을 위해서 굉장한 일은 놔두고, 약속이나 지키라. 서원했던 약속이나 지키라고 그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가 어려울 때 어려우면 어렵다고 와서 아빠에게 이야기를 해야지, 자기 힘으로 해결도 안 되면서 자존심 때문에 아버지에게 오지도 않고..
그런 것도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거예요.
어려우면 어렵다고 와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지..
인간도 마찬가지.. 어려우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환난날에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께 부탁을 했더니, 하나님도 들어주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도저히 능력도 안 되고 형편도 안 되면 모르지만, 아버지가 어려워서 도저히 도울 수 있는 힘도 없다면 모르지만, 아버지가 충분히 도울 수 있는데, 환난날에 와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무시하고 아버지 사랑을 호의를 무시하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감사로 받은 은혜 감사나 할 줄 알고, 약속이나 서원한 것을 지키며 어려울 때 겸손히 내가 잘못했고 어려움 당했는데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환난날에 내가 너를 건져주는 이 사건으로 해서 그렇게만 했어도 내가 충분히 영화롭게 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런 것 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어려울 때 환난날에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싶은 거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건성으로 하고 이렇게 하니까..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어떤 분은 그런 말을 하죠.
‘인간의 고난이 때로는 하나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제가 가끔 하는 얘기죠? 죽음도 고통도 질병도 아픔도 없으면 세상에 종교도 없고 철학도 없을 거예요.
어려우니까 하나님을 찾는 거죠.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여러분 우리가 굉장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면 안 돼요.
하나님 약속을 무시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을 많이 섭섭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는,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교만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죠.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의 최후죠.
여러분 러시아의 대문호인 솔제니친이라는 사람이 얼마전에 82세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분이 서양세계에 경고라는 책, 연설문 몇개 모아서 책이 나와있거든요.
제가 갈비뼈 다쳤을 때 누워서 읽으면서 솔제니친과 친해볼려고 서양세계의 이런 저런 곳을 다니면서 연설했던 연설문이 책으로 나왔는데, 거기 한 파트가 서양 세계가 하나님을 버렸다고 큰 지적을 하는 거야.
배가 부르니까 하나님을 발로 찬 것이 아닌가?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
여기,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그래서 여러분 악 중에 악이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거야.
그게 바로 무시(無視)죠. 무시.
여러분 무시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 이게 무시야.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무시요 멸시.
없는 것처럼 만들겠다 하면 그것은 멸시(蔑視)이고,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무시(無視)예요.
여러분이 어디에 갔는데 여러분이 왔는지 인사도 안 받고 눈길로 안 주고 하면 그게 무시죠.
없는 것처럼 여겨버린다.
인간들의 교만의 극치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거예요.
영국의 엊그저께 신문을 보니까, 어떤 단체가 버스에다가 대형버스 옆에 광고를 하는 거야.
그 광고 내용이 뭐냐 하면 ‘아마 하나님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를 마음껏 즐기시오.’
그래서 그 광고를 내겠다고 제안했더니 ‘신은 허구다’ 하는 책을 쓴 옥스퍼드 교수 리차드 도킨스라는 사람이 ‘아 그것 좋은 아이디어’라고 1500만원 기부금을 내겠다는 거야.
아마(probable) 를 쓰면서, 아마 하나님은 없을 거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를 마음껏 즐기시오. 하는 광고를 영국의 대형버스 옆에 붙여내는 거야.
그래서 그 광고의 목표액이 얼마인데 9배나 더 걷혔어.
그 광고를 위해서 기부금을 낸 사람이 예상보다 9배나 더 나온거야.
저녁에 내가 그 인터넷으로 찾아서 그림으로 보여 드리겠어요. 영국이 그 모양이야.
교회가 그것을 대단히 환영을 했다고 해요.
왜 환영을 했는지 보니까 하도 인간들이 하나님은 완전히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광고를 내면 사람이 하나님이 정말 있는가 없는가 생각이라도 한번 해보지 않겠나? 하고 교회측은 환영을 한 거야.
온 영국 국민들이 하나님을 잊었다는 거야.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 없다는 말도 안해버려요. 아예. 그 정도로 타락한 거예요.
22절,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참 아삽의 지혜죠.
우리가 굉장한 하나님을 위한 대사를 경영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제대로 하라는 거예요.
51편은 다윗이 범죄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을 때에,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자인하고 깨달으면서 그렇게 하나님께 절규했던 시인데,
[시편 51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말이 어렵죠?
어떻든 자기가 죄를 주께 범죄해서 악을 행했는데, ‘주 앞에서 어떻게 내가 의로우시다 판단할 수 있겠으며’, 이렇게 해야 될 텐데, 번역이 좀 어렵습니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것을 가지고 어떤 분이 질문을 하기를 혹시 다윗이 불륜의 관계에서 태어났습니까?
이런 질문이 수시로 올라와요.
그것은 원죄의 죄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냥..
이게 특별한게 아니고 다윗이 무슨 불륜의 관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원죄에서 우리 어머니도 별 수 없이 똑 같이 죄인중의 한 분이다. 그런 뜻입니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결례, 죄를 지은 사람이 속죄제를 드리고 다시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서 결례 절차가 있는데, 그 결례 절차를 이야기 합니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그러니까 다윗이 범죄한 게 있을 지라도 이것이 반복되거나 지속적이거나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순간 일어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그것을 그렇게 통한히 여기고 했을 때,
하나님 앞에 누리던 모든 즐거움도 퇴색되어 버리고 그러니까 다시 자기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구원을 회복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거죠.
..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여러분 사람이 일생 이런 죄를 안 짓고 살면 좋겠는데, 한편은 이런 죄를 지었던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죄 지은 사람들, 또 죄에 빠지기 전에 어떤 예방을 할 것인가 지도하는데 하나의 경험이 되는 거죠.
이런 저런 범죄와 고난 자체는 즐거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의 자산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너무 고생도 안 하고 너무 곱게만 큰 사람들 보다는, 삶에서 겪는 이런 저런 많은 역경과 고난은 그것을 헤쳐오는 사람들에게 자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거죠.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다윗이 간음도 하고 살인도 하고 했잖아요. 그 죄가 자꾸 생각나니까..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여러분 사람이 자꾸 죄를 범하면 찬송하는 입이 닫히고 기도하는 입이 닫히고 전도하는 입이 닫혀지는 거야.
예배시간에 오면 저 뒤에 앉고 좀더 심하면 아예 안 나오고..
아니면 기둥뒤에 숨어 앉았다든지..
아니면 누구 등뒤에 숨어있다가 목사 얼굴도 안 보고 있다가 예배드린 줄 알고 가고..
여기 말고 딴데..
범죄하고 나면 자꾸 사람 마음이 어두워져요. 피하고 숨고 도망가고 그런 기질이 있습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나면..
그래서 다윗도 범죄한 후에 입술이 자꾸 닫히는 거예요. 입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죠.
점점 이러다가는 자기가 완전히 자기 안에 갇히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그래서 자기가 자기 안에 갇혀버리고 입을 닫아버리면 자폐증에 걸릴 수 있어요. 자폐증.. 위험한 거죠.
그래서 자폐증으로 가지 않는 것이 자백하는 거예요.
헬라로 ‘자백한다’하는 말이 ‘호몰로게오’라고 호몰호몰해서 다 게워낸다고.
학교에서 그렇게 암기가 안 되니까 외국어가..
호몰로게오. 자백을 해야 자유합니다. 범죄한 것 실수한 것 감추고 숨겨봐야 피가 되거나 살이 안 돼요. 다 털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믿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가 정말 범죄하고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다가갈 때, ‘과연 하나님이 미워만 하시겠는가 그렇지 않겠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추스리는 거죠.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그래서 모든 신앙생활이 정상으로 회복되기를 희구하는 내용입니다.
52편은 처음에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서 망명길 들어가기 전에 아히멜렉의 집에 가서 빵을 먹고 그리고 골리앗의 칼을 받아 나오는 그 때에, 도엑이라고 하는 에돔 사람이 아주 사울의 첩자 같은 사람인데 봤어요.
도엑을 보자마자 다윗이 아주 영감을 받아서 ‘저 악한 놈’ 하면서 52편에 도엑을 보고 한 말 같아요.
[시편 52편]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더라 말하던 때에>
1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악한 일도 일이지만, 악한 일을 하기 위해서 사전에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계획을 세웠다는 거예요.
이런 악인은 용서받는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순간적인 실수는 용서 될 수 있는데, 계획적으로 악을 도모하는 사람들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악을 행하는 이런 사람은 속죄하는 제사가 없어요.
..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그러니까 다윗을 고발하듯이 다윗을 고발하는 입장에서 아히멜렉을 고발하는 거죠.
다윗에게 빵을 주고 빵을 줬다 해가지고 아히멜렉을 고발했던 도엑인데,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삭도’라는 것은 면도칼 같은 칼입니다. 삭도가..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에돔 사람 도엑이 어떻게 사울 휘하에 와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아마도 그는 상당히 재력가예요.
여러분 사람이 돈 가지고 있으면 돈 갖고 만족이 안됩니다.
사람이 돈 가지고 만족이 되는게 아니고, 돈은 충분하다고 하면 반드시 그 다음에 명예를 추구해요.
명예를 추구하고 국회의원에 나갔다가 떨어지면 돈 쌓은 것 전부 다 떨어먹고 패가망신하게 되고, 되었다면 뇌물받고 감옥가면 끝나는 거죠.
이게 꼭 돈이 좀 준비되면 명예를 추구합니다. 인간이 그래요.
도엑도 돈만 가지고 만족이 안 되니까 사울 왕에게 가서 무슨 관작이나 벼슬을 했겠죠. 보나마나..
사울은 인물됨을 보지 않고 사리분별력이 없어서 돈 가지고 온다고 매가 매질을 한 거죠.
그런 악한 사람이 도엑이라는 사람이야. 에돔 사람인데 어떻게 사울 왕에게 가서 벼슬을 했겠어요?
이 사람 때문에 나중에 제사장 80여명이 죽습니다. 이 도엑 때문에..
..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그러니까 악한 방법으로 계교를 베풀고 돈을 모으고 그것을 가지고 명예 관직에 나아가서 이런 악한 사람이 도엑이라는 거예요.
8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이 도엑이 자기를 참소하고 아히멜렉을 참소하고 할 때도 다윗은 자기 스스로는 아직은 범죄하기 전이니까 젊을 때니까,
8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흔들리지 않겠다는 그런 말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은 제목과 다르게 51편 52편이 다윗의 시가 아삽의 시 뒤에 따라 나와서 흐름을 정리하기 어렵습니다만, 어떻든 저는 나중에 우리가 73편부터 83편까지 아삽의 시를 다시 연결해 보더라도 처음에는 50편은 놔뒀다가 아삽의 시 나중에 할 때 할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왜냐하면 시편 한권에서 그렇게 않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굉장히 신령한 그런 것 다 놔두고 한번 우리 사심 욕심을 다 내려놓고, 온 눈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 베푸신 모든 은혜를 한번 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인간이 양수기 만들 수 있고 저주지 만들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고 바다물을 민물로 담수로 만들고 있고 하지만 역시 비는 위에서 내려야 풍성합니다.
위에서 하나님께서 비를 퍼붓는데 일반물과 빗물과는 식물에게 있어서 영양도 다릅니다.
식물에게 있어서 영양소는 비가 와야 돼요. 물 가지고는 되는게 아닙니다.
물 속에는 질소가 없는데, 비가 수증기가 공중에 있을 때 거기다가 뇌성벽력을 치면 물방울이 떨리면서 공기에 있는 유리질소, 공기속에 있는 78%의 질소가 빗물에 담겨 내려오기 때문에, 그냥 일반 수돗물과 빗물은 식물은 다르게 생각해요.
그래서 뇌성벽력을 치면서 질소를 머금게 해서 내리면 공기는 맑아지고 식물은 춤을 추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야 되는 것이지..
제가 알고 있기로는 태어나서부터 이렇게 가무는 해는 처음이거든요.
내년 농사 어떻게 될까 염려 될 정도로 그렇게 가무는 땅에 얼마전에 비가 오니까 바싹 말라가던 단풍이 새로 회개하고 새롭게 물들어 보자 하고 오늘 아침에 영 단풍 색깔이 달라요.
심지어 단풍이라도 곧 떨어질 단풍이라도 비가 오니까 색깔을 곱게 내는 거예요.
우리가 인위적으로 과학으로 여러 가지 할 수 있지만,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아삽의 노래와 다윗의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도 깨닫지 못하고 그 은혜에 합당한 영광과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눈을 열어서 주의 기이한 은혜와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합당한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