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알베르 카뮈/김화영 옮김/민음사 2011년판
인간의 길
1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전염병 ‘페스트’를 보는 시각은 이 책에서 세 가지다. 자연적인 재앙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각이 그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본문에 나오는 카톨릭 사제인 신부의 시각으로 이것은 신의 뜻으로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럼에도 인간은 ‘페스트’에 저항해서 전염병을 퇴치하고 인간의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는 적극적인 시각이다.
여기서 인간의 길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인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어떤 길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길이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유독 인간에게만 길이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만 태초부터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있고 다른 생명체에게는 없는 것인가. 왜 유독 인간에게만 그 길이 주어진 것인가. 무엇 하나에도 속 시원하게 답해줄 수가 없는데 불필요한 물음만 제기한 것은 아닌가.
이 작품 『페스트』에는 아마도 위와 같은 질문에 어떤 답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2
인류는 최근에 작품 『페스트』와 같이 ‘코로나’ 전염병을 겪으며 수많은 사망자를 낳은 경험이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다. 당시 한국도 방역에 열심이었지만 가까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작품 『페스트』에서와 같이 한 도시를 완전히 폐쇄함으로서 ‘코로나’가 쇠퇴할 때까지 봉쇄를 풀지 않아 전 세계의 주목 아닌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갇힌 아파트 방마다 베란다로 나온 주민들이 서로 떨어진 아파트 주민들과 합세해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노래로 답하면서 서로 응원하는 장면이 안방 텔레비전에 수시로 방영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기도 했다.
3
작품 속에서 전염병 ‘페스트’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또 한편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중 높은 덕목이기도 한 ‘자유’에 대한 염원을 절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폐쇄된 도시를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들-신문기자 랑베르는 사랑하는 여자와의 사랑이 단절될까 두려워 음성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도시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익명의 시민들은 도청의 법령을 무시하고 탈출을 감행하다 사살된다-과 ‘페스트’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폐쇄된 도시 내에서도 밤만 되면 극장이나 카폐, 거리로 몰려나와 전과 같은 자유로운 일상을 연출해낸다. 이 모든 행위는 단 한 가지 무엇에도 구속받기 싫어하는 보편적 인간의 본능적 행위의 표출인 것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일상’은 일종의 집단의 오래된 관습이자 개개인의 ‘습관’과 같이 익숙한 생활 형태다. ‘페스트’에 의해 집단 폐쇄된 ‘오랑’시 시민들은 전염병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자신들의 안정된 삶과 생활을 영위하고자 몸부림친다. 그들은 도시가 폐쇄되기 이전보다 지역 사회의 여러 활동-예술문화 활동, 카페 및 주점, 식당가의 매상 증대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일부 부문에서는 전체적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난다. 책의 내용 중에는 ‘이 기회에 한밑천을 잡으려는’ 약삭빠른 장사꾼들도 등장한다.
4
‘페스트’에 의해 도시가 집단 폐쇄되고,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매일 늘어나는 추세에 따른 시민들의 공포심 증가,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집단적 몸부림,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페스트’의 지배가 느슨해지고 마침내 전염병을 극복하는 도시, 도청의 ‘페스트’의 종식 선언과 아울러 도시의 폐쇄가 끝나자 봇물처럼 도시의 거리 곳곳으로 달려 나와 서로 축하하며 환호하는 시민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3제국 나치스 독일의 전격적인 프랑스 침략과 아울러 진주,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군사 폭력적 지배, 프랑스 국민의 적극적인 레지스탕스 활동, 그리고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독일로부터 해방, 승리의 기쁨에 젖어 환호하는 파리 시민들의 역사적 장면들과 나란히 겹쳐지면서 일맥상통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런 일맥상통하는 장면들의 이면에는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며 안정된 일상을 영위하려는 인간 군상들의 억압에 대한 저항의식이 통렬하게 엿보인다.
5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바로 신문기자로 취재차 ‘오랑’시에 왔다가 ‘페스트’로 발목이 묶인 ‘랑베르’라는 인물이다. 폐쇄 초기부터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그가, 어느 날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목전에 펼쳐졌을 때 의사인 ‘리유’에게 돌연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하고 랑베르가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같이 나가시죠. 타루 씨의 사무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중략) “선생님.” 랑베르는 말을 꺼냈다.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타루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운전을 하고 있었다. 리유는 피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부인은요?”하고 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랑베르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는데 자기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자기가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남겨 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거북해지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이 작품 4부에서 일부 인용)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랑베르는 말한다. 여기 이 대목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한 번 눈여겨보고 생각을 좀 해야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바로 이 서평의 제목이기도 ‘인간의 길’이란 맥락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