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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장창!”
“태걸아, 이게 무슨 소리니?”
“엄마, 태걸이가 아니고 악동이가 공받기를 하다 유리창을 깬 모양이에요.”
“아니 얘야, 태걸이가 너고 네가 악동이니 그게 그거 아니야?”
“엄마, 나 학교 늦어요, 얼른 가야 돼요. 안녕!”
5학년인 악동이의 장난질은 6학년 아이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너무너무 심합니다. 예를 들면 야구공 받기 하다 옆집 유리창 깨뜨리기, 수업시간에 선생님 휴대폰에 전화하기, 소경 아저씨 하얀 지팡이 빼앗아 달아나기. 남의 숙제 베껴서 제출하기. 남이 먹는 빵 빼앗아 먹기, 6학년 아이들과 싸움질하기, 고양이 꼬리에 불붙이기 등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러나 한 가지 좋은 점은 여학생과 5학년 이하의 아이들과는 결코 다투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하긴 5학년 이하는 싸움질에 있어 도저히 악동이의 상대가 되지도 않지요.
학교에 가는 동안 악동이의 머릿속에는 오늘은 무슨 장난을 할까 그것만 연구합니다. 그때 6학년 아이들 두 명이 무언가를 들고 악동이 앞에 걸어가고 있었어요.
“야, 6학년 찌질이들! 너희들 손에 들고 있는 게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감추는 거야. 이리 줘봐, 어서!”
그때 덩치가 제법 큰 다른 6학년 학생 두 명이 뒤에서 이 광경을 보고 악동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야, 5학년 이악동! 좋은 말 할 때 그만 가지 그래.”
“그렇게는 못 하겠는걸.”
이제 싸움은 제대로 붙게 되었습니다. 학교로 들어가는 골목길은 싸움 구경을 하러 모여든 아이들로 꽉 찼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6학년 아이들이 악동이 담임선생님께 일러바치는 바람에 싸움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야, 이태걸, 그리고 6학년의 최근배, 권혁! 너희 셋은 교무실로 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어떻게 학교에 등교도 하기 전에 싸움질이니, 도대체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말이 안 나온다, 말이 안 나와.”
악동이가 벌을 서고 나서 교실로 돌아오니 칠판에 이렇게 씌어 있었어요.
< 5학년 이악동이는 방과 후에 학교 옆 소공원에서 기다려라. 두려우면 도망가든지. 6학년 형들>
“쳇, 누가 겁낼 줄 알고. 어디 열 명이 한꺼번에 덤벼봐라, 내가 눈 하나 깜박하나.”
“악동아, 6학년 아이들은 5명이 싸움에 끼어든데. 그런데 너 혼자서 괜찮겠어?”
악동이의 제일 친한 친구인 명훈이가 걱정이 되어 악동이에게 정보를 주었습니다.
“어차피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인데 뭘. 걱정하지 마.”
“6학년이 되어가지고 비겁하게 5명이라니.......”
“명훈이 너는 절대 싸움판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라. 나 혼자 알아서 해결할거야.”
수업이 끝나자 악동이는 혼자서 천천히 소공원으로 걸어갔습니다. 잠시 후 6학년 아이들 5명이 나타났답니다.
“과연 악동이답게 겁이 없구나.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만 항복하는 게 어때?” 몸집이 제일 큰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바로 내가 할 소리야. 비겁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악동이가 번개같이 주먹을 뻗어 몸집 큰 아이의 배를 질러버렸어요. 그러자 ‘아이쿠’ 소리와 함께 그 아이가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깡마른 아이가 머리로 악동이의 눈을 받아버렸네요? 우리의 악동이는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소공원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이 광경을 보고 쫓아와 아이들의 싸움을 말렸습니다. 그러자 6학년 아이들이 모두 달아나버렸고, 악동이는 다친 눈 주위를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나무 뒤에서 몰래 싸움구경을 하던 명훈이가 나와서 악동이를 부축했습니다.
“많이 다쳤니?”
“심하지는 않아. 그래도 네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고마워.”
“네 가방은 내가 들어줄게. 너의 집으로 같이 가자.”
“그래. 집에 가서 약을 발라야겠다. 그런데 엄마가 알면 기절하실 텐데. 악동이가 싸움에서 질 때도 다 있구나 하시면서 말이야, 흐흐.”
“그 통에도 농담이 나오니?”
저녁에 꽃가게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악동이의 파란 멍이 든 눈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어요.
“눈은 또 왜 그러니?”
“딴 생각하고 걷다가 벽에 살짝 부딪혔을 뿐이에요.”
“또 거짓말! 엄마는 거짓말하는 아이가 제일 싫더라. 너 또 아이들과 싸웠지?”
“엄마 걱정할까봐 살짝 거짓말한 것뿐이야.”
“참, 모레 주인집이 그동안 비워 두었던 안집으로 이사 들어와. 아저씨가 서울에서 이곳으로 발령이 나셨나봐. 식구는 젊은 부부와 너 또래의 여자 아이가 전부래. 그런데 너 또 말썽부리면 어쩌지? 유리창 깨뜨리거나 주인집 여자 아이와 싸우면 안되는데...........”
“엄마도 참! 내가 기사도 정신이 얼마나 투철한 줄 잘 알면서 그러시네. 행여라도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마세요. 내가 그 아이를 잘 보호해 줄게요.”
“그래 맞다! 그 점만은 우리 아들을 믿어도 돼.”
일요일 아침 주인집의 이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을 거들어주기 위해 엄마와 악동이도 팔을 걷고 짐을 날랐습니다. 여자 아이는 서울 아이답게 살결이 뽀얗고 참 예쁘게 생겼습니다. 악동이는 짐을 나르는 짬짬이 여자 아이의 고운 얼굴을 몰래몰래 훔쳐보곤 했죠.
“짐이 많지 않으니 오전 중에 마칠 수 있겠네요. 태걸이네 식구들이 거들어주어 한결 수월하군요. 그리고 혜리는 몸이 약하니 무거운 짐은 들지 마라. 참, 너희 둘이 인사도 안했구나. 같은 5학년이니 동갑이겠네.” 혜리 아빠가 말했습니다.
“나는 혜리야. 거들어줘서 고마워.”
“나는 태걸이야. 그럼 우리 학교에 같이 다니겠네?”
“응, 친구도 없는데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내가 너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게.” 그렇게 말하는 악동이의 볼이 그만 빨개졌네요!
다음 날 아침 악동이와 혜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악동이는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걸었지요. 그리고 혜리가 말을 시키면 그저 ‘응,’ ‘아니’하고만 대답했습니다. 천하의 악동이도 예쁜 혜리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네요!
그때 뒤에서 악동이를 약 올리는 6학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악동아, 꼭 신랑과 신부 같구나. 하하하”
“그런데 두 사람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쩌지?”
“어때, 형님들에게 공주님을 소개시켜라.”
하지만 악동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걸어갔는데, 몇 걸음 더 가다말고 도저히 못 참겠는지 혜리에게 귓속말로 가만히 말했습니다.
“혜리야, 빨리 걸어서 먼저 교실로 들어가, 뒤에 오는 저놈들을 그냥 둬서는 안되겠어.”
“싸우려고 그래?”
“이 녀석들이 해도 너무 하잖아? 어서 가!”
혜리를 먼저 보내고 악동이가 뒤에 따라오던 6학년 아이들을 정면으로 노려보았습니다.
“소공원으로 가자.” 악동이가 말했습니다.
“좋아,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거야.”
그러나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악동이의 펀치 세 방에 6학년 아이들 3명이 모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싸움에 이겨 의기양양해진 악동이는 발걸음도 당당하게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휘파람을 불며 교실로 들어오던 악동이 앞에 담임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태걸! 지금 어디에서 들어오는 거야? 사실대로 이야기 해.”
“저를 놀리던 6학년 아이들과 소공원에서 싸웠습니다.”
“아이들이 너를 놀리면 다 싸워야 하는 거니?”
“오늘 우리 반에 새로 전학 온 혜리까지 한꺼번에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저희 두 사람에게는 치욕입니다.”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주먹질만이 능사는 아니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자야. 제발 싸움질 좀 그만 해라, 이 녀석아! 자리에 가서 앉아. 그럼 서울에서 오늘 전학 온 김혜리가 자기소개를 하겠다.”
“새로 전학 온 김혜리라고 해. 아직 이곳 생활이 서투르니 많이 가르쳐 줘.”
“혜리는 마침 태걸이 옆자리가 비어있으니 그 자리에 앉도록 해라. 그리고 태걸이는 싸움질만 빼고 혜리에게 이곳 생활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쳐 주거라.”
“예, 선생님.”
4월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체육 선생님이 태걸이네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학교의 방침이 결정되었는데, 앞으로 학생들끼리 싸우면 무조건 정학처분을 내린다고 한다. 그 대신 팔씨름 같은 건전한 운동은 좋다고 하니 6학년에서 5명, 5학년에서 5명을 뽑아 시합을 하도록 하자. 5학년은 오늘 방과시간까지 선수 명단을 제출하도록. 경기종목은 씨름, 팔씨름, 그리고 100m 달리기 등 세 가지다. 한 선수가 3종목 모두에 출전할 수 있으니 그리 알도록!”
악동이와 명훈이는 머리를 맞대고 선수 명단을 짰습니다. 2명 외에 나머지 3명은 건우, 철식, 그리고 지호 이렇게 3명이었습니다. 지는 팀은 빵을 사기로 했고, 시합은 목요일 방과 후에 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씨름입니다. 5학년 첫 번째 선수는 명훈이, 그리고 6학년 첫 번째 선수는 종현이었는데 명훈이가 압도적으로 이겼습니다. 그러나 건우, 철식, 지호 이렇게 세 명이 연거푸 지는 바람에 스코어가 1:3이 되고 말았습니다. 승패가 이미 결정되었지만 악동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6학년 최강자인 선빈이와 붙었습니다. 혜리를 비롯한 5학년 여학생들이 열심히 응원을 했고 악동이가 있는 힘을 다해 선빈이를 모래밭에 눕혔습니다. 순간 5학년 어린이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지요. 비록 2:3으로 패했지만요.
다음은 팔씨름입니다. 시합은 악동이네 교실에서 진행되었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비등한 경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교실은 5학년 아이들의 함성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혜리가 응원가를 지어 부르자 뒤이어 아이들이 따라서 불렀죠. 결과는 3:2로 5학년이 이겼습니다. 아마도 혜리와 아이들의 열띤 응원 때문이 아닐까요? 이래서 종합점수 1:1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100m 달리기 시합입니다. 이 시합에서 승패가 결정되므로 선수들이나 응원하는 어린이들이나 모두 바짝 긴장했습니다. 드디어 총성이 울리고 두 선수가 힘차게 달렸는데 5학년 선수가 그만 결승선을 불과 20m 남기고 넘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6학년이, 그리고 네 번째 시합에서는 5학년 지호가 간발의 차로 이겼습니다. 이제 승부는 1:3으로, 악동이와 6학년 어린이의 마지막 경주만 남았습니다.
“플레이 플레이 이악동!” 5학년 아이들의 응원소리는 더욱 거세기만 했어요.
결승선에 선 두 선수는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악수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땅!” 소리와 동시에 두 선수가 뛰어나갔는데 기량 면에서 악동이가 한 수 위였습니다. 그래서 악동이가 결승선을 통과할 무렵 6학년 선수는 10m나 뒤쳐졌지요.
그러자 5학년 아이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이 기뻐했고, 담임선생님은 진 아이들 대신 빵을 사시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했어요.
“어때, 지고도 이긴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바라는 모습이 바로 이것이야. 그리고 오늘의 건전한 스포츠를 정례화하면 우리 학교에서 폭력이란 영원히 사라지고 말거야.”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모두들 우렁차게 박수를 쳤어요.
지금껏 심한 장난꾸러기 노릇만 했던 태걸이도 이제 건전한 스포츠를 통하여 악동이라는 별명 대신 큰 호걸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악동이가 말썽을 부리지 않고 순동이인 태걸이로 얌전히 살아간다면 혜리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너무 심심해하지 않을까요?
(끝)
*월간문학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저의 동화 등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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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등단작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네요^^ 저희 집에도 태걸이가 있어요. 바로 둘째인데요 ㅎㅎ 지금 4학년이에요. 근데 6학년 형을 드러 눕힐정도로 힘이 비등비등합니다. 맨날 형한테 괴롭힘을 당해서인지 본인 스스로도 힘을 키웠나봐요 ㅎㅎ 저도 건전한 운동 씨름, 닭싸움, 팔씨름을 시켜서 힘을 빼게 해야겠어요^^ 교훈이 있는 동화 잘 읽었습니다~ 동화작가의 등단도 축하드려요!
힘을 뻬게 하시는 것은 좋은데, 동생이 형을 이기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의 힘의 서열은 나이 들어서까지 계속 됩니다.(경험담)
제가 너무 주제 넘었나요?
우리 손주들보면 힘으로 안되니 약올리던데요 ㅋ
큰녀석은 보기좋게 걸려들고요. 그걸 보고 있으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고맙니다. 지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성장하라고 저는 판사노릇 안하고 둘의 역성을 따로 들어줍니다.
저는 아직 손주들이 없어 체험을 못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채운 선생님의 판단이 어쩌면 더 현명하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어요ㆍ짧은 동화에 등장인물이 좀 많네요 ㆍ좋은 동화 많이 쓰세요ㆍ
신이비 선생님의 좋으신 충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제가 미처 챙기지 못한 대목을 지적해 주셔서 앞으로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