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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십칠 선생 十七先生
각자 이송할 인원과 선박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그때까지, 잠자코 두 사람의 회담을 옆에서 듣고 있던 십칠 선생을 바라본다.
“하하. 고견 高見은 무슨 고견입니까?, 저는 다만 이전부터 존경하는 박달 거세 님의 제의에 따라, 볼모 비슷한 처지로 이곳까지 따라왔을 뿐입니다.”
“무슨 겸양 謙讓의 말씀을….”
“시간과 거리이동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십칠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이 방도 밖에는 없습니다. 우선 한 달 내에 모든 인원이 이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죠, 지금은 그 점이 제일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럼 이곳에서 바닷길로 하루, 이틀거리에 우선 이동하여 임시 처소에서 기다리다 배편이 마련되면 그때, 본 이주 本 移住를 하는 것입니다.”
“아 하... 그런 방책이 있군요”
“그럼, 이 추운 겨울을 무탈 無頉하게 지낼 곳이 있겠습니까?”
이제 투후와 박달 거세, 두 사람은 십칠 선생의 입만 바라본다.
벌써 10월의 차가운 삭풍 朔風이 투후부 회담실 會談室의 문풍지를 울리고 있다.
“해안을 끼고 월동 越冬할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추 리 도
* 지도 - 발해만의 강
“그곳이 어디죠?”
“조선하 朝鮮河와 대릉하 大陵河 하류 부근입니다.”
“그런데 대릉하는 안전권 安全圈 같은데, 조선하는 이곳과 거리가 멀지 않아 불안한 감이 드는데요”
십칠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조선하는 한 무제 때, 하화족이 점거하여 한사군이 설치되는 등, 한 군 漢軍이 잠시 지배하였으나, 지금은 조선의 맥 통을 이어받은 부여가 탈환하여 관할하고 있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더구나 작금 昨今 반군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고, 만약 반군들의 모반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내치 內治에 바빠, 당분간 주변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투후는 고개를 앞으로 끄덕이며,
“그런 점은 공감합니다”
십칠 선생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여기서 멀지 않은 조선하에 임시 거처를 정하려는 큰 이유는, 현재 빈집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박달 거세가 확인차 되묻는다.
“그러니 그 빈 가옥들을 임시 거처로 삼아 월동 越冬을 하자는 계획이지요?”
“네, 그렇지요”
투후가 다시 되묻는다.
“조선하는 살기 좋다는 동이족의 주요 터전 중의 하나인데, 그곳에 왜 빈 집들이 많아졌지요?”
“한반도 韓半島의 백두산 인근에 대규모 질 좋은 철광석 광산이 산재 散在되어 있는바, 철 생산지에서 제철 작업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며, 수년간 많은 예 족과 맥 족들이 그곳으로 이주한 관계로 빈집이 많이 생겼습니다.”
“좋습니다. 일단 그곳에서 겨울을 보낸 후에 사로국으로 본 이주를 계획합시다.”
하더니 이어 김당 투후는 십칠 선생과 박달 거세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런데, 박달 거세님은 본국 本國의 부국강병 富國强兵을 위한 방안으로 백성들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십칠 선생은 어찌 이렇게까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지요?”
지금까지 의문시되던 점을 단도직입 單刀直入으로 물어본다.
투후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을 질문받은 십칠 선생은 정색 正色하고 답한다.
“저의 모국 母國이 부여국이고 부여국은 동이족의 종주국인 단군조선의 맥 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저 역시 대릉하 주변이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이며, 예족의 한 분파입니다. 투후의 조상님 역시 동이족의 일파인 슝노의 우현왕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하고는 투후의 표정을 바라본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하여, 상대의 생각을 가름하는 것이다.
투후의 표정이 경건 敬虔한 모습으로 바뀐다.
조상의 발자취를 되새겨 보는 눈빛이다.
“네, 십칠 선생님의 말씀 어김이 없습니다.”
“그러니 몇 단계 위로 더듬어 올라가 보면, 우리 모두 같은 핏줄임이 드러납니다.
현재의 투후님이나 윗대 투후님들, 이민족인 하화족 사이에서 생활하시면서도, 같은 동이족의 핏줄 임을 감추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행동하시며, 멀리 세외 世外에서 내려온 슝노의 형제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이곳 현지 부여족들도 같은 동이족이란 이유만으로 넓게 포용해주시고, 그동안 우대해 준 것도 사해 四海에 널리 소문이 나 있습니다.”
“으 음…. 과찬이 심하십니다, 제 낯이 뜨거워집니다.”
“절대 과찬이 아닙니다. 자기 개인의 편안함과 제 자식들만 챙기려 드는 일신 一身의 부귀영달 富貴榮達만 누리고자, 애를 쓰는 작금의 세태 世態에 비해보면 귀감 龜鑑이 될 표상 俵賞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반 사람들 같으면 ‘나 몰라라’ 하고 귀금속만 대충 챙겨, 가족끼리만 달랑 배 한 척에 싣고 떠나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투후님은 그러질 않고 모든 백성과 생사를 함께하고자 이렇게 노심초사 勞心焦思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야 조상님을 믿고 내려온 형제들이고, 지금은 슝노, 부여 가리지 않고 같은 동족이라 여겨 오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별 말썽 없이 잘 따르는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어렵다고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십칠 선생이 엎디러 고개를 숙인다.
“바로 그런 점입니다, 투후님은 사람들을 감격 感激하게끔 만드십니다. 명불허전 名不虛傳입니다. 이 시간부터 저 역시 투후님께 귀의 歸依합니다. 제가 하찮은 사람이지만 하명 下命하십시오.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동이족의 활동 반경이 자꾸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까운 상황이지요, 같은 동족이기에 같은 형제이기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어떠한 불편이나 희생도 감수하겠습니다.”
투후도 앉은 체 맞 절을 한다.
“네, 십칠 선생님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이제 투후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일개 낙수거사 落袖居士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감격스럽습니다. 이제 직책이 없어져 책임도 권한도 없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백성들을 위해 애를 쓰고 계시니까요”
박달 거세가 두 사람의 감성 感性에 젖은 분위기를 일깨운다.
“그럼, 이제 이주 인원과 임시 거처와 이주 일자를 대략적이나마 파악되었으니, 상세한 것은 내일 계획하여 다시 의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네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동이족의 삼자 三者 회담은 이주민 인원과 이주지 그리고 이주 시기와 방법에 관한 큰 틀에 대하여 합의를 하였다.
회담이 끝난 후,
김당 투후는 산동대군과 아들 성한을 불러서는 비밀스런 얘기를 밤새도록 나눈다. 투후의 얼굴은 비장감이 감돌고 산동대군은 아주 침울한 표정이고, 성한은 눈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9. 신의 멸망 新 滅亡
불타는 황궁
서기 西紀 23년.
깊어가는 가을 10월 초순.
서안 西安의 황궁.
황궁의 무너진 동편 외곽 곳곳이 불타오르고, 아녀자들의 비명과 병사들의 고함소리, 창검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이틀째 요란하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다음날 새벽. 황궁의 중앙에 자리한 미앙궁 쪽으로 소란이 이어진다.
“황상! 여기는 저희가 역도들을 막겠으니 비밀통로로 빨리 대피하십시오”
검날에 스쳐 왼쪽 볼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없이 충혈된 눈빛으로 외치는 격앙된 김위 태위의 목소리는 처절하기 그지없다.
“아니다, 짐이 가면 어딜 가겠느냐? 여기서 모든 걸 끝내겠다.”
황제의 갈라진 쉰 목소리는 결연하다.
그러나 역도들의 수적 우세에 근위병들은 자꾸 뒤로 밀리게 된다.
오후 미시 未時경
돌연 역도들의 뒤편에서 소란이 일어나더니 100여 명의 기마병이 창칼을 휘두르며 역도들의 포위망을 뚫고 미앙궁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다.
모두 온몸에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
역도들도 새로이 나타난 기마병들의 위세에 눌려 길을 터주고 있다.
“황제 폐하 저희가 왔나이다, 힘을 내십시오!”
위급한 상황에서 갑자기 우군 友軍이 나타나니 황실 군사들조차 어리둥절하다.
황제 왕망은 새로 나타난 군사들을 보고는, 용안 龍顏에 잠시 반가운 표정이 스쳐 지나 가더니, 오히려 싸늘한 음성으로 꾸짖는다.
“아우는 약속을 어기고 어찌 이리 무모하게 행동하시오”
그렇다 우군으로 나타난 군사들의 지휘관은 김당 투후의 동생 김웅이다.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상태, 그대로 김웅은 말에서 뛰어내리며
“폐하 제가 어떻게 홀로 폐하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비밀 통로로 피하십시오. 우리 결사대가 역도들을 막겠습니다.”
“아니오 대세는 기울었어요, 나는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겠소”
“폐하! 그럼 저희들도 폐하를 따르겠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소?”
“산동대군과 성한에게 모든 것을 당부하고 왔습니다.”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이로군”
김웅은 말안장에서 호로병을 꺼내더니
“폐하 한잔 드시지요” 하며
각배 角盃에 약주를 따라 황제에게 직접 바친다.
“고맙소”
목이 마르던 차 시원하게 약주를 들이켠다.
김웅에게도 한 잔 직접 따른다.
각배를 받아쥔 김웅은 결연하게 소리친다.
“네, 폐하 감사합니다, 제 생애 마지막 잔이 되겠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투후부의 군사들 때문에 잠시, 소강상태였던 전투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역도들이 재차 함성을 지르며 미앙궁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인다.
오후 신시 申時경.
적의 도검에 부러져 덜렁거리는 왼팔을 잡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하던 김위 태위는 “황상! 죄송하오나 소신이 먼저 가나이다”
비장한 말을 남기고 돌계단 아래 적의 무리 속으로 홀로 쳐들어가 장검을 든 적군의 어깨를 베고는 본인 또한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황제 왕망 王莽은 핏빛 어린 눈으로 주위들 둘러보았으나, 오전까지 황제를 호위하던 천여 명의 친위 군사들 대부분이 죽어 정원 안팎과 대전에 쓰러져있고, 온몸이 붉게 물든 피투성이 호위 병사 7명만 눈을 부릅뜬 채, 죽기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칼마저 부러져 못쓰게 되자, 근위병 두 명은 부서진 의자와 탁자 다리를 양손에 거머쥐고, 반군에게 휘투 投揮 하고 있었다.
김웅도 대전 입구 기둥 아래에서 이미 숨이 끊어진 채 누워있다.
김웅의 시신 屍身을 본 황제는 절망감과 안타까운 감정이 두 눈에서 흐른다.
순간, 적병의 장창이 황제의 오른쪽 옆구리를 찔렸다.
황제는 칼을 떨어뜨린 오른손으로 자신의 옆구리에 박힌 창 자루를 쥐고 주위 신하들에게 나즈막하게 소리 친다.
“자~ 이제 그만하자. 그동안 모두 고생했다.”
쓰러진 황제 곁으로 숨만 붙어 있던, 붉은 피투성이의 신하들 4~5명이 모여들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역부족이야. 그만하자, 그대들... 미안하네”
울부짖는 신하들에게 ‘신 新’의 개국 開國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왕망은 나직이 말하였다.
“우리가 이루지 못했던 이상국 理想國은 남은 형제들이 이루어주겠지”
춘추 春秋 및 전국 戰國시대의 중원 대륙에선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었겠지만 수많은 나라가 명멸 明滅해갔다
하지만 이처럼 항복하지 않고, 최후의 일인까지 황제를 비롯하여 시종들이 마지막까지 적군에 대항하여, 그 자리에서 전원 몰살당했던 역사는 일찍이 없었다.
절대적인 세 불리로 종착역의 끝이 뻔히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대미문 前代未聞의 황궁 잔혹사 殘酷史다.
사학자나 후세인들은 명목 없는 황위 찬탈과 섣부른 개혁정책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황제 왕망과 신 新나라를 평가절하 平價切下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황제를 비롯하여 모든 신하가 일심동체 一心同體로 자신들이 나라를 다스렸던 개혁의지 改革意志와 치적 治績에 대하여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신념과 자부심이 있었다는 것은,
절대적인 수적 數的인 열세 劣勢임에도 불구하고 도피하거나, 반군과의 타협책을 모색하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모두가 집단죽음으로 증명하였다.
힘의 논리나 결과에 앞서 나름대로 개혁 의지가 굳건했다는 뜻일 것이다.
기원 25년.
차가운 10월의 가을바람은 왕망 王莽이 세운 신 新이란 나라를 17년 만에 그렇게 거두어들인다.
- 16. 원보
첫댓글 모든 개혁에는 기득권자들의 처절한 반대가 있지요
왐망의 멸망이 참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