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4:1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지산교회'는 1905년 경북 대구 근처에 세워졌다. 그 교회에 재정을 담당하던 '오 부자'가 있었다. 성이 오 씨라 오 부자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다섯 형제가 모두 지산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다섯 형제 모두가 부자이기 때문에 오 부자라고 부른 것이었다. 어느 날, 그 오 부자가 사업 때문에 모두 지산교회를 떠나 이사를 가게 되었다. 오 부자가 함께 이사를 하게 되자 지산교회의 성도들은 근심하게 되었다. 그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교회를 운영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대구에서 목회하는 안 목사님을 찾아가 교회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였다. 안 목사님을 찾아간 지산교회 제직들이 교회 사정을 안 목사님에게 말씀드렸다. “안목사님! 우리 지산교회에 재정을 담당하던 오 부자가 사업 때문에 함께 이사를 가서 교회 운영이 어려워 졌습니다.” 근심하고 있는 지산교회 제직들의 말을 듣고 안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그래요? 그것 참 문제로군요. 그런데 그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지산교회 제직들이 목사님 말씀을 듣고 놀라 안 목사님께 여쭤보았다. "안 목사님 지산교회에 이 문제 말고 더 큰 문제가 있나요? 그 문제가 무엇인가요?" 그러자 안 목사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오 부자가 떠난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요 지산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오 부자를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산교회 제직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의 불신앙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오 부자를 의뢰했던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그 후, 지산교회 온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오 부자를 의뢰한 불신앙의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매일 교회를 위해 엎드려 간절히 부르짖었고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을 주셔서 오 부자가 있을 때 보다 더욱 지산교회 재정이 풍성해 지도록 성도들의 생업에 복을 내려 주셨다. 렘33:2-3에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다.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자) ‘근심’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아브’인데 이것은 ‘아픔을 느끼다’, ‘슬퍼하다’, ‘상하다’, ‘아프다’는 뜻이다. 마음이 아프고 상하고 슬픈 것 이것이 근심이다. 헬라어로는 ‘뤼페’라는 말인데 이는 ‘슬픔’, ‘한숨’, ‘서러움’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한숨을 쉬며 한탄하고 있다면 근심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사용된 근심의 단어는 ‘타랏세스도’다. 이 말은 ‘뒤흔들다’, ‘혼란에 빠뜨리다’라는 뜻이다. 문제에 사로잡혀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근심’은 우리가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절망과 죽음의 함정인 것이다. 그래서 고후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셨다. 그리고 근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번뇌하게 만든다.잠12:25에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하셨다. 또한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 잠언15:13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하셨고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 잠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하셨다. (뼈는 몸을 상징) 그래서 성경은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적인 근심은 백해무익)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믿음이 더 좋아지고 모든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겨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갈수록 내 삶의 영역에 근심거리가 더 많아지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근심을 온전히 떨어버리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 정답이 오늘 본문에 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아버지가 자녀를 책임져 주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책임져 주신다. 그러므로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된다.
마7:9-11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심) 사랑하는 여러분, 범사에 우리들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데 우리가 근심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만약 우리들이 근심하고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한 것이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인 것이다. 약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셨다. 롬8:37-39에 보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책임과 사랑을 믿고 근심과 염려와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이 땅을 살아가기 때문에 늘 근심과 시험을 만나게 되지만 근심이 우리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선포하고 쫒아 버려야 한다. 새가 내 머리로 지나갈 수 있지만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집중하고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함)
“하나님 아버지 이루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근심과 의심을 주는 더러운 영은 물러갈지어다.” 이렇게 선포한 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찬양의 제사와 기도를 드리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임하고 응답의 확신이 가득 차게 된다. 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다. 또한 빌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셨다. (믿음은 반응이다. 믿음에는 반드시 말씀의 역사가 따라옴) 오래 전, 미국 선교사님의 아내가 폐병에 걸렸다. 아내는 불안해서 잠을 못잤다. “내가 죽으면 남편과 자녀들은 어떡하지?”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불평하였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잠은 오지 않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 안에 있는 전도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55:22의 말씀이 기록된 전도지였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이 말씀을 본 그녀는 원망하고 불평하며 근심했던 자신이 믿음이 없었음을 하나님께 철저히 눈물로 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해 주세요. 내 질병을 맡깁니다. 내 가정도 맡깁니다. 내가 죽어도 남편과 자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연약함을 온전히 맡기고 찬양하고 감사하였더니 마음에 평안이 충만해졌다. 하나님이 그 밤에 선교사님 아내의 폐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다. 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손으로 만져 주셨다.폐병에서 고침을 받은 그녀는 그 후에도, 근심의 상황을 만났을 때, 절대로 마음에 근심하지 않았고 원망 불평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역사하심을 믿으므로 감사하고 찬양을 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감사했을 때,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벧전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약속하신 말씀 믿고 절대로 염려 근심하지 않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