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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348) 남만왕 맹획(孟獲) 세 번 잡았다가 놓아준 사연 <하편>
삼만에 이르는 대군이 공명의 본진으로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어이된 일인가? 등불은 군영 곳곳에 휘황찬란하건만 촉병은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맹우와 그의 부하들만이 곤죽이 되어 쓰러져 잠만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마신 술은 보통의 술이 아니라, 정신을 잃게 하는
독주(毒酒)였던 것이다.
맹획은 영내에 달려들어와 술에 곯아떨어진 맹우를 두들겨 깨웠다.
"네가 미쳤는냐? 지금이 어느 때라고 잠만 자고 있느냐 !"
그러나 맹우는 일어나 앉으면서도 정신을 못 차린다.
"아차 ! 너희들이 공명의 계략에 말려들었구나 !"
맹획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깨닫고 절치부심하였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알 길없는 만병들은 미리 명령을 받은 대로 사방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군영은 온통 불로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
"불을 꺼라 ! 촉병은 죄다 달아나고 영내에는 우리 군사들만 있다 ! 속히 불을 꺼라 !"
맹획은 부하들을 향하여 큰소리로 외치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편 어둠 속에서 일군이 바람처럼 달려나오며,
"이놈 맹획아 ! 게 섯거라 !"
하고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에그머니나 !"
이때 만큼은 맹획도 가슴이 <철렁 !> 내려 앉도록 놀랐다.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나타난 사람은 촉장 왕평이었다.
맹획은 기급하게 놀라면서 왼편으로 달아나려니, 위연이 군사를 몰고 막아서며,
"이놈 맹획아 ! 네가 어디로 달아나려는 것이냐 !"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맹획이 또 한번 질겁하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달아나려고 하니, 거기서도 역시,
"맹획을 사로잡아라 !"
하고, 소리치는데 그는 다름아닌 상산 조자룡이었다.
맹획은 이제 독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붙잡힐 맹획이 아니었다.
그는 적군이 있든 말든 눈을 딱 감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말에 채직을 가하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적의 포위망을 총알 처럼(그때는 총알이
없었지만, 가령 그렇다는 겁니다) 뚫고 나와, 노수 강가로 말을 달렸다.
이렇듯 맹획이 어찌나 맹렬히 달렸던지 따라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맹획이 노수강에 이르니 마침 강 위에는 병선이 한 척이 떠 있었다.
"여봐라 ! 어서 강을 건너라 ! 나는 대왕이다, 적의 추격이 맹렬하니 급히 강을 건너라 !"
맹획은 병선에 오름과 동시에 따짜고짜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런데 병선이 금방 강위로 둥실 뜨기가 무섭게, 십여 명의 장사들이 별안간 나타나
맹획에게 덤벼들어, 순식간에 밧줄로 결박을 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앗 ! 너희들은?..."
맹획이 깜짝 놀라며 큰소리로 외치며 둘러보니, 그 군사들은 자기 부하가 아니라 촉장
마대의 군사들이었다.
"하하하 ! 어리석은 놈아 ! 우리가 누군 줄 알고 큰소리를 쳐댄 단 말이냐 ? 내가 촉장
마대라는 것도 모르고 있단 말이냐, 하하하하 !"
결박진 맹획 앞에서 통쾌하게 웃어대는 사람은 촉장 마대였다.
"...."
맹획은 원한의 입술을 깨물며 무겁게 눈을 감았다.
이날 밤 싸움에서 촉군은 맹획을 사로잡는데만 열중하고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달아나
버리도록 퇴로를 열어 놓았다. 그래도 붙잡힌 맹획의 부하들은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공명은 그들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그들에게 술과 고기를 주면서,
"너희들은 그동안 무리한 싸움을 하느라고 고생들 많았다. 오늘은 너희에게 술과 고기를
내릴 터이니 맘껏 먹고 마셔라.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군사들과 싸울 생각을 말거라.
너희들 대왕 맹획은 이미 우리 장수에게 사로잡혔다."
하고, 마치 친동생을 타이르는 큰형처럼 자애롭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잠시후 공명은 맹획과 맹우 형제를 불러내었다. 맹획은 마대가 붙잡았고, 맹우는 조운이
사로잡았다.
공명이 결박진 맹획을 굽어보며 껄껄껄 웃었다.
"하하하 ! 맹획아 ! 너를 두 번씩이나 놓아 보냈는데, 또 잡혀왔느냐?"
맹획이 이를 <부드득 !> 하고, 갈면서 대답한다.
"나는 싸움에 져서 붙잡힌 것이 아니라, 내 아우의 실수로 붙잡힌 것이다."
"하하하하 ! 처녀가 아이를 배어도 핑계가 있다더니, 과연 네가 그 모양이로구나?"
"아우가 실수한 탓이니 분하기 짝이없다 !"
"그렇다면 네가 마음껏 싸워서 지기 전에는 항복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그렇다 !"
"그러면 다시 한번 놓아 줄 테니 마음껏 싸워 보거라. 그러나 또다시 포로가 된다면
그때는 어떡할 것이냐?"
"....."
맹획은 그 소리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려 버린다.
"이번에도 놓아 줄 것이니, 다시 돌아가서 유감없이 싸워 보거라. 네가 소원이라면
몇 번이라도 놓아 보내마 !"
맹획은 세 번째의 석방 특전을 받고 면목없이 공명의 앞을 물러나왔다.
그리하여 노수로 나와보니, 노수 강변은 마대군이 이미 점령을 한 뒤라 강변은 온통 촉기
(蜀旗)로 뒤덮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맹획이 강을 건너 본진으로 돌아와 보니, 그곳은 조운이 이미 점령하고 있으면서, 맹획이
나타나자,
"승상께서 세 번씩이나 놓아 주셨거늘 너는 아직도 너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느냐?"
하고, 큰소리로 꾸짖는 것이었다.
맹획은 하는 수 없이 험한 산속에 있는 산파(山坡)라는 곳으로 피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장군 위연이 이미 점령하고 있으면서 맹획이 나타나자 성문 위에서 칼을
뽑아 들고 꾸짖는 것이었다.
"맹획아 ! 너는 여기까지 빼앗겼거늘, 아직도 어리석게 싸울 생각만 한다는 말이냐?"
맹획은 어쩔 수가 없어 이번에는 무작정 멀고 먼 남쪽 산 속으로 도망쳐 가고 말았다.
촉국(蜀國) 장수들은 공명이 맹획을 세 번씩이나 붙잡았다가 놓아준 것에 대해 불평이
많았다.
"맹획 한 놈만 없애 버리면 전쟁이 끝날 판인데, 승상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자를
번번히 놓아주시며 전쟁을 길게 끄는 것인가?"
"누가아니래 ! 승상의 처사는 암만해도 알 길이 없군 !"
휘하 장수들의 그런 불만을 공명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기에 공명은 어느날 장수들을
한테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맹획 한 사람만 없애버리면 전쟁은 바로 끝날 것을 나는 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고국
에서 수만 리 떨어진 이곳까지 원정을 온 목적은 맹획 한 사람을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우리 천자의 은덕을 깨우치고 만족 모두가 스스로 우리를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데 있는 것이오. 다시 말하면 미개한 그들에게 왕화(王化)의 덕을 베푸는데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맹획을 살려주어서 그가
진심으로 우리에게 항복하도록 해야하오. 맹획은 남만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는 자요. 그러기에 그가 진심으로 항복할 때가 되기까지는
수고스럽지만 여러 장군들은 앞으로도 싸움을 더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래서 맹획을 세 번씩이나 놓아주었던 것이고, 맹획을 없애 버리고 새로운 군주를
세우기에는 맹획의 지명도와 지도력을 능가하는 새로운 남만의 군주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었던 탓이오. 그런 점을 장군들은 깊이 헤아려 주시오."
모든 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공명이 맹획을 세 번씩이나 살려보낸 깊은
연유를 깨닫고 제각기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런 뒤에도 맹획은 전열을 정비하여 공명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번번히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로잡힌 맹획의 핑계가 뻔뻔하여 도무지 감화가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명은 번번히 맹획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인가? 무식한 것인가? 맹획은 그때마다 다시 남만의 지역 추장들의
지원을 설득하여 다시 군사를 일으켜서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공명의 적수는 아니었다.
번번히 공명의 계략에 말려들어 패하였고, 용케도 그때마다 맹획은 죽지 않고
사로잡혔다.
마지막으로 맹획이 잡혀왔을 때, 공명은 결박을 지운 그를 끌어 내어 평소와 다르게
크게 호통을 치며 꾸짖었다.
"너는 도대체 몇 번을 붙잡혀야 네 잘못을 깨닫겠느냐 ! ... 여봐라 ! 저놈의 얼굴은
두번 다시 보기도 싫으니 영문밖으로 끌어내어 쫒아보내라 !"
그러자 맹획이 돌연 큰소리로 외친다.
"승상 ! 제 말씀을 한 마디 들어주소서 !"
"네가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맹획이 머리를 조아라며, 눈물을 흘린다.
"승상 ! 제가 죽일놈이었습니다. 자고로 일곱 번 사로잡혀서 일곱 번 용서받은 일은
역사상 없었던 일이니, 제가 아무리 불학무식 하기로 승상의 은공으로 어찌
모르겠습니까, 승상은 이 미련한 맹획을 용서하소서 !"
공명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지금 그 말은 진심으로 항복하겠다는 뜻이냐 ?"
"그러다마다요 ! 이젠 이심없이 승상과 천자의 명에 절대 복종하오리다 !
심복 하오리다 !..."
맹획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니, 함께 붙잡혔던 그의 처와 처남을
비롯한 맹우도 한결같이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공명도 그런 모습에 탄복해 마지 않았다.
"그대들이 진심으로 우리와 화합한다면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리오. 그러면 내 이제
공(公)을 남만왕이 봉하고, 빼앗은 땅도 모두 돌려줄 터이니 그대는 백성을 사랑하며
왕화의 덕이 만천하에 미치도록하오 !"
맹획은 관대한 처분을 받자, 또 다시 감격해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하여 공명이 추구하던 남만땅에서의 왕화의 대업은 드디어 완수되었다.
맹획이 공명 앞을 물러나가자, 장사 비위(長史 費褘)가 공명에게 간한다.
"승상께서 수만 리 떨어진 남만으로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오시어 평정하고 가시면서
이제 감독관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아니하고 모든 권력을 맹획에게 맡겨버리고
귀국길에 오르신다면 후일 맹획이 후환을 일으킬까 염려되옵니다.
하오니 관리 몇 사람을 남겨 두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공명이 그 소리를 듣고 머리를 흔들며 대답한다.
"나도 그 점을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오. 그러나 우리가 감독관을 남겨 두면 새로운
폐단이 생기오. 첫째는 감독관이 오히려 왕화의 덕을 등에 지고 권세를 부리려 할
것이고, 둘째는 그로 인해 남만에는 감독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무리가 생기게 되오. 셋째는 외인(外人)이 머무르면서 만인간에 당파가 생겨서
인화(人和)를 도모하기 어려운 폐단이 생길 것이오. 그러니 지금까지 만왕 맹획을
중심으로 잘 살아왔듯이 그들끼리 화합하며 살도록 놔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것이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한결같이 감탄하였다.
더구나 만인들은 공명의 자비에 감탄하여 모두들 그를 <자부 승상(慈父 丞相)>
또는 <대부 공명(大父 孔明)>이라는 존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공명이 곧 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저마다 남만 특유의 진귀한
구슬(眞珠)과 칠보(七寶), 약재(藥材) 등을 선물을 가지고 왔다. 뿐만 아니라 공명을
위해 사당(祠堂)을 짓고 그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 마다 네 차례씩 제사까지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공명은 논공행상이 끝나자, 곧 본국으로 돌아가 채비를 서둘렀다.
모두가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린 장병이었다. 이들은 이제
왕화의 대업을 완수하고 본국으로 귀환하려 하니, 이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하였다.
위연을 선봉으로 좌군, 우군이 공명의 사륜거를 호위하며 촉국을 바라고 남만을
떠나는데, 개선군의 기쁨과 위용은 말로써 이루 형용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게다가 맹획을 비롯한 남만의 모든 장수들과 지역의 추장들이 휘하의 만졸을 거느리고
석별을 아쉬워 하며 전송을 나오니, 일행의 행렬은 꼬리를 찾아 보기가 어렵도록
길고 화려하였다.
일행이 노수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까지 청명하던 날씨가 홀연 일진광풍(一陳狂風)이 몰아치며 강물이 넘실대며
여간 스산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공명이 맹획에게 물었다.
"물결이 금시로 심해지니 이 어인 일인고?"
맹획이 말에서 내려 강을 가르키며 대답한다.
"이 강에는 워낙 원혼에 서린 귀신이 있어서 누구나 이 강을 건널 때에는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무슨 물건으로 제사를 지낸단 말이오 ?"
"인두 사십구와, 흑우(黑牛), 백양(白羊)으로 제사를 지내야만 물결이 잔잔해지옵니다."
요컨데 사람 사십구 명의 머리와 물소, 백양을 통째로 잡아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명은 그 소리를 듣고, 안색이 매우 언짢았다.
"살아 있는 우리가 강을 건너기 위해서 귀중한 생명을 희생시켜서야 되겠소."
그러자 옆에서 듣고있던 토착민인 고로(古老:노인)이 말한다.
"승상께서 이곳을 지나가신 이후로 밤마다 귀신의 울음소리가 낭자하고 물결이 사나워져
지금은 아무도 이 강을 건너지 못하옵니다."
공명이 그 소리를 듣고 개탄한다.
"오오, 모두가 나의 죄로다. 전자에 마대가 이곳을 지나면서 많은 만병을 죽였으니,
귀신인들 어찌 원한이 없겠는가? 그러니 내 오늘 몸소 물가에서 제사를 지내로리로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인두 사십구 과를 반드시 바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공명은 고로를 조용히 꾸짖는다.
"귀신을 위로하고자 어찌 또다른 원귀를 만드리오 ? 내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모든 것을 내게 맡기라."
그리고 공명은 요리사를 불러 밀가루 반죽에 소고기와 양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
형상으로 마흔아홉 개를 빗도록 하여 사람을 대신하게 하였다. 그때 밀가루를 빗어
만든 인두를 만두(饅頭)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만두>란 말은
이때에 생겨난 것이었다.
어쨋든 공명이 이른 대로 만두를 위시로 많은 제물을 차려 놓고, 공명이 직접 제주가되어 몸소 제사를 지내는데, 그가 읽은 제문(祭文)은 다음과 같았다.
<대한 건흥(大漢 建興) 삼년 구월에 무향후 제갈양은 제물을 갖추고, 노수에서
왕사(王事)로 불귀의 객(客)이 된 촉군과 무고한 남만 사람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오.
이제 남만의 백성들은 황제의 홍은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충심으로 제왕을 섬기며
살아가기로 약조한바, 우리는 평화의 뜻을 널리 펴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그대들은 슬기로운 영혼으로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 말고, 기꺼운 마음으로
제사를 받은 뒤에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가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오.
이에 정성을 다해 고혼을 위로하나니, 이역의 혼령들이어 ! 기쁜 마음으로 이 제사를
받아주소서.>
공명이 제문을 낭독하고 끝내 눈물을 보이며 통곡하기에 이르니, 맹획의 무리도 또한
따라 울기를 마다치 않았다.
공명이 제사를 끝내고 젯상의 제물을 조금씩 떼어, 반봉을 만들어 강물에 뿌리니,
이게 무슨 기적같은 일인가? 여태까지 거칠게 출렁이던 물결이 잠잠해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촉군은 남만왕 맹획의 전송을 뒤로하고 아무런 사고도 없이 강을 무사히
건너게 되었다.
공명은 노수를 건너 영창성에 당도하자 왕항과 여개를 그곳에 머무르게 하여
사군(四郡)을 선정으로 다스리도록 당부한 뒤, 성도를 향하여 먼 여정에 올랐다.
공명이 군사를 거느리고 여러 날에 걸쳐, 성도(成都)로 돌아오니 장안의 백성들이 저마다
제갈 승상의 개선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달려나와 천지가 진동하는 만세를 불러제쳤다.
뿐만 아니라 천자 유선(天子 劉禪)도 봉련(鳳輦)을 타고 멀리 삼십 리 밖까지 영접을
나왔다.
공명은 후주의 봉련이 보이자 수레에서 내려 땅에 엎디어 아뢴다.
"신의 남방 평정이 너무 더디어, 주상의 심려를 오랬동안 번거롭게 하였습니다.
용서하소서."
후주(後主)는 얼른 난간에서 뛰어내려 땅에 엎드린 공명을 몸소 붙들어 일으키며,
"상부께서 대업을 이루시고 이처럼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천하에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있겠습니까. 원로에 고단하신 몸, 어서 수레에 오르십시오."
하고, 천자의 수레에 함께 타기를 권하였다.
이윽고 후주와 공명을 실은 봉련이 성도의 정문인 화양문(華陽門) 안으로 들어오니,
만백성들이 거리 거리로 몰려나와 <만세>를 외치고 궁성의 모든 누각에서는 삼현
육각의 음악이 일시에 울려퍼져, 천지에는 환희와 화락의 기운이 충천하였다.
일행이 궁중으로 들어오자 이내 태평연회가 시작되어 황제와 모든 신하들이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뒤이어 공명은 생사고락을 같이해 온 장수와 병사들에게 골고루 상을 베푸니 나라의 기쁨이 더할 나위 없었다.
더구나 만백성들이 한결같이 감격해 마지않았던 점은, 연회가 끝나자 공명은 남만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가족에게 일일이 사람을 보내 조문과 함께 위문품을 전달케 하였고,
그들의 생활까지 길이 도와주기를 약속 하였으니, 이것은 후일 보훈 정책(報勳 政策)의 효시(嚆矢)가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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