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들이 정신대 피해자를 위한 단체인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에 이용 당했다는 취지의 이용수(92) 할머니의 발언과 관련, 그 동안 위안부와 정신대 구분이 모호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는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신대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라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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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할머니 모임이 위안부 왜 이용하나" 이용수 할머니 지적에 정신대·위안부 논란 전문가 "90년대까지 두 피해자 구분 안돼" "피해자 증언 없고, 관련 학술자료도 부족" "정대협 결성 때도 두 피해자 구분 모호해"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위안부 피해자들이 정신대 피해자를 위한 단체인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에 이용 당했다는 취지의 이용수(92) 할머니의 발언과 관련, 그 동안 위안부와 정신대 구분이 모호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는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신대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라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정대협을 두고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이 위안부를 정신대 할머니와 합의해서 쭉 이용해 나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신대 문제만 하지 저거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만두의 고명으로 사용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할머니 말대로 사실 위안부와 정신대는 다른 개념이다.
정신대는 일제강점기 '여자정신근로령'에 의해 조직됐는데, 남성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일제가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미혼여성을 국내외 군수공장 등에 강제 취역시키면서 지칭한 용어다. 정신대는 민간인 노동부대에 가까워 성 노예로 피해를 입은 위안부 제도와는 다르다.
하지만 정신대와 위안부가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김태웅 교수는 "초창기에는 활동가도 역사가도 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분하지 못했다"면서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고 학술연구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90년대 말이 지나서 피해 당사자 증언이 나오면서 정신대와 위안부가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신대에 끌려갔다 위안부가 됐다' 등의 증언이 나오면서 두 가지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지점도 있다.
한편 정대협이 정신대 피해자를 위한 단체라는 주장은 오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대협이 위안부와 정신대가 명확히 구분되기 이전에 결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대협은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라고 증언하기 전인 1990년에 결성됐다.
정대협은 1988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 오던 37개 여성단체가 연합해 1990년 11월16일 결성됐는데, 이 당시만 해도 정신대와 위안부가 뚜렷이 구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대협이 정신대라는 이름을 썼지만 처음부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