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동시에 결혼식 올렸다…문선명이 맺은 유일한 겹사돈
#궁궁통1
기독교에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철저하게
개인 단위입니다.
통일교는 다릅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건
개인 단위가 아니라
가정 단위라고 봅니다.
문선명 총재 부부에게
축복을 받고
결혼식을 한
‘참가정’ 단위로
천국에 간다고 믿습니다.
<통일교는 사후세계를 지옥-중간영계-낙원-천국이라 믿는다.
천국에 들어가는 건 개인 단위가 아니라 가족 단위라고 믿는다.> 제미나이, 백성호 기자
그런데
문 총재의 둘째 아들은
17세 때
미혼의 몸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뉴욕에서
빙판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침범한 대형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통일교의
교리대로 따지면
둘째 아들 문흥진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그는
결혼과 참가정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겁니다.
통일교는
예수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미혼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목숨을
잃은 예수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국의 아래층인
낙원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문 총재의
차남 문흥진은
영혼결혼식을
치렀습니다.
통일교의
영혼결혼식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었습니다.
#궁궁통2
문선명 총재에게는
‘측근 중 측근’으로
통하던
박보희 회장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박 회장을
‘문 총재의 오른팔’
혹은
‘문 총재의 입’으로
부를 만큼
통일교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충남 아산 출신인
박 회장은
육군사관학교 2기 생도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이후
주미 한국대사관의
육군무관 보좌관(대령)을 역임하는 등
영어 실력이
아주 유창했습니다.
통일교가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문 총재의 설교를
바로 곁에서
영어로 술술 풀어내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통일교가 미국에 진출했을 때 문선명 총재의 설교를
영어로 통역하는 일은 박보희 회장이 도맡았다.>
미국의 보수 일간지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해
회장직도 역임했습니다.
문 총재의 차남과
박 회장의 딸 사이에는
원래부터
혼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문흥진에게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겼으나
뇌사 상태에 빠졌고
결국 사망했습니다.
사고 이후에
문선명 총재는
박보희 회장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 대령, 흥진이는 이제 영계로 갔네.
그러니 훈숙이와 흥진이의 약혼은 무효야.
훈숙이를 자유롭게 해주게.
훈숙이는 아직 젊지 않은가?
훈숙이의 장래를 위해서 좋은 신랑감을 골라
다시 시집을 보내야 하네.”
당시 박훈숙은
스물한 살의 발레리나였습니다.
꽃보다 아리따운
젊음이 있었습니다.
워싱턴 발레단의
정단원이자,
발레단 주역을 향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딸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영혼결혼식을 해야 한다면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무리 종교관이
따로 있다지만,
비극적인 인연에서
벗어나기를
노심초사
바라지 않았을까요.
#궁궁통3
박보희 회장은
미국에 있는
딸 훈숙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문 총재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너는 이제
해방이라고.
<통일교의 2인자로 통하던 박보희 회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영어 실력도 아주 출중했다.>
그는
딸이 울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릴 줄
알았겠지요.
그런데
딸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지상에 있든,
영계에 있든
문흥진은
자신의 남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영혼결혼식을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무리
통일교의 2인자라지만,
딸의 말을 들은
박 회장의
속마음은 아팠습니다.
박보희 회장은
자신의 회고록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에서
당시 상황을
솔직하게 토로했습니다.
아버지로서
딸을 향해 갖는
연민과 고통,
통일교 2인자로서
갖게 되는 신앙적 결단.
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내면적 갈등을
토로했습니다.
딸 훈숙의
단호한 대답을 들은
박보희 회장은
결국
딸을 붙들고
한참 동안
목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궁궁통4
1984년 2월 20일.
문흥진이 사망한
다음 달이었습니다.
박보희 회장의 딸 훈숙은
문 총재의 차남 흥진과
영혼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박보희 회장이 딸 훈숙과 함께 영혼결혼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액자 속 남자가 영혼결혼 상대인 신랑 문흥진이다.>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의 옆에는
양복 입은 신랑 대신
사진액자 속 문흥진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신부와 신랑이
더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문선명 총재의 차녀인
문인진과
박보희 회장의 차남인
박진성이었습니다.
두 사람도
이날 함께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겹사돈입니다.
문 총재와 박 회장은
그렇게
겹사돈을 맺었습니다.
당시에 촬영한
웨딩 사진을 보면
두 결혼 커플이
담겨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왕조시대 때
신하 중 누군가가
왕과 겹사돈을 맺었다면
어땠을까요.
자신의 아들이
공주와 결혼하고,
자신의 딸이
왕자와 결혼했다면
말입니다.
그 신하가 떨쳤던
당시 위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왕조시대는 아니지만,
당시 통일교 내에서
박보희 회장의 위상도
그랬습니다.
통일교 교주인
문 총재와
겹사돈을 맺었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교주와 측근’을 넘어
일종의
‘혈연 공동체’가 된 셈입니다.
당시
통일교 바깥에서는
다들 박보희 회장을
실질적인
‘통일교의 2인자’로
꼽았습니다.
문 총재의 자녀는
7남 7녀였지만,
겹사돈을 맺은 이는
박 회장이 유일했습니다.
영혼결혼식,
통일교 바깥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후
박 회장의 딸 훈숙은
성(姓)을 문씨로 바꾼 뒤
문훈숙으로 살고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을 맡아서
한국 발레의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격상시킨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출처:중앙일보] 백성호-중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