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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사랑으로 이룬 기적/요 13:34-35
출 처| 문기태목사
얼마 전에 매우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책 한 권이 출간됐습니다. "제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라고 하는 이름의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내가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고 하는 책을 쓴, 로버트 풀검이라는 분입니다. 이 책에 실제 있었던 멋진 장례식을 소개합니다. 마샤 카터라고 하는 할머니가 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자기 삶도 명랑하게 아름답게 살았고 또 삶의 절정인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스스로 장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유서를 통해서 모든 손님들에게, 자기에게 올 손님들에게 절대로 상복은 입지 말고 화사한 옷을 입으라고, 절대로 그날 슬픈 이야기나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고, 아주 밝은 노래, 기쁜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만장하게 웃음을 웃어가면서 아름답고 경쾌한 프로그램으로 장례식을 지내달라고 목사님께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인의 편지가 낭독됩니다. "지금까지 저는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제게 베풀어준 모든 고마운 분들에게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문 앞에 죽음이 얼른거리면 저는 따라나설 겁니다. 춤신발을 바꾸어 신고 훌쩍 떠날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사랑을 띄우며 마샤."
이렇게 세상을 떠났고 그 장례식은 그야말로 굉장한 음악회요 굉장한 축제로 그렇게 치루어졌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교육계의 지도자로 높이 존경을 받던 김활란 박사님이 같은 유언을 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 거행되는 모든 전도대회에는 그 분이 언제나 거기에 주동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세상 떠날 때, "내 장례식에 장송곡을 부르지 마라! 행진곡을 불러다오. 축제와 같이 지내다오.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마라!" 그래서 그 장례식은 훌륭한 음악회로 그렇게 치러졌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열두시간쯤 앞의 상황입니다. 죽음이 코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비참하고, 도대체 역사상 가장 비참하다고 하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그걸 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성만찬 예식을 행합니다. 제자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허황한 꿈만 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이 참 묘한 시간입니다. 그 분위기가 아주 특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시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손수 세숫대야에다 물을 떠다가 허리를 굽혀서 한 제자 한 사람, 한 사람, 이 철없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사도요한은 뒤늦게 이렇게 봅니다. "자기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본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십자가의 죽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 그런 긴장된 순간부터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랑하라'는 말은 56회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시는 13장에 서 21장 사이에 44회나 나온다는 사실은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자기 제자들을 앉혀 놓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 던 말씀들 가운데 가장 핵심 되는 주제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말슴하신 사랑하라는 말씀에 담긴 중요한 진리를 붙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은 먼저 우리에게 사랑의 표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가 그 표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무조건적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우리에게 내어주시며 희생해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 순간 사랑하다가 끝나버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한번 마음을 주셨으면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 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표준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사랑할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목사의 입장에서도 사랑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그래도 쉽습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안 미워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사랑하라는 말씀은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제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표준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말만 들으면 기가 질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카렐이라고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할 줄 아는 사람보다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그의 참 모습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이 자기의 참 모습을 드러내시는 사람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제자훈련도 빠짐없이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이 꿰며 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해내는 것은 사랑할 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을 실천 해 보려고 애쓸 때 주님은 자기 모습을 밝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기가 어렵다 하여 사랑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로는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알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 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 제자는 선생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선 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변명을 늘어놓 든지 간에 사랑하지 않는다면 절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이라는 이 표준에 맞추어서 서로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손해보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워도 참고 사랑해야 합니다.
감리교 선교사이면서 신학대학에서 가르쳤던 박대인 목사가 동남아시아에서 열린 외국 선교사 회의에 참석했을 때입니다. 그 모임에서 일본인 선교사를 한 분 만납니다. 일본인 선교사는 드문데 기이하게 여겨져서 '어떻게 선교사로 오게 되었는가?' 물어보았답니다. 그의 대답이 태평양 전쟁 말기에 도쿄에 살았는데 정부의 지시로 농촌으로 소개를 가게 되었답니다.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고 아는 이도 없는 낯선 곳에서 피란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외롭고 불편하고 서글프겠습니까? 그런데 남달리 친절과 도움을 베풀어준 지방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달을 지내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도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절한 사람을 찾아가 작별의 정을 나누게 되는데 그 농촌사람이 그때 비로소 자기는 조선에서 온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헤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은헤를 빌겠다며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분은 도쿄로 돌아가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그 조선 사람의 사랑이 기억날때마다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크리스찬이 되고 목회자가 되어 일본보다 후진국인 동남아시아에서 선교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라
다음으로 예수님은 사랑의 대상을 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로'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서로'란 일차적으로는 제자들 끼리를 뜻합니다. 열두 제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거창한 인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누구를 생각하기에 앞서 3년을 동고동락한 제자들 상호간에 이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거창한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옆에 있는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태여 멀리 있는 사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마음에 두고 사랑하라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로서의 개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는 거창한 타이틀을 열렬히 사랑하기 쉽다. 그러나 일반적인 면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일 수 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 역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전 세계를 사랑 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너를 통하여 전 세계를 사랑하고, 너를 통하여 동시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내가 옆에 있는 남편을 보고 "여보,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남편을 통해 전세계를 사랑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 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 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삶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이와 같은 때에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늘 예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증명하신 참된 사랑의 감동에 빠져 살아야 합니다.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본받고자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꼭 실천에 옮겨야 됩니다. 막연히 사랑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알고 믿는데 그쳐서는 불완전합니다. 믿는바를 그대로 실천할 때 온전해집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는 율법학자에게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고 물으시고는 '가서 나도 그와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백 여년 전에 캐나다의 작은 교회에 제임스 홀이라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은헤를 받고 선교사의 꿈을 꾸며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공부를 참 잘했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 실습을 나갔습니다. 거기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납니다. 첫눈에 반한 제임스 홀은 로제타에게 프로포즈를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했습니다. 이유는 헤론이라는 선교사가 조선에 와서 의료선교를 하는데 조선은 죽어도 여자는 남자의사에게 진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편지를 하기를 조선에 여자 의사를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고 조선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였는데 제임스 홀은 중국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제타가 먼저 조선에 들어오고 후에 제임스 홀이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선교사로 들어와서 둘은 만나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셔우드 홀입니다. 제임스 홀이 다시 평양으로 파송을 받아서 의료선교를 하였습니다. 광성고등학교가 그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청일전쟁이 일어나 모든 선교사는 피란을 떠납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양에 전염병이 창궐하였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평양으로 돌아가 병자들을 치료해주다가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죽고 맙니다. 아들은 한 살 딸은 복중에 임신 7개월 때입니다. 로제타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 안정을 취하였습니다. 그때 자기 남편 제임스 홀을 파송했던 고향교회를 방문합니다. 교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따뜻한 환영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여러 사람이 조선을 품고 기도하였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 남편의 몫까지 조선을 사랑하며 선교하리라는 결심을 굳히고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조선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어린 딸 메디스가 풍토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나이는 겨우 두살이었습니다. 남편이 묻혀있는 양화진에 딸을 묻고 돌아온 마가렛은 어린 셔우드를 품에 안고 조선을 포기하지 않고 일생을 헌신할 것을 다시 결심합니다. 그녀는 84살까지 살면서 엄청난 사역을 하였습니다. 이대부속 병원이 그녀가 세웠습니다. 인천 기독병원을 세웠습니다. 학교를 세웠습니다.지금은 고려대학교에 통합되었지만 여자의대를 세웠습니다. 길에서 다 죽어가는 조선의 아이를 데려다가 조선 최초의 여의사로 키웁니다. 그녀가 박에스더입니다.
셔우드 홀이 어릴 때 이모하며 따르던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셔우드는 이땅에 결핵을 퇴치하기로 결심을 하고 미국을 건너가 공부를 하고 결핵전문 의사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일생을 조선을 위해 엄청난 사역을 감당합니다. 그분이 일제에 의해 한때 모든 선교사가 강제 추방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셔우드 홀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에 가서 때를 기다리며 조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선회상이라는 책으로 썼습니다. 후에 셔우드 홀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분이 번역을 했습니다. 그 책을 결핵요양원의 원장이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결핵협회 시발이 바로 셔우드 홀이라는 것을 알고 수소문을 해서 찾았는데 90이 넘은 나이로 부부가 다 생존해 있었습니다. 셔우드 홀을 한국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셔우드 홀이 광성고등하교 채플에 초청받아 설교를 하는데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나를 아버지가 묻혀 있고 어머니가 묻혀 있는 곳, 아들이 묻혀 있고 누이동생 에디스가 묻혀 있는 곳 양화진에 데려다 주시오." 양화진에는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3분의 일이 어린 아기들의 무덤입니다. 셔우드 홀은 묘비를 불들고 말합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아버지의 고향 캐나다에 묻지 말고 어머니의 고향 미국에도 묻지 말고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추방되어 인도에 머물면서도 한 순간도 인지 못하고 기도했던 나의 고향 내가 은퇴해서도 늘 사진을 보며 기도했던 내가 사랑하는 한국에 묻어주시오." 새우드 홀 부부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양화진에 묻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백여전 전에 생명을 걸고 죽을 고생을 하며 이 땅에 찾아와서 복음을 전해준 바로 이런 선교사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을 이 땅에 보내놓고 날마다 조선과 조선사람을 위해 기도해준 얼굴도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젊은 나이에 잃는 아픔을 감수한 선교사님들의 부모님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난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피가 이 땅에 뿌려졌기에 불과 백여년만에 이 땅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고 이 땅이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며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잊으면 안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아름다운 사랑과 그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내어주는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있기에 세상은 밝아지고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기적을 일으킬 때입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사랑은 아픔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은 다 감수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사랑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주인공으로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