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택에 따라오는 결과, 그게 어떻든 다 괜찮다.
서강대학교 체육교육 E56041 김지현
나는 내가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원인이 항상 궁금했고, 결과를 걱정했으며, 대화를 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의 이유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나면 느껴지는 특유의 심적 안정감을 좋아한다. 근데 이 수업을 듣고 에세이를 쓰기 위해 나에게 어떤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생각해보니 원인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탈출 알바썰
나는 지금 방탈출카페 알바를 3년째 하고 있다. 원래는 이렇게 오래할 생각이 없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재밌고 나랑 잘 맞아서 꾸준히 하는 중이다. 방탈출 카페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 안에 설치된 자물쇠와 여러 센서 문제를 풀고 나오는 테마카페이다. 한 문제라도 자물쇠가 잘못 걸려 있거나, 힌트가 엉뚱한 곳에 숨겨져 있으면 모든 순서가 엉망이 되어버려 문제를 다 풀지 않고 탈출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때문에 방 안에 자물쇠들이 문제 푸는 순서에 맞게 잘 설치되어있어야 해서 방 정리를 하는 알바생들이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생들도 사람인지라, 실수는 나기 마련이다.
어느 날은 오픈 준비를 다 끝내고 첫 손님을 맞이해 입장시켰다. 씨씨티비를 보며 게임을 잘 진행하고 있는지 체크하는데 웬걸, 손님이 뒤에 문제를 풀지 않고 방을 탈출해버린 것이 아닌가. 분명 ‘나는 모든 센서를 확인했는데 문이 열려있었을 리는 없을 텐데’ 라는 생각과 함께 호다닥 뛰쳐나가니 손님이 안쪽 자물쇠 하나가 열려있었고, 그걸 열어서 진행하니 마지막 문이 열렸다고 말했다. 손님 표정은 이미 살벌했고, 이미 탈출로를 알게 되어 뒤에 문제를 풀고 싶지 않다며 그냥 나오겠다고 했다. 순간 사장님 얼굴이 아른거리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까 하다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구안해냈다. “제 지인할인을 적용하여 결제하신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방을 진행할 수 있고, 아니면 지인가격만큼 나머지 금액을 환불해드릴 수 있어요....” 다행히 나머지 금액을 환불 받는 것으로 결정하시고 엄청난 사과를 받으신 뒤 굳어진 표정을 조금 푸신 채 가게를 나가셨다. 순간 지인할인이 생각났기에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막막했을 것이다. 문제는 전 날 마감하는 알바생이 자물쇠를 확인하지 않는 게 원인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졌고 잘 수습됐으니 괜찮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거야
고등학교 땐 졸업하면 해야지, 대학생 땐 언제하지, 마루고 미루다가 작년 초 결심했다. 탈색을 하기로! 탈색하면 어두운 색으로 덮어도 색이 금방 빠진다, 머릿결이 금방 상할 거다, 뿌리 올라오면 뿌리염색을 맨날 해야 해서 그것대로 스트레스고, 돈이고 엄청날 거다 등등의 많은 걱정들이 들려왔다. 물론 나도 다 알고 있었고, 내년이면 교생도 나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어두운 색으로 다시 덮어야하는 헛수고가 있을 거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하고 싶었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겠는가 라는 생각에 홧김에 예약을 잡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탈색을 하러 미용실을 갔고, 걱정과 달리 한 번, 두 번 약을 바를 때마다 밝아지는 머리를 보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해본 적 없는 머리색을 시도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나는 짧은 앞머리의 처피뱅도 도전해보았다. 보라색, 백금발, 회색 등의 머리색을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하면서 상상이상의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교생을 위해 어둡게 덮어도 금방 밝아지는 탓에 뿌리염색의 귀찮음을 느껴 검은색으로 염색을 해버렸지만,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탈색의 경험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전긍긍 걱정하며 할까 말까 고민했던 그때보다 그냥 저지르고 경험한 이후에 지금이 훨씬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인생 25년간 최대 고민이었던 앞머리, 25년간 앞머리가 있는 내 모습을 고수했다. 앞머리가 좋아서라기 보단, 유난히 넓어보였던 이마와 짱구같이 진한 눈썹을 가리기 위한 용도였다. 앞머리를 넘겨볼까 수없이 고민을 했지만, 매번 ‘눈썹 진짜 진하다.’ 등의 의도 없이 가해지는 평가와 함께 낮아지는 자신감 때문에 가리고 다녔던 것이다. 여름에 땀이 맺혀 앞머리가 갈라져도, 땀이 나 뾰루지가 올라와도 지켜냈던 내 앞머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 싶은 걸해야 후회가 안 남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커질 때쯤 자연스레 앞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종종 앞머리를 넘기고 다니니 사람들은 앞머리가 내려와 있건 넘겨져 있건 잘 알아채지도 못했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앞머리가 없는, 여러 색이 입혀진 뒤 상해버린 내 머리는 이젠 하나의 에피소드가 됐고 ‘하고 싶으면 그냥 하자.’는 나의 수많은 모토 중 하나가 되었다.
눈썹이 진한 내가 훤히 이마를 내보여도, 머릿결이 상하고 뿌리염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어도 나는 그 선택들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남들의 시선에 얽매여 아직도 답답한 앞머리를 하고 탈색이라는 화끈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면 그게 더 후회였을 것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할까 말까, 이것저것 재던 시간에 그냥 도전할 걸이라는 점?

(탈색 2번 후 보라색머리)

(다시 탈색 후 백금발)

(까만색으로 덮고, 앞머리 없앤 지금)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그러나 모든 장면엔 선택의 순간이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그 마음먹기가 힘들어 학창시절 꿈을 접게 되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대학가야지 지현아.’라며 친구가 같이 체대입시를 시작하지 않겠냐 했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픈 목표도 없던 그때 친구의 말에 혹해서 운동을 시작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맞냐는 엄마의 의심과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냥 해보겠다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믿어달라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애를 썼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지못해 학원을 다니게 해주셨고, 내가 선택한 것에 있어 책임을 지고 싶어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시작했다. 덕분에 당당히 인서울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도 나는 동기들과 달리 뚜렷한 목표나 꿈이 없던 상태였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공부나 학점이 방해가 되지 않게 공부나 열심히 하자 생각이었다. 과거 미련의 흔적인지,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으로 들어본 교직과목 <교육심리>가 너무나 재밌었고 흥미로웠으며, 교직의 꿈을 다시 꿔볼까 생각을 들게끔 만들었다. 대학시절엔 공부를 열심히 했고, 감사하게도 1등도 여러 번 해보며 노력한다면 그만큼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부랴부랴 교육대학원을 찾아봤고, 원서를 접수했다.
교육대학원은 정말 가고 싶었던 딱 한 군데,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에만 원서를 접수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원서 접수 당일 졸업 예정일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학부 사이트를 아무리 찾아봐도 날짜가 적혀있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바보 같지만, 얼른 원서접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졸업날짜는 모두 비슷하겠지 싶어 작년 졸업식 날짜를 기입한 채 원서를 접수했다.(문제를 해결하려 과거를 생각하는 것을 보니 합리에 가까운 사람인 건 맞는 듯합니다.) 뒤늦게 확인을 해보니 원서접수를 하면 후에 변경을 안 해주는 학교가 있어 처음 접수할 때 정확하게 하란 주의사항과 함께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혀 있으면 원서접수가 취소된다는 경고문이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그때부터 심장이 정말 빨리 뛰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접수한 원서를 보니 잘못 기입한 부분은 졸업날짜 뿐만이 아니었다. 졸업 시 평균 학점을 적는 칸에 마지막 학점이었던 4학년 1학기(당시 막학기 성적이 뜨기 전이었기 때문에)의 학점을 적은 것이었다. 손을 덜덜 떨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을 거라며, 내일 아침 일찍 서강대에 가보고 안 된다고 하면 같이 울면서 빌어보자.’라며 위로해주었다. 면접조차 보지 못한 채로 떨어진다면,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하늘이 주신 휴식이라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날 밤을 지새우고 내 자신을 달랜 뒤 아침을 맞았다. 교육대학원 행정실이 열 때 쯤 친구와 함께 서강대에 도착해 운동장 한 가운데에 앉아 들어가기 전 행정실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대수롭지 않게 변경처리를 해주셨고, 친구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날 바보 같았던 내 선택들이 지금은 대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자체를 감사하게 만들었고, 더 극적이게 만들었으며, 이미 벌어진 상황에 이유와 원인을 안다고 해도 전혀 바뀌는 게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 날, 전화로 위로를 받아 내용은 별로 없지만 당시의 상황이 그나마 잘 나타나 있는 메시지입니다.ㅎㅅㅎ)
나에게 운동을 권유했던 친구의 말을 그냥 흘려들어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갇혀 교직 과목을 들어볼까 하는 호기심을 무시했다면,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그저 미련으로만 남아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직관경험을 찾기 위해 회상을 해보니 과거를 따지며 합리를 추구했던 순간보다 닥친 문제를 바로 판단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관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과 결과가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고, 또 다른 순간이 와도, 무엇을 선택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예기치 못한 순간들은 어쨌든 있을 것이며, 그것들은 항상 긴장되고 재밌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