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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 주일
항상 개혁하는 교회
역대하 35장 16-19절, 요한복음 2장 13-22절, 로마서 3장 19-27절
한 문 덕 목사
[종교개혁주일]
예배 인사를 드리면서 말씀 드렸지만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무명의 수도사요, 신생대학교의 교수에 불과했던 마르틴 루터가 일으켰던 작은 개혁의 불씨가 개신교를 만들었고, 올해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루터의 개혁을 이어받아 개신교의 정착과 제도화에 공을 세운 제네바의 칼뱅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고 말했습니다. 개신교의 정신은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고,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을 변혁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두 본문 역대하와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서 늘 개혁에 힘쓰지 않으면 곧 부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역대하의 말씀을 보니 요시야 왕이 대대적인 개혁 작업을 벌이고 잘 준비하여 유월절 예배를 드리는데, ‘예언자 사무엘 이후로 이처럼 유월절을 지킨 예가 없었다’는 역사가의 평가가 나옵니다.
요시야 왕은 기원전 7세기에 활약했던 인물이고, 사무엘은 기원전 11세기에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400년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제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성전 뜰에서 합법적으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꿔 주는 사람들을 모두 내쫓으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거룩해야 할 성전이 온갖 부정과 부패, 욕망과 권력으로 얼룩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기리는 유월절과 유대 백성의 삶과 정신의 지주였던 예루살렘 성전, 이 둘이 모두 심각하게 훼손되고 부패했다는 것은 야훼 신앙이 무너졌음을 보여줍니다. 요시야는 여덟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8년이 지날 무렵 자신만의 주체적인 신앙을 굳게 세웁니다(역대하 34:3). 이후 4년이 흐르고 나서 20세가 되었을 때, 이후 6년 동안 대대적인 우상 척결과 제거 작업에 돌입합니다(역대하 34:3-7, 열왕기하 23장). 요시야가 시행했던 우상의 제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때부터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바알의 유혹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산당을 세우고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바알신에게 빌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또 한편으로는 바알에게 굴복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이 한마디 말씀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오늘날 대형교회가 하는 모습들이 과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수백억의 비자금을 만들고, 교회의 직분을 얻기 위해서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내야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항상 개혁하는 교회라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하고,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계속 잘못된 전통과 습관들을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오염시키는 것들을 고쳐나갈 수 있을까요? 로마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 번 말씀 드렸지만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죄란 이 세상이 말하는 범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를 중심에 놓고 행하려는 근원적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두를 생각하지 못하고, 더 넓게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근원적인 성향을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율법과 예언서 즉 성경의 핵심 정신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자기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남의 입장에 서서, 타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위는 자기 위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언제나 1순위가 됩니다. 이런 근원적 성향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날 때 우리는 고통에 빠지게 되고 욕망의 노예가 되며 불안과 허무의 늪에서 헤매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이 알려준 대로 그 모든 고통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가고 맙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어 주시고 우리를 좋게 봐 주실 때만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마음을 개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온전한 주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무엇을 해보려고 하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출 때에만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없듯이, 우리가 쓰고 있는 세상의 안경을 벗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서야 합니다.
지난 주 수요일부터 오늘까지 한신대 신학대학원 다섯명의 목사후보생들이 우리 교회에서 목회실습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의 이모저모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도봉동에 있는 은혜공동체 방문, 포천 나눔의 집 후원행사 참가 등 다양한 목회현장을 체험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목회실습생들이 각 교회에서 하고 있는 자신의 목회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이 분들의 느낌과 평가를 통해 우리 자신들의 목회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깐 이분들의 소감을 들어 볼까 합니다.
[한신대 신대원생들의 목회실습 소감문]
참 좋은 날, 수락산과 중랑천 사이 어느 작은 교회로 저희를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신 자매, 형제 여러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부터 4박 5일 동안에 걸친 저희의 짧은 여정을 부분적으로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저희는 함께 모여 떼제기도회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모여서 같이 기도 드리는 것은 언제나 참 좋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은 교회전통으로도 유서가 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성으로만 기도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을 때가 많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는 것에만 익숙해서인지 때로는 침묵과 고요함이 낯설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침묵으로 기도하는 중에도 언제나 늘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수요기도회에서는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며 목 놓아 부르짖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기도들을 한 교회에서 드릴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침묵기도와 통성기도 훈련은 우리의 영성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
다음 날, 저희는 은혜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은혜공동체는 공동거주와 공동생활을 하는 공동체입니다. 자기의 공간을 일부 내어 놓고, 나머지 공간을 함께 사용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것을 내어놓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개인에게 손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자기의 공간을 좁히고, 같이 쓰는 공간을 넓힘으로 은혜공동체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우리보다 훨씬 더 행복한 일상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함께 살았을 때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우역곡절의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두 가지 꼽자면 첫째는 섬김이고, 둘째는 솔직한 대화입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맺어진 관계는 서로를 더욱 더 끈끈하게 이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도 서로를 섬기고,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한다면 우리들의 관계는 더욱 두터워지고 우리 또한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셋째 날, 저희는 포천 나눔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에서 정일용 신부님의 짧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약자를 섬기고 낮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 곧 그리스도인의 일”이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과 그렇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습니다. 말로는 참 쉽지만 막상 발로 하려고하니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 속에서 사라져있지만 세상 속에 이미 존재하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차별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일을 일구어 나가야합니다. 로마서 12:1 말씀처럼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산 제물로 드리는 바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드릴 합당한 예배”(의역)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고린도전서 11:23-24 말씀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것을 행하라.”(직역) 라고 제정하신 말씀 속에서도 몸을 내어주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몸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내어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서 허락하시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생명사랑교회는 한국교회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교회입니다. 그것은 이미 교회의 3대 목표에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교회의 3대 목표를 자세히 살피기 위하여 한문덕 목사님과 함께 정관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목회운영위원회입니다. 일반교회라면 당회가 핵심권력을 쥐고 있지만 생명사랑교회는 목회운영위원회를 설치하여 권력의 독점을 막고, 모든 구성원들이 교회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중심의 교회 운영은 건강한 교회를 만듦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부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권력으로 인한 것인데, 보통 그럴 경우 권력은 소수에게 독점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건강하기 위해선 작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깊이 감명을 받습니다. 공동체성이란 것은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이 되면, 그 공동체성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교회의 분립을 주장하는 것은 또한 매우 바람직합니다.
여성장로가 전체 장로수의 1/3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조항 또한 참 마음에 들고 눈에 띕니다. 대부분의 목사나 장로는 남성이지만 신도 중 절반 혹은 그 이상은 여성입니다. 이럴 경우 마땅히 여성의 대표가 필요합니다. 애찬준비에 있어서는 저희가 들은 바에 따르면, 여성의 일로만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 3:28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손에 물을 묻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서툴러서 안할 수도 있겠지만, 안 해봐서 서투른 것일 수도 있으니 생명사랑 형제분들은 애찬준비를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간략하게 소개한다고 했지만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한문덕 목사님을 비롯하여 생명사랑 형제자매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부디 매년 목회실습을 통해 많은 신학생들에게 좋은 목회와 좋은 교회의 본을 보여주십시오. 뿐만 아니라 절망적 상황에 놓인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어주십시오. 주님께서 기뻐하실 공동체가 되어주십시오. 이를 위해 저희도 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늘 생명사랑교회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개혁의 방향과 훈련]
전도사님들의 소감문에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추구, 모든 성도들이 골고루 참여하는 교회의 민주적 운영과 섬김의 삶,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솔직한 대화, 낮은 곳을 향하는 주님의 뜻을 따름, 차이가 차별로 느껴지지 않는 평등한 공동체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과연 우리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는 생명사랑교회는 이분들의 바람을 어느 정도나 채워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진정한 개혁교회 전통에 서려면 우리는 올바른 방향을 잡고 끊임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훈련 없이 성숙은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고 하나님께 여쭈어가면서 주님의 뜻에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작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베를린의 독일 역사 박물관에서 <루터 효과, 세계 개신교 500년>(The Luther Effect, protestantism – 500 years in the world)라는 책을 내면서 대대적인 전시를 했습니다. 이 책은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어떠했는가를 다루고, 이후 500년 동안 루터의 영향이 유럽과 전 세계에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개신교 역사를 다 다룰 수가 없기 때문에 각 대륙별로 개신교를 대표하는 나라를 선정해서 그 나라의 개신교를 소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이 선정되었습니다. 스웨덴은 1523년 덴마크와의 전쟁을 통해 칼마르 동맹에서 독립하여 근대 국가를 성립하게 되는데, 이 때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끊고 루터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루터란들이 세운 하나의 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이 선정됩니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 유럽의 지성들이 새롭게 꿈꾼 나라였고, 영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지금의 미국을 형성하기까지 개신교들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를 다룹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탄자니아가 선정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오래도록 유럽의 식민지였으며 제국 열강들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해 부족간의 심각한 내전을 겪는 대륙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탄자니아는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며 가족적 연대(Ujamaa)를 이루는 매우 평화적인 정책을 썼는데, 여기에 개신교가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선정되었습니다. 한국을 설명하는 장의 제목은 “한국 – 개신교가 만개한 땅”(Korea – Boom land of protestantism)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20세기에 가장 급속적인 성장을 하였고, 세계적인 대형교회들이 세워졌으며,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개신교를 소개하면서 이 책이 주목한 것은 선교사들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온 것과 기존 한국의 다양한 종교문화에 개신교가 영향을 주면서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 나갔나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의 두 가지 측면을 주목했습니다. 그것을 “두 개의 성공 이야기”(A Double Success Story)라는 제목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는 교회성장과 번영신학의 한 단면입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는 빌리그래함 목사가 와서 대규모 집회를 합니다. 5일의 부흥집회 기간 동안 110만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이것은 한국교회의 부흥의 하나의 이정표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같은 해 발표된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으로 대표되는 또 하나의 흐름입니다. 이 선언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소수였지만 이들은 민주적 가치를 한국에 심으며 이 땅에 소외당하고 가난하고 힘든 노동자 농민 민중의 곁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 개신교를 이렇게 두 가지 흐름으로 설명하면서 “분단된 땅의 표지들!”(Beacons in A Divided Land)이라는 제목으로 두 교회의 모습을 전시했는데, 하나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향린교회였습니다. 지금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어느 길로 가야할까요? “양극의 용해”를 말씀하셨던 문대골 목사님의 지향처럼 둘 다를 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느 길로 가야할까요? 항상 개혁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바로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며, 저와 여러분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스승은 예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돈을 소유하여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 성령님의 위로와 함께 하심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헛된 욕심과 교만한 마음, 세상에서 살면서 묻은 먼지들을 모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깨끗한 성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의 동지들 속에서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는 시대에 따라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나라를 일구어 가시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500년 전 루터를 통해 세상을 바꾸시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늘 변하라는 말씀을 새깁니다. 당신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지 않고, 우리 인간들의 전통으로 세운 것들을 말끔히 씻게 하여 주시옵소서. 먼저 당신의 나라와 뜻을 구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과 영을 정결케 하옵소서. 주님을 따르는 온전한 믿음에 굳게 서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우러르면 우러를수록 빗장 푸는 하늘이 있고, 모두가 내 것인 넉넉한 황금 들판이 있습니다. 귀를 열면 쏟아져 들어오는 영롱한 풀벌레 소리, 빈 바구니 가득 채우는 들꽃의 향기, 언제나 내 곁에 머무는 빛나는 오늘이 있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황홀한 내일이 있어 근심도 소중하고, 가난도 오히려 사랑스러워지는 샘물처럼 차오르는 이 넘치는 행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오늘 거룩한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예물을 드리오니, 받으시고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여 주시고, 이 땅에서 하늘 시민으로 살려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참된 평화와 지혜를 내려 주소서. 우리가 날마다 잘못한 모든 것들을 고쳐 나가고,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어, 우리에게 주어진 삶들을 거뜬히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인 생명, 평화, 정의를 이루게 하소서. 매일 매일 새로운 맘으로 형제와 이웃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세상으로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참된 삶을 추구하십시오.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늘 개혁하는 길에 서고자 하는 생명사랑가족들 위에, 목회실습을 통하여 주님의 미래를 감당하려는 목회실습생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