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가 뭘까?
요새 '창조경제'라는 말이 화두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산업통상부와 중소기업청 업무보고에서 "창조경제를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 경제 현장에서 창조경제를 이뤄내는 일이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며 실물경제 현장에서 창조경제 구현을 주문했다.
정계를 넘어서 대기업까지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다. 삼성은 '창조경제'를 본사의 '창조경영'과 결부시켜 자못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고, LG그룹은 신규 시장 창출에 따른 일자리 확대 차원으로 해석했다.
현대차그룹과 SK그룹 역시 인재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창조경제'를 띄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작 '창조경제'라는 용어는 출처가 모호하다. 원래 창조경제는 대선 당시 '스마트 뉴딜 정책' 보고서를 보고 'IT업계 보고서' 같다며 지금의 이름을 달게 되었다.
사정이 이와 같다 보니 공약에 참여했던 국회의원조차도 "정책단위까지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다 보니 사람마다 답이 다 다르다."고 말했을 정도다.
한편 창조경제의 윤곽을 비교적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농림수산식품부다.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이동필)는 22일 오전 2013년 업무계획을 보고했는데, 골자는 농업의 6차 산업화다.
즉, 농축산물 생산과 가공, 관광 등이 결합된 '농업 6차 산업화' 방안을 오는 6월까지 마련해 하반기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농축산물 공동 가공센터'를 확대 설치하고, 농업과 공업, 상업이 융합된 기업을 집중 지원하고 도.농교류를 통한 농촌 관광 활성화를 위해 체험 휴양마을을 800개로 늘리고 '농촌 관광사업 등급제'도 시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농식품 예산의 5%인 R&D 투자 비중을 오는 2017년까지 10%로 확대하고, '농촌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한다고 한다. 대통령 역시 "우리 농축산업을 가공ㆍ 유통ㆍ관광 등을 아우르는 종합산업으로 변화시키고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으니 언뜻 봐도 농업 산업의 틀 자체를 혁신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읽힌다.
6차 산업 책이 10만권이나 팔리는 일본
한국에서 농업의 6차 산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려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말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장관은 김포 인삼쌀맥주 사업장을 방문했는데, 이곳은 지역에서 생산한 쌀과 인삼을 이용해 맥주·음료·비누 같은 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체험 코스를 만들어 관광객도 유치하고 있었다.
2009년 사업을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13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금까지 관광객 2만4000여명이 방문했다. 한국의 6차 산업은 농업(1차), 제조업(2차), 관광업(3차)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개념으로 '관광'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장관은 6차 산업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은 6차 산업을 1+2+3의 개념으로 보는데, 저는 1×2×3으로 봐요. 이게 무슨 말이냐. 맨 앞의 농업을 뜻하는 '1'이 제 기능을 못해 '제로(0)'가 되면 나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 장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6차 산업의 원조는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20년 전부터 6차 산업을 시도하며 결실을 보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쿠시마현의 농림과에 다니는 공무원에게 일본의 6차 산업을 물은 적이 있다.
그 공무원은 손사레를 치면서 "일본의 6차 산업은 끝이 없고 너무나 복잡하다."고 말했다. 니혼게자이신문 출판사에서 출간돼 일본에서 1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일본의 농촌은 보물산이다>(日本の田舎は宝の山)(한국에서는 <농촌의 역습>으로 출간됨)도 6차 산업 이야기다.
농촌의 6차 산업, 그리고 귀농ㆍ귀촌 이야기라는 재미 없어 보이는 책에 10만 명의 독자가 구매를 한 일본을 통해서 6차 산업을 배워야만, 우리나라의 6차 산업도, 나아가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창조 경제도 풀어낼 수가 있다.
이 책에는 6차 산업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농업의 6차 산업화란 농업자나 농업생산법인의 다양한 경영체가 농업생산(1차)에 머무르지 않고 가공(2차), 판매 및 서비스(3차)까지 1 Ⅹ 2 Ⅹ 3=6)를 포함한 총합적인 사업 전개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 6차 산업의 구체적인 계획과 경제 규모까지 구상이 되어 있다. 아래의 5가지 분야에서 총 10조엔(117조원)과 100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
1. 6차 산업화에 의한 농업(3조엔)
2. 농촌에서의 관광 교류(2조엔)
3. 삼림자원을 활용한 임업, 건축, 부동산 등으로의 활용(2조엔)
4. 농촌에 있는 자연에너지 활용(2조엔)
5. 소프트 산업 : 정보, 교육, IT, e커머스, 출판 인쇄, 미디어, 건강, 복지(1조엔)
얼마 전 <농촌의 역습>의 저자인 소네하라 히사시(曾根原久司.52)씨가 방한한 적이 있다. 그에게 "10조엔 구상 중에서 현재 몇 퍼센트 정도까지 달성한 것 같나요?"라고 물었더니 "현재 1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5퍼센트 정도까지 온 것 같다."고 답변했다.
▲ <농촌의 역습> 저자 소네하라 씨의 NPO 법인 '에가오츠나게테'('미소를 이어가며'를 뜻함)가 도쿄농공대학과 연계해 설치한 소수력 발전소. 일본 정부가 하천법을 완화시켜 종합특구로 지정해준 덕분에 매 시간 320kW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6차 산업은 충남발전연구원이 2012년 6월 9일 ‘충남농어업6차산업화센터’(센터장 유학열)를 개소하면서 논의가 본격화했다. 전북 완주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2012년 6월 1일 완주군의 8개 농축협 조합장이 참여한 가운데 농업회사 법인인 (주)완주로컬푸드 창립총회를 열고 건강밥상 꾸러미, 1일 유통직매장에 이어 농식품~음식~체험이 결합된 6차 산업화형 로컬푸드 스테이션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예산도 확보했다.
완주군은 40억원에 달하는 총사업비 중 군비 및 자담분 20억원을 전액 부담했고, 농업회사 법인 초기자본금 역시 군에서 5억원, 8개의 참여 농축협에서 6억7,500만원을 각각 출자해 총 11억7,500만원이 확보됐다. 저마다 '창조경제'와 '6차 산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서 군웅축록(群雄逐鹿)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희망제작소와 대구사회연구소 같은 시민단체들도 오래 전부터 6차 산업 분야에서 공을 들이고 있다.
▲2008년 일본의 유명한 건설그룹인 미츠비시지쇼그룹과 개간한 농촌의 전후 모습이다. 개간에 참여한 미츠비시지쇼 그룹은 그린 투어리즘으로 참여해 프로그램 비용을 냈다. 소네하라 대표에 따르면 "1.5톤의 쌀을 그대로 팔면 30만엔에서 40만엔의 수입이 되지만, 모내기 체험 등과 함께 상품화하게 되면 수입이 500만엔으로 10배가 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이 6차 산업이 돈을 버는 방식이다.
<농촌의 역습> 등의 자료를 토대로 일본의 6차 산업 현황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점은 시민단체와 NPO 법인이 산업을 주도하고 기업과 당국이 뒤를 받쳐주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에서 주도하는 성격이 강한 것 같다.
'친환경 마크'나 '유기농'처럼 관에서 딱지를 붙여 놓으면 그 취지가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6차 산업의 기반이 되는 철학이다. 20년 가까이 6차 산업 실험이 진행되는 일본의 경우 철학적 밑바탕도 튼튼해 보였다. 소네하라 대표는 이것을 라이프스타일과 워크스타일이라는 두 가지 낱말로 요약했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택해 그 스타일로 살아가고자 하면 주변에 있는 것이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원으로 보이게 됩니다. 거기에서 사람이나 자원을 연결하는 활동이 시작되고 조직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개인의 워크 스타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지역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 <농촌의 역습>, 135쪽
6차 산업은 농업의 본질이 바뀐다는 의미다. 그것은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모두 변화한다는 의미다. 이 요소를 읽어내지 못하고 관의 주도로 진행하게 되면 우루과이라운드, FTA를 통해 겪은 농촌의 피폐화 현상을 다시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 <농촌의 역습> 한국판 출간 기념으로 소네하라 대표는 2월 27일 서울의 희망제작소에서 강연을 했다. 위 글은 희망제작소 강연 내용과 <농촌의 역습>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