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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고고학을 가르치는 미국에 찰스 셔어 라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대부분의 자기 생애를 팔레스타인에서 고적답사와 연구를 하는 데 바친 분입니다. 그는 선교사로서. 고고학자로서 일을 하다가 고향인 미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 분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이 아무도 없었고 그 분의 인격 앞에 압도당하지 않는 학생들 또한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교수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처음에 학장님께서 방문을 하고 오셔서 희망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소생할 가능성이 도저히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들려 온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생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어 보이지만 소생해도 그 정신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계속 무의식 상태에 무언가 자꾸만 중얼거리는데 아무래도 제 기능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후 학장님이 다시 중환자실에 가서 그 분을 보고 와서 학교 예배 시간에 아주 깜짝 놀랄 만한 보고를 합니다. 이 셔어 박사는 절대로 정신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며. 건강이 회복될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교수님이 중환자실에서 계속 독백처럼 중얼거리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시편 1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평상시에 늘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만큼 말씀과 가까운 분입니다. 말씀이 그 인격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이 그 분과 같이 거닐고 계셨으며. 또 그 분은 계속 그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인격과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나타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내가 있기 까지는 분명히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요 사상가인 파스칼은 선천적으로 몸이 몹시 허약하여 종종 심한 복통과 두통에다 결핵성 복막염까지 앓았습니다. 이렇게 병약한 몸이었지만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의 39년 인생 중 비교적 건강했던 기간은 겨우 2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육체의 병이 영혼의 약이 되었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은 단 하나, 주님을 따르는 것은 선이요 주님을 거역하는 것은 악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은 괴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권세를 가진 사람일까요? 돈을 많이 가진 재벌일까요? 지식을 많이 가진 박사들일까요? 세상이 부러워하는 아름다움을 가진 미남 미녀들일까요? 이런 것들을 가진 사람들은 잠시는 행복하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을 될 수 있을지 모루지만 행복하기 보다는 그것을 소유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남다른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것에는 만족이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그 자체만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그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면서 그 아버지 품안에서 살면서 아버지의 도우심을 늘 체험하면서 사는 성도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사해 봅시다. 성도님은 가장 행복한 분이십니다. 나도 행복하구요.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구를 도와준다는 것입니까? 바로 오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힘들고 사방에 위험이 산적해 있어 누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마치 벌판에 바람막이도 없는 가운데 촛불 하나 켜있는 것과 같은 불안한 현실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어디 도움이 없을까 하며 도울 수 없는 세상의 것들에 시간과 정열을 쏟으면서도 정작 도와주시겠다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지 못하고 고통당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 즉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하심 말씀을 지금 내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 아버지의 도우심을 따라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를 도우시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1. 하나님은 아버지는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나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고 3 학생들의 치열한 대학 입학을 위한 입시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시간들을 오직 하나의 목표 자기가 원하는 대학,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는 모든 학생들이 부모들이 만족하지 못합니다. 원하는 학교에 선택되기를 그렇게 원했지만 실력이라는 것 때문에 떨어져야 하는 쓴 맛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학생들은 모든 것을 언은 것과 같이 기뻐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에 선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원하는 것에 선택된 것도 기쁘고 즐거운 일인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선택함을 입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복된 일이겠습니까? 선택받았다는 것이 내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된 일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을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먼저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14절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라는 표현을 섰습니다. 여기에서 야곱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지렁이 같다는 것은 작고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렁이는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절대로 공격하지 못한 채 늘 공격만 당하기만 하는 나약한 것입니다. 모는 민족에게 멸시받고 짓밝히며 안전을 위하여 부득이 암울한 땅속으로 기어들어가야 하는 비참한 지렁이 같은 신세의 유대인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구절의 본래의 의미는 너희 적은 이스라엘 사람들아 라는 의미입니다. 곧 지렁이 같이 약할 뿐만 아니라 그 수도 얼마 안 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나약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고 수적으로도 아주 적은 사람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저들을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지금쯤은 이 땅에 그의 민족들이 존재할 수 없는 그런 민족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보잘 것 없고 수적으로도 많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설명할 수 있는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선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요? 이 관계에 대해서도 8절에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3가지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 종은 주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이면 죽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의 절대적인 보호와 책임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바로 이런 관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종의 신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불복하느냐 따라서 그들은 축복을 받기도 하고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만 하면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이스라엘인 우리도 예수님에게 동일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성도입니다.
둘째로 나의 택한 야곱아 : 이스라엘에게 가장 영예로운 호칭은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특별히 지명되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 이스라엘 이라는 호칭입니다.
창세기 18장 19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을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로 아브람하과 그의 후손들을 지명한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지금도 이스라엘의 백성들 가운데 가장 크게 자라잡고 있는 것이 선민의 의식입니다. 하나님이 택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 어느 백성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믿기에 지금도 숫자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아랍권의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와 맞서서 싸우면서 지금의 이스라엘을 지켜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육적으로는 이방인이지만 영적으로 예수님의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탄의 역사가 우리를 대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 나의 벗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내신 가장 친밀한 표현입니다. 친구는 그와 함께 걸을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그와 함께 고민하고 그와 사랑을 나누고 그를 위하여 죽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14-15절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친구의 관계는 어떤 작은 이해관계에 멀어지거나 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큰 사랑의 관계인 것입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이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노라 고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기를 나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고 있지만 굳세라고 하십니다. 불안한 소식만이 들려오는 이 세상에서도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참으로 도우시되 의로운 오른손으로 도우실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를 가진 자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고 지식이 있는 박사가 아니라 이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두 손 들고 아멘 합시다.
11-12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왔을 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낸 것을 후회하여 다시 잡아오려고 뒤좇아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말하기를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 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고 원망을 했습니다. 모세가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고 그들을 마음을 안정시키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를 홍해로 향할 때 홍해가 갈라져서 육지의 대로가 되어 건넜고, 건넌 후에 애굽 군사가 따라오자 홍해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 홍해에 물이 다시 넘쳐흘러 다시는 애굽 군사들은 다 수장이 되어 죽으므로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11-12절의 말씀처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즉 애굽 군사들은 수치와 멸망을 당했고,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라고 하심처럼 그들이 수장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날 수 없고, 그들의 힘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 싸움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잘 보여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죄악 된 세상의 상징인 애굽에서 택하여 뽑아내신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애굽의 군사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당신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보호함을 받는 이스라엘을 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강한 군대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였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3절에서도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아끼시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으나 선택받은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 떠나기도 하지만 선택하신 것을 결코 후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택하셨기에 사랑하시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도와주시고, 고통을 당할 때 건져 주시고, 질병을 만날 때 치료해 주시고, 우리를 대적하고 해하려는 자들을 멸하셔서 안전하고 행복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선택받았음에 대하여 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끝까지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군대의 한 장성 한 분이 인도로 전임되어 가족을 데리고 항해 하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곧 뒤집힐 듯 요동하니 모든 사람들이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성은 태연하여 도리어 가족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안심하게 된 부인이 "당신도 참 냉정하오. 어쩌면 식구들이 다 죽게 되었는데도 모른 체하고 계셨어요? 당신은 겁도 나지 않으셔요?" 하고 말하자 이 분은 아무 말도 없이 차고 있던 칼을 빼어 부인 목에 대고 당장 찔러 죽이겠다고 호령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태연히 웃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 분은 왜 무서워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내는 칼이 사랑하는 남편의 손에 있으니 어찌 두려워하겠어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때 이 분은 칼을 꽂으며 "맞아요. 풍랑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손에 있으니 어찌 두려워하겠소?"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즐겁다 할 것이며, 어진 친구를 만나 같이 있는 것을 즐겁다 한다면, 성도들은 하나님과 동행함을 느끼고 확신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의 즐거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니엘은 원수들이 짜 놓은 계략을 알았습니다. 포로의 신분인 자기가 총리가 된 것을 못 마땅히 여겨서 죽이려 하지만 세상적인 허물을 찾아내지 못하므로 신앙적인 면에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것을 이용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죽이겠다는 악법을 알고서도 기도하다가 원수들의 손에 잡혀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비록 사자 굴에 던져져서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주께서 다니엘과 함께 계셔서 사자의 입을 봉하여 해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비록 다니엘은 사자 굴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데로 사자에 의해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통해서 다니엘은 무죄함과 하나님은 그를 의뢰하는 자들을 지키시고 돌아보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다니엘의 친구 세 사람들도 비록 왕의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므로 왕의 분노로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불 가운데 던진바 되었어도 그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자의 동행하심을 보았을 때 그 뜨거운 불꽃 가운데서도 아무런 해함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뜨거운 불 가운데서도 즐겁고 평안함을 왕과 모든 신하들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왕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서 자신들의 믿음과 자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어떤 세상의 권세 앞에서도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심과 하나님만이 오직 유일하신 전능하신 신이신 것을 나타내 보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를 갔을지라도, 흉악한 죄수들로 살벌한 그 현장에서도주님께서 같이 하시고, 앞으로 닦아 올 시대에 대한 계시를 보여 주실 때, 그 마음의 평안과 기쁨은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믿음의 눈을 열어 믿음의 세계를 보여 주시며,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도 하고, 실수할 것을 붙들어 실수 못하게도 하시며, 잘못하면 통회하는 마음도 주시고, 우리 소망되는 하늘나라를 보여 알게도 하시며, 우리를 떠나지 않고 동행해 주시는 것을 알게 될 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이 땅에서의 승리이며, 영광인 것을 깨닫고 생활에는 즐거움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하면 무엇이 두려우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성도들에게는 이에서 더한 즐거움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전 국무총리를 지낸 이영덕 씨는 서울 대신감리교회의 장로님이십니다. 장로님은 이런 간증했습니다. "저는 남북적십자 회담 수석대표로 임명받고 그 회담의 성공을 위하여 얼마나 걱정했든지 사흘 만에 체중이 3Kg이나 줄었습니다. 장로님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고, 평소에는 잘 안하던 새벽기도를 이때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회담하러 가는 날 담임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떠났습니다. 장로님 자신은 상당히 긴장하며 북측사람들과 회담을 했는데 나중에 TV를 보니까 환하게 웃으며 회담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혼자의 힘이었다면 어떻게 웃을 경황이 있었겠습니까? 장로님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답니다. 그리고 여섯 시간 회담을 했는데 한 시간 정도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답니다. 어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계심을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는 자기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할 어려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따라 40년의 광야의 생활을 지내온 모세의 오른 팔고 같은 사람입니다. 능력이 있는,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소유했던 모세, 하나님을 친히 뵈올 수 있었던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왔음에도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정말 감당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어찌할까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여호수아는 담대하게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므로 무너뜨리고 가나안의 7족속을 몰아내는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게 하려 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신 것은 그 이름의 뜻과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위하여 오신 것이고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심장병 환자의 고백
수술 받기 전 날 간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간호사는 상냥하게 나의 손을 잡고서 나에게 자기 손을 꽉 잡아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당신의 몸에서 심장이 분리되고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하여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심장은 새롭게 연결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 다음 당신은 회복실로 옮겨질 것이고 그곳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의식은 깨어납니다. 의식이 깨어난 후에도 여섯 시간 동안은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나는 당신 곁에서 지금과 같이 손을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을 일일이 점검하고 기록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완벽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음날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수술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담당 간호사가 말한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그때 나는 내 손을 붙들고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간호사의 손길을 확인하면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과 위로를 얻었고 아울러 삶에 대한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그녀가 내 손을 붙들고 내 모든 문제 하나하나 처치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와 함께하는 그 순간이 내게 얼마나 가치 있고 포근한 것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원문에 의하면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우리 옆에 와 계시는 분 이라고 한다. 아울러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약속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오셔서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다윗은 그와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남다른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렵고 힘든 역경(逆境)중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와 삶의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외면(外面)하고 살 때에 우리는 절망하고 불안해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을 때 성도의 삶이 달라집니다. 어떤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아이가 아빠보다 먼저 달려갑니다. 그런데 앞에서 큰 개를 발견합니다. 개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뒤로 돌아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손을 잡습니다. 손을 잡고 뒤로 돌아 미소를 지으면서 개를 봅니다. 그러나 개는 여전히 큰 개입니다. 그리고 개는 여전히 사납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안전합니다. 아버지 손을 잡았을 때 아이는 무섭지 않습니다. 두렵지도 않습니다. 그 마음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에서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성도들이 자랑스러운 삶이 되게 하십니다.
본문 14-16절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의 모습은 지렁이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계심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민족을 괴롭혔던 강대한 나라들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거룩한 자이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랑을 할 수 있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랑이 있는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자랑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모든 것을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잘 믿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십시오. 자랑스러운 인생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삶의 자랑이 막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헛된 자랑이 아니라 세상이 부러워하는 참된 자랑 말입니다. 참된 자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만 온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자랑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콜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왕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행을 저질렀다고 설교한 것 때문에 왕 앞에 끌려가 재판을 받았습니다. 왕이 설교한 것을 철회하라고 권유했을 때 존 낙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입이 말했고,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 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서 피로 그것을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나의 자랑은 지금까지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가 없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함마슐드는 "신앙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자랑스럽지 않다. 미숙한 자에서 나타나는 허영은 자랑이 아니다. 믿음 속에서 겸손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나는 언제나 자랑스럽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심은 인간이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도와주심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나라와 민족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대륙과 나라들 그리고 복음을 받아 드린 가정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는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특히 이 민족의 역사를 볼 때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민족의 현대사는 우리가 체험한 역사입니다. 과거 반만년의 역사의 변화보다 지난 100년의 역사가 더 요동치는 역사입니다. 이씨조선의 멸망과 일제치하의 고통 잠시 해방의 기쁨도 있었지만 6,25의 민족상잔의 전쟁, 극한 혼란기와 가난의 시간을 걸치면서 8,90년대의 경제적 부흥으로 국가 이미지가 올라가면서 88 서울 세계 올림픽과 2002년 한 일 축구 월드컵을 치르며 세계에서 11번째로 잘사는 나라로 성장 했습니다.
이렇게 축복받은 나라가 된 까닭이 무엇일까요? 세계의 석학들은 나라가 잘 살게 되는데는 3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기술이 좋아야 한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조건에 맞는 것이 있습니까? 훌륭한 지도자도, 지하자원도, 세계를 지배할 기술도 없습니다.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성장했을까요? 세상적인 조건으로 볼 때는 찾을 수 없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심지어는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원인을 모릅니다.
그 원인은 신앙적으로만 찾을 수 있습니다. 6,25 전쟁 이후 이 땅에 교인들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이북 땅에서 신앙을 찾아 남한으로 내려 온 성도들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기도했고 기도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새벽기도를 했고, 철야기도를 밤을 새워가며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불길은 강하게 한국 교회를 통해서 역사 했고, 성령을 사모하는 많은 성도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교회는 기도원 운동과 부흥회가 교회마다 열렸습니다. 기도원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서울 삼각산에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넘쳐났습니다. 이런 기도의 운동은 나라 지도자들의 마음에 지혜를 주어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새마을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 라고 잘살아보기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란 말은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종소리였습니다. 성도들과 교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가정과 교회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나라는 그 덕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잘 살게 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귀는 신앙으로 잘 사는 것을 원하지 안습니다. 잘 살게 되는 근본 원인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하기 위한 계략을 세워 진행했습니다. 그 계략은 좀 잘살게 되니까 세상 사람들이 새벽에 울리는 새벽 기도회 종소리가 시끄럽게 생각하도록 마귀에 생각을 집어 넣어주워서 공해(소리)라는 미명아래 교회 종소리를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럴싸한 논리에 모는 사람이 동참했고, 나라가 법으로 규제하므로 교회의 종소리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교인들도 깊은 신앙의 잠에 빠졌고 기도는 점점 식어지고 산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울려 퍼졌던 기도의 소리도 차츰차츰 사라져 갔으며, 철야예배도 심야기도회로 변했으며, 기도원은 하나 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GMP 1만 달러의 시대에서 IMF를 맞게 되었고 잠시 수습되는 것 같았지만 더 어려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교회에서 기도원에서 멈추기 시작하면서 GMP는 추락했고 성도 숫자와 교회의 숫자가 마이너스(-) 성장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분석이 목사이기 때문에 억지로 맞추는 것일까요? 이런 증거를 대라고 하면 다른 수치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의 비율에 대한 통계가 있습니다. 1900년도에는 0.9%, 1950년도에는 4.1%, 1960년도에는 6.4%, 1980년도에는 22.6%, 1990년도에는 25%가 되어 120만 명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교회는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나라 경제도 추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 나라의 성장의 근원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음을 깨닫는 성도가 되시고 기도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적 역사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잘 섬김의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에게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김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보이는 축복도 자랑해야 하지만 그 축복의 근원이 신앙 안에 있음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있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못남을 자랑하고 자기의 악함을 자랑하며 자기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자신의 무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자기 삶에 완벽한 행복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랑거리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훌륭한 가문, 명석한 두뇌, 최고의 학벌, 도덕적인 삶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 진리를 알고 그것을 믿은 다음부터는 지난 날 자랑거리로 여기던 그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그것을 분토와 같이 부끄럽게 여기면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6:14)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요? 자기라고 생각하고 살던 허상의 자기를 파괴해 버리고 대신 자기 안에 형성된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요 허황된 삶을 살던 과거의 자기를 부인하고 참된 진리로 형성된 지금의 자기를 통하여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해 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부와 물질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지렁이와 같은 우리이지만 하나님이 택하시고 함께 하셔서 그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고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때에 우리의 삶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고 16절에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자에게는 가난한 삶을 복 받을 삶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는 질병을 치료하는 손길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성공하도록 전능하신 손길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여 쓰러지고 쓰러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결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있어 두려워하지 마라라, 놀라지 마라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도와주지 않느냐, 내가 너를 어누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 승리하게 하리라 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고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통하여 주시는 승리와 축복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내 원수들 앞에서 자랑하며 살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이 약속과 축복이 성도님들의 약속과 축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 :예수가좋다오 ▶ 글쓴이 : 성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