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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4
매일 발걸음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고 가나안에서 안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40년 전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똑같이 애굽에서 나와 어떤 이는 가나안 땅의 새 주인이 되어 안식과 축복을 누리지만 어떤 이는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무엇의 차이입니까?
①믿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고 사는 사람들에게 가나안의 안식을 누릴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②꿈(비전)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비전)을 갖고 도전한 사람들에게 가나안의 승리와 안식은 임하였습니다.
③순종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면 하나님이 여시는 가나안의 축복을 차지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에게 주신 여호수아 12장은(11:16-23에 이어)가나안 정복사에 대해 요약한 것입니다. 1절-6절까지는 요단 강을 건너기 전, 즉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모세가 정복한 요단 동편 지역의 범위와 왕의 이름이 서술되어 있고, 7절-24절까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여호수아가 정복한 요단 서편 지역의 범위와 왕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약 500년 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오랜 기간의 전쟁 중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그들의 모든 싸움에 개입하셔서 승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에서 안식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루하게 가나안 정복사를 다시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1.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에 의해서 패망한 나라들과 왕들의 이름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6절까지 보면 요단강을 건너기 전, 즉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의 왕 '시혼'과 바산의 왕 '옥'이 이스라엘에 패하고 그 땅은 이스라엘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하게 됩니다(민21:21-35, 민32:29-42). 그리고 7절-24절까지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한 가나안 본토의 남쪽지역의 16명과, 북부지역의 15명 도합, 31명의 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여리고 아이 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게셀 드빌 게델 호르마 아랏 립나 아둘람 막게다 벧엘 답부아 헤벨 아벡 랏사돈 아돈 하솔 시므론 악삽 다아낙 므깃도 게데스 갈멜 돌 길갈 디르사). 그리고 그 땅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에게 분배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가나안의 문화는 뛰어났습니다. 도로와 성읍들은 잘 정비되었고, 뛰어난 건축 기술로 가옥들도 잘 지어져 있었습니다. 배수 시설 또한 발달되어 있었으며, 금, 은, 동 세공 기술, 주변 국가들과의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군사력은 최강이라고 할만큼 강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견고하고, 강하던 성읍들이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 다 무너지고, 그 강하던 군사력도 이스라엘의 오합지졸들에게 다 떨어져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화려한 명성과 문명의 축복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애굽의 노예들에게 다 빼앗기는 비운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역사의 비밀입니다.
이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진행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우주의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매이면 이 땅에서 어느 누구도 풀자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공중의 새 한 마리도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막으시는 일을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 저 높은 보좌에 않아 계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나안의 화력한 문화와 강한 군사력도 하나님께서 접으시니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 오합지졸들이었지만 하나님이 붙잡으시니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의 새 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축복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23,000여 개의 종족과 200개가 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민족들은 세계 열방에서 큰복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민족들은 대개가 미개하고 발전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 중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 대한 민국을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시고 오늘날 복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민족과 개인은 반드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가장 열심히 기도하고, 가장 열심히 예배드리고, 가장 열심히 선교하는 이 나라를 하나님이 사랑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역사의 비밀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세계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이 나라가 주의 것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되어 세계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특권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한복판에서 쓰임을 받는 나라와 민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자녀들의 주관자, 여러분 사업의 오너가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친히 진행하시면서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을 역사의 주인으로 섬기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나라와 민족과 백성들을 역사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2. 삶의 자리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총
가나안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정복한 땅이라는 사실은 수 차례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까지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 그리고 하나님의 격려와 초자연적인 능력이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자리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언제나 한결같이 신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실하심은 아브라함의 발걸음마다 은총을 베푸심으로 더욱 빛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그들을 위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예비하심으로 그들의 삶에 은총을 베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동행하셨습니다.
민수기 33장은 모세가 애굽 땅에서 나올 때로부터 시작하여 요단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걸어 온 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광야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지나온 모든 발걸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어 나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가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검푸른 홍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길을 막을 때에는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땅으로 행하게 하셨습니다. 마라의 오염된 물 때문에 낙심할 때에는 한 나뭇가지를 통해 물을 정화시켜 주셨고, 바로 곁에 엘림의 샘물을 준비하셔서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주셔서 광야에서 굶주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목마름이 극심할 때에는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샘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요단까지의 길은 멀고 험한 길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자신들이 걸어온 길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간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온 광야의 여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31명의 왕과 그들의 성읍을 정복하게 된 사실을 아주 상세하게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때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모든 삶의 자리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깊이 새기려 한 것입니다. 요단강 도하, 여리고 점령, 아이성 정복, 남부 북부 연합군과의 싸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있을 때(위기, 신앙부흥, 전쟁을 앞두고)에는 반드시 옛적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전 과정을 돌아보는 과정을 밟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느헤미야 9장에 있습니다(6-38). 즉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새로운 교훈을 얻는 작업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 일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여러분들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자리, 여러분의 발걸음에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저 힘들고 어려운 것들로만 채워져 있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인생의 발걸음마다에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여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올시다.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이 나에게까지 이르렀는지 가나한 농촌에서 전혀 태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하시고, 예수를 알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쓰임을 받게 된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했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묻어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 돌아본 인생의 발걸음마다 묻어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함으로 인생의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3. 하나님의 흔적
오늘 본문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과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남긴 승리의 흔적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전 지역에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에서 승승장구한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나안 족속들의 반항은 거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33개 부족의 왕들을 물리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적비 남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온 나라 구석구석에 유적비가 널려 있습니다. 열려비, 치적비, 순교비, 생가...등등, 심지어는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유적비를 남기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만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남한에서도 대통령 생가 복원한다고 얼마나 떠듭니까?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디에 자기 이름이 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명예를 구하고, 돈을 구하고, 권력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긴 흔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흔적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들의 절기는 하나님과 관계 된 것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칠칠절은 가나안 땅에서 첫 번째로 거둔 곡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수장절은 광야에 묻어 있는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에벤에셀 -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으니 이는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이었습니다.
·여호와 닛시-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쟁 후에 "여호와의 깃발"
·길갈에 세운 12개의 돌-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흔적.......,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든 자리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남겨야 할 인생의 흔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 예수님의 흔적이 묻어 나옵니다.
예수님 때문에 매 맞고, 핍박받고, 고난받은 흔적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보면 예수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이 보이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보이고, 예수님의 재림이 보입니다. 바울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며, 치유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삶 속에 예수님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열매 있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6)"
삶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원줄기에서 떨어져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열매로 그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흔적을 남깁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것이 하늘의 법칙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이 함께 하시는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흔적으로 남깁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는 미움이 사라지고 사랑의 꽃을 피웁니다.
어떤 사람은 기쁨을 흔적으로 남깁니다. 그가 있는 곳은 언제나 기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화를 흔적으로 남깁니다. 그 사람이 있다간 곳은 싸움이 그치고 화평이 임합니다.
이처럼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은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발걸음마다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이 흔적으로 남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