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된, 40년 전 ‘그날’
발간일 2021.06.16 (수) 16:11
10만 시민 운집 경축행사엔 ‘비행쇼’, 가장행렬 등 축제분위기
40년 전 1981년 7월 1일은 인천이 경기도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된 날이다. 인천은 경기도의 제1도시로 있으면서 경기도로부터 행정, 예산의 지도 감독을 받아왔다. 경기도로부터 분리·독립은 인천의 오랜 숙원이었다.
▲1981년 6월 30일 인천실내체육관에서는 시민, 학생 1만명이 모인 가운데 직할시승격 기념식이 열렸다. 당시 행사에는 서정화내무부장관, 도내 각급기관장 등이 참석했다.
인천과 경기도는 도시의 걸어온 역사가 다르고, 인천시민이 낸 세금의 상당부분이 경기도에 쓰이자 인천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행정과 예산의 독립이 절실하다는 지역의 요구가 오랫동안 있었다. 직할시 승격으로 인천은 자치행정으로 독자적인 발전과 도약의 첫 발을 뗀 역사적 순간이었다.
‘1等市 자부심, 축제 분위기 일색’. 1981년 6월 30일자 경기신문(현 경인일보) 제목이다. 1981년 7월 1일 즈음 인천은 직할시 승격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경기도와 분리·독립은 1883년 인천항 개항이후 98년 만 에 맞은 경사로 인천시민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당시 1백10만 인천시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직할시 승격을 기뻐했다. 이제 인천이 경기도에서 벗어나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981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인천시청내 간판이 인천직할시 현판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인천직할시 간판을 달고 있는 모습.
당시 정부의 1도1사 신문발행 정책에 따라 경기도에서는 경기신문이 발행됐다. 경기신문은 지면을 통해 인천직할시 승격 소식을 전하면서 직할시 승격의 의미, 앞으로의 방향, 시민대담, 발전을 위한 제언 등을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경기신문 1981년 6월 30일, 7월 1일자에 소개된, 40년 전 그날의 인천 풍경을 들여다보자.
▲1981년 7월 1일을 즈음해 인천시내 곳곳에는 직할시 승격을 축하하는 기념탑과 플래카드, 아치탑 등이 설치됐다.
경기신문 보도에 따르면 인천에서는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다양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축하문구를 담은 97개 애드벌룬은 인천 하늘을 수놓았고, 2개 아치가 세워졌으며 7개의 육교와 크고 작은 300곳의 빌딩엔 승격을 축하하는 플래카드, 현수막이 걸렸다. 자유공원, 수봉공원, 북구청(현 부평구청)앞에는 불꽃발사대를 마련하고 350발의 축포와 불꽃을 쏘아 경축분위기를 한껏 드높였다.
인천직할시 승격 개청을 겸한 기념식은 1981년 6월 30일에 있었다. 기념식에는 당시 서정화 내무부장관, 김찬회 초대 인천직할시장, 인천출신 국회의원, 시민, 학생 등 1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인천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인천직할시 승격 축하연이 1981년 7월 1일 올림포스호텔에서 하객 3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은 축하연 장면.
직할시 승격 축하연은 1981년 7월 1일 오후 7시 올림포스호텔에서 하객 3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인천의 정재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찬회 초대 직할시장은 “보통시에서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공무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어려운 시민들이 많은데 이들의 편에서 어려운 생활을 안정시켜 나가겠다”며 초대 직할시장으로써의 소감을 밝혔다.
인천공설운동장에서도 10만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직할시승격 경축행사가 열렸다. 1000마리 비둘기와 고무풍선 날리기, 축하 비행쇼가 열려 볼거리를 더했다.
▲직할시 승격을 축하하며 시민들이 인천의 새로운 발전과 새 역사의 출범을 여는 행사에 동참했다. 사진은 직할시승격을 축하하기 위해 학생과 시민들로 구성된 시가행진(위)과 가장행렬 행사(아래).
시민들도 인천의 새로운 발전과 새 역사의 출범을 여는 행사에 동참했다. 7월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출발한 시가행진 대열은 도원교~동인천역~경동~답동로터리역까지 행진했고, 인도차·국기·시기·동기의 기수단, 초·중·고 악단, 한국유리 등 13개 업체가 참여한 가장행렬도 열려 시민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시가행진과 가장행렬은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시민회관에서는 시민위안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인천시립예술단은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시민대잔치를 인천시민회관에서 열어, 경축분위기를 한층 드높혔다.
문화예술계도 직할시승격을 기념하는 문화예술 대잔치로 시민들과 기쁨을 함께했다. 인천시민회관에서는 인천시립무용단, 교향악단, 합창단이 참여한 ‘매머드’급 경축공연이 6월 30일 승격식 전날 열렸다. 시립예술단의 축하공연 외에도 인천예술가들은 자체적인 전시회를 마련, 경축분위기를 확산하는데 일조했다. 또 예총 인천지부 등의 예술단체를 비롯한 각종 단체, 위원회 등도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며 새로 간판을 교체했다.
▲1981년7월1일자 경기신문, 1면에 인천직할시 개청 소식을 알리고 있다.
직할시 승격으로 인천시내 87개 사회단체들도 바삐 움직였다. 그동안 이들 기관들은 경기도 지부 산하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7월 1일부터는 독자적인 업무추진을 위한 직할시 지부 분리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간 경기도지부에 속했던 의사회, 체육회, 각급조합, 협회 등 87개 사회단체는 대부분 경기도지부 산하에서 인천직할시지부로 분리·독립됐다.
▲인천 중구에 있던 인천시청사가 직할시청으로 바뀌면서 새로 단장한 모습이다.
경기도립병원은 1981년 7월 인천직할시립병원으로 전환했고, 인천 중구에 있던 경기도 경찰국은 몇 년간 같은 체제를 유지하다 1987년 2월 인천직할시 경찰국이 개국하면서 분리됐고 경기도 경찰국은 경기도 수원으로 청사를 이전했다.
직할시 승격은 인천이라는 독립 브랜드의 첫 출발이었다. 인천은 1981년 직할시로 승격된 후 14년 후인 1995년 광역시로 도시의 타이틀을 바꿔 달았다. 눈부신 발전과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할시 승격이 인천의 독자적인 발전을 위한 첫 단추였던 셈이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