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6막50장 (5부-2)
마침 공사일이 끝나 시간이 남고하여 양평 유명산으로 향하였다.
수고비는 필요 없으니 밥과 잠만 재워 준다면 퇴청마루를 만들어 준다고 하였다.
우선 양평시내에 가서 시멘벽돌을 구입하여 땅바닥에 가지런히 쌓고 그위에 집성목 각재를 얹히고 뼈대를 만든다음 그위에 방부목으로 깔으며 마루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온 가족이 주야로 일주일간 작업 하다보니 그럴싸한 퇴청마루가 20여평 생겨 관광버스 단체손님도 맞는 공간이 확보되였다.
온가족이 일주일간 외부 전문인력 없이 만든 마루라 모두 감격에 벅차 오른것 같았다.
물론 나의 총지휘 아래 진행되였고 공사 완료후 매운탕에 축배 한것으로 수고비를 대신하였다.
그랬다.
나는 무일푼으로 그가족을 도왔다.
온몸은 피로에 누적되 팔다리 허리가 아팠고, 추가공사비가 발생하자 나는 수고비는 고사하고 카드를 빌려줘 물품대금 구입에 쓰도록하니 온가족은 나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글썽 거렸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남이 곤경에 빠지면 아무 꺼리낌 없이 도와 주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못나서이다.
내가 못난 부분을 어필할려면 내가 그들을 진정으로 대하면 그들은 나의 모자란 부분을 잊어버리고 나한테 호감을 가지며 친근감을 가지게 되였다.
물론 나의 마음은 그들에게 여과없이 전달되니 그들또한 나에게 문을 열것이다.
그러나 그렇치 않은 인간들도 있었다.
나의 성의를 악용하고 이용하고 배신 하는이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그들을 탓하고 싶으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위해 그들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날
비보가 들려왔다.
서용주씨가 한여름 장마철 앞 개울가에서 제방을 만지다 급류에 휩쓸려 익사하여 행방이 묘하는것이다.
십중팔구 장마철 급류에 휩싸여 하류로 떠내려 간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몇일후 서용주씨는 한강다리 밑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였다.
경기도 양평 유명산에서 행방불명된 이가 몇일뒤 수십km 떨어진 한강다리 밑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였다.
나는 생각해 본다.
온가족이 불철주야 퇴청마루 만든다고 일주일을 동거동락한 추억들..
그는 나에게 유명산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영영 사라지고 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