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을 잃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갈 수 있다
나무는 비바람 앞에서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흔들린다. 각자의 리듬 덕분에 나무는 꺾이지 않고 세월을 버텨낸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유한 리듬을 지닌다.
리듬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리듬은 비가 그치면 해가 뜨고 겨울이 흩어지면 봄이 밀려오듯이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든다. 고루 스며든 각자의 리듬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듯이 구태여 힘을 들이거나 애쓰지 않아도 은연중에 저절로 마음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넘친다.
리듬을 얻기는 쉬울지 몰라도 유지하긴 어렵다. 세상이 우릴 가만히 두지 않는다. 도둑이 침입해 물건을 뒤지듯,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협화음이 우리 마음을 틈입해 리듬을 헝클어놓는다. 거기에다 심리적 중압감까지 가중하면 리듬은 쉽게 흔들리고 만다.
출중한 기량을 뽐내던 운동선수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느닷없이 터무니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이른바 ‘입스yips’는 리듬이 흔들리는 것을 넘어 아예 붕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스 미켈센이 주연한 영화 〈아틱Artic〉은 소위 ‘조난 영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내겐 리듬에 관한 영화로 읽힌다.
북극에서 조난을 당한 남자가 구조를 기다리는 와중에 또 다른 조난자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자는 다른 조난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쉽게 구조될 거란 희망은 애당초 품지 않는다. 그저 일정한 리듬을 타듯이 매일 정해진 시각에 기상해 얼음을 깨고 엉성한 낚싯줄로 물고기를 잡는 등 생존에 필요한 일을 규칙적으로 해나간다. 어떠한 절망이나 희망도 없이 덤덤히 구조를 기다린다.
살아보니 삶은 속도보다 방향인 것 같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 말에 나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인생살이라는 것이 차를 운전하듯이 속도와 방향을 내 뜻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특히 삶의 방향을 마음먹은 대로 설정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파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정한 삶의 좌표를 향해 다가가면서 한 번도 방향을 잃지 않고 단숨에 도달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나는 “삶은 속도와 방향보다 리듬인 것 같아요.”라고 주장하고 싶다.
리듬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은 이미 그 리듬이 내면화 되어 있기 때문에 삶의 여정에서 돌부리에 걸려 고꾸라지거나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매더라도, 무너진 마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추스를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속도를 유지하는 사람도,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리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이기주, 『마음의 주인』, 말글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