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같은 박맹호에 홀렸다…그래서 나온 ‘이문열 삼국지’
이문열, 시대를 쓰다
관심
19. 삼국지(상)-박맹호 회장의 권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고, 열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함부로 다투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요긴한 삶의 지혜가 그 안에 담겼다는 뜻일 텐데,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긴장 상황을 재미있게 다룬 책이고 온갖 극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거기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기민한 임기응변으로 난처한 상황을 빠져나가는 감각 같은 것은 상당히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사랑·대의명분 얽힌 굉장히 큰 이야기
재미야 진진(津津)한 책이다. 전쟁과 사랑, 충신들의 대의명분 같은 것들이 얽혀 있는 굉장히 큰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명의(名醫) 화타가 뼈까지 퍼진 독 제거를 위해 생살을 짼 다음 소리가 날 정도로 뼈를 긁어내는 동안 그런 오른팔을 내맡긴 관우가 태연하게 술 마시며 바둑 두는 장면이 있다.
어려서 손에 박힌 가시를 뺄 때 내가 울기라도 하면 할머니는 ‘사내아이가 그만한 일로 운다’고 관우에 빗대 나무라곤 하셨다.
친숙할 수밖에 없는 책이고, 다섯 번 넘게 읽은 책은 『삼국지』가 유일했다. 그래서 결국 『삼국지』 번역을 하게 됐지만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내 젊은 날의 소중한 몇 년을 ‘통속 소설’ 번역이라는 분명치 못한 문화적 효용과 함부로 맞바꾸어도 좋은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1983년 상반기였을 것이다. 등단 5년 차, 서른다섯일 때다. 민음사 박맹호(2017년 작고) 사장(2005년 회장 취임)이 불쑥 『삼국지』를 번역해보라고 권했다.
몇 년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긴 당시 경향신문 정구호 사장이 신문 연재소설을 찾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