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
가정의 달 5월의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정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나라가 직면한 위기 가운데 하나가 기록적인 저출산 문제입니다. 사회의 큰 변화를 맞이하면서 결혼의 의미와 제도가 흔들렸고, 힘들게 꾸려진 가정에서 어린 아이를 출생하는 것은 결혼 문제와 연관된 또다른 위기가 되었습니다. 노심초사하는 정부와 기업이 매년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을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환경은 정량적으로는 분명하게 좋아졌으나 심리적, 문화적 환경은 급격하게 퇴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가 되기 위한 자질 역시 하락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부모들과는 다르게 더 이상 자녀를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팽배해졌기 때문입니다. 매우 안타까운 것은 상대적 빈곤과 출구 없는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경제 환경입니다. 여기에 매스컴이 극히 일부 계층의 사람들 소식을 전국민을 상대로 일반화시켜서 방송하는 왜곡된 부동산 가격과 정책들로 젊은 가정을 극심하게 위축하는 병폐도 있습니다.
어린이를 향한 우리의 태도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아무런 해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눅 18: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하찮게 여기던 유대 사회와는 다르게 대하셨습니다. 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가 바로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어린이들 혹은 청년과 젊은 세대를 향해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11:9a)’고 조언을 합니다. 매우 의미있고 시기적절한 조언이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11:9b)’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즐겁고 기쁜 일을 하는 모든 일로 하나님은 심판하시겠다고 훈계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전도서 기자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절)’고 권고합니다. 그것이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타락-구속’이란 역사관에 기초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삶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둔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이 평가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믿음의 삶을 축복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어린 자녀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습니다(잠 22:6). 어린 아이들에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는 믿음의 훈련을 하는 것은 일평생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중요한 뿌리가 됩니다. 짧은 시간은 매우 느린 듯 하지만 긴 시간은 매우 빠릅니다. 우리는 잘 모르겠는데 어린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실감하게 됩니다. 전도서 기자는 그래서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훈계했습니다. 청년의 때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평가하기 힘들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서양의 기독교 문화는 일순간에 부인될 수 없는 삶의 양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으로 가르쳤던 이들의 문화의 뿌리로부터 이들의 삶의 태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을 가르치는 바다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일평생의 삶을 사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어린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청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창조주를 고백하고 기억하는 믿음의 삶을 기도합니다. 세속화된 세상을 살고 있지만 네 창조주를 기억하고 고백하라는 전도서의 지혜로 바르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바다교회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