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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추상적인 원리입니다.
불변의 선(善)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이치, 부모에게 효도하고 타인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처럼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법칙'입니다.
인간에게는 '본성(性)'이 됩니다: 유학에서는 우주의 이(理)가 인간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박힌 것을 '본성' 혹은 '불성'과 같은 거룩한 성품으로 보았습니다
2. 기(氣): 현실을 구성하는 에너지와 재료 (배우, 물질)이자 현상
'기'는 우주에 가득 찬 기운, 에너지, 구체적 형체, 그리고 물질적인 재료를 뜻합니다.
형태를 만듭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 인간의 육체,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은 모두 이 '기'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만들어집니다.
가변적입니다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습니다): 기는 맑을 수도 있고 흐릴 수도 있습니다.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기도 하고 얼음처럼 차갑게 굳기도 합니다. 인간의 거친 감정이나 욕망, 흔들리는 마음(망심)은 모두 이 '기'의 움직임입니다.
3. 이(理)와 기(氣)의 관계: 불상리(不相離)와 불상잡(不相雜)
유학에서는 이 둘의 관계를 아주 오묘하게 정의합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고(불상리), 그렇다고 서로 뒤섞일 수도 없다(불상잡)"는 것입니다.
대본 없는 배우가 없고, 배우 없는 대본은 무의미하다 (불상리): '이'라는 설계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기'라는 재료가 없으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기'라는 재료가 아무리 많아도 '이'라는 법칙이 없으면 세상은 무질서한 혼돈에 빠집니다. 둘은 언제나 현실 속에서 한 몸으로 움직입니다.
그럼에도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불상잡): 대본은 영원히 대본이고 배우는 영원히 배우이듯, 우주의 영원한 원리인 '이'와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의 기운인 '기'는 그 성격이 절대 섞일 수 없습니다.
앞서 마주하셨던 고봉 기대승의 명제는 이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인간의 마음 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감정이라는 거친 말(氣)이 현실이라는 '땅의 나라(Reich der Erde)' 위를 사납게 달려 나갈 때(氣發), 우리 내면의 가장 숭고한 도덕적 나침반이자 본성인 '이(理)'가 그 말 위에 사뿐히 올라타(理乘之) 고삐를 쥐는 것.
그것이 바로 유학이 도달하고자 했던 영혼의 완성이자, 망심(氣)의 자리가 곧 보리(理)의 자리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와 '기'는 관념 속의 박제된 단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삶의 실상 그 자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