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용선생님 강의를 들으면 구부정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자료를 정리하고 그 자료를 문건으로 만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미학강의를 줌으로 듣지만 강의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인의 손길. 이번 주제는 부정변증법이었다. 부정변증법이라고 하면 변증법이 떠오르고 변증법 하면 정반합이 떠오른다. 그 이상은 계속 설명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부정변증법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문득 부정변증법의 핵심이 개념에 다가갈 자유, 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끝없이 개념에 다가가서 그 개념을 소방서에 붙어있는 문구처럼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그 방법은 '성찰'일 것이다. "내가 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잘 못 이해했다면 어떤 부분을 좀 더 보완할 수 있을까", "그 개념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 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 부분이 쉽지 않다. 한 번 그 개념을 파악했다고 판단하는 순간 더 이상 더 개념에 다가가지 않고 그 개념을 고정화한다. 그 부분에서 오딧세이아의 '히브리스'가 떠올랐다. 나에게 오딧세이나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히브리스'는 그리스어로 '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이라는 단어가 불편할 수 있지만 절대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떻든 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오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그리스 신화에 보면 윤리가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신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 부분에서 개인, 사람, 인간이 한 개념을 아는 순간 성찰하지 않고 그 개념을 하나 얻고 그 개념을 만물에 적용하고 싶어지고 그 만물에 적용하여 동일성 사고에 고착되는 것. 그것이 나는 '히브리스'라고 생각했다. 나는 완벽하다. 내가 옳다. 그것이 신에 대한 모욕이고 나에 대한 모욕이다. 더 나아갈 다리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첫댓글 까다로운 강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객체에 다가갈 자유'는 헤겔의 표현입니다. 5강에서는 부정변증법보다 유물변증법의 일반적 특징을 다룬 셈입니다. 아도르노의 색깔이 살짝 덧칠된..
개념에 다가갈 자유를 객체에 다가갈 자유로 고치려다가 그냥 두었습니다. 잘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