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공동체 9-그리스도의 승귀(높아지심, 빌2:9-11)
1. “축제의 공동체”인 빌립보교회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아홉 번째 시간이고
요. 오늘도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누릴 축제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
지 찾아갑니다. 지난 시간 예수님의 자기 비하(자기를 낮추심)에 대하여 나누었
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낮추셨어요. 하나님이신 예수님
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어요.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종의 형체를.
본체와 형체-morpe(패션)를 설명했지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
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고-고난을 당하실 필요가 없으신 주님이 친히 십
자가를 지셨어요. 이렇게 스스로 낮아지신 것이 주님의 겸손입니다. 주님의 겸손
을 본받아 빌립보교회가 서로 낮아지고 인정하며 하나가 되라고 바울이 말씀.
오늘 본문은 이렇게 겸손하셨던 주님이 최고로 높아지신 일을 전합니다. 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셨어요. ‘높여주다’는 말을 한문으로 승귀에
요. 오늘 설교 제목이 “그리스도의 승귀”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서나 내세에서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누구든지 낮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요. 한국 사람들
이 특히 이 의식이 강해요. 세계에서 교육열이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미국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의 통계를 보면, 제일 많은 학생들이 인도 출
신들이고, 다음이 중국이고, 세 번째가 한국입니다. 일본이 4위고요. 아시아 사
람들의 교육열이 제일 높아요. 인구 비례로 보면 단연 한국이 세계 1위에요.
2. 왜 한국인들이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요? 이 땅에서 출세하고 잘 살기
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국내에서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애를 쓰고, 형편은
넉넉지 못해도 유학도 가려고 해요. 누구도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아
요. 필사적이에요. 학구열에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아요. 세상에서 출세할 수 있
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문
명화된 민주사회에서도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면 그만큼 출세의 길이 빠릅니다.
군에 가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고, 유력한 집안의 자녀들이 대우받습니다.
영국같이 민주주의가 앞선 나라에서도 이런 면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영국 상
원의원들 가운데 오늘날에도 세습이 됩니다.
아버지가 상원의원이었기에 자동으로 의원직을 승계하는 봉건제도의 잔재가
남았어요.(92명이나) 상원(House of Lords, 귀족들의 대표-귀족원. 하원은
House of Commons, 서민들의 대표-서민원)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나라인
영국에서 말이에요.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모두 선출직으로 바꿔보려고 하
원에서 노력해보지만 쉽지 않아요. 하지만 현대 대다수의 출세자들은 자기 노
력으로 성공합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나 그렇습니다. 영국 역사상 최고 장
수 총리를 지낸 대처나 John Major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
어나서 출세하든, 뼈를 깎는 자기 노력을 통하여 성공하든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3.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시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위에서(하나님)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을 것이다.”(11절)
빌라도가 내가 너를 놓아줄 수도 죽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할 때 예수님이 답변하
신 말씀이에요. 네가 나를 해할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나를 해할 권세를 주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기도 하시고 높여
주기도 하세요. 예수님을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셨듯이요. 사람들 앞에서 높아지
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은
집안 출신을 통해서든 자기 노력에서든 남을 이길 때 가능합니다. 남에게 양보
하고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남에게 져서는 출세할 수 없습니다. 얼마 되지 않
은 높은 자리에 앉으려면 철저히 뛰어나야 해요. 뛰어나지 못하면 부모나 친척
의 힘으로라도 동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높은 자, 존귀한 자는 이런 원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는 것은 세상 출세의 원리와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
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와서 주의 나
라가 임하면 큰아들은 주님의 우편에, 작은아들은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
을 했어요. 이것은 요즘 말로 하면 친인척 청탁을 했어요. 요한과 야고보의 어
머니 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입니다. 이모가 조카에게 자리 청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있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요청에 예수님이 어떻게
답변을 하셨지요? 그 자리에 누가 앉을지는 아버지께서 아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곤란해요. 네가 내게 잘못된 청탁을 했다고 하셨어요.
4. 하나님 나라에서는 친인척 청탁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장차 누가 우리 주님
의 좌우편에 앉을 수 있을까요? 믿음에 욕심이 있는 자는 여기에 관심을 가질
것이에요. 사람들이 세상에 부유한 자들은 부러워할 줄 알면서, 믿음에 부유한
자들은 부러워할 줄 몰라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에 관심이 있기 때
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
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3) 세상 윤리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말씀합
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먼저 하나님 나라 윤리의 모범을 보여주셨어요. 장차 주님 앞에 가장
높임을 받을 자, 주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을 자들은 주님처럼 희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주님처럼 위대한 사랑을 베푸는 자들입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을 행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결과를 전해줘요. 오늘 본문은 그리스
도께서 높은 자리로 바뀌신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승귀-높아질 수
있었습니까? 9절에, “이러므로”라고 말씀합니다.
5. ‘이러므로’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께서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
려가셨던 겸손을 의미해요. 사람들은 가장 높이 올라가려고 일생 분투하지요. 우
리 주님은 반대로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겸손입니다. 사람들은 최대한 자신을 포장하고 과대평가합니다. 주님은 스스로
낮아지셨어요. 마23:12,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
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어요.
둘째, ‘이러므로’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희생을 의미해요. 세상에 손해 보면
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세상에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거 밑지고 파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없지요.
사람들은 그만하면 괜찮은데-살만한데, 죽기까지 자기 손에 움켜쥐려고 합니다.
주님은 밑지는 장사를 하셨습니다. 일생 손해 보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러한 자
기희생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코 높아질 수 없어요. 주님과 같이 기쁘게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주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6. 셋째, ‘이러므로’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해요. 사람들은 사랑
한다고 말하지만, 조건이 따르는 사랑이에요. 자기에게 유익이 없다고 판단할
때, 과감하게-가차 없이 사랑을 포기합니다. 기대했던 성품이나 재산이 없을 때,
감추었던 신체의 결함이 보일 때 그토록 사랑했던 이성을 버리고 떠납니다. 부
모의 사랑도 조건이 따르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집사님이 귀한 간증을 해준 적
이 있어요. 이분이 젊어서 두 딸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기대하고 셋째를 낳았는
데, 또 딸이었습니다. 신앙이 있는 분이었지만, 거기서 실망하고 교회를 떠났
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조건 없는 투자와 사랑을 할 것이라고 준비했는데, 어떻게 셋째
도 딸을 주실 수 있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셋째가 자라갔지만 아빠는 별
관심도 없었어요. 어느 주일에도 교회에 가지 않고 그는 산으로 갔습니다. 평소
와 똑같이 산행 중에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원하지 않게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셋째 딸이 자라서 교회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병원에 입
원 중에, 딸이 편지를 아빠에게 썼어요. 관심도 두지 않으려고 애썼던 딸이었는
데. 딸은 교회를 성실하게 다니면서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딸의 편지를 읽어가
던 아버지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7.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린 딸보다 못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달았어요. 미워하던 딸을 통해서 신앙을 회복한
귀한 간증입니다.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전에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 가운데 선거운동 기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들이 병역을 면제받은 문제로
선거에 불리하게 되었어요. 병역을 면제받은 큰아들이 소록도 애향원에서 자원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며 민심이 변화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선거에서 패하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고, 큰아들은 자원
봉사를 더 하지 않았습니다. 조건적인 봉사-조건적인 사랑의 실천이 되고 말
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사랑을 하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겸손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
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어요. 새 이름을 주셨어요. 그리스도의 새 이름은 11절,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새 이름은“주”(kyrios)입니다. 주라는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 외에 쓸 수 없습니다. 로마 황제들
이 스스로 이 말을 쓰기도 했지만, 그들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듣지 못한
이름입니다.
8. 사도행전 2장에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하신 후에
혼란 가운데 있던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이 사건의 의미를 잘
풀어서 이야기해주었어요. 베드로가 성령충만할 때 명 설교가가 되었어요. 36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
라.”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그가 죽고 부활하셔서 인성을 지닌 채 승천하셨어요. 그는 참 인
간이시며 참 신이신, 유일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승귀-높아지심은 심판주가 되셨어요. 10절, “하늘에 있는 자
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은 천사들, 땅에 있는 자들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
땅 아래 있는 자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또는 악한 영)을 말해요. 이 말씀은 천상
-지상-지하의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예수
님께서 심판주가 되심을 선언합니다. 초림의 주님은 초라한 말구유에 탄생하셨
어요. 가장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어요. 또 무력하게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9. 하지만 부활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주님은 초림의 주님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영광과 권세를 지닌 주님이십니다. 심판의 때가 가까이 오면서 세상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요. 더욱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과 믿음 없이 하나
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사는 자들입니다.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하
나님께서 버리시(유기)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이에요.
우리 교회는 모든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고 합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신 후 승귀-높아지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겸
손하고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이 시간 기도합시다. 우리가 세상의 부유
함보다 믿음의 부유한 자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것이 진정한 축제의 공동
체입니다. 이런 축제의 공동체를 이뤄가도록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