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왕(趙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태후(太后)가 섭정을 하며 정사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때 진(秦)이 조를 공격하였는데, 조나라가 제(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제에서는, “장안군(長安君)을 인질로 주면 출병하겠소” 하고 조건을 제시 하였다.
장안군은 태후의 아들이었다. 때문에 태후는 장안군을 인질로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들이 자꾸 간청하자 태후는 격노하여 말하였다.
“다시 장안군을 인질로 삼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얼굴에 침을 뱉겠다!”
그때 좌사(左師) 촉용(觸龍)이 태후에게 나아가 넌지시 말하였다.
“노신의 막내아들인 서기(舒祺)는 능력이라곤 없는 초라한 놈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늙은 탓인지 이놈이 매우 안쓰럽고 사랑스럽게 생각됩니다.
원컨대 위사(衛士)의 일원으로 뽑으시어 왕궁을 지키게 해주십시오.”
“승낙하겠소. 나이가 얼마나 되었소?”
“열여섯 살입니다.”
태후가 웃으며 물었다.
“사내대장부도 아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합니까?”
“오히려 여자보다도 더합니다.”
“여자 쪽이 더할 것이오.”
“그렇다면 태후께서도 자녀분들에 대해 심하게 애착하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이르다 마다겠소.”
“그러면 아드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따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아들을 더 사랑하오.”
“그렇습니까? 저는 그동안 태후께서 따님을 아드님보다 더 사랑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해요. 아들인 장안군을 훨씬 더 사랑하오.”
“제가 한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조나라 임금의 자손으로서 제후가 된 분들 중에 그 자손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예가 있습니까?”
“없소.”
“그렇다면 다른 제후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역시 없소.”
촉용이 가만히 태후를 설득하였다.
“태후께서 따님을 머나먼 연나라로 시집보내실 때 따님의 발꿈치를 잡고 우셨습니다.
또 이미 시집을 간 후에도 제사를 올릴 때마다
따님과 연후(燕侯) 사이에 난 자손이 계승하여 왕위에 오르기를 축원하셨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태후께서는 따님을 무척 사랑하십니다.
또한 태후께서는 아드님을 무척이나 사랑하시어 장안군에게 지위를 주어 나날이 존귀하게 하고,
비옥한 땅을 내려 나날이 부유하게 하며, 크고 작은 보물을 내려 나날이 빛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귀하고 높은 사람으로서 자기의 작위를 자손이 이어가게 한 예는 드뭅니다.
그렇다면 과연 태후께서 장안군에게 주신 것들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귀한 사람의 봉록이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것은
봉록에 비해 공로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 점은 장안군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태후께서는 그분에게 나라를 위하여 공로를 세우게 하신 적은 없습니다.
이런 정황에서 일단 태후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장안군은 무엇으로써 조나라에 자신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태후께서 장안군에게 내리신 지위, 재산, 보물은 단지 눈앞의 짧은 계책에 불과합니다.
태후께서는 자녀에 대해서는 사랑이 깊으시고 일에 있어서는 현명하십니다.
부디 그 사랑과 현명함을 하나로 이으시기 바랍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알겠소. 장안군을 마음대로 써주시오.”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