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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장 22-31절.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함
22절.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Paul stood in the midst of the Areopagus and said, "Men of Athens, I observe that you are very religious in all respects.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Σταθεὶς δὲ Παῦλος ἐν μέσῳ τοῦ Ἀρείου Πάγου, ἔφη
Having stood then Paul in midst of the Are Hill, he was saying
‘서서’(Στα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tood) 바울 담대히 서서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하되’(ἔφη)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saying)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Ἄνδρες Ἀθηναῖοι, κατὰ πάντα ὡς δεισιδαιμονεστέρους ὑμᾶς θεωρῶ.
men Athenians, in all as very religious you I behold
직역하면 ‘아덴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보니 범사에 아주 종교적이구나’란 뜻입니다.
‘내가 보니’(θεωρῶ)는 현재형이고, ‘보다 종교적인’이란 단어(δεισιδαιμονεστέρους)은 비교급의 형용사로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종교적인 것’(more religious than usual)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바울이 본격적으로 아레오바고 연단에 서서 아덴 사람들에게 연설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려고 노력하자, 자연스럽게 아덴 시민들과 철학자들이 아레오바고 연단에서 연설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길이 열립니다.
2.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여기서 바울이 <아덴 사람들아>라고 연설을 시작한 것은 당시에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한 연설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먼저 아덴 사람들에게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사실 아덴 사람들은 우상 신을 3만 개나 섬기는 대단히 미신이 심한 백성들이어서, 칭찬보다는 미신에 젖어 사는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욕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앞에 16절에서도 바울은 아데네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의분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의분을 감추고, 많은 우상숭배를 종교성이 많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복음 전도의 접촉점을 찾아 말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전도할 때, 칭찬을 통해서 마음을 열게 하는 전도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바보처럼 코를 흘리는 아이를 보고, <이 아이는 코도 잘 흘리고 정말 건강하게 생겼습니다>라고 칭찬하니까, 그 어머니가 생전 처음 아들 칭찬하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서 목사님의 복음 전도를 얼른 받아들이더랍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나쁜 점도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칭찬을 했습니다.
즉 미신을 많이 섬긴다는 점을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고 칭찬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점잖은 것은 생기발랄한 면이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기발랄한 것은 촐랑거리고 방정맞고 불안정하고 점잖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은 기생 같고 성적으로 문란하게 생겼다고 악평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못생긴 것은 무난하게 생겼고, 종갓집 맏며느리같이 생겼고, 달덩이처럼 예쁘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근검절약하는 사람에게는 인색하다고 나쁘게 평가할 수 있고, 좋게 표현하면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기를 잘하고 후한 사람에게는 너그럽고 선한 사람이라고 칭찬할 수 있지만, 손이 너무 크고 자기 앞가림을 할 줄 모르고, 너무 헤프다고 비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물은 양면성이 있으므로, 우리는 사랑의 시각을 가지고 말해야 하고, 좋은 점을 부각시켜서 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모든 사건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복음 전도자들은 전도할 때 좋은 면을 찾아서 칭찬하므로 효과적인 전도를 해야 합니다.
물론 유대교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전도할 때는 곧 바로 성경으로 들어가서 예수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23절.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ile I was passing through and examining the objects of your worship, I also found an altar with this inscription, 'TO AN UNKNOWN GOD.' Therefore what you worship in ignorance, this I proclaim to you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διερχόμενος γὰρ καὶ ἀναθεωρῶν τὰ σεβάσματα ὑμῶν
Passing through for and beholding the objects of worship of you
‘두루 다니며’(διερχόμενος)는 현재분사이고( Passing through), ‘보다가’(ἀναθεωρῶν)도 현재분사입니다(beholding).
‘위하는 것’(σεβάσματα)은 ‘숭배하는 것들’(objects of worship)이란 뜻입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εὗρον καὶ βωμὸν ἐν ᾧ ἐπεγέγραπτο ΑΓΝΩΣΤΩ ΘΕΩ.
I found even altar on which had been inscribed To unknown God
‘새긴’(ἐπεγέγραπτο)은 대과거 수동태로서(had been inscribed) 바울이 그 제단을 본 과거 보다 훨씬 더 이전에 새겨진 것을 가리킵니다.
‘보았으니’(εὗρον)는 부정과거로서(I found) 과거에 확실히 본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ὃ οὖν ἀγνοοῦντες εὐσεβεῖτε,
whom therefore not knowing you worship
‘알지 못하고’(ἀγνοοῦ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not knowing), ‘위하는’(εὐσεβεῖτε)은 현재로서(you worship) ‘현재 섬기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τοῦτο ἐγὼ καταγγέλλω ὑμῖν.
Him I I proclaim to you
직역하면 ‘그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노라’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가 강조되어 ‘바로 내가 알게 하리라’란 뜻입니다.
‘알게 하리라’(καταγγέλλω)는 현재형으로서(proclaim) ‘지금 내가 선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바울 사도는 아테네 시가지를 며칠 돌아보는 동안에 아테네 시민들이 많은 우상 신들을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보통 우상 신전에는 우상을 세워놓고, 그 밑에 우상 신의 이름을 써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우상신 제단에는 우상이 세워져 있지 않고, 그 제단 밑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사를 드린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즉 BC 550년경에 아데네 시에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테네를 통치하는 에피메니데스(Epimenides)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자 역병이 물려갔습니다.
그러자 에피메니데스는 자기가 기도한 신이 어느 신인지를 몰라서, 3만 개나 되는 우상 신들의 제단을 만들어놓고, 일일이 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신의 이름이 빠져서 다시 그 신에게 벌을 받을까봐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단을 만들어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역병을 낫게 해준 신은 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으로서, 나라의 경계를 정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우리가 그 하나님을 힘입어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2.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아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이 복음 전도의 좋은 접촉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에 창궐한 전염병을 낫게 해준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햇빛과 비를 주시고, 식물을 주시며, 나라의 경계를 정하시고, 왕의 통치 연대를 정하시며, 우리들은 그 하나님을 힘입어서 숨도 쉬고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심판주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그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좋은 접촉점을 찾아서, 아덴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즉 아덴 사람들이 역병 낫게 해준 그 이름 모르는 신의 이름을 알게 해주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해주고 있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이 구주와 심판주로 정하시고 보내주신 예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God who made the world and all things in it, since He is Lord of heaven and earth, does not dwell in temples made with hands;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ὁ Θεὸς ὁ ποιήσας τὸν κόσμον καὶ πάντα τὰ ἐν αὐτῷ,
the God the having made the world and all that [are] in it
‘지으신’(ποιήσας)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made) 역사적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확실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천지의 주재시니
οὗτος οὐρανοῦ καὶ γῆς ὑπάρχων Κύριος,
He of heaven and earth being Lord,
여기 동사(ὑπάρχων)는 현재분사로서(being) 하나님께서 천지의 주재되신 진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οὐκ ἐν χειροποιήτοις ναοῖς κατοικεῖ,
not in hand-made temples dwells
‘계시지’(κατοικεῖ)는 현재형으로서(dwells) 성전 건물을 집으로 여겨서 그 안에 살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시란 뜻입니다.
1.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바울은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덴 사람들은 만물의 기원이 물질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말했고, 헤라클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불이라고 말했고,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이 공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오늘날 다윈의 진화론도 모두 유물론적인 사고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셨다고 창조론을 말했습니다.
너무도 명확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유물론적 사고에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놓고 설전을 벌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이 암수 닭을 창조하셨고, 암수 닭이 계란을 낳고 번식한 것입니다.
이렇게 유물론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경 진리로써 명확하게 풀립니다.
2.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천지보다 더 크시고, 천지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주관하시며 햇빛과 비를 주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시고, 나라의 경계와 왕들의 통치 연도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신전에 갇혀 있는 우상 신이 아닙니다.
우상 신들은 사람이 조각하여 만들고, 사람이 들고 날라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전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전할 때, 그 앞에는 유명한 파르데논 신전이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저 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에 하나님이 갇혀 계시지 않는다고 손으로 지적하면서 말했을 것입니다.
대단히 용감한 바울의 모습입니다.
3. 이런 바울의 모습은 아마도 이전에 바울이 죽인 스데반이 사도행전 8장에서 했던 설교를 본받았을 것입니다.
즉 스데반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면서 만유의 주재되신 하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저런 성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스데반은 바울에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회개하고 전도자가 되어 스데반이 외친 설교를 자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신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고, 오히려 친히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25절.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r is He served by human hands, as though He needed anything, since He Himself gives to all people life and breath and all things;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οὐδὲ ὑπὸ χειρῶν ἀνθρωπίνων θεραπεύεται, προσδεόμενός τινος,
nor by hands of men is He served, as needing anything
‘부족한 것처럼’(προσδεόμενός)은 현재분사이고(as needing), ‘섬김을 받으시는’(θεραπεύεται)은 현재 수동태이고(is He served) 원형(θεραπεύω)은 ‘섬기다, 치료하다, 돌보다, 특별히 의사가 치료하다’(serve, cure, care for, attend, heal especially of a physician)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αὐτὸς διδοὺς πᾶσι ζωὴν καὶ πνοὴν, καὶ τὰ πάντα·
Himself giving all life and breath, and the all
‘주심이라’(διδοὺς)는 현재분사로서(giving) 현재 항상 주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다른 우상 신들은 늘 무엇을 갖다 바쳐야 합니다.
미신 섬기는 무당들을 보십시오.
늘 먹을 것을 갖다 바치고, 늘 돈을 갖다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햇빛과 비를 주시고,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만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즉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짐승들이 다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0편 9-11절.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2.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우상 신이 아니라,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신자나 불신자나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사람들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우상 신을 섬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만인에게 호흡을 주고 계십니다.
사람의 생명이 코에 달렸다고 했는데(이사야 2:20), 어떤 악인이나 무서운 짐승도 하나님이 코를 한번 누르시면 당장에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이 수에 칠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민에게 만물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날마다 쓰고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햇빛도 하나님이 주셨고, 공기도 하나님이 주셨고, 물도 하나님이 주셨으며, 계절과 일기를 주관하는 천체 만상도 하나님이 주셨으며,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만유인력 법칙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기의 법칙이나 의학 법칙이나 모든 과학 법칙도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을 사람들이 찾아서 이용하는 것들입니다.
우스갯말인데, 어느 날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하나님과 내기를 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무 재료도 없이 창조부터 시작해서 누가 잘 만드나 시합하자 그랬더래요.
그랬더니 모든 과학자들이 그것만은 안 된다고 했답니다.
26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made from one man every nation of mankind to live on all the face of the earth, having determined their appointed times and the boundaries of their habitation,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ἐποίησέν τε ἐξ ἑνὸς, πᾶν ἔθνος ἀνθρώπων,
He made then of one, every nation of men,
‘한 혈통으로 만드사’(ἐποίησέν τε ἐξ ἑνὸς)는 직역하면 ‘하나에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He made of one).
‘만드사’(ἐποίησέν)는 부정과거로서(He made) 하나님께서 아담 한 사람에게서 모든 인류를 만드신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온 땅에 살게 하시고
κατοικεῖν ἐπὶ παντὸς προσώπου τῆς γῆς,
to dwell upon all face of the earth
‘살게 하시고’(κατοικ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well) 현재 살게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ὁρίσας προστεταγμένους καιροὺς
having determined [the] having been appointed times
직역하면 ‘지정된 시간들을 정하시고’란 뜻입니다.
‘지정된’(προστεταγμένους)은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appointed) 역사적으로 사람이나 나라의 시간과 기간을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정하시며’(ὁρί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etermined) 하나님께서 그 한계를 정하신(mark out boundaries and determine)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καὶ τὰς ὁροθεσίας τῆς κατοικίας αὐτῶν,
and boundaries of the habitation of them
‘한정하셨으니’는 앞 소절에 붙어 있습니다. (ὁρίσας:having determined)
1.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성경에서 알 수 있는 인류 평등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종 차별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한국민만 양반인 줄 알고, 서양 사람들을 원숭이 취급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양 사람들도 아프리카 토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를 삼고, 말하는 기계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간 곳은 링컨처럼 인류 평등과 사랑의 사상을 가집니다.
인간은 한 인류였는데, 온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가 혼잡되어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과학이 발달 되었어도 자연스럽게 한 언어로 말하고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2.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한계를 정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시간과 장소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느 왕조가 어느 때까지 계속될 것을 정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할 것을 미리 말씀하시고, 또 아합 왕조의 바알 숭배를 무너뜨린 예후에게는 열왕기하 10장 30절에서 네 왕조가 4대가 계속되리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다윗 왕에게는 네 자손에게서 왕위에 오를 자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다니엘이 본 환상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과 페르샤와 헬라와 로마의 연대도 한정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종족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도록 연대를 정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다는 것은 나라의 국경을 하나님이 정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그 경계가 남쪽으로는 애굽강까지요, 북쪽으로는 하맛 어귀와 유브라데스 강까지라고 정해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라의 국경을 한정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겨서 일본이 침략하거나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정말 애국가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원래의 애국가 가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 4장 17절. (25, 32절. 5장 21절)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27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t they would seek God, if perhaps they might grope for Him and find Him, though He is not far from each one of us;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ζητεῖν τὸν Θεὸν, εἰ ἄρα γε ψηλαφήσειαν αὐτὸν, καὶ εὕροιεν,
to seek the God, if perhaps indeed they might palpate for Him, and might find
직역하면 ‘하나님을 찾으려고, 혹 그들이 그를 더듬어서 발견하려고 하지만’이란 뜻입니다.
‘찾으려고’(ζητεῖ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seek), ‘더듬어서’(ψηλαφήσειαν)와 ‘발견하려고’(εὕροιεν)는 둘 다 부정과거 기원격(optative) 동사이고, ‘더듬어서’의 원형(ψηλαφάω)은 ‘느끼다, 더듬다, 만지다’(feel, grope about, touch, handle)란 뜻입니다.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καί γε, οὐ μακρὰν ἀπὸ ἑνὸς ἑκάστου ἡμῶν ὑπάρχοντα.
and indeed, not far from one each of us He is
‘멀리 계시지 아니 하도다’에서 동사(ὑπάρχοντα)는 현재형입니다(He is).
1.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고,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연대와 장소를 정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연구해보아도 얼마나 신기한지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인류학을 연구해보아도 하나님이 온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고, 인간의 역사와 나라의 경계를 연구해보아도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 되심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렴풋이 알 수 있다는 것은 우주를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 계시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류가 타락하고,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하시고, 장차 심판과 천국이 있다는 분명한 계시를 알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계시를 통해서 신적인 존재를 의식할 수는 있어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오직 미신과 우상숭배에 빠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비도 주시고 햇빛도 주셔서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믿음은 갖고 있으면서도, 온갖 미신과 귀신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과거 시골 농민들이 다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계시는 불완전하고, 성경 계시가 완전한 계시입니다.
2.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만물의 창조자요 운행자이신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다고 했습니다.
헬라철학에서 플라톤의 ‘이데아’ 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라는 신은 모두 만물을 떠나 절대적인 타자로 존재하는 신의 개념을 가르쳤습니다.
즉 인간은 저속한 존재이지만, 신은 인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초월자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핼라 철학은 영육 이원론(dualism)이고,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입니다.
여기서 육체의 금욕을 주장하는 금욕주의(asceticism)와 반대로 육체는 악하므로 막 써버리자는 방탕주의(libertinism/ liberalism)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창조자요 운행자시면서,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신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인간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하셔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간섭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28절.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exist, as even some of your own poets have said, 'For we also are His children.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ἐν αὐτῷ γὰρ ζῶμεν καὶ κινούμεθα καὶ ἐσμέν,
in Him for we live and move and are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살며’(ζῶμεν), ‘기동하며’(κινούμεθα), ‘존재하느니라’(ἐσμέν)는 모두 현재형으로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여기 ‘그 안에서’(ἐν αὐτῷ, in Him)란 ‘하나님 안에서’한 뜻입니다.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ὡς καί τινες τῶν καθ’ ὑμᾶς ποιητῶν εἰρήκασιν
as also some of the among you poets have said
직역하면 ‘또한 너의 시인들 중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이란 뜻입니다.
‘말한’(εἰρήκασιν)은 완료형으로서(have said) 과거에 이미 말했는데 그것이 남아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Τοῦ γὰρ καὶ γένος ἐσμέν.
Of [Him] for also offspring we are
여기 동사(ἐσμέν)는 현재형입니다(we are).
1.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아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벌써 유대교인들에게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순간순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언제 사고가 나서 죽을지 모르는 인생들입니다.
살면서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많은 교통사고의 순간에서 건져주시고, 화가 나서 생업을 망칠 위험 속에서도 건져주시고,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해서 가정을 파괴할 위험에서도 건져주신 것들을 잘 압니다.
건강 문제만 해도 우리들 가운데는 얼마나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까?
사실 물 한 모금 잘 못 마셔서, 숨을 쉬지 못하고 죽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오빠시 벌을 만나서 죽는 경우도 있고, 뱀에 물려서 죽는 경우도 있고, 쯔쯔가무시에 걸려서 죽기도 하고, 코로나에 걸려서 죽기도 하고, 대상포진이나 파상풍이나 갑작스러운 맥박이나 혈압으로 떨어져 죽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위험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가고 있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2.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헬라의 시인 <아라토스 클레안데스>가 “우리는 신의 소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라토스 클레안데스>가 신이라고 한 것은 물론 헬라인들이 섬기는 제우스 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라토스 클레안데스>의 시를 인용해서 제우스 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전도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서 헬라 시인의 말을 인용해서 제우스 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전도했습니다.
참으로 박학다식한 바울의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전도 방식은 일시적으로 전도의 접촉점으로 사용한 것이지, 바울이 헬라 시인의 사상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29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eing then the children of God, we ought not to think that the Divine Nature is like gold or silver or stone, an image formed by the art and thought of man.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여길 것이 아니니라.
γένος οὖν ὑπάρχοντες τοῦ Θεοῦ, οὐκ ὀφείλομεν νομίζειν,
offspring therefore being of the God, not we ought to consider
‘되었은즉’(ὑπάρχο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being), ‘하나님의 소생이므로’(offspring therefore being of the God)란 뜻입니다.
‘여길 것이 아니라’(οὐκ ὀφείλομεν νομίζειν)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을 금 은 돌에 새긴 것들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앞의 동사(ὀφείλομεν)는 현재형이고(we ought), 뒤의 동사(νομίζ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consider) ‘마땅히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χρυσῷ ἢ ἀργύρῳ ἢ λίθῳ,
to gold or to silver or to stone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χαράγματι, τέχνης καὶ ἐνθυμήσεως ἀνθρώπου,
graven thing, of craft and imagination of man
하나님을--같이
τὸ Θεῖον εἶναι ὅμοιον.
the Divine Being to be like
여기 동사(εἶν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to be)입니다.
1.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의 소생이라고 한 말은 인간이 스스로 존재한 자존자(自存者)가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먹여 살려주시는 의존적인 존재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온 우주에 하나님이 만들어 공급해주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땅도 지어주셨고, 하나님이 공기와 물도 만들어주셨고, 하나님이 해와 비도 주시고, 하나님이 부모님도 주시고, 자녀도 낳게 해주셨습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은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만들어서 소유한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2.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온 우주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인데,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로 새겨서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고대의 철학자 <세네카>도 온 세계가 신의 신전이므로, 신전을 돌로 지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않고, 천지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상 8:27)
그리고 스데반도 사도행전 8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손으로 만든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어서 금이나 은이나 돌로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하고, 자기의 기술과 정교한 손재주로써 우상신을 만들어 차고 다닙니다.
이런 것들이 각종 부적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에 갔다 오면서 하루방 돌부적을 사다가 방에 놓아두는데, 이것도 우상 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명한 산에 갔다가 작은 돌부처나 나무로 만든 목탁과 염주를 사다 진열해놓는데, 이것도 우상 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에게서 호랑이 그림을 그려다 붙여놓는데 이것도 부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래의 가치보다 지나치게 귀하게 받드는 것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우상이 될 수 있고, 그런 우상은 마땅히 파멸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평양 신학교에서 마포삼열 선교사를 존경하여 동상을 세우려고 했을 때, 최 권능 목사님이 도끼로 부수겠다고 해서 결국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우리가 존경한다고 해도, 지나치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30절.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having overlooked the times of ignorance, God is now declaring to men that all people everywhere should repent,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τοὺς μὲν οὖν χρόνους τῆς ἀγνοίας ὑπεριδὼν ὁ Θεὸς
the therefore indeed times of the ignorance having overlooked the God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이 문장상으로는 목적어로서 ‘하나님이 알지 못하던 시대들을 간과하셨는데’란 뜻입니다.
‘간과하셨거니와’(ὑπεριδ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overlooked) 확실하게 눈감아주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τὰ νῦν ἀπαγγέλλει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πάντας πανταχοῦ μετανοεῖν,
the now He commands the men all everywhere to repent
직역하면 ‘이제는 어디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그가 명하신다’는 뜻입니다.
‘회개하라고’(μετανο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repent), ‘그가 명하신다’(ἀπαγγέλλει)는 현재형으로서(He commands) 하나님이 지금 명하시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예수님이 오시므로 어둠이 지나고 새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도무지 복음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허물을 묻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므로, 이제 이방인도 바울의 복음 전도를 듣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방인이 예수님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방인들도 복음 전도를 듣고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단하는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4장 16절에서도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이제는 복음 전도를 통해서 이방인도 회개하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2.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하나님이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도 어디서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으나 내용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하셨다는 뜻입니다.
31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ecause He has fixed a day in which He will judge the world in righteousness through a Man whom He has appointed, having furnished proof to all men by raising Him from the dead."
이---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καθότι ἔστησεν ἡμέραν ἐν ᾗ μέλλει κρίνειν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ἐν δικαιοσύνῃ,
because He set day in which He is about to judge the world in righteousness
‘심판할’(μέλλει κρίνειν)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형이고(He is about), 뒤의 동사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judge) ‘그가 심판하시려는’이란 뜻입니다.
‘작정하시고’(ἔσ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et)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정해놓으신 것을 가리키고, 원형(ἵστημι)은 ‘세워놓다, 정해놓다, 설립하다, 굳게 세우다’(make to stand, stand, set up, establish, stand firm)란 뜻입니다.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ἐν ἀνδρὶ ᾧ ὥρισεν,
by man whom He appointed
‘정하신’(ὥρισεν)은 부정과거로서(He appointed) 확실하게 정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πίστιν παρασχὼν πᾶσιν, ἀναστήσας αὐτὸν ἐκ νεκρῶν.
guarantee having provided to all, having raised Him from dead
직역하면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셔서,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살리셔서’(ἀναστή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aised) 역사적으로 부활하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믿을만한 증거’(πίστιν)는 ‘믿음, 신뢰’(faith, belief, trust, confidence)를 뜻하는데,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주셨느니라’(παρασχ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rovided) 확실하게 주신 것을 뜻하며, 원형(παρέχω)은 ‘주다, 마련하다, 제공하다, 가져다주다, 보여주다’(offer, provide, confer, afford, give, bring, show)는 뜻입니다.
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물론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기로 정하신 사람이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심판주 예수님께서 예수님 믿고 죄 용서를 받은 성도들에게는 무죄를 선언하시고, 영생 천국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나 심판주 예수님께서 예수 복음을 들었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불신자들은 유죄를 선언하시며 영원한 지옥 형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하를 심판할 심판의 날을 정해놓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2.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심판주 이심을 믿게 하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바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심판주로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장 29절에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심판주 이심을 증언하는 놀라운 증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에 이런 무서운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의 아덴 전도를 통해서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힘입어서 살고있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장차 만민이 심판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예수님 믿도록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큰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