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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原點)으로
강호사공자(江湖四公子).
당금 무림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촌놈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하늘 아래 귀공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강호사공자 만큼이나 그에 합당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찾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강호사공자는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장차의 중원무림을 이끌고 나갈 후기지수 중에서도 발군의 신성(神星)들이었다.
우선 그들의 내력은 쟁쟁했다.
당금 무림은 한 마디로 백도무림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수년 전 이른바 백화대전(白華大戰),
또는 사십일전쟁이라고 불리웠던 정사대전으로 인해
흑도녹림이 전멸을 하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녹림은 물론 흑도무림인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었다.
그로 인해 백도무림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무림연합맹(武林聯合盟).
당시 구파일방과 무림세가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던 연맹체는 지금도 존속하고 있었다.
연합맹은 공동의 행동과 의결방식을 정하고
각 파가 번갈아 맹주(盟主)와 집행기관이 되어 무림을 장악하고 있었다.
강호사공자는 무림맹 중에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사대명문(四大名門)의 후예들이었다.
천인검객(天忍劍客) 북리웅풍(北里雄風)은
대화산검파(大華山劍派)의 직계 제자로 화산파의 후기지수로 불리우고 있으며,
권왕(拳王) 상관중(上官重)은 종남파(終南派)의 차기 장문인감으로 내정된 인물이었다.
천수관음(千手觀音) 당수문(唐秀紋)으로 말할 것같으면
사천당가(四川唐門)의 서열 이위에 있는 인물이며
백도제일검(白道第一劍) 백유성(白流星)은 대무당파(大武黨派)의 속가제자로
속가인물로는 제일인자로 불리우고 있었다.
그들이 이른바 강호사공자로 불리는 기재들이었다.
따라서 천하에서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강호사공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세인들의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첫째는 그들의 출신이 비범하다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출신 못지 않게 무공이 출중하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그들의 출신이나 무공보다도
각자가 지닌 인품과 덕망이 범인들을 뛰어 넘는다는 것이었다.
넷째는 강호사공자가 필히 미래 무림의 주역이 되리라는 점이다.
다섯째는 그들이 단단히 결속되어 있어 그 의리(義理)가 골육 같다는 점이었다.
이상의 다섯 가지 점은 강호사공자를 무림의 대선배들도 한 수 양보하게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토록 무림의 선망과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강호사공자가
범인이었다는 사실은 실로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장천림은 백가소가 남긴 그림 속의 인물들을 알아내는데 그다지 많은 노력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어떤 주루에서 강호를 잘 아는 표객 한 명에게 그림을 보인 바,
그림 속의 청년들이 바로 강호사공자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 강호사공자는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영재(英才)들을 가리키는 말일세!
- 강호사공자들이야말로 앞날의 무림을 떠받들 동량들일세!
- 허허! 자네도 한 번 만나보게 되면 그들을 존경하게 될 걸세!
- 강호사공자는..
장천림은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표객의 면상을 주먹으로 한 대 갈긴 후 주루를 뛰쳐나와 버렸다.
복수다!
강호사공자가 아니라 상대가 당금 무림의 맹주라 해도 복수를 하고야 말 것이다.
기다려라!
이 장천림이 간다.
홍무(洪武) 9년 6월 16일
사천(四川)의 험지를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전신은 피를 뒤집어 쓴 듯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장천림이었다.
전신에 성한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었다.
여기저기 옷이 찢어졌음은 물론이려니와 곳곳에 암기와 자상(刺傷)이 나 있었다.
그런 상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어젯밤 사천 지방을 군림하고 있는 무림명가인 당가보(唐家堡)에 단신으로 뛰어 들었다.
목적은 무림에 혁혁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강호사공자의 일원인
천수관음 당수문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수문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그를 찾기도 전에 수많은 당가고수들의 합공을 받았으며,
또한 당가를 무림일절로 만든 암기술(暗器術)에 만신창이가 되고만 것이었다.
그는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탈출했다.
그나마 생명을 부지한 것 만도 다행이었다.
그가 실패한 이유는 간단했다.
당가보의 경비가 상상보다 삼엄한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결정적인 원인은 그 자신이 지닌 무공이 너무나도 녹슬어 있다는 것이었다.
장천림은 출중한 무예를 익혔다.
그것은 대원제국이 반원지사들을 살해하기 위해 교육시킨 무공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익힌 무공은 빼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대원의 황실에서 전래로 내려오는 무예의 일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너무나 몸을 쓰지 않았다.
그가 검을 잡은 것 만 해도 근 십 년 만이었던 것이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생각과 동작이 쉽게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역부족이었다.
그가 익힌 무학은 고도의 살인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민첩한 동작과 감각이 최우선해야 했다.
그래야 한층 빛을 낼 수 있는 무학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몸은 녹슬었으며,
감각도 예전에 비한다면 십배 이상 퇴보되어 있었다.
안돼..
이 정도로는..!
장천림은 사천 분지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의 발 밑으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렇게 숨이 차서야..
이 상태로는 복수가 불가능해.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필요했다.
어느덧 장천림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늪지로 찾아들고 있었다.
예전에 그가 배운 특별한 요상법을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그는 황하로 흘러드는 지류의 하나인 작은 샛강을 발견했다.
늪지는 밀집된 갈대숲 속에 있었다.
그곳에 질척한 진흙의 수렁이 있었다.
장천림은 망설임없이 그 수렁 속에 옷을 벗고 몸을 담그었다.
진흙으로 된 수렁 속이라 몸을 담그는 순간 목까지 잠겼다.
그는 알몸이었으므로 독암기나 자상에 인한 상처가 즉시 불에 덴 듯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꾹 참았다.
그에게는 금창약이나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수렁 속에서 흙의 자연정화작용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독을 제거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류의 요상법은 동영(東瀛)의 인자(忍者)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열흘..
십여 일이 꿈같이 흘렀다.
그동안 장천림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화기를 접하거나 음식물을 복용하게 되면 요상법은 효과를 잃기 때문이었다.
열흘째 되는 날 그는 수렁에서 걸어나왔다.
그의 전신에는 놀랍게도 수백 마리의 거머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거머리들이 달라붙어 그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거머리가 빨아먹고 있는 피는 바로 독혈(毒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을 피부에 대고 문지르자 거머리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거머리들은 독혈을 먹고 거의 기운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장천림은 찢어진 옷을 대충 걸치고 그곳을 떠났다.
지난 열흘 간 그는 많은 가능성을 생각했다.
복수를 위한 깊은 상념이었다.
그의 현재 실력으로 강호사공자를 죽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칫하면 중원무림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물론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세력도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설사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한이 있더라도
백가소를 망치고 그녀를 자살로 몰고간 강호사공자는 죽여야만 했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남하(南下)하기 시작했다.
절강성(浙江省) 최남단.
세인들이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는 오지(奧地)가 있다.
이름하여 불귀곡(不歸谷).
언제, 누가 붙였는지 몰라도 그런 이름이 붙어 있는 절곡이었다.
불귀곡이란 돌아오지 않는 계곡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 한 번 불귀곡에 발을 들이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적어도 아득한 옛날에는 그랬다.
이 불귀곡에서 천여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고된 훈련을 받으며 하나 둘 쓰러져 갔고,
나중에는 탈출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낙화처럼 쓰러져 갔던 것이다.
바로 대원제국이 기울어 갈 무렵의 일이었다.
그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이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들을 모아놓고
반원지사들을 암살하기 위한 살인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돌아왔다.
"......."
장천림은 물경 십 년 만에 불귀곡으로 돌아온 것이다.
과거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는 감회에 젖어 잡초와 밀림이 우거져 있는 불귀곡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그 얼마나 많은 고통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시달려 왔던가..?
장천림은 돌아온 것이다.
현무, 주작, 백호, 청룡단의 천여 명 아이들이 잠을 자던 석실들 하며..
그들이 훈련을 받기 위해 지어져 있던 모든 시설물들을 둘러보았다.
장천림은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그는 단단히 각오를 한 것이다.
복수를 위해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신의 녹슨 몸을 부활시키고..
잃어버린 살수의 감각을 되찾기 위하여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일은 이곳의 시설물들을 과거와 똑같이 복원시키는 것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불귀곡을 복원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해내야만 했다.
이날부터 장천림은 웃통을 벗고 등짐으로 바위를 나르며 공사에 착수했다.
기억을 되살려 가면서 옛날의 지옥훈련을 받던 시설들을 하나하나 복원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불귀곡에 도착한 날은 홍무 9년 9월 10일이었다.
황궁(皇宮).
천하에서 가장 화려한 곳.
아니 이런 설명보다는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곳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대명황조(大明皇朝)가 철혈의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며,
권문세가들이 처마를 맞대고 운집해 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금릉(金陵:당금의 남경)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황궁은
지상최대의 건축물이며 신이 내린 인간최대의 권좌다.
황궁에서 동쪽으로 삼 리(三里)쯤 떨어진 곳에 대저택이 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명황가의 권력자가 사는 저택이라면 세인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추가하여 저택의 주인이
환관(宦官) 등소(登素)라면 세인들은 안색이 변할 것이다.
환관이라면 대명부의 내전을 관장하는 남성을 거세한 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런 인간이라고 말 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이들 환관이야말로 당금의 조정을 흔들고
황제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환관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태태감(太太監) 등소.
그는 환관들의 우두머리급 위인으로 황제의 총애와 신임을 두텁게 입고 있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뿐으로
그것은 남성을 행사할 물건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 외에는 온갖 부(富)와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었다.
그가 사는 저택만 하여도 넓이가 황궁을 빼놓고는 이곳 금릉에서 가장 클 정도였다.
가을이다.
스스스..
추풍(秋風)에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저택의 후원에는 낙엽이 지고 있었다.
온갖 희귀식물의 전시장인 듯한 후원이었다.
낙엽이 떨어져 역시 거대한 인공연못 위에 떨어진다.
낙엽은 연못 위에 수북히 쌓여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정자(亭子).
날아갈 듯한 처마 끝에는 황금으로 주조된 풍경(風磬)이 걸려 있었다.
디잉..
이따금 맑은 음향이 들린다.
딱.
또 다른 소리가 있었다.
역시 청아한 음향이었다.
청옥(靑玉)으로 된 바둑판 위에 묘안옥(猫眼玉)으로 된 바둑돌이 떨어지는 소리다.
등소는 지금 느긋하게 정자에 앉아 집사와 함께 바둑을 두는 중이었다.
그의 바둑 실력은 국수급이라고 한다.
틈만 나면 이렇게 바둑을 두는 것이 그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것이다.
지금 그가 돌은 둔 곳은 대마(大馬)의 급소를 노리는 위치였다.
그 바람에 집사는 낭패한 표정으로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어쩔줄을 모르는 모습이었다.
이제 그가 대응수를 찾으려면 족히 뜨거운 차 석 잔은 마실 시간이 경과해야 하리라.
등소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 보았다.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연못가에서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나이는 십사 세쯤 되어 보인다.
일신에는 검박한 백의를 입었는데 복장으로 보아 그의 저택 일을 보는 하인임이 분명했다.
'못 보던 아이인데..?'
그는 눈을 가늘게 하여 소년의 모습을 관찰했다.
등소의 나이 오십칠 세.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환관이기에 자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환관들은 노후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양자를 들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등소는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핏줄이 다른 아이에게 정을 주는 것은 마음에 차지는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차츰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올해 들어 공연히 허전한 것이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참한 아이라도 있다면 남들처럼 양자를 들일까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나 마땅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환관의 양자로 들어오는 자들은 뻔한 것이다.
그들은 환관의 권력이나 재산을 노리고 양자로 들어오는 것이다.
"저 아이는 누군가?"
집사 황신(黃信)은 고개를 돌렸다.
문득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얼마 전 들어온 아이입니다.
똑똑하고 여간 착한 것이 아닙니다.
머리도 영리한 것 같아 요즘 글(文)을 가르치고 있읍죠."
"그래..?"
등소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부드러운 웃음이 흘러 나왔다.
"허허.. 오늘 밤 저 아이를 내 방으로 불러 들이게. 이야기라도 하고 싶군."
황신은 눈치가 빠르다.
그는 대뜸 주인의 심정을 눈치챘다.
"예. 알겠습니다. 저 아이는 고아인데다가 아직 이곳 권문가의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초겨울이다.
아직은 추위가 오기 이른 계절이었다.
불귀곡의 풍경은 변해가고 있었다.
잡초 무성하던 분지는 깨끗이 다듬어져 있었으며,
건물들은 제 모양을 찾고 있었다.
장천림이 불귀곡으로 들어온지 꼭 오십여 일 만의 일이었다.
그는 등가죽이 벗겨지고 손발에 못이 박혔다.
그동안 그는 전념으로 불귀곡을 복원시키고 있었다.
특히 그가 주력한 것은 지난 날 불귀곡에서 악명이 높았던
지옥십이관(地獄十二關)의 시설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지옥십이관은 소년들의 체력과 정신력,
투혼을 증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의 시설들을 말한다.
지옥십이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어간 소년들이 그 몇이던가?
장천림은 비지땀을 흘리며 지옥십이관을 복원시키고 있었다.
"이름은?"
"등진강(登眞强)입니다."
"부친의 이름은?"
"등소입니다."
"너는 언제 거세(去勢)했느냐?"
"한 달 전입니다."
"거세 방법은?"
"절단(切斷)입니다."
환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남성의 거세였다.
환관의 자식은 다시 환관이 되는 것이 관례다.
태태감 등소의 양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등소의 양자가 된 소년은 몇 개월 후 환관으로 임용되었다.
처음에는 소감(少監)이라 하여 동자환관이 되는 것이다.
동자들은 주로 후궁들의 시중을 든다.
환관으로 입문하는 데는 심사가 엄격하기 그지 없었다.
등진강은 바지를 벗기고 검사를 당했다.
과연 그의 남성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그는 합격되었다.
그런데 그의 사타구니 안쪽이 유난히 부어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오직 등진강과 그의 양부인 태태감 등소 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양부인 등소가 태태감인 관계로 등진강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태감(少太監)이라는 동자환관으로서는 파격적인 진급을 하게 된다.
이후로 그는 황궁의 여러 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등진강의 본래 이름은 백리진강(白里眞强)이었다.
자시(子時)가 넘었다.
등진강은 양부인 등소의 부름을 받았다.
등소는 백호피를 씌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등진강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
"어서 오너라. 그래 황실의 생활은 할만 하더냐?"
"예. 아버님."
등진강은 조용히 대답하고는 뒤로 돌아가 양부 등소의 어깨를 주무른다.
등소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백 번을 생각해 보아도 잘한 일이었다.
그는 양아들을 둔 일을 스스로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꺼려지는 것은 등진강의 사내를 제거하지 않은 일이었다.
문득 등소는 음성을 낮추어 물었다.
"그곳은 어떠냐?"
등진강은 얼굴을 붉혔다.
"이제는 밖으로 끄집어 냈습니다."
"어디 보자."
등진강은 스스럼없이 바지를 벗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분명 등진강은 환관이었거늘 그의 사타구니에는 의당 없어야 할 물건이
그것도 늠름하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흐음..! 탐스럽군."
등소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는 손을 뻗어 등진강의 늠름한 사내를 잡았다.
손 안에 뿌듯하게 차오르는 부피감이 있었다.
그는 지난 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어릴 적에는 그런 물건이 있었다.
소년 적에는 그 물건을 가지고 아이들끼리 장난을 한 적도 있었다.
누구의 물건이 가장 크게 일어서는가를 자랑하기 위해 신나게 쥐고 흔들어대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그의 사타구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명예도 좋고 부귀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자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실이 항상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양자에게도 같은 불운의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백리진강을 양자로 들였을 때 그는 결심했다.
'내 이 아이 만은 내시로 만들지 않으리라!'
만일 그 사실이 발각된다면 자신은 물론 구족(九族)이 멸하게 되는 중형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등진강의 사내를 거세하지 않은 것은 한이 맺혔기 때문이었다.
환관 심사의 눈을 피하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일을 위해서 그는 특별한 방법을 동원했다.
등진강의 가랑이 사이를 찢고 그 속으로 물건을 밀어넣은 뒤
봉합 수술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 시술은 자신이 직접했다.
기밀이 밖으로 누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감쪽같다.
그러나 다시 물건을 꺼내니 등진강은 완벽한 사내 구실을 할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조심하도록 해라. 발각나면 어떻게 되는 지 알지?"
등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등소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 알고 있었다.
그는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동안 등소의 눈에 들기 위하여 얼마나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였던가?
결국 모든 일은 그의 뜻대로 된 것이다.
그는 등소의 양자가 되었고,
황실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신분으로까지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아무리 마음이 동한다 해도 내전(內殿)의 후궁이나 시녀들을 건드리는 일은 삼가해야 한다.
설혹 참을 수 없다면 이 애비가 적당한 계집을 구해 주마.
그 일은 꼭 집에서만 해야 한다.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아버님."
등진강, 아니 백리진강은 진중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등소는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이렇게 바지를 벗기고 그의 물건을 만진다.
그것은 잃어버린 등소 자신의 물건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등소는 그에게 있어 은인이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즐독!
감사
줄독